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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민중을 위하는 정치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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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란 계급 또는 사회의 공동의 요구에 맞게 사람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회적기능으로서 정치의 성격과 완성정도는 그가 지향하는 목적과 현실적인 구현방법이 어떠한가에 의해서 규제된다. 정치를 단순히 지배하고 통치하는것으로 즉 다스리는것으로 간주하는 경우에는 구태여 정치의 성숙정도와 그 중요성에 대해서 론의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배하고 다스리는 행위자체가 반민중적이고 비정의적인것이기때문이다. 정치는 마땅히 민중의 리익을 위하고 민중에게 봉사하며 민중이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것으로 되여야 하며 그러한 정치만이 진보적이고 민중적인 정치로 된다. 민중을 중심에 놓는 민중적인 정치가 진보적이고 발전된 정치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에 걸맞는 정치방식을 택하는가 못하는가와 관련되게 된다. 이전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에서도 민중의 리익을 위하는 정치를 편다고 했지만 그 구현에서는 관료적인 정치방식에서 벗어 나지 못했기때문에 결국은 붕괴되는 결과를 빚어 냈다. 이북이 민중중심의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해 나가고 있는것은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민중을 위하는 참다운 사회주의적정치, 민중중심의 정치를 실시하고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민중중심의 정치를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해 나갈수 있게 하는 정치방식이 다름 아닌 선군정치방식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선군정치방식은 《이민위천》의 정치원리를 가장 철저하게, 가장 높은 수준에서 구현할수 있게 하는 정치방식이다. 즉 민중중심의 정치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수 있게 하는 완성된 정치방식이라는데 바로 선군정치방식의 본질적우월성이 있다. 그러면 선군정치가 민중을 위한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선군정치방식이 민중의 리익과 존엄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는 정치방식이기때문이다. 민중을 위한 시책은 그것이 책정된다고 해서 저절로 실현되는것은 아니며 민중을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우며 사회의 모든것이 그들의 리익과 요구에 복종되도록 하려면 그러한 시책을 철저히 그리고 안전하게 실현할수 있는 정치군사적담보가 마련되여야 한다. 민중을 위한 아무리 훌륭한 사회주의제도를 세웠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제도를 지켜 낼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러한 나라는 민중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정책을 실현할수 없는것이다. 민중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며 민중을 정치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참다운 민중적인 정치를 실현하려면 그러한 정치를 옹호보위할수 있는 강력한 정치군사적힘을 마련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중적인 정치를 지킬수 있고 시행할수 있는 정치방식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선군정치방식이다. 자위가 있어야 민중도 있고 민중의 리익도 있는것이며 민중의 행복한 생활도 있는것이다. 선군정치방식은 군사중시를 국사중의 제일 중요한 국사로 간주하고 국방력강화를 우선시함으로써 민중의 리익과 존엄을 최상의 수준에서 철저히 옹호할수 있게 한다. 바로 여기에 선군정치방식이 완성된 민중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 리유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군정치방식은 《이민위천》의 원리에 기초한 군사원리, 정치방식이라고 할수 있다. 무릇 정치를 착취사회에서는 민중을 대상으로 한 통치기능으로,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민중에 대한 관리기능으로 리해할 때 정치, 정치방식의 성격은 크게 보아 민중적인가 아니면 반민중적인가로 획분된다. 그럼에도 고금동서를 통털어 어느 시대, 어떤 정치인이건 자기가 행하는 정치를 민중적인 정치로 표방하지 않은 경우란 없다. 어떤 성격의 정치이든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은 민중에 의해 이루어 지는것으로서 본의가 어떻든 그 질을 평가하는 규준은 민중적인가 아닌가에 두기때문이다. 그러면 민중적인 정치와 반민중적인 정치를 구분하는 척도는 무엇인가. 민중의 생명인 자주성이 그러한 위상에 놓여 진다. 민중의 자주성실현을 목표로 내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정치가 민중적인 정치요, 민중의 자주성실현을 저해하고 유린하는 정치는 반민중적인 정치라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의 자주성실현을 총적목표로 내세우는 선군정치는 가장 민중적인 정치방식으로 그 성격이 규제되는것이다. 