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무적필승의 강군 키우다

사상의 강군ㅡ수령옹위군

조선인민군은 어떤 군대인가. 이것은 선군정치와 더불어 오늘날 세인이 관심을 돌리는 문제이다.
이남의 언론은 이와 관련하여 이미 90년대 중반에 《이북의 인민군대는 정치사상적면모에 있어서 1등급의 군인기질의 소유자》들이라는 평을 내렸다.
그때 몇명의 인민군군인들이 뜻밖의 해상사고로 표류하던중 이남당국에 억류되였다가 끝내 북행길에 올랐었는데 그들의 너무도 당당한 모습들에 내려 진 진단이다.
이들 인민군군인들은 이남당국의 전향요구, 위협, 유혹도 다 물리치고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김정일장군칭송노래를 부르면서 《부모를 떠나서는 살수 있어도 김정일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확고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그들은 심문 받는 과정에 《당신들이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존칭을 쓰지 않는다면 답변을 거부하겠다.》고 을러 메였으며 소속과 이름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전사 ○○○》라고 밝혔다. 고급양복을 내놓으며 귀순을 설득시키려 하자 《우리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주신 군복을 입고 수령님의 초상휘장을 앞가슴에 모시겠다.》고 강경히 들이대여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켰으며 《한국》에 떨어 지면 자가용승용차와 금시계, 호화주택을 주겠다고 회유할 때에는 《우리 장군님의 전사들은 장군님을 떠난 그 어떤 생활도 모른다.》고 거부했다. 고문과 기만에 실수라도 할가봐 혀를 끊으려고 이발로 깨물어 밤 늦게까지 의식을 잃기도 했다.
이러한 높은 정신력앞에서 《한국》의 공권력은 물론 사상, 리념 등 모든것이 손을 들었으며 그것을 인민군고유의 정신적기질로 자리 매김한것이다.
인민군대야말로 이 세상에 그 어느 군대도 따를수 없는 사상의 강군이라는 확인이 아닐수 없다.
군대가 어떠한 면모를 갖추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 지도력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무릇 군령도는 무장력을 이루고 있는 사람과 무장장비에 관한 령도이다. 여기에서 어느것을 기본으로 보는가에 따라 군건설과 관련한 로선과 정책이 립안되고 군력강화의 성패가 좌우되며 군대의 면모가 규제된다.
자본주의군사론은 물론 맑스ㅡ레닌주의군사론도 군건설에서 무장장비를 기본으로 하고 사람, 정신력보다도 무기를 중시했다.
싸움의 승패가 힘의 자승법칙에 따라 규제된다는 주장에 기초한 수적우세의 지론이나 원자탄제조 이후의 핵무기만능론에 이르기까지의 기술적우세를 지향한 무기중심론은 어느것이나 다 군사의 위력은 무장력수준의 높낮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군사원리에 기초한것으로써 총 잡은 사람, 사상정신력을 무시한것이다.
무기중심론에서는 군인을 단순히 머리수로만 계산되는 인적재료로 여겼을뿐이다.
력대의 정치방식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여 군건설의 총적방향을 병기증강에 두었으며 군인대중을 움직이는데서 돈에 의거하였다.
돈과 점령지의 전리품으로 병사들을 유혹하여 전장에 내모는것이 그들의 주되는 용병술이였다. 제국주의군대의 고용병들이 형세가 불리하면 투항하거나 도주할 생각부터 하는것은 돈으로 병사들을 움직이는 용병술이 낳은 필연적산물이다. 총구앞에서 나약한 이런 군대는 아무리 현대적인 무기를 쥐였어도 강군이 될수 없다.
인민군대는 이와는 틀을 근본적으로 달리하여 군인의 정신력을 무엇보다도 중시하고 사상의 강군건설을 군건설의 근본원칙으로 내세우는 군대이며 선군정치는 인민군대의 사상정신력을 세계군사사상 최정상에 올려 세운 위력한 정치방식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무장장비에 앞서 사람, 군인대중의 사상정신력을 중시하고 기본으로 보는 당위에 대해 이렇게 밝히시였다.
《적과의 대결은 군사적힘의 대결인 동시에 사상의 대결입니다. 나는 군건설과 군사활동에서도 사상론을 주장합니다. 군사적타격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상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 위력은 원자탄보다 더 강합니다. 군사력에서 기본은 사람들의 사상의식입니다.》
군인대중은 무기의 부속물이나 머리수로만 계산되는 인적재료인것이 아니라 혁명전쟁의 주체이라는것이 일찌기 김정일장군께서 밝히신 주체적군사사상의 요체이다.
