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시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청소년학생들 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배우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벌리시였다.
1952년 11월 만경대혁명학원(당시 만경대혁명가유자녀학원)에 편입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3년 2월 10일 학급 소년단원들로 <김일성장군님의 략전연구소조>를 결성하시였다.
략전연구소조의 목적은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의 혁명력사 학습을 통하여 학원학생들을 수령님의 위대성으로 무장시켜 조선혁명의 기둥으로 준비시키는것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활동으로 략전연구소조는 점차 학원의 모든 학급들에 조직되여 운영 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은 날을 따라 더 넓은 범위로 확대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발기와 지도 밑에 조직운영된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는 준엄한 전쟁시기에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성으로 교양하고 그들을 수령님께 충실한 아들딸로 키우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며 소조활동의 경험과 업적은 그후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배우는 사업을 심화시켜나가는데서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다.
1953년 7월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인민의 위대한 승리로 끝났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후에 평양제4인민학교를 마치시고 평양제1중학교(1954.9-1957.8)에서 공부하시면서 다방면적인 지식을 체득하기 위하여 정력을 기울이시는 한편 청소년학생들 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배우는 사업을 수령님을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고 옹호보위하기 위한 사업과 밀접히 결부하여 더욱 활발히 벌려 나가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기념일에 평양제4인민학교 소년단원일동의 이름으로 수령님의 안녕과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글을 새긴 축기를 올릴것을 발기하시고 정성껏 준비하여 수령님께 드리시였다.1954년 4월 15일 저녁 몇명의 학생대표들이 경애하는 수령님을 찾아뵙고 올린 축기증정식은 매우 소박한 행사였으나 충성과 사랑의 정 넘치는 화폭으로 길이 전해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청소년학생들 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업을 옹호고수하는 견결한 자세와 립장을 키워주기 위해 힘쓰시면서 몸소 실천적모범을 보여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6년 5월 사대주의,교조주의에 물젖은 한 간부가 제1차5개년계획의 전망에 대한 강연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에 배치되는 궤변을 늘어놓은데 대해 론박하시고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의 정당성에 대해 해설해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5년 4월 만경대와 칠골혁명사적지 참관을 조직하시고 1956년 6월 5-14일에는 평양제1중학교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행군을 진행하시였다.
이 답사행군은 우리 나라에서 백두산일대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의의깊은 답사행군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학생청년들 속에서 주체를 세우며 당적사상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에 모든 힘을 다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미 인민학교시절에 학생소년들이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옳바른 학습태도를 가지고 학습하도록 이끌어주시였으며 1957년 9월 1일부터 평양제1중학교 고급반(1959년 4월에 평양남산고급중학교로 됨)에 진학하여 공부하시면서 청년학생들속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해 적극 힘쓰시였다.
력사적으로 내려 오면서 우리 나라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사대주의,교조주의는 전후시기 당내사상투쟁을 통하여 많이 극복되였으나 그 사상여독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다분히 남아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지난 시기 청소년학생들 속에도 적지 않게 부식된 사대주의,교조주의의 사상독소와 사고방식을 뿌리빼는데 선차적인 주의를 돌리시면서 학습에서 주체를 세우도록 힘있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우리의것을 더 잘 배우고 빛내이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학습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학생들이 우리 당 정책과 혁명전통을 깊이 연구체득하고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지리,미풍량속 등 우리의것을 열심히 배우면서 다른 나라의것을 우리 혁명과 건설에 써먹을수 있게 소화하도록 이끄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학생들이 과외활동에서도 다른 나라의 춤과 노래와 그림을 좋아하는 사대주의적관점을 버리고 우리의 춤과 노래와 그림을 더 잘 배우며 익히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학생들을 이끄시고 공장,농촌 견학과 등산 등을 자주 조직하시였으며 학교에 생산실습실을 꾸리고 자동차나 전동기를 수리하고 운전도 해보면서 한가지이상의 기술을 배우도록 하시였다.
