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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선행정치방식과 그 제한성 |
정치는 실천이기에 앞서 론이다. 선군정치 역시 그자체가 정치학이고 정치론이다. 선군정치는 정치사에 일찌기 있어 본적 없는 독창적인 주체의 정치이다. 선군정치를 주체의 정치론으로, 정치방식으로 정립하게 되는것은 그것이 자주적으로 살려는 민중의 요구와 지향을 반영한 인류의 향도리념인 주체사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일관되여 있기때문이다. 사회주의정치의 정상을 이루는 완성된 정치방식으로서의 선군정치의 위상은 《1:세계》라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주의와 민중의 존엄, 국력을 최대치로 과시해 나가는 이북의 현실에서 그 과학성과 진리성이 명백히 증시되였다. 1989년 12월21일 로므니아에서 《개혁》,《개편》바람을 타고 반정부소요가 일어 났다. 챠우쉐쓰꾸대통령은 다음날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보위상 밀레아에게 반란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군부는 불복종하였다. 군인들속에서 동요가 일어 났다. 총 쥔 군인들은 데모행렬속에 끼여 든 반동들이 《인민》임을 표방하며 《너희들에게는 부모형제가 없는가.》, 《너희들은 인민의 빵을 먹고 있다.》고 웨쳐 대자 총부리를 내리우고 말았다. 거꾸로 대통령이 체포되고 처형 당했으며 당도 사회주의정권도 다 무너지게 되였다. 쏘련방에서도 군대가 1991년 8월사변 당시 사회주의배신자들에게 징벌을 가할데 관한 쏘련방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대로 사회주의배신자 옐찐의 반혁명의 도구로 전락되여 사회주의붕괴를 촉진시켰다. 뽈쓰까군 역시 1989년 련대성로조의 반사회주의폭동을 외면하였다. 이 나라들에서 군부가 흔들리지 않고 사회주의배신자들에게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총소리를 울리였다면 사태는 달리 되였을것이다. 동유럽사회주의붕괴과정에 총대가 흔들린 사실은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군사문제를 옳바로 해결하는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특별히 부각시켜 준다. 쏘련방이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서의 군력을 갖고 있음에도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준엄한 시기에 총소리 한방 울리지 못하고 사회주의를 지켜 내지 못한것은 군사를 정치와 완전히 분리시켜 군대를 비정치화된 집단으로 만든 현대사회민주주의자들의 《개혁》,《개편》정책의 후과이며 나아가서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군사문제를 옳바로 해결하지 못한것과도 관련된다. 사회주의는 제국주의, 자본주의와의 생사를 판가리하는 투쟁속에서 태여나고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혁명적공세가 끊임없이 잇달으는 속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진행해야 하는 견지에서 볼 때 군력의 강화를 우선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사회주의정치사를 소급하여 보면 쏘련방과 동유럽사회주의의 정치리념인 맑스-레닌주의에서는 이같은 군사중시의 정치방식이 리론적으로 거론되였거나 실천에서 응용되지 못했었다.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은 군사력을 자본의 지배를 전복하고 로동자계급의 정치적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 혁명적폭력으로, 승리한 사회주의혁명을 보위하는 방어수단으로 규제하고 혁명적폭력의 담당자로서의 민병에 관한 문제, 조국보위의 담당자로서의 군대건설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을뿐이다. 맑스는 자본주의멸망의 불가피성과 사회주의, 공산주의승리의 필연성을 론중하고 사회주의건설에 관한 일련의 견해를 제기하면서 군대를 혁명적폭력의 최고수단으로 간주하였으며 군대의 역할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맑스는 프로레타리아혁명에서 군대의 역할을 인식하였기때문에 자기의 혁명전우인 엥겔스를 《나의 국방부장》이라고 하였으며 군대복무경력을 가진 엥겔스와 군사에 관한 문제를 자주 론의하였다. 엥겔스가 자기의 저서 《반듀링론》에서 군대의 전략전술에 관한 문제를 크게 취급한것도 군대문제, 군사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한데로부터 출발한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의 경우에 군대의 사명과 역할, 폭동에서 군대가 견지해야 할 전략전술적문제에 대해서는 많이 론의하였으나 군사에 관한 문제를 정치방식의 차원에서 취급하지는 못했다. 