이것은 군인대중은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가진 존엄 있는 존재이며 군인들의 사상의식에 따라 전쟁의 운명도, 군력의 강약도 결정된다는 사상론의 구현이다.
군사의 위력이나 전쟁의 운명이 수적, 기술적우세가 아니라 사상의 위력에 의해 결정된다는것은 력사에 의해 각이된 진리이다.
고대로마나 오스만제국이 당시로서 으뜸의 군사력을 지닌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멸망하였으며 히틀러도이췰란드 역시 세계제일을 뽐내는 군대를 가지고도 쏘련방군에 쓰디쓴 참패를 당하였던것은 그들이 사상정신력에 있어서 정의의 군대일수 없고 본질상 고용병들의 오합지졸이기때문이라는데 근본원인이 있는것이다.
군사의 위력이 수적, 기술적우세가 아니라 정치사상적힘에 있다는 진리를 쏘련방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의 군대의 와해와 사회주의좌절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이전 쏘련방 국방상이였던 야조브는 자기의 글에서 쏘련방 붕괴의 요인을 군건설의 원리적시각에서 이렇게 분석하였다.
《…물질적면에서 쏘련은 경제대국이고 군사대국이였지만 졸지에 붕괴되고 말았다. 300여만의 대병력과 세계 1등급의 현대적인 무장장비를 자랑하던 쏘련군대는 전쟁도 아닌 평화시기에 당도 사회주의도 지켜 내지 못하였고 자기 존재마저 유지하지 못하였다.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서방과의 공보ㅡ사상전쟁에서 패하여 무장대오가 사상적으로 와해되였기때문이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대결은 본질에 있어서 사회주의사상과 자본주의사상간의 사상적대결로써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못 가진 군대, 사상적으로 와해된 군대는 고도의 무장력수준일지라도 패하고 만다는 력사적교훈에 대한 증언이라 할것이다.
그렇다면 사상의 강군건설을 군건설의 근본원칙으로 내세우고 자기가 걸어 온 전 로정에서 그것을 일관하게 실천해 온 인민군대가 1990년대 후반기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내세운 사상의 강군건설표지는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 1995년 새해를 맞으면서 혁명군대의 위력은 본질에 있어서 사상의 위력이며 따라서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철의 전투대오로 강화발전시키자면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시며 당의 령군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전군은 최고사령관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하며 모든 군인들을 혁명의 제1선에서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으로 준비시키는것이 인민군대 사상사업의 기본방향이고 기본목표이라고 명시하신 가르치심에 그러한 지대한 의미의 정치비전적무게가 실려 있음을 보게 된다.
당의 령군체계의 철저한 확립, 전군의 주체사상화, 전군을 수령결사옹위의 총폭탄대오로 다지는것ㅡ이것이 인민군대를 사상의 강군으로 키우는데서 나서는 전략적목표였다.
그것은 인민군대를 수령의 사상, 자기 최고사령관의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켜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수령결사옹위부대,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군대로 만든다는것이다.
사상의 강군건설을 위한 김정일장군의 선군혁명령도에서 무엇보다 중시되는것은 그것이 본질에 있어서 사상을 틀어 쥔 령도이라는것이다.
혁명군대가 사상을 틀어 쥐면 승리하고 놓치면 망한다는것이 김정일장군의 지론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사상은 곧 사회주의사상, 수령의 사상을 뜻한다.
사회주의사상이 곧 군건설의 생명이며 혁명군대의 위력은 사상의 위력에 있다는 지론이다.
쏘련방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사상중시원리에서 리탈하여 군대를 비사상화, 비정치화했기때문에 망했다.
선군정치는 이같은 비사상화, 비정치화역풍에 대처하여 인민군대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의 순결성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는 한편 온갖 부르죠아사상독소와 반동적인 사상조류들이 인민군대안에 조금이라도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였다.
전군의 주체사상화구호를 더욱 높이 추켜 들고 모든 군인대중이 주체사상을 신념으로 깊이 간직한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로 되도록 교양사업을 강화했다.