미국의 지배주의적군사원리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민중의 자주성을 짓밟고 유린하는것을 근본목적으로 한것이라면 《이민위천》의 원리를 구현한 선군정치는 민중의 자주성을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옹호고수할뿐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사회적진보를 실현해 나가는것을 근본목적으로 내세우는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는 민중의 자주성실현을 근본목표로 내세우는 정치, 즉 군건설의 리론과 실천전반이 민중의 자주성실현을 총적목표로 하여 정립되고 구현되도록 하는 정치방식인것이다. 선군정치가 완성된 민중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은 다음으로 그것이 애민, 애족, 애국을 생명으로 하는 정치방식이기때문이다. 자주 없이는 애민, 애족, 애국도 없다는것이 선군정치의 본의이고 그 본질적우월성이다. 선군정치에서 인민군대는 민중의 보위자로 될뿐만아니라 행복의 창조자로 된다. 선군정치는 민중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것을 군대의 생명으로 간주하는 정치이다. 군대를 단순히 조국의 보위자로서만이 아니라 민중의 행복을 위한 창조자로, 나라와 민족의 무궁번영을 위한 투쟁의 일선에서 간고분투하는 전위부대로 내세우는 정치방식이 바로 선군정치방식이다. 이북에서 인민군대는 민중을 억압하는 반동적인 군대, 적대적대립관계에 있는 군대가 아니라 민중과 일심동체가 되는 진정한 민중의 군대로 되여 있다. 이북에서는 군민이 서로 분리된 적대관계의 세력이 아니다. 군대에 있어서 민중은 아버지, 어머니요, 민중에게 있어서 군대는 아들, 딸이라는 혈연적관계가 그대로 적용된다. 착취사회에서는 비록 평범한 민중의 자녀들이 군대에 들어 간다고 해도 그들이 민중과 적대되는 착취계급이 쥐여 준 총을 잡고 착취계급을 위해 복무하는 여건에서 결코 이같은 혈연의 관계가 이루어 질수 없다. 착취계급의 군대는 비록 민중에게 있어서 제 자식일지언정 자기들에게 총부리를 돌려 댄 반민중적군대인것이다. 1980년 광주민중봉기를 군이 땅크를 위시한 현대적무장장비를 총 동원한 무력으로 수천의 애국민중을 사살하는 속에 진압한 사실이 그 생동한 례로 된다. 이와 달리 인민군대는 민중사랑, 나라와 민족, 겨레사랑을 존재와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강화발전의 원천으로 삼는다.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듯이 유격대는 인민을 떠나 살수 없다는 항일빨찌산의 군민관계정통성이 그대로 승계되는것이다. 인민군대의 사명이 민중의 안녕과 행복을 수호하고 그들의 자주적발전에 있다 할 때 민중을 사랑하고 민중을 위해 생명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여 있지 않고서는 그러한 사명을 수행할수 없다는것이 이같은 군민관계의 론리로 된다. 인민군대가 민중을 어떻게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어떻게 복무하는가를 1995년 수해당시 군대의 역할에서 찾아 보게 된다. 이해 8월 초부터 신의주지구에는 련일 무데기비가 내려 강수량이 평년에 비해 3배나 되였으며 압록강의 수위는 8.05m까지 올라 가 큰물이 났다. 력사적으로 제일 높았던것으로 기록된 1935년 수해당시 압록강수위를 훨씬 릉가하는 대홍수였다. 그로 하여 압록강하구 류역에서는 수백수천의 인명피해가 시간문제로 되였다.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인민군 륙해공군을 출동하여 서해지구 수재민들을 구원할데 관한 최고사령관 비상명령이 하달되였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날고, 바다가 되고만 땅우에서는 고속수송정, 수륙량용장갑차들이 진입하여 리재민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구제하여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켰다. 수해속에서 태여난 10여명의 새 생명까지도 구원되였다. 수해전투기간 한순간도 최고사령부 작전대앞을 뜨지 않고 작전을 조직지휘하신 김정일장군께서는 최종보고를 받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새로 태여난 아이들까지 구원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지금 다른 나라들에서는 수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민군대는 단 한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고 모두 구원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군대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인민의 군대라는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는것으로 됩니다.…》 인민군대의 민중적성격을 돋구어 강조하신 가르치심이 아닐수 없다. 신의주수해라는 엄청난 자연재해는 이북민중의 뇌리에 김정일장군께서 키우시고 거느리신 군대가 있어 민중의 생명도 사회주의생활도 담보된다는 철의 신념을 더욱 각인시킨 현장이기도 했다. 장군님을 하늘처럼 믿습니다, 장군님만 계시면 이런 수해 같은것은 열백번 겪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 구원해 주신 신의주는 장군님과 우리 사회주의를 옹위하는데서 제1방탄벽이 되겠습니다.… 민중은 그 신념을 이렇게 터뜨렸다. 인민군대의 민중사랑,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의 사상감정과 실천은 이렇듯 민중속에서 자기 수령, 자기 조국과 민족, 사회주의에 대한 열렬한 애착과 어떤 환경속에서도 그와 운명을 함께 하며 끝까지 옹호고수해 나가려는 결사옹위정신으로 승화되는것이다. 착취사회에서 민중의 아들딸이기도 한 군대가 반민중적이기를 지양시키려면 애민, 애족의 립장에 서야 한다. 군대가 애민, 애족의 립장에 서면 총대로 착취제도를 전복하고 민중정권을 창출해 내며 그들자신이 민중의 군대로 새롭게 태여날수 있다. 선군정치방식의 민중성은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에서 표출된다. 민중은 정치의 주인이며 그 구현자, 관철자이다. 