맑스나 엥겔스에게 있어서 정치란 곧 프로레타리아정치였으며 그 핵심적인 내용은 계급투쟁과 프로레타리아독재에 관한 문제였다. 사적소유의 근본적페절과 전 인민적소유의 확립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정치방식이 다름 아닌 프로레타리아독재의 수립이라는것이 그들의 견해였다. 그들의 이러한 견해는 19세기 후반기 프랑스와 도이췰란드를 비롯한 서유럽나라 로동자들의 무장폭동을 연구분석한데 기초하여 그것을 반동적부르죠아계급전복의 기본방도로 내세운 무장폭동에 관한 견해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1848년부터 1850년까지의 프랑스계급투쟁》(맑스, 1850. 1), 《도이췰란드에서의 혁명과 반혁명》(엥겔스, 1852. 8), 《쿠겔만에게》(맑스, 1871. 4) 등의 저서들에서 《폭동은 전쟁과 기타 종류의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이다.》라고 하면서 폭동의 담당자로서의 민병제 실시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맑스, 엥겔스의 무장폭동사상은 실천적으로는 1848년 프랑스혁명, 1848―1849년 도이췰란드혁명, 1871년 3―5월 빠리콤뮨 등 당대 사회발전 특히 로동자계급의 혁명적진출의 강화라는 격동적인 현실을 반영한것으로서 총체적으로는 실패한 혁명의 교훈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것이였다. 1840ㅡ1870년대 서유럽 여러 나라들에서의 민중혁명양상은 바리케드전, 시가전이였다. 맑스, 엥겔스는 바리케드에 의거하여 부르죠아전제제도에 파렬구를 내는 로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투쟁경험과 교훈에 기초하여 무장폭동을 로동자계급의 정권전취의 방도로 제기한것이다. 맑스, 엥겔스의 무장폭동사상은 무장한 적에는 무장으로 맞서야 한다는 진리를 밝혀 주었지만 세계최초의 로동자계급의 정권으로 탄생한 빠리콤뮨을 지켜 내지 못했다. 제국주의, 프로레타리아혁명시기에 레닌과 쓰딸린도 군사문제에 관한 일련의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였으나 그것은 무장의 중요성과 그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리해에 머물러 있었다. 제국주의, 프로레타리아혁명시기 레닌과 쓰딸린의 군건설리론과 실천에서 주목되는것은 제2국제당 수정주의자들이 들고 나온 《무장철페》주장의 배격, 첫 사회주의혁명무장력인 붉은 군대의 창군과 신생쏘베트정권의 옹호고수에 관한 문제였다.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시기 제국주의멸망의 불가피성과 한나라에서 사회주의혁명승리의 가능성을 밝힌데 기초하여 제2국제당 수정주의자들이 들고 나온 《무장철페》주장을 단호히 반대배격하고 무장에 의거하여 프로레타리아정권을 전취하며 승리한 혁명을 보위할데 관한 사상을 제기했다. 레닌은 저서 《〈무장철페〉구호에 관하여》(1916. 10)에서 계급사회의 력사는 지배계급이 민중을 총칼로 억누르기 위해 발톱까지 무장하고 있으며 특히 제국주의시기에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관료기구가 력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확대강화된다는것을 보여 준다며 이렇게 지적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무장철페〉의〈요구〉를 제기하라고 혁명적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제의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견지의 완전한 거부, 혁명에 관한 온갖 사상의 부인과 꼭 같은것이다. 우리의 구호로 되여야 할것은 부르죠아지를 타승하고 수탈하고 무장해제하기 위하여 프로레타리아트를 무장시키는것이다. 이것은 혁명적계급의 유일하게 가능한 전술이며 자본주의적군국주의의 객관적발전전체로부터 나오며 이 발전이 지시하는 전술이다. 프로레타리아트는 부르죠아지를 무장해제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세계사적과업을 배반하지 않고 온갖 무기전체를 파괴해 버릴수 있으며 또 의심할바없이 프로레타리아트는 그렇게 할것이다.》( 《레닌전집》제23권, 123페지 ) 《무장철페》주장을 반대배격하는 레닌의 사상의 당위성은 제국주의전쟁을 국내전쟁으로 돌리고 그것을 1917년 10월혁명의 승리로 이어 지게 함으로써 제국주의멸망의 불가피성과 한나라에서 혁명승리의 가능성을 실천으로 확인한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거기에는 프로레타리아트는 무장을 잡아야 하며 무장에 의거하여 반동적전제제도를 짓부셔야 한다는 원칙이 제시되여 있을뿐 구체적인 무력건설의 방도가 밝혀 져 있지 못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의 타협을 주장하는 평화주의자들과의 리론론쟁에 머무른것이였다. 