이러한 실천과정을 통하여 청소년학생 속에서 우리의것을 더 귀중히 여기고 빛내여 나가려는 관점과 립장이 확고히 서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청소년학생들 속에서 당적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당적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는것은 혁명과 건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철저히 구현하기 위한 근본요구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지난 시기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영향이 교육부문과 청소년사업분야에 적지 않게 미치였던 실정에서 우선 민청초급일군들에게 종파의 반동적본질과 죄행,1956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종파분자들을 조직적으로 청산한 우리 당의 조치의 정당성을 해설해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8년 6월 27일 학교민청총회를 소집하시고 이 회의가 반당종파분자들이 뿌려놓은 사상여독을 뿌리빼기 위한 일대 사상투쟁의 마당으로 되도록 이끄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총회를 결속하시면서 우리 나라 종파의 력사적근원과 죄행을 깨우쳐 주시고 학생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종파의 여독과 그 극복방도,당적사상체계확립을 위한 민청원들의 과업을 밝혀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8년 9월 16일 <청소년들속에서 당적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자!>라는 혁명적구호를 내놓으시고 그 구현을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당적사상체계는 본질에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체계입니다.민청원들속에 당적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는것은 민청단체들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입니다.<청년들속에서 당적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자!>,이것이 현시기 당의 요구이며 민청원들앞에 나서는 첫째가는 임무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적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기 위하여 조선로동당력사연구실을 잘 꾸리도록 하시고 이곳을 거점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 학습을 기본으로 하여 항일혁명투사들의 회상실기 학습,혁명가요 보급과 혁명전통주제의 문학예술작품감상모임 등을 활발히 벌리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청년학생들이 <항일유격대원들처럼 일하며 배우며 살자!>라는 구호를 높이 추켜들고 혁명전통을 실생활에 구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당정책교양과 혁명전통교양이 강화되고 사대주의,교조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상을 반대하는 사상교양사업이 심화됨으로써 청소년학생들 속에서는 당의 로선과 정책을 가장 정당한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로 하여 모든것을 재여 보며 당의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적극 투쟁하는 기풍이 확고히 서나가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사업을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한 정력적인 조직정치활동을 벌리시였다.
1957년 2월부너 민청초급단체 위원장으로 사업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같은 해인 1957년 9월부터 학교민청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은 교원)으로 사업하시였다.
이 시기 우리 나라에서는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가 완성단계에 이르고 천리마의 대진군이 시작되여 사람들의 사상의식에서 일대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민청사업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책동의 후과로 하여 지난날의 형식주의적인 낡은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민청단체들은 사상교양단체로서의 자기의 성격과 새로운 환경에 맞게 사업을 옳게 조직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청소년사업에 남아 있는 결함을 깊이 통찰하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청년운동사상을 철저히 구현해 나가실 결심밑에 학교민청단체의 임무를 새롭게 밝히시고 민청초급단체의 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모든 민청원들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혁명가로,지식 있고 능력 있는 믿음직한 사회주의건설자로 키우는것을 학교민청단체의 기본임무로 내세우시였으며 민청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을 강화하고 동맹생활,학습과 소년단사업에 대한 지도를 잘하며 모든 사업을 청년들의 특성에 맞게 새맛이 나고 통이 크게 조직하는것을 민청단체들의 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상교양에서 종전의 천편일률식방법을 버리고 청년들의 특성에 맞게 다양하고 참신하게 사상교양사업을 벌려 나가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8년 4월 리수복영웅의 모교와 고향마을에 대한 견학을 조직하시여 민청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리수복영웅의 충성심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정신을 따라 배우게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9년부터 청년학생들속에서 부정을 폭로비판하는 교양방법으로부터 긍정을 적극 찾아 널리 소개선전하고 일반화하는 교양방법에로 사상교양사업을 전환하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창조하신 사상교양의 새로운 형식과 참신한 방법은 민청사업에 활기를 돋구고 민청원들의 사상의식 개조를 크게 추동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조직들이 민청원들의 동맹생활 지도를 잘하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당시 동맹생활지도에서 나타나고 있던 중요한 결함은 민청조직들이 청년학생들의 학과실력을 높이는데 거의나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는것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원들이 학습을 잘하도록 지도하는것이 민청단체의 중요한 임무이며 동맹생활지도의 기본내용으로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고 민청원들의 학습열의를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방도를 밝혀 주시였다.
그후 학교민청조직에서는 민청원들의 학습열의를 높이기 위한 학과경연대회,과목별 학과토론회,문예작품독서발표회와 같은 모임들을 활발히 조직운영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원들에게 청년시절에는 학습에 모든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늘 강조하시면서 그 산 모범을 보여 주시였다.이미 중학교시절에 정열은 창조의 원천이라고 하시면서 다방면적인 지식습득을 위해 학습에 남다른 정력을 쏟아 부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고급중학교시기에도 학과목교재들외에 위대한 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과 맑스-레닌주의저서들을 탐독하시였고 기계공학과 농학,축산학과 같은 전문기술분야의 책들,사회과학과 문학예술 분야의 책들을 정력적으로 읽고 습득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학구적인 탐구의 폭과 깊이는 그 누구도 따를수 없이 넓고 심오하였다.청년들은 그이의 모범을 따라 학과목학습외에 자연과 사회에 대한 폭 넓고 깊은 지식을 소유하기 위한 과외독서와 과외연구소조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빛나는 모범과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학교민청조직은 학생들의 학습열의를 높이기 위한 사업을 동맹생활지도의 중요과업으로 틀어쥐고 나가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조직들이 동맹생활지도에서 민청원들이 자각적인 조직생활기풍을 세우도록 하는데도 힘을 넣도록 이끄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단체들이 동맹원들에게 분공을 빠짐없이 주고 그 수행정형을 수시로 알아보고 적극 도와 주도록 하는 한편 모든 동맹원들이 비판에 대한 옳은 관점을 가지고 비판과 자기비판에 적극 참가하도록 이끌어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회의들에 자주 참가하시여 혁명동지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결함을 감싸 줄것이 아니라 제때에 따끔히 비판하여 고쳐주어야 하며 한편 동무들의 비판을 고맙게 생각하고 성근히 받아 들이며 자기의 결함을 애써 고쳐 나가야 한다고 일깨워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비판과 자기비판이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민청원들속에서 조직관념이 높아지고 자각적인 동맹생활기풍이 확립되여 갔으며 그들의 조직사상적단련이 강화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청사업의 한 부분인 소년단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민청이 소년단사업을 책임지고 지도하는 새로운 체계를 세워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상급학년의 준비된 민청원들이 분단지도원을 도와 소년단분단들을 맡아 지도하는 보조분단지도원제를 내오시였다.보조분단지도원들은 학교민청위원회의 지도밑에 소년단에 대한 민청의 지도를 보장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민청사업은 지난날의 형식주의적인 낡은 틀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활기있게 진행되였으며 자기 발전의 새로운 단계에 올라서게 되였다.