민중속에 뿌리 박고 민중자신의것으로 된 정치가 참으로 민중적인 정치이다. 인민군대가《조국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지키기 위한 우리 인민군대의 사명은 침략행위를 방어하는데만 국한되여 있지 않다. 불은 불로, 몽둥이는 몽둥이로 다스리는것이 우리 군대의 기질이다.》(1999. 3. 29,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담화), 《우리 인민군대의 타격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 타격을 피할 자리가 이 행성우에 없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피하지도 않으며 일단 전쟁이 강요된다면 다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것이다.》(1998.12.2,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성명) 등의 강경립장, 고압자세로 당당하게 맞서 막강한 군사력을 빙자하여 오만무례하게 날치는 미국을 머리 숙이게 하는 모습들에서 민중은 선군정치만이 민중과 사회주의의 운명을 지켜 내고 강성부흥의 앞길을 열어 나가는 세계제일의 정치임을 확인했던것이다. 선군정치가 완성된 민중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은 또한 그것이 군과 민의 일심일체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시키는 정치방식이기때문이다. 정치에서 최선의 성공은 지도자와 민중, 민중과 군의 일심일체를 실현하는것이다. 군과 민의 배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피할수 없는것으로 되여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군과 민은 그 계급적성격과 리해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대립되기때문이다. 이남에서 《국군》은 민중의 리익과 권리를 억누르고 외세의 지배와 략탈을 뒤받침하는 도구로 되고 있기때문이다. 때문에 이남에서는 군에 대한 민중의 지지와 신뢰가 있을수도 없으며 군과 민의 일체화가 이루어 질수도 없다. 식민지고용병으로서의 군의 예속적이고 굴욕적인 체질, 반민중적인 통치제도를 합리화하고 《보호》하며 통일에 제동기적작용을 하는 군에 대한 이남민중의 증오와 불신은 하늘에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북에서는 오늘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라와 민중의 자주권과 리익을 제일선에서 지켜 가는 인민군대에 대한 전당, 전민의 신뢰와 지지, 사랑이 력사에 아직 있어 보지 못한 최상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김정일장군께서 선군혁명령도로 인민군대를 불패의 강군으로 키우시고 엄혹한 시련을 군력의 힘으로 이겨 내도록 하시였으며 사회주의건설의 가장 어렵고 힘든 전선을 인민군대가 맡도록 하심으로써 이북의 민심은 인민군대에게로 쏠리고 있다. 김정일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인민군대와 민중이 일심일체를 이룸으로써 이북의 정치력은 최상의 경지에서 막강한것으로 되였다. 인민군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것이 오늘 이북민중이 엄혹한 시련의 나날을 통하여 체득한 귀중한 진리로 되고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선군혁명령도의 나날에 인민군대의 사명감을 더욱 높여 주시고 군민일치의 전통적미풍을 더욱 높이도록 이끄심으로써 오늘 군과 민의 혼연일체는 력사에 아직 있어 보지 못한 최상의 수준에서 이루어 지게 되였다. 군대이자 곧 인민이라는 군사원리는 군민의 일심일체, 군민의 혼연일체로 승화되였으며 이러한 군민의 혼연일체는 김정일장군을 결사옹위하고 사회주의를 보위하는 강력한 성새로 되고 있다. 이처럼 군대가 민중을 위하고 민중이 군대를 사랑하는 군민의 혼연일체를 성사시킨다는데 선군정치가 가장 민중적인 정치방식,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되는 근거가 있다. 선군정치가 없으면 조국도 사회주의도 없다는것이 오늘 이북민중의 신념의 웨침이다. 선군정치가 이북에서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가장 민중적인 정치로서의 위상을 굳혀 가고 있을 때 이남의 정치는 민심으로부터 더욱더 멀어 져 가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99년 3월 초 대전우체국도장이 찍혀 진 편지가 이남《법무부장관》에게 날아 들었다. 《진달래》란 발신자의 이름으로 된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북조선을 보세요, 법무부장관님, 전체 민중은 일심단결 김정일장군님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잖아요.… 한국정치는 국민을 위해 해주는 일이 무엇이 있나요.… 지금까지 정치가 아닌 망치(망한 정치)만 했을뿐이 아닌가요. 김정일장군님의 인민대중중심의 정치를 장관님에게 촉구합니다.》 이북정치를 민중적정치로 찬양하고 이남정치를 반민중적정치로 지탄한 편지의 내용이자 민중적인 선군정치에 대한 온 겨레의 지지도이며 반민중적이남정치에 대한 거부반응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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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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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자주를 담보하는 정치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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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의 발전정도와 그 완벽성 여부는 정치의 주인인 민중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얼마나 높은 수준에서 보장되는가 하는것과 함께 나라와 민족, 민중의 자주권과 존엄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되여 있다. 