레닌, 쓰딸린의 군건설의 공적은 맑스의 무장폭동사상을 승계, 발전시켜 실천에 구현하여 사회주의10월혁명을 성공시킨것이며 붉은 군대의 창군과 군력의 강화에 기초하여 미국을 위시한 13개 제국주의나라들의 반쏘무력간섭을 좌절시키고 깔레닌, 제니낀, 꼴챠끄, 백파군을 격퇴하고 신생쏘베트 로씨야를 수호한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력사적승리로 국제적판도에서 사회주의세력권형성의 근본조건을 마련한것이다. 그러나 군대관에서는 당대 사회력사적조건이라는 울타리를 벗어 나지 못하는 리론실천적한계를 보여 주었다. 레닌이 미, 영, 프, 일 등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무력간섭과 멘쉐비크, 에쎄르들의 반혁명적반란이라는 위기가 겹쳐 온것과 관련하여 소집된 전로중앙집행위원회와 모스크바쏘베트와의 합동회의(1918. 5. 14)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는 1917년 10월25일 이후는 방위론자들이다. 우리는 조국을 방위할 권리를 전취하였다. 우리는 사회주의적조국의 방위자들인것이다.》라고 하였던것처럼 붉은 군대의 지위와 사명은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의 방위수단, 조국방위자로 규제되였다. 이러한 규제의 참의미는 붉은 군대의 사명과 역할의 요체는 곧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의 나라의 자주권수호에 있음을 밝혀 준데 있는것이다. 지위에 있어서 군력을 사회주의건설과 별개의 위치에 놓고 사회주의건설의 평화적환경마련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근 반세기를 헤아리는 평화적건설시기 붉은 군대의 강화발전은 바로 이러한 원리에서 이루어 진것이라 할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주권침해자로 등장한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억지력으로 강화발전되여 온것이다. 사실상 지난 반세기를 가까이하는 랭전시기 붉은 군대의 강화는 미국의 무력증강에 보조를 맞춘 군사적경쟁의 산물이다. 붉은 군대의 군력강화는 자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의 뗄수 없는 부분의 위상에서 이루어 진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경쟁속에 이루어 진것이다. 미국과의 군사적경쟁의 초점에 놓여 진것은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대결정책은 미국의 막강한 군력을 전쟁요인으로 보지 않고 미국을 적대국으로가 아니라 동반자로 보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출현앞에 물 먹은 담벽과 같이 주저앉았다. 미국을 적대세력으로 보지 않는 한 붉은 군대의 총대의 명분, 사명은 퇴색된것이고 그러한 상태에서 붉은 군대는 사회주의붕괴를 막는데 전혀 준비되여 있지 않았던것이다. 사회주의위업수행과 붉은 군대 강화발전의 상호관계에 관한 레닌, 쓰딸린의 리론은 비록 한계성을 갖는것일지언정 붉은 군대가 쏘베트사회주의련맹의 수호자, 조국방위자로 역할해야 한다는 립장은 명백하였다. 1924년 1월 26일 레닌의 서거에 제하여 소집된 제2차 전련맹쏘베트대회에서 쓰딸린은 쏘련이 자본주의국가들에서 전취한 휴식(평화)은 단기간의것으로 될지도 모르니 붉은 군대의 강화와 그 상태의 개선이야말로 볼쉐비크당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한 레닌의 유훈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선언했다. 《레닌동지여, 우리는 당신의 이 유훈을 영예롭게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것을 당신에게 맹세합니다!》 쓰딸린은 선대수령의 령전에서 다진 맹세에 충실했다. 강군으로서의 붉은 군대의 위상은 세계군사계에서 무시할수 없는 명장인 쓰딸린의 군건설업적에 의해 이루어 진것이였다. 그러나 그 이후 수십년간 쏘련방의 정치지도자들은 그 정통성을 옳바로 승계하지 못했으며 마침내 미국의 요구대로 붉은 군대의 막강한 군력을 허무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쏘베트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 군사를 뒤전에 미루어 놓은, 군사와 유리된 정치방식이 붉은 군대에게서 사회주의수호자, 조국방위자로서의 생명력을 앗아 간것이며 동유럽에 사회주의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일게 했던것이다. 이러한 력사적사실들을 통하여 선행한 로동자계급의 군사정치사상과 사회주의정치방식의 한계성을 몇가지로 도출해 낼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군사문제에 관한 선행한 로동자계급의 정치론에서는 군대를 단지 혁명적폭력의 최고수단으로만 간주하였다는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기 위한 투쟁에서 무장폭동이 가지는 의의를 밝히고 무장폭동을 성공에로 이끌어 자본주의제도를 전복하고 사회주의제도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혁명적폭력을 준비해야 하며 그것이 다름 아닌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으로 구성된 군대로 된다는것을 제기하였다. 