또한 군대안에서 당조직들의 권능을 더욱 높이고 역할을 강화하여 인민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선로동당기를 높이 추켜 들고 나가는 당군으로서의 진면모를 착실히 다지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당위원회의 집체적지도밑에 군사지휘관의 유일적지휘를 실현하는 부대지휘관리원칙을 강조하고 당의 유일적령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철 같은 규률과 당풍에 기초한 군풍의 확립, 군정배합을 잘하는 문제 등 당의 령도체계확립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실천해 나갔다.
사상의 강군건설을 위한 김정일장군의 선군혁명령도에서 중시되는것은 다음으로 오중흡7련대를 따라 배우는 운동을 힘 있게 벌리도록 하여 인민군대의 위상을 수령결사옹위,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이 꽉 차넘치는 수령옹위군의 높이에 올려 세우신것이다.
원래 사회주의위업은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하는 수령의 위업으로서 사회주의군대는 마땅히 수령의 군대로 되여야 한다.
사회주의위업이 본질에 있어서 수령의 위업인것으로 하여 제국주의의 반사회주의공격의 화살이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거세말살하기 위한데 돌려 지는 조건에서 수령옹위는 혁명군대의 본성으로 되며 핵심과제로 된다.
90년대 제국주의의 반사회주의책동, 반공화국책동의 화살이 혁명의 수뇌부에 돌려 지는 상황은 사회주의수호는 곧 수령옹위로 된다는 진리를 리론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실적문제로 제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상황에 비추어 제국주의반동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극심했던 모든 력사적단계들에서 혁명의 수뇌부옹위의 기치를 누구보다도 먼저 추켜 들고 실천해 온 인민군대에서 맨 먼저《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를 전면에 추켜 들었다.
김정일장군을 사회주의와 민족, 민중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혁명의 수령으로 높이 내세우며 추켜 든 충성의 구호, 신념의 구호였다.
그것은 김정일장군만 계시면 제국주의의 그 어떤 고립압살책동도 짓부시며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으로부터 출발한것으로써 시대와 력사의 요청에 대한 사명감의 분출이 아닐수 없다.
인민군대가 이 수령결사옹위의 구호를 추켜 든것과 관련하여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렇게 답하시였다.
《이번에 인민군대에서〈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를 내놓았는데 이 구호에는 당과 영원히 운명을 같이 하려는 인민군군인들의 숭고한 사상정신세계가 그대로 반영되여 있습니다. 나는 이 구호를 보고 커다란 고무를 받았으며 우리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당의 손길아래 자라난 인민군대가
아니고서는 이런 훌륭한 구호를 내놓을수 없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는 백두밀림에서 첫 총성을 울린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 언제나 자기 령도자와 운명을 같이 하여 왔으며 우리 혁명앞에 어려운 시련이 닥쳐 올 때마다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구호를 높이 들고 당과 수령을 견결히 옹호보위하였다고, 력사의 준엄한 폭풍을 뚫고 승리적으로 전진하여 온 우리 혁명의 자랑찬 년대기에는 당과 수령을 한목숨 바쳐 옹호보위한 인민군대의 충성심이 뜨겁게 어려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할 의지를 담은 신념의 구호는 수령결사옹위의 구호인 동시에 사회주의수호의 구호였고 주체위업완성의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의 이러한 사상정신력이야말로 제국주의의 고립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온갖 시련과 난국을 승리적으로 타개하며 주체위업완성의 진군로를 열어 놓는 근본열쇠이라는 시각으로부터 전군의 사상정신력을 급상승시킬 새로운 대중운동으로서의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을 발기하시였다.
1996년 새해의 첫날에 인민군 지휘성원들을 부르신 자리에서 김정일장군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 오중흡7련대는 언제나 제1선에서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 바쳐 보위하였으며 참다운 혁명가, 총 잡은 군인들이 자기 수령을 어떻게 받들고 보위해야 하는가를 산 모범으로 보여 주었다고, 전군이 오늘의 7련대가 되여 혁명의 수뇌부를 견결히 옹호보위하여야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할수 있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을 벌리기로 결심하였다고 자신의 의도를 밝히시였다.
오중흡7련대는 항일무장투쟁의 가장 준엄한 시기였던《고난의 행군》시기를 비롯하여 언제나 맨 앞장에서 김일성장군빨찌산사령부를 옹위하여 조선혁명의 운명을 지켜 낸 항일빨찌산부대이다. 오중흡7련대의 이 수령결사옹위정신은 자기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에 기초한 가장 고결한 혁명정신이고 사령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적진속에도 서슴없이 뛰여 드는 육탄정신이고 날아 드는 적탄도 한몸으로 막아 나서는 성새정신, 방패정신으로 풀이된다.