청년사업의 새로운 활기와 성과는 청년운동의 지도자로서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조직적수완을 보여 주었다.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학생청년들을 사회주의건설투쟁에 적극 참가시키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조직지도하시였다.
학생청년들을 사회주의건설투쟁에 적극 참가시키는것은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며 그들을 혁명적으로 단련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1958년 3월에 열린 전국청년사회주의건설자대회에서 청년들은 당의 령도밑에 자기 손으로 밝은 새 시대,새로운 사회주의시대를 개척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모든 청년들이 자기의 열정과 지혜와 능력을 사회주의건설에 바칠것을 호소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8년 5월 5일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수도건설에 참가하는 평양제1중학교 학생,교직원궐기대회에서 연설하시며 다음과 같이 호소하시였다.
<우리는 이 땅우에 하루빨리 사회주의락원을 일떠 세우려는 청년사회주의건설자들의 거세찬 투쟁에 보조를 맞추어 보람찬 수도건설에 청춘의 열정과 지혜를 다 바쳐야 한다.>
평양시 2만세대 살림집건설을 위한 경상골부재생산전투장으로 나가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청년학생들의 혁명적열의를 적극 불러 일으키고 기술혁신운동을 능숙하게 조직하시여 기준속도를 훨씬 뛰여 넘는 집단적혁신이 일어나게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8년 여름과 이듬해 4월에 대동강호안공사에 참가하시였으며 1959년 2월에는 평양학생소년궁전 건설에 참가하시여 능숙한 조직정치사업과 자신의 실천적모범으로 학생청년들을 로력적위훈에로 불러 일으키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보람찬 로동의 나날에 학생청년들이 청춘의 정열과 창조적지혜를 사회주의건설에 남김없이 바치며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한 헌신적복무의 정신과 난관을 이겨내는 강의한 의지를 소유하도록 이끌어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시대의 광범한 청년들이 보람찬 사회주의건설장에 적극 진출하여 로력적위훈을 세우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8년 3월 18일과 19일 민청중앙위원회 일군에게 청년들은 사회주의건설에서 돌격대의 역할을 수행하며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를 발기하고 세상을 들었다 놓는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면서 살아야 사는 보람이 있다고 하시면서 민청단체들이 청년들을 발전소나 철길 건설장같은데 대중적으로 진출시킬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후 민청중앙위원회는 1958년 3월 강계청년발전소를 청년들이 담당하여 건설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으며 4월에는 해주-하성사이의 광궤철도부설공사를 청년들이 맡아할 것을 호소하였다.그리하여 수천수만의 청년들이 사회주의건설의 가장 어렵고 긴요한 전투장들에 용약 진출하여 영웅적위훈을 떨치고 세인을 경탄시키는 건설속도를 창조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청년건설자들의 전투장들을 찾으시여 그들의 로력적위훈을 축하해 주시고 지도일군들에게 전투지휘방법과 다양한 정치선동사업방법을 가르쳐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나날에 조직과 대중을 이끌어 나가는 능숙한 수완과 지도능력을 체득하시였으며 광범한 청년학생들과 인민들 속에서 청소년운동의 지도자로서 높은 존경과 흠모를 받게 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60년 8월 고급중학교과정을 마치시였다.
세기적인 사회력사적변혁들이 련속적으로 일어나는 력사적시기에 정력적인 탐구와 청소년사업을 지도하시는 실천활동을 벌리시면서 성장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0대에 벌써 자연과 사회에 대한 매우 넓고 깊은 지식을 소유하시고 혁명적 세계관과 수령관을 확립하시였으며 조직과 대중을 원숙하게 이끌어 나가는 지도능력을 체현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