선행한 로동자계급의 혁명론에서는 또한 무장철페를 주장한 기회주의적이며 수정주의적인 리론의 반동성에 타격을 가하고 프로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무장을 놓을 때까지, 반동세력이 멸망하기전에는 절대로 무장을 철페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일관하게 강조하였다. 이것은 로동자계급의 군대의 필요성과 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것으로써 의의를 가지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의 지위에 놓지 못했다. 그 한계성은 둘째로 군대를 프로레타리아독재체계내에서 하나의 공간으로, 수단으로만 간주하였다는데 있다. 선행한 맑스주의클라시크들은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이후 사회주의를 공고히 하고 그 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프로레타리아독재체계를 튼튼히 확립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수단으로 경찰, 군대,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군대는 단순히 프로레타리아독재의 무기로만 간주된다. 따라서 선행한 정치리론에서는 군사문제, 군대의 강화와 그 역할문제를 로동자계급의 정치, 사회주의정치의 기본을 이루는 근본문제로 된다는 중요한 사상을 제기할수 없었다. 이전 쏘련방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가 그것을 립증해 주고 있다. 그 한계성은 셋째로 군대에 대한 로동자계급의 수령과 당의 혁명적령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실천적으로도 그것을 소홀히 한것이다. 사회주의정치는 곧 수령의 정치이다. 사회주의는 로동자계급의 당과 수령의 령도밑에서만 승리할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주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명실공히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되여야 한다. 수령의 령도는 사회주의군대의 생명선이며 군대를 통하여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그 위업을 완성해 나가는것은 사회주의정치의 기본방식이다. 그러나 선행한 사회주의정치론과 군사문제에서는 이러한 핵심적문제가 제기되지도 못했고 구현되지도 못했다. 선행한 로동자계급의 군사사상과 정치방식의 이러한 한계성은 시대적, 력사적조건과 당대 혁명실천의 요구로 볼 때 어느 정도 불가피한것이였다고 할수 있다. 참다운 사회주의정치방식의 발견, 선군정치방식의 발견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 질수 있게 되였으며 그 빛나는 결실을 볼수 있게 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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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김정일시대와 선군정치방식의 출현 |
선군정치, 선군정치방식은 김정일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출현한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의 정치사상적위상에 대해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시였다. 《선군정치는 나의 기본정치방식이며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만능의 보검입니다.》 선군정치방식은 이북에서의 주체혁명위업발전의 새로운 력사적단계의 요구와 탈랭전ㅡ데탕드시대의 시작과 함께 세계적판도에서 일어 난 진보와 반동세력간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희세의 정치가이시고 걸출한 군사적략가이신 김정일장군께서 직접 구상하시고 제시하신 혁명적인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 선군정치방식의 출현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도상에서 이북이 부닥치게 된 도전과 분리시켜 생각할수 없다. 1994년 7월 이후 세계의 이목은 이북에 쏠려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정일장군께 향해 져 있었다. 그것은 나라의 운명개척과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투쟁도상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비상한 정치지도력의 발휘를 필요로 하는 때에 사회주의이북의 창업주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서거로 그 모든 중하가 고스란히 김정일장군께 옮겨 진때문이다. 