정치는 대내정치와 대외정치로 구분되며 대외정치는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어떻게 지키며 다른 나라들과의 련계를 어떻게 발전시키겠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는 정치이다. 대외관계에서의 예속적이며 종속적인 정치는 곧 저질정치이다. 저질정치의 특징은 강대국과 같은 외세에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팔아 먹으며 남의 노예가 되는것을 감수하는것과 같은 사대매국과 민족허무를 일삼는것이다. 참다운 정치는 나라와 민족의 대소, 그 발전정도를 막론하고 모든 나라가 대외적으로 자기의 자주권과 존엄을 튼튼히 지켜 나가는 정치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최상의 경지에서 옹호하고 신장시켜 나가는 완성된 자주적인 정치방식으로 된다. 자위가 있어야 자주도 있다는것이 선군정치의 본의이다. 선군정치가 완성된 자주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는 정치이기때문이다. 자주성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며 그 존재와 발전을 기초하는 근본담보이다. 자주없이 나라 없고 자주없이 민족 없다. 따라서 자주정치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정치로 된다. 이러한 정치적자주는 자위에 의해 담보될 때 확고한것으로 된다. 오늘의 국제정치무대는 자주냐, 예속이냐를 판가름하는 치렬한 대결장이기도 하다. 탈랭전이후 행성을 저들 주도하의 1극세계로 만들려는 미국의 책동으로 하여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지배와 예속의 올가미에 매이지 않으면 안되고 있다. 1996년 새해 벽두에 미국신문《뉴욕타임스》는《미합중국의 제3제국》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신문은 보스니아ㅡ헤르쩨고비나에서의 미국의 군사행동은 페르샤만으로부터 발칸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이《미합중국의 제3제국》의 심장으로 되여 가고 있는듯 한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2백여년의 력사를 놓고 볼 때 미국이 적수를 쳐물리친 후 곧 자기의 세력범위내에서 일종의《종주국》관계를 수립하였다는것이다. 1898년 에스빠냐를 쳐물리친 후 꾸바와 뿌에르또리꼬섬, 필리핀에 미국의《뒤동산》을 꾸렸는데 이것이《미합중국의 제1제국》이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는 나토를 창설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련의 쌍무방위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지역이《제2제국》이다. 랭전이 종식된 후 쏘련방이 해체되자 중근동과 발칸지역에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하였으며《관할지역》을 확대하여 제3제국을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만전쟁과 보스니아ㅡ헤르쩨고비나사태 이후 사실상 페르샤만과 발칸지역에 대한 저들의 제3제국화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은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이라크와 유고련방에 대한 군사적침공을 감행했던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유고련방에 대한 공습목적은 무엇이였는가. 그 하나는 주요자원지대이며 군사전략적요충지인 페르샤만과 발칸지역에서 군사적통제권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우위를 획득하려는데 있었고 다른 하나는《21세기를 지향한 나토의 새로운 전략》의 시험으로서 나토를 무제한한 자유권을 가진 국제헌병으로 둔갑시키고 그의 행동권을 확대시켜 강권으로1극세계를 수립하고 행성의 군주로 군림하려는데 있었다. 미국은 페르샤만과 발칸지역을 독점하려는 목적을 원래 만전쟁과 보스니아ㅡ헤르쩨고비나사태를 통해 해결하려 했으나 그것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게 되자 주권국가에 대한 군사적타격도 서슴지 않았던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야망과 본새대로 이북을 압살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그러한 야망은 실현될수도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북이 강력한 자위적조치와 강경대응으로 미국의 시도를 저지시켰기때문이다. 미국의 패권적야망, 강권적인 대북압살책동을 일격에 저지시킨것은 이북의 선군정치이다. 선군정치는 나라와 민족의 생명을 자주성으로 간주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튼튼히 지키며 그에 필요한 강력한 자위적국방력을 다져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선군혁명령도를 통하여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정신무장시켰을뿐아니라 현대적인 전투기술기재들로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일신시켰으며 현대전에 상응한 무비의 전략적체계를 백방으로 다져 놓음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그 어떤 제국주의침략세력도 일격에 격파할수 있는 자위적군사력을 마련하시였다 선군정치를 통하여 준비된 이북의 인민군대의 위력은 이 행성의 그 어떤 대적의 침략도 일격에 타격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튼튼히 수호할수 있는 높이에 이르렀다. 