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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6년전, 체스꼬슬로벤스꼬의 까릴로븨바리에서 진행된 제18차 세계영화축전에서 특등상과 특등메달을 받은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는 영화를 창작하던 당시 어느 한 두메산골에서 고등중학교를 갓 졸업한 10대의 애어린 단발머리 소녀였다.
아직은 영화가 무엇인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애숭이 소녀가 어떻게 되여 세계영화계를 놀래운 명작의 주인공으로 될수 있었는가.
주체60(1971)년 7월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에 주인공으로 출연할 꽃분이배역을 선정할 때였다.
담당연출가는 물론 촬영소의 모든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명작의 주인공인것만큼 꽃분이역은 응당 인물이 잘나고 기량도 높으며 경험이 풍부한 배우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강력한 배우선발그루빠가 조직되여 촬영소는 물론 전국의 예술단체들을 샅샅이 훑었으나 꽃분이역을 할만한 배우를 좀처럼 찾아 낼수가 없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영화창조집단의 이러한 고충을 헤아리시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영화에 한번도 출연하지 않은 어린 배우에게 시키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한명 추천하겠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지명하신 배우는 그때 촬영소양성반에 다니던 나어린 소녀였다.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천만뜻밖이였다.
(아직 학생티도 벗지 못한 그가 과연 그처럼 중요한 명작의 주인공을 꽤 해낼수 있을가?…)
일군들과 창작가들은 불안과 위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가 순진하고 소박한것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면서 새싹을 키워내는 립장에서 한번 시켜보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얼마후 촬영소에서는 창작단 의도발표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신인배우는 그만 짚신을 꺼꾸로 신고 무대에 나섰다. 아직 짚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난생 처음 짚신을 신어보는 그로서는 그럴만도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가 행복속에서만 고이 자라다보니 아직 짚신을 신는 법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손수 짚신 신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후에도 어린 배우의 연기는 물론 의상과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꽃분이가 눈먼 동생을 골목길로 끌고가서 우리는 거지가 아니라고 꾸짖는 장면에서는 당대 사회의 계급적울분이 섞인 눈물이 흘러나와야 한다고 일깨워주시고 그가 나물캐러 갈 때에는 손에 칼이 들려있어야 한다고 귀띔해 주시였으며 배우가 입은 무명옷을 보시고는 그때 사회에서는 그런옷을 입을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토스레옷을 바꾸어입게 하시였다.
억울하게 눈을 감은 어머니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꽃분이, 감옥에 갇힌 오빠를 찾아 700리 먼길을 왔다가 앞을 막는 일제의 감옥문을 두드리며 피타게 우는 장면, 계급적원쑤 배지주놈에게 약탕관을 내던지는 장면…
실로 그 모든 장면과 화면마다에는 그이의 세심한 지도의 손길이 깃들어 있었다.
그 따뜻한 손길에 의하여 꽃분이는 연기에서 성공할수 있었고 그후 인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름있는 영화배우로 자라나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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