무릇 사회주의정치사에서도 권력승계과정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미 30여년전부터 당과 국가, 혁명의 전반을 령도하는 지도자로서의 중임을 맡아 오시였지만 일찌기 있어 본적 없는 가장 어려운 때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단신으로 걸머지셔야 할 력사적과제를 맡아 안으시게 되였던것이다. 세계의 관심사가 초점으로 된것은 동유럽의 사회주의권이 허물어 져 이북이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단독고전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게 된 력학구도속에서 그분께서 그러한 최악의 위기를 어떻게 관리 극복해 나갈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남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나라의 정객들은 이북이 겹쳐 드는 난국에서 어쩔수 없이 《개혁》,《개편》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라며 로선변화, 정책변화기대를 공공연히 로정시키고 있었다. 미국이 탈랭전시대에 접어 들면서 세계제패전략실현에서 특별히 이북을 중시하는 리유가 있었다. 원래 미국의 세계제패전략실현에서 《한》반도는 저들의 국익을 위한 요충지로 자리매김되여 있다. 《한》반도가 자본주의나라인 일본과 이웃하고 중국, 로씨야와 같은 큰 나라들과 린접해 있으며 해양으로부터 대륙에로 진출할수 있는 《륙교》로 되여 있는 특수한 지정학적위치를 념두에 두고 미국은 여기에 최대의 관심을 두고 있었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반도의 절반인 이남에 이 모든 무게가 실려 져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상 견지로 볼 때 이남은 반도의 남쪽 절반이다보니 직접적으로는 대륙과 련결되여 있지 않다는데로부터 사실상 일본과 비슷한 섬에 불과하였다. 90년대에 들어 와 쏘련방의 붕괴와 함께 로씨야와 동반자관계를 형성하고 중국과는 이미 70년대에 수교관계를 맺은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이남보다 이북에 발 붙이는것이 총체적인 전략실현의 시각에서 볼 때 실리적인것으로 다가왔다. 미국은 90년대에 들어 서면서 저들에게 유리하게 변화된 정세를 목적실현의 호기로 판단하고 유일하게 사회주의붉은기를 계속 추켜 들고 나가는 이북에 대한 정치적고립, 경제적봉쇄, 군사적압살의 도수를 나날이 증폭시키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서방이 들고 나온 《정책변화》,《로선변화》설은 이같은 험로역경의 정세하에서는 이북이 어쩔수 없이 《개혁》,《개편》의 물결에 말려 들것이며 주체사회주의의 붉은 기발은 내려 지게 될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한 발상이였다. 사태는 참으로 엄중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의 대응은 이를 전면부정하는 향방에서 제시되였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입니다.》 세계를 향한 강력한 정치비전의 제시는 어떠한 엄혹한 정세가 조성되더라도 자본주의복귀의 길인 《개혁》,《개편》에로 나아가지 않을것이며 앞으로 그 어떤 난국이 겹친다 해도 민중의 생명이고 생활인 주체사회주의를 견결히 지키고 끝까지 완성해 나가겠다는 철의 신념과 의지의 표출이였다. 그렇다면 김정일장군께서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무슨 힘을 믿고 구체적으로 누구를 믿고 오늘뿐아니라 먼 앞날에도 사회주의기치를 끝까지 지키려는 그렇듯 강력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치비전을 제시하실수 있었는가 하는것이다. 그것은 그분께서 수십년간 키우고 다져 오신 강력한 군사력을 믿으시였기때문이다. 세계는 대국상이후 첫 현지시찰로1995년 설날 아침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구분대를 찾으신 김정일장군의 모습에서 국제정치의 이같은 관심사의 답을 찾을수 있었다. 이 첫 군시찰은 군대를 믿고 군대에 의거하여 험로역경을 헤치며 미래를 열어 나가시려는 김정일장군의 정치적결심과 의도가 비쳐 진 력사적행보였다. 김정일장군께서 하신 다음의 가르치심에서 그러한 결심과 의도를 확인하게 된다. 