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동포들과 마음을 하나로
총련은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언제나 뜨거운 혈육의 정으로 지지성원하였으며 미국과 반통일세력의 전쟁도발과 분렬책동을 반대배격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1960년의 4.19인민봉기,1980년 5월의 광주인민봉기,1980년대 초기의 반미자주화투쟁,1980년대말부터 90년대초기에 걸친 《이북 바로알기운동》과 통일기운의 앙양,2002년의 반미초불투쟁으로 상징되는것처럼 분단 반세기여동안에 자기들의 투쟁을 반파쑈민주화투쟁으로부터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투쟁으로 착실히 발전시켰다.
  총련은 매 시기마다 각종 군중집회와 기자회견,서명운동 등의 방법으로 그들의 투쟁을 뜨거운 혈육의 정으로 적극 지지하였다.또한 항쟁의 마당에서 희생된 남녘의 애국투사들과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동포들을 추도하는 모임도 엄숙히 거행하였다.비데오편집물 《광주는 고발한다》를 비롯한 영화,비데오편집물들을 제작상영하여 남녘동포들의 투쟁모습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제적인 지지성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재일동포청년학생들은 북남학생회담과 《국토순례대행진》의 실현을 위하여 100만명서명운동을 벌리는 한편 북,남,해외 청년학생들이 함께 입을 T샤쯔 1만벌을 마련하는 등 온갖 열성을 발휘하였다.그들은 또한 《조국통일촉진,림수경학생 석방요구 50만명서명운동》을 비롯하여 부당하게 구속된 남녘의 청년학생들과 《재일교포정치범》의 석방을 위한 투쟁을 꾸준히 벌렸다.
  총련은 나라의 통일을 한사코 가로막고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전쟁도발과 분렬책동을 반대배격하기 위하여 투쟁하였다.
  대표적인 활동으로서는 1975년 7∼8월에 걸쳐 10만명의 동포들을 망라하여 515만명의 지지서명을 받은 《조선에서의 핵전쟁도발반대,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거요구,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오사까-도꾜간대행진》과 1979년 6월 23일부터 7월 5일까지 진행한 《조국통일촉진,전민족대회실현을 위한 동포청년학생들의 오사까-도꾜간행진》,1982년 6월에 10만 1,500명 동포들의 참가밑에 진행된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퇴와 핵무기철거요구,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촉진 재일조선인대행진》 등을 들수 있다. 동포들은 뙤약볕이 내려쪼이는 삼복더위도,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강추위도 아랑곳없이 싸우는 남녘의 혈육들과 같은 심정으로 삐라살포,서명운동,가두와 해상 시위,자동차행진,강연회와 집회 등 다양한 형태로 적극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