군력이 밑받침되여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나라든지 자기를 지켜 낼수 없다. 이라크와 유고련방의 미국과의 대결 전 과정과 이 두 나라가 끝내는 무장공습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여 국토를 페허로 만들어 버리고 만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유고련방과 이라크의 정치가들은 매번 미국의 압력앞에 큰 소리도 치고 배짱을 부렸지만 점점 조여 드는 시한부적인 강경고압력앞에서는 손을 들고 말군 했었다. 이라크는 1991년에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 뒤이은 다국적군의 침공을 받으면서 자기 군력을 상실했으며 유고련방은 아무리 자주권을 수호하자 해도 지난 날 국방사업을 쏘련방에 의존해 온탓에 힘으로 맞설 형편이 못되였던것이다. 이북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 졌다. 그것은 미국이 이북에 굴복한것이다. 이북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클린톤은《북조선이 미싸일발사시험을 더는 하지 않을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경제제재해제를 발표한다.》면서 미국이 이북을《적국》으로 규정하고 지난 수십년간 가해 온 적성국무역법과 수출행정관리법, 국방생산법에 따르는 일련의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것을 공식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미국은 상품 및 원료의 수출법, 농업, 광업, 하부구조 등 여러 부문에 대한 투자, 금융거래, 상업용선박 및 비행기에 의한 수송 등 분야에서 이북에 적용해 온 제재조치를 해제하게 된다는것이다. 세계가 그것을 하나의 국제정치사변차원에서 다루며 법석 끓고 있을 때 이북의 반응은 너무도 당당하고 고압적인것이였다. 미국의 조치에 대해 이북은 그것이 1994년에 체결된 북미기본합의문에서 지닌 의무사항에 따르는 리행조치로서 늦은감은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미국은 앞으로 우리 나라에 대한 나머지 제재조치들을 마저 해제하며 전면적이며 실제적인 제재해제조치로 되도록 하는것으로 신의를 보여 주어야 할것이다, 나아가서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완전철회하고 조미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남조선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조미사이의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우리에 대한 군사적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베를린북미회담은 시종일관 미국을 피고석에 앉히고 이북이 미국을 다불러 대는 과정이여서 미국측에서 《당신들은 초대국의 이마빡에 권총을 들이대며 위협하고 있다.》는 비명이 울려 나오는 정도의 격돌적인 양상을 펼쳐 놓았던것으로 알려 져 있다. 이북이 미국과 당당히 맞서며 자기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존엄을 지켜 가는 배짱과 용단은 다름 아닌 막강한 군력을 가지고 있는것과 중요하게 관련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군정치방식은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의 도전을 격파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튼튼히 지킬수 있게 하는 위력하고 완성된 자주적인 정치방식이라는것을 명백히 확인할수 있다. 선군정치가 완성된 자주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은 다음으로 그것이 자본주의적광풍이 세계를 어지럽게 휩쓰는 엄혹한 정세속에서 주체식으로, 자기 식대로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가도록 하는 정치방식이기때문이다. 정치의 성공과 그 발전정도는 국가건설과 운영에서 주체를 세우며 자기 나라와 자기 민중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그리고 자기 나라가 처한 구체적실정에 맞게 국정을 어떻게 운영해 나가는가에 따라 좌우되게 된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는 마땅히 정치활동에서 주체적인 대를 세워야 하며 자기의 리익과 비위에 맞게 나라와 민중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나라의 주체성, 독자성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 자주성이며 인간의 운명은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개척된다는 주체적원리에 바탕하여 정립되는것이다. 국가건설과 운영,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의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발전은 정치적으로 자주적립장을 견지할 때에만 가능한것으로 된다. 국가건설과 운영에서의 주체성, 자립성은 자주적인 정치를 실시할 때에만 확고히 담보될수 있다. 선군정치는 정치적으로 자주의 원칙을 확고히 고수하게 함으로써 이북이 그 어떤 세계적인 와중속에서도 사회주의건설을 주체식, 자기 식으로 해나갈수 있게 하는 정치방식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주체식》,《우리 식》을 국정의 기본방향으로 규정하시고 선군정치에 바탕하여 그것을 철저히 관철하도록 하시였다. 쏘련방을 비롯하여 이전의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되여 자본주의바람이 휩쓸 때에도,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이 《개혁》과《개방》의 길로 나갈 때에도 이북은 주체의 사회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그것을 배격하였으며 자기 식의 혁명로선을 견결히 고수하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우리 식대로 살아 나가자!》