《총대로 우리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것은 우리 당의 변함 없는 신념이며 의지입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또한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다음 만경대갈림길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여 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를 때려 부시고 조국에 개선하시여 조부모님이 기다리는 만경대에도 들리지 않고 강선에 있는 로동계급부터 찾아 갔다, 해방직후 우리에게는 당과 국가도 정규군대도 없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 졌다, 그때 새 조국건설에서 믿을것이란 오직 로동계급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가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끈질긴 고립압살책동을 단호히 분쇄하고 이미 이룩한 혁명의 전취물을 옹호고수해 나가자면 인민군대를 결정적으로 강화하여야 한다고 뜻 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 광복직후 조부모님이 계신 만경대로가 아니라 페허로 된 강선제강소의 로동자계급을 찾으신 만경대갈림길은 자신의 신상 가까이의 일보다 국사를 앞세우고 혁명을 앞세운 지고의 애국애족의 발현인 동시에 주요하게는 아직은 당도 군대도 없고 나라도 세우지 못한 때에 오로지 로동자계급을 믿고 그들에 의거하여 건국의 초행길을 헤쳐 나가신 혁명의 갈림길이라는 의미가 붙여 진다. 김일성주석께서 로동자계급을 믿으시고 그들에 의거하여 건국의 초행길을 헤쳐 나가신것처럼 김정일장군께서는 사회주의운명에 사활이 걸려 있는 엄혹한 상황속에서 인민군대를 굳게 믿고 군력에 의거하여 궤도변경인《개혁》,《개편》의 길이 아니라 사회주의옹호고수, 주체혁명위업완성이라는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으시려는것이였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극한상황에서 령도자의 전사들에 대한 믿음은 특별한 가치를 갖는 법이다. 인민군대에 대한 김정일장군의 신뢰에서 군인들은 자기들이 틀어 잡은 총대우에 사회주의운명도 나라와 민족의 미래도 달려 있다는 시대적, 력사적사명감을 페부로 절감했으며 그것은 수령결사옹위정신,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핵으로 하는 혁명적군인정신이라는 정신력으로 폭발되면서 온 사회에 풍미되여 갔다. 끊임 없는 군시찰, 거기서 창조되는 혁명적군인정신, 그것을 생명력으로 하여 수호되고 전진하는 주체사회주의, 이같은 미증유의 정치과정을 가리켜 김정일장군께서는 《우리의 령도는 선군령도이고 정치방식은 선군정치》라고 선언하시였다. 선군정치방식의 출현은 또한 90년대 중엽에 조성된 세계정세와 떼여 놓고 생각할수 없다. 20세기 9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범위에서는 정의와 진보의 표대로 되여 있던 사회주의권이 약화, 붕괴되고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이 판을 치는 상황이 조성되였다. 탈랭전의 시작과 함께 미국은 《팍스아메리카나》의 전략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제창해 나섰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제국주의렬강들의 기승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광신적인것으로 되였다. 약소국가, 약소민족에 대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의 강경압살, 고립책동은 더욱더 엄혹해 졌으며 그것으로 하여 진보적이고 정의적인 세력은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성된 정세는 사회주의의 기치는 영원히 내리워 지게 되는것인가, 진보와 정의, 평화에 대한 인류의 지향과 념원은 영원히 실현불가능한것으로 되는가 하는 엄혹한 정세가 조성되였던것이다. 력사의 이러한 가역적인 흐름을 바로 잡을수 있는 비결은 자주와 진보, 정의와 평화를 수호할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힘을 키우는데 있었다. 거꾸로 흘러 가는 력사의 흐름을 멈춰 세우고 력사를 정로로 이끌어 갈수 있는 정치적힘이란 다름 아닌 정의의 군사력, 강력한 군대를 키우고 그 역할을 높이는데 있었다. 시대와 력사가 제기하는 이러한 절박한 요청에 부응하여 세계의 그 어떤 반동세력의 광란도 단숨에 저지시킬수 있는 힘을 키우신분은 김정일장군이시다. 군사중시를 제일 가는 국사로 간주하시고 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키우고 강력한 군대에 의거하여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의 강권적, 패권적침략기도를 저지시키며 사회주의의 전진운동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것이 김정일장군의 선견지명한 정치지략이였다. 실지에 있어서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사중시사상을 제시하시고 이북의 인민군대를 세계의 그 어떤 대적도 일격에 격파분쇄할수 있는 강유력한 혁명무력으로 키우심으로써 세계적판도에서 력사에 도전하는 온갖 반동세력들을 누르고 자주와 진보, 정의와 평화에로 나아가는 인류력사의 흐름을 가속화시킬수 있게 하시였다. 