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교육투쟁
미제는 재일동포들의 애국투쟁과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압살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였다.
 1948년 1월 미제는 일본당국을 시켜 조련과 재일동포들이 자주적으로 실시하고있던 민족교육을 부인하고 우리 학교를 페쇄하려는 의도를 담은 《통고》를 전국의 도도부현 지사들에게 하달케 하였고 학교를 지키는 투쟁에 떨쳐나선 동포들을 류혈적으로 탄압하였다.
 특히 효고에서는 4월 24일과 25일에 미점령군이 《비상사태선언》까지 공포하여 야수적인 탄압을 감행하였다.4월 26일에는 일본경찰대가 오사까부청앞에 모여든 2만여명의 동포들을 무력으로 탄압하였다. 이 과정에 김태일소년(16살)이 총에 맞아 희생되였다.
 미제와 일본당국은 조련을 해산시킨 직후인 1949년 10월에 《조선인학교페쇄령》을 내렸다.
 재일동포들은 미제와 일본당국의 거듭되는 탄압과 곤난한 조건을 박차고 우리 교육을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자주학교,공립학교,민족학급 등 여러가지 형태로 민족교육을 굴함없이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