는 슬로건을 제시하시여 주체식으로 나라를 운영해 나가는 이북의 위상을 세계에 똑똑히 보여 주었다. 우리 식대로 살아 나간다는것은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제 정신을 가지고 사고하고 행동하며 모든것을 자기 나라 혁명과 자기 인민의 리익에 맞게 자체의 힘으로 풀어 나간다는것을 뜻한다. 어디서 어떤 바람이 불어 오고 남이야 어떻게 하든 관계없이 주체사상의 기치를 끝까지 높이 들고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살아 나간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남의 정신, 남의 풍에 따라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오직 주체사상밖에는 그 어떤 다른 사상도 모른다는 립장과 관점을 갖는다는것이며 모든것을 주체혁명과 민중의 리익, 나라의 실정에 맞게 풀어 나간다는것이며 어떤 문제이든지 남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이 책임지고 자체로 풀어 나간다는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우리 식》은 곧 자주를 뜻하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북이《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이겨 내고 강성대국건설의 길에 들어 설수 있게 된것은《우리 식》으로 혁명과 건설을 자력갱생의 원칙에서, 자기의 실정에 맞게 추진시켰기때문이다. 자력갱생은 자기 나라 변혁운동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라는 높은 사명감을 지니고 자기 나라 변혁운동은 자신이 책임지고 끝까지 수행하는 립장과 관점, 의지이다. 서방은《1995년 12월 갑자기 북조선 붕괴설》,《1996년 하반기 북조선 붕괴설》을 요란스레 떠들며 이북이 무너지는것은 시간문제이라고 진단했다. 그야말로 자주적민중으로 살아 남느냐 아니면 노예의 운명에 처하는가 하는 력사의 분수령이기도 한 시기였다. 서방과 이남의 집권층은《개혁》,《개방》에로 나가는 길만이 유일하게 살 길이라며 유화전략에 매달리는가 하면 갑작스레 정세를 극도로 랭각시키면서 일촉즉발의 전쟁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 엄혹한 시기에 이북에서 울려 나온 슬로건은《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다》는것이였다. 남에게 의존하여 구걸하면 죽는 길이고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제 힘으로 살아 나가는 방도를 찾는것만이 살 길이라는 명백한 의미의 슬로건이였다. 제재를 가하겠으면 가하고 봉쇄를 하겠으면 하라, 우리는 절대로 남의 노예로 되지 않는다는것이 자립의 힘으로 살아 가는 우리 인민의 배짱이다, 민족의 자주권은 그 누가 선사해 주는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 지는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주로 빛나는 사회주의조국의 존엄을 끝까지 빛내이기 위하여 자립의 길을 따라 억세게 전진해 나갈것이다, 세계는 다가오는 21세기에 주체의 강성대국, 자립경제의 강국으로 전변된 번영하는 사회주의조선을 반드시 보게 될것이다, 이것이 이북의 주장이고 립장이다. 이러한《우리 식》,《주체식》혁명로선을 뒤받침한것은 다름 아닌 강력한 자위력이였다. 선군정치는 강력한 자위력을 마련함으로써 그 어떤 외세의 위협과 공갈, 회유책동에도 굴함이 없이《개혁》,《개방》을 반대하고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혁명로선을 확고히 고수할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 또한 선군정치가 완성된 자주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 근거가 있다. 오늘 이북의 주체의 사회주의는 강력한 자위적군사력에 의하여 튼튼히 고수되고 있으며 혁명의 제1기둥이며 주력군인 인민군대에 의하여 더욱더 강화발전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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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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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평화를 지키는 정치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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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는 인간의 본성적요구이며 인류의 보편적지향이고 념원이다. 오늘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것을 절절히 바라고 있다. 인류의 이러한 념원을 반영하여 평화를 지키는 정치는 진보적인 정치로 되며 그것을 반대하는 정치는 반동정치로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의 진보성과 그 성숙정도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보장하는 정치인가, 그렇지 못한 정치인가에 따라 규제된다. 자본주의적정치를 반동적인 정치로 락인하는것은 그것이 국내적으로 민중의 자주성을 유린하는것에도 있겠지만 중요하게는 그것이 침략과 전쟁을 생존방식으로 하는 자본가계급에게 복무하는 정치이기때문인것이다. 침략과 전쟁은 제국주의의 변함 없는 본성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정치는 평화에 대한 유린을 기본속성으로 한다. 