이처럼 선군정치는 인류력사발전과 세계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에 부응하여 새롭게 창조된 완성된 정치방식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주체혁명위업수행과 세계혁명발전의 새로운 력사적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출현한 선군정치에 대해 그것을 자신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주체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만능의 보검으로 규제하신것이다. 선행 사회주의정치방식과의 관계에서 볼 때 선군정치는 김정일장군께서 김일성주석의 선군혁명령도를 승계발전시켜 사회주의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내놓으신 사회주의정치방식으로 자리 매김된다. 백수십년에 달하는 사회주의정치사는 사회주의본성에 맞는 정치방식을 모색하여 온 과정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맑스에 의해 1848년 2월《공산당선언》이 발표되고 그것이 밝힌 사회주의리념을 실현하기 위한 로동자계급의 당이 창건되면서 시작된 사회주의정치사에 콤뮨정권형태와 쏘베트정권형태가 발견되면서 그에 따른 사회주의정치방식도 나오게 되였다. 콤뮨정권, 쏘베트정권에 의해 실시된 정치는 로동자계급의 리익실현에 중점을 두고 로동자계급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방식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을 선로정치방식(先勞政治方式 )이라 할수 있다. 이 선로정치방식하에서 로동자계급의 당과 군대와의 상호관계를 살펴 보면 로동자계급의 당이 먼저 건설되고 그에 기초하여 군건설이 이루어 진것으로써 선당후군(先黨後軍)건설방식을 보이고 있다. 맑스는 1847년 6월 공산주의자동맹결성 즉 공산당창건으로 혁명투쟁의 출발을 뗐으며 레닌 역시 10년간에 걸치는 창당준비과정을 거쳐 1903년 로씨야사회민주로동당 제2차대회에서 첫 맑스주의적당강령 채택에 따른 맑스주의당(볼쉐비크당)창건으로 혁명투쟁을 시작했다. 맑스, 엥겔스는 당대에 민중투쟁의 전형적방식인 무장폭동, 바리케드전에 직접적으로 총을 들고 참가한적이 없으며 건군위업을 이루어 낼수 없었다. 레닌, 쓰딸린의 경우 볼쉐비크당의 령도로 정권을 쟁취하여 쏘베트정권을 일떠세운데 기초하여 1918년 1월에 로농 붉은 군대를, 1918년2월에 로농 붉은 해군을 조직할데 관한 명령을 채택했다. 중국혁명 역시 1921년에 중국공산당이 먼저 창당되고 그 지도밑에 1927년8월1일 남창폭동에 참가하였던 무장폭동부대들과 호남지방 농민폭동군이 합류되여 로농홍군이 조직되였다. 사회주의정치에서 이렇듯 선당후군건설방식은 하나의 움직일수 없는 혁명공리로 인정되여 왔다. 이와는 달리 주체혁명에서는 사회주의정치문제를 이같은 기존혁명공식이나 관례에 구애됨이 없이 주체적으로 풀어 왔음을 보게 된다. 즉 선당후군이 아니라 선군후당의 길이 선택된것이다. 구체적으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의 개척기에 조선인민혁명군을 먼저 창건하시고 그 강화발전으로 조국광복위업을 이루어 내셨으며 광복후에는 당을 창건하고 그 다음 군대를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킨데 이어 건국위업도 이루어 내시였던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수령님의 혁명투쟁력사는 군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어 오신 선군혁명령도의 력사이라고 하시면서 김일성주석의 혁명투쟁사를 선군혁명령도사로 규제하시였다. 당이나 정권건설에 앞서 군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에 기초하여 당, 정권건설을 이루어 낸것은 맑스, 엥겔스, 레닌, 쓰딸린의 혁명투쟁사와 명백히 구별되는 김일성주석의 군중시의 혁명투쟁사이다. 선군정치는 김일성주석의 선군혁명령도사와의 관계에서 볼 때 그러한 전통의 승계발전이다. 이것은 김일성주석과 더불어 일찌기 60년대부터 군건설위업에 직접 몸 담그시고 조선인민군의 강화발전을 주도해 오신 김정일장군께서 90년대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선대수령이 창조한 군중시의 혁명령도사를 더욱 굳건히 이어 나가는것이야말로 주체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발전완성시켜 나가기 위한 유일한 진로로 된다는 판단에서 내리신 선택인것이다. 이렇듯 선군정치는 단순히 오늘날의 엄혹한 정세극복의 처방으로 내려 진 특수한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선대수령이 마련한 선군혁명령도의 정통성의 계승이며 총대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총대로 끝까지 완성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행하여 오신 김정일장군의 수십년간에 걸친 선군혁명령도사의 새로운 높은 단계에의 발전이고 오늘의 시대적요구에 부응하여 새롭게 정립된 기본정치방식인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선군정치방식은 김정일장군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발견하시고 정립하신 독특한 주체의 정치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정치방식문제를 주로 국가의 계급적성격과 사명, 기능면에서 고찰하면서 사회주의적민주주의를 민중의 지위와 역할신장을 담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방식으로 보아 왔다.