등사판으로부터 콤퓨터화에로
조선출판회관을 비롯한 우리 건물에다 인쇄설비와 기자재들을 갖추어놓고 우리 말과 함께 일본어와 영어 등 외국어로 보도,통신,출판활동을 벌리고있는 해외교포조직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총련의 출판물들은 광복후 오늘에 이르는 동안 재일조선인운동과 더불어 동포들의 뜨거운 지원속에서 발전의 길을 걸어왔으며 총련사업과 동포사회에서 커다란 업적을 이룩하였다.

●애족애국의 기치를 들고
  조국광복후 선진적인 애국동포들이 조련을 뭇기 위한 투쟁을 벌리는 속에서 1945년 10월 10일 《조선신보》의 전신인 《민중신문(民衆新聞)》이 창간되였다.창간호는 조선어활자가 없어서 일본글로 내다가 그 후는 우리 글 등사인쇄로 타블로이드판으로 내게 되였다.《민중신문》이 나옴으로써 재일동포들은 비로소 자기 의사의 진정한 대변자를 가지게 되였다.
  그후 《우리 신문》을 거쳐 《해방신문(解放新聞)》(큰판,격일간)으로 제호를 바꾼 신문은 애족애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재일동포들에게 새 조국건설의 감격적인 소식을 전하여 새 생활창조의 크나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을 기도한 미제는 일본당국을 시켜 1949년 9월에 조련,민청을 해산시키고 1950년 8월 2일에는 《해방신문》을 강제로 페간시켰으며 신문제작에 필요한 기자재들을 몽땅 압수하는 파쑈만행을 감행하였다.

●총련결성에 이바지
  애국적인 동포들은 반동들의 부당한 탄압을 박차고 신문의 복간을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렸다.그리하여 1952년 5월 20일에 《해방신문》복간 제1호를 발간하였다.
  복간된 《해방신문》은 조선문제연구소,조선통신사,구월서방 등과 함께 당시 일부 사대주의,민족허무주의자들에 의하여 시련을 겪고있던 재일조선인운동을 옳은 궤도우에 올려세우기 위한 투쟁을 일관하게 벌렸다.
  특히 《해방신문》은 로선전환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로 재일동포들을 적극 추동함으로써 총련을 결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총련결성후 《해방신문》은 제호를 《조선민보》로 고쳤다가 1961년 1월 1일부터 《조선신보》로 바꾸고 오늘까지 총련사업과 재일동포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큰 역할을 놀고있다.

●출판사업의 다양화, 현대화
  1960년대에 들어서 앙양된 우리 운동의 요구를 반영하여 총련의 출판기관들이 새로 나오게 되였으며 《조선화보》,잡지 《조국》 등 각종 정기간행물이 창간,보급되였다.이러한 출판물들은 동포들의 애족애국정신을 높이며 총련사업을 발전시키는데서 역할을 놀았다.
  《조선신보》는 1961년 9월 9일부터 일간화되였으며 1987년 8월 26일에 발간 1만호를 헤아리게 되였다.2005년 3월말현재 발행루계는 1만 4,160호이다.《조선신보》는 변화된 환경과 새 세대들을 비롯한 동포들의 실정에 맞추어 1999년 10월부터 우리 말 4페지,일본말 4페지,도합 8페지로 격일간으로 발행되고있다.
  조선신보사는 우리 과학기술자들과 애국적인 동포상공인들의 지원에 의하여 첨단기술의 시대에 상응하게 1988년 11월부터 신문제작공정을 콤퓨터화하였다.
  조선신보사가 평양에 지국을 두는 등 총련의 기자들이 해내외동포들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인민들속에서 취재보도활동을 줄기차게 벌리고있다.
  오늘 총련의 출판보도부문에서는 로력영웅과 인민기자,공훈기자,공훈예술가,공훈인쇄공,공훈출판물보급원 등이 수많이 배출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