오늘 세계적범위에서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의 전횡이 그 어느 때보다도 로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것은 모든 나라들에서 초미의 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더우기 오늘《한》반도의 정세는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미제의 전쟁책동으로 하여 어느 시각에 전쟁이 일어 날지 모르는 위험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하는것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북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선군정치를 실시함으로써《한》반도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숭고한 시대적과제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선군정치는 전쟁의 위험이 가장 첨예하게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튼튼히 지킬수 있게 하는 가장 혁명적인 정치방식인것이다. 선군정치가 평화를 지키는 가장 혁명적이고 완벽한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저지시키는 가장 위력한 억제력을 마련하는 정치방식이기때문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제압할수 있는 강력한 무장력의 건설이다. 침략과 전쟁을 일으키려는 세력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대응만이 평화에로 이어 지는 길로 된다. 이북은 선군정치로 강력한 자위력을 마련함으로써《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해 나가고 있다. 1582년 9월 어느 날 리조시기의 신하인 리이가 임금에게 10년 후에 왜적이 침입할수 있으니 10만 병력을 길러 내야 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임금은 지금과 같이 태평하고 무사한 때에《양병설》은 맞지 않는것이라면서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때로부터10년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터졌다. 20만의 왜적이 침노하여 한달도 못되는 사이에 서울과 각 지방에까지 퍼져 산 사람의 코와 귀를 잘라 소금에 절이여 침략의 수괴에게 바치는 귀축 같은 민족도살행위가 자행됐다. 10만 양병을 했었던들 그런 일은 벌어 지지 않았을것이다. 임금은 자신의 처사를 후회하였으나 그것은 때 늦은것이였다. 이 하나의 사례는 나라를 지키고 평화를 위해서는 군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심각한 교훈을 가르쳐 주는것이다. 당치 않은 리기적요구조건을 내걸어 유엔까지도 무시한채 주권국가에 대한 무차별의 군사적공습도 서슴지 않는 패권주의적강권정치가 란무하는 오늘의 복잡한 정세는 군사문제, 군력강화문제를 중시하는 정치야말로 선견지명의 정치임을 여실히 실증해 주고 있다. 최근년간 이북의 선군정치에 대한 리해의 공감대가 국제적으로뿐아니라 이남의 각계 민중속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군정치에 대한 이남민심의 지지도는 한마디로 말하여 선군정치가 아니였으면 우리도 전쟁을 피할수 없었을것이라는데서 형성된것이다. 사실상 이라크나 유고련방에 대한 군사적공습에 이르기까지의 미국의 패권주의적강권정치 씨스템은 이북에도 꼭같이 적용되였다. 미국은 93년의《핵위기》, 95년 이후의《미싸일위기》를 거쳐 군사적타격의《명분》마련의 차원에서 1998년 여름 금창리《지하핵시설의혹》이라는것을 들고 나왔다가 본전도 못 찾은채 코 꿰운 식의 큰 망신을 당하고 물러 앉지 않으면 안되게 되자 유고련방에 대한 군사공습이 마무리된 시점인 1999년 6월에 서해상에서 무장충돌사건을 조작했다. 미국과 이남의 군부, 집권층까지 총 동원되여 이북의 군사적대응타진차원에서 4천t급이상의 땅크상륙함과 대형구축함을 포함한 30여척의 함선을 들이민 해상전투에서 이남의 군부가 입은 손실이 얼마나 치명적이였는지 완전차단되여 한동안 그 실상이 전혀 새여 나오지조차 못했었다. 대형전투함선 2척이 완전히 수장되고 10여척이 격상되였으며 100여명이 살상된것으로 그 손실의 규모가 알려 져 있다. 이북을 유고련방 다음의 군사적타격대상으로 정하고 불의에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았으나 미국과 이남의 군부와 집권층은 미처 변명할 시간적여유도 가지지 못한채 서둘러 진화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과 같은 수세에 빠졌다. 그러한 전 과정을 예민하게 주시하던 세계언론은 미국과 이남의 참패에 대해 크게 떠들었다. 유럽의 한 통신은 이에 대하여《요즘 세계무대를 둘러 보면 미국을 한손에 거머쥐고 좌지우지하는것은 김정일최고사령관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김정일최고사령관은〈무쇠마치〉이고 클린톤은〈가공소재〉라고 해야 할것이다. …조선의 무쇠마치가 미국소재를 마음대로 두들겨 때려 가공하고 있다.》고 론평하였다. 공화당이 의거하는 엔터프라이즈연구소의 두뇌진이 고안해 낸 씨나리오인지 아니면 민주당이 의거하는 부르킹스연구소가 창작해 낸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어쨌든《지하핵시설》위기요, 서해사건이요 하는 소동들은《한》반도에서의 핵전쟁계획인《5027작전》의 서막으로 치르어 진것으로서 미국으로서는 매번 스케줄을 거기까지 잇지 못하고 끊어 지게 함으로써《유일초대국》의 체면을 심히 손상 당하게 한 망신스러운 일이였다. 반면에 이남민중에게는 그것이 더 없이 감지덕지한 일로 다가왔다. 선군정치가 아니였더라면 미국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북을 공습했을것이고 그러면 전쟁이 터지는것이며 전쟁마당에서는 살아 남기가 힘들것임이 너무도 자명한 일이였던것이다. 현실은 선군정치만이 우리 민족의 오늘을 지켜 내고 평화를 지키며 밝은 미래를 열어 가는 선견지명 있는 평화중시의 정치임을 확인해 주는것이다. 선군정치가 평화를 지키는 혁명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은 또한 그것이 세계적범위에서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의 침략책동을 저지시키고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전진을 담보해 주는 정치방식이기때문이다. 