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의 포위와 도전속에서 민중의 자주위업을 완성해 나가야 하는 주체위업완성의 합법칙성의 견지에서 보아 민중의 자주적요구와 지향을 최선으로 담보하고 그 역할을 최대한 높이게 하는것을 비롯하여 사회주의적민주주의의 요구를 가장 훌륭히 실현해 나가는것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정치방식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그것은 어느 한 일시적인 단계에서의 정치방식만이 아닌 주체위업완성의 전 력사적시대를 포괄하는 주체사회주의정치로선,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자리매김되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방식은 이북고유의 군중시의 국가정치체제에 의해 담보된다.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는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기구체계에서 국방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지위와 권능을 격상시킨 군중시의 국가정치체제를 수립했다. 종전에는 국방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중의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중앙인민위원회 다음 순위에 있었다면 개정된 헌법에서는 국방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 다음 순위에 놓임으로써 국방위원회가 법적지위와 구성, 임무와 권한에 있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지방주권기관들, 사법검찰기관보다 우위에 놓는다.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중임은 나라의 정치, 군사, 경제력량의 총체를 통솔지휘하여 사회주의조국의 국가체제와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며 나라의 방위력과 전반적국력을 강화발전시키는 사업을 조직령도하는 국가의 최고직책이며 조국의 영예와 민족의 존엄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성스러운 직책으로 음미된다. 헌법의 개정에 따른 이북의 정치체제는 에짚트대통령이 내왔던 군사총통제나 70년대까지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 존재했던 군정과는 구별되는 군중시의 국가정치체제이다. 국가기구자체를 군사체제화한것이 아니라 국가기구체제에서 군사를 우선시하고 군사분야의 지위와 역할을 최대한 높이도록 권능을 규제한 정치체제이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방식은 이렇듯 군중시의 정치체제에 의한 법적, 제도적담보를 갖는것으로 하여 실천에서 그 공고성과 위력이 확실시되는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이다. 선군정치는 김정일장군의 인민군대에 대한 최상의 믿음에 기초하여 창조된 정치이다. 로동자계급의 정치사에 선군정치와 같이 혁명군대에 대한 최상의 믿음이 담겨 진 정치는 없었다. 선행한 로동자계급의 정치가들은 군대를 단순히 정권전취를 위한 무기로, 조국보위를 위한 수단으로 보아 왔거나 심지어는 로동자계급이 정권을 잡은 다음 일정한 단계에 가서는 군대가 필요 없게 된다고 보았다. 그들의 론리는 사회주의가 발전하면 무계급사회가 실현되게 되며 따라서 국가가 필요 없게 된다는 원리에 바탕한것이였다. 계급이 없어 지고 국가가 조락되는것과 함께 군대도 필요 없게 된다는 론리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선군정치사상을 새롭게 정립하심으로써 기성의 그릇된 정치론에 종지부를 찍으시고 군대가 혁명의 기둥으로서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전 기간에 걸쳐 결정적역할을 하게 된다는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시였다. 참으로 김정일장군에 의한 선군정치, 선군정치방식의 새로운 정립과 구현은 로동자계급의 정치사와 인류정치사발전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 놓은 획기적인 사변으로 되며 주체혁명위업과 인류의 자주위업의 종국적완성을 확고히 담보하는 위력한 리론실척적무기로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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