이북에서 실시되고 있는 선군정치는 그것이 《한》반도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범위에서 더욱 로골화되고 있는 제국주의세력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저지시키는 강유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한다는데서 그 의의가 더욱 부각된다. 미국이 전쟁의 방법으로《한》반도를 거머쥐려는것은 궁극적으로는 아시아와 세계를 제패하려는 전략적야망을 실현하려는데 있다. 미국의 전쟁광신자들간에 있었던 세계정세간담에서도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21세기는《미국의 세기》로 되여야 하며 그러자면 전쟁의 방법으로 세계를 깔고 앉아야 한다는것이 미국의 변함 없는 야망이다. 그러나 세계의 적지 않은 나라들은 숭미공미사상에 포로되였거나 미국에 추종하면서 그러한 야망실현에 동조해 나서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야망과 전횡을 저지시키고 있는 나라는 이북이다. 이북은 오늘의 그 강력한 자위적무장력으로 미국의 오만한 전횡이 마음대로 통하게 하는 전례를 깨뜨리고 미국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보루로 되고 있다. 선군정치로 하여 최대, 최강의 강군으로 준비된 이북의 인민군대의 위력은 그자체로서 지난 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렬강들에게 먹히웠거나 오늘 또다시 침략과 전쟁의 불도가니속에 말려 들수 있는 나라들에게 자기를 믿고 자위력을 키운다면 그러한 재난을 막을수 있고 전쟁과 침략을 저지시킬수 있다는 신심과 방법을 가르쳐 주는 모범으로 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선군정치는 세계적판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가장 우월한 방식으로서 선군정치방식의 구현은 현대세계정치사의 흐름을 옳바르게 이끌어 가는 하나의 획기적인 사변으로 된다고 할수 있다. 선군정치는 특히 사회주의를 지키고 그 평화적전진을 가능케 하는데서 특별한 의의를 갖는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는 곧 평화이기때문이다. 전쟁이 제국주의의 속성이라면 평화는 사회주의의 속성이다.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것은 곧 평화를 바란다는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총대와 사회주의는 그 발생의 견지에서뿐만아니라 그 존재와 발전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분리할수 없는 보완관계에 있다. 총대에 의해 개척되고 총대에 의거하여 승리하며 전진하는것이 사회주의의 조건에서 사회주의정치가 군사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것은 그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로 된다.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총대의 역할은 정권창출시기에도 절대적이고 사회주의위업을 전진시키고 완성하는 시기에도 절대적인것으로 작용한다. 이 총대의 절대적역할을 무시할 때 사회주의위업은 생명력을 잃는것이고 총대를 천하지대본으로, 백년대계로 삼을 때 정상궤도에서 자기 전진을 가속화해 나갈수 있다. 사회주의정치는 마당히 군중시의 선군정치로 될 때 가장 강한 정치로 될수 있는것이다.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군사문제를 근시안적으로 보는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로 된다. 정세가 긴장되면 군사를 강화하다가도 정세가 완화되면 군사를 약화시키는것과 같이 기회주의적으로 되지 말아야 한다. 침략과 지배는 제국주의의 본성으로서 제국주의자들이 정세를 긴장시켜 총포성을 울리든 딸라와 감람나무가지를 흔들며 정세를 완화시키든 그것은 다 침략과 지배를 목적으로 한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를 선사하려는 선의에서 출발한것은 아니다. 정세의 완화에 따라 군사를 약화시키는것은 적에게 침략과 전쟁의 결정적순간을 제공해 주는것과 같다. 세계전쟁사는 1941년 12월의 진주만공격을 앞두고 일제가 여느 때없이 미국을 상대하여 평화공세를 벌리고 1942년 6월 쏘련방침공을 앞둔 히틀러가 례의이상의 화친을 호소한 사실이라든가 력대의 전쟁개시일, 전쟁개시시간이 가장 긴장이 풀리고 해이된 순간을 노려 선택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정세를 격화시키거나 완화시키거나 상관없이 시종일관 군사가 첫째이고 국방공업이 선차라는 관점에서 군사를 중시해 나갈 때 사회주의위업수행이 아무런 장애없이 미래지향적으로 전진해 갈수 있는것이다. 경제적과제가 크게 나서면 국방을 줴버리는것과 같은 일도 절대로 허용되여서는 안된다. 어떤 때는 국방에 힘 넣고 어떤 때는 경제에 힘 넣는 식으로 하면 국방이 강해 지면 경제가 약해지고 경제가 강해 지면 국방이 약해 져 불균형이 조성되고 절름발이식이 되고 만다. 이같은 상태에서는 국방력강화도 제대로 안되고 경제건설도 제대로 안되여 총체적으로 군력, 국력이 약체화되는 결과가 빚어 질따름이다. 그것은 제국주의가 바라는 일이고 그렇게 되도록 주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모든것은 선군정치야말로 평화를 위하고 사회주의의 승리적전진을 위한 가장 혁명적인 정치방식이라는것을 웅변적으로 증시해 준다. 선군정치현장은 강력한 군력으로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저지시키고 지구촌의 평화를 지켜 가시는 현대정치의 거장으로서의 김정일장군의 선견지명의 정치현장이며 비범한 령도력의 현장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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