김정일장군께서 발기하신《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은 전군 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장병들을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정신으로 준비시켜 인민군대를 최고사령관의 친위대, 결사대로 만들기 위한 집단적혁신운동이였다.
1997년 9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오중흡7련대칭호쟁취를 위한 판정검열을 받고 있는 어느 한 구분대를 찾으시였다.
부대에 들어 서니 분위기부터 달랐다. 여기저기에 힘 있는 구호들이 나붙고 기발들이 휘날렸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부대를 돌아 보시며 시종 만족을 금치 못하셨다.
아늑한 골짜기에 위치한데다 여러개의 풍치 좋은 양어장들을 옆에 끼고 잘 조성된 록화속에 병영건물들을 앉힌 부대의 외부환경부터가 그분의 마음을 끌었다. 부대안의 모든 요소들이 전군적인 본보기로 내세울만큼 훌륭했으며 전투력도 일당백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 특별히 높이 평가하신것은 군인들의 사상정신상태였다.
김일성주석의 현지지도단위인 부대에서는 자체 실정에 맞게 현지지도학습실을 따로 꾸려 놓고 여기서 자체로 만든 부대현지교시도록판을 통한 교양사업을 오래전부터 정상화해 오는데 실지 군인들의 사상적준비에 큰 실효를 가져 오고 있었던것이다.
군인들의 사상정신상태는 예술공연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였다.
예술공연에는 김일성주석의 현지지도사적이 깃든 중대의 군인들이 출연했다.
공연형식도 새롭고 전문병의 특색을 잘 살린데다 모든 종목들이 수령결사옹위사상으로 관통되여 있었다.
합창《장군님 뵙고 싶었습니다》,《우리 장군님 제일이야》, 독창과 방창《내가 지켜 선 조국》, 북제창《정일봉의 우뢰소리》등 종목들이 바뀌여 공연은 시와 합창《우리는 맹세한다》로 절정을 장식했다.
우리는
펄펄 끓는 쇠물가마속에 이 몸을 던진대도
시퍼런 도끼로 이 몸을 친대도
두눈과 심장을 도려 낸대도
장군님, 장군님밖에 모릅니다

우리는
사상과 신념, 량심과 의리로
장군님만 믿고 따르는
충신중의 충신이 되겠습니다.
이 한몸 원쑤의 핵폭탄도 막아 내는
최고사령부의 지붕이 되고
이 한몸 억척으로 열리지 않는
최고사령부의 자물쇠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김정일제일친위대, 김정일제일결사대가
되겠습니다!
전군의 맨 앞장에 선
오늘의 7련대가 되겠습니다.

시는 노래《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의 합창으로 이어 졌다.
주먹을 흔들며 맹세를 웨치는 군인들의 눈길마다에서는 열기가 뿜어 져 나오고 격정의 눈물이 번뜩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인들이 공연을 통하여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고 최고사령관을 따라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고야 말 자기들의 철석 같은 신념과 의지, 랑만에 넘친 군무생활을 잘 보여 주었다고 치하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오늘 부대를 기쁜 마음으로 돌아 보았습니다. 이 부대는 모든 군인들이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되였을뿐아니라 지휘관들의 부대지휘관리수준도 대단히 높습니다.
나는 부대가〈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을 통하여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직한 일당백의 전투대오로 억세게 자라난데 대하여 만족하게 생각하며 동무들의 투쟁성과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시고는 수행한 군지휘일군들에게 이쯤하면 판정검열성원들이 합격을 주고 올라 가도 되지 않겠는가고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김정일장군의 이러한 지도력에 의해 오늘《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은 인민군대를 수령결사옹위부대, 최고사령관의 전투부대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대중적운동으로 활발하게 벌어 지고 있으며 이 운동을 통하여 인민군대는 사상의 강군으로서의 면모를 더욱 확실하게 다지게 되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수령결사옹위의 전형을 내세우시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인민군장병들이 따라 배우도록 하여 인민군대를 수령결사옹위부대, 최고사령관의 친위부대로 키우시였다.
전형을 창조하고 그것을 일반화하는 방법으로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 나가는것은 김정일장군의 령도방법이다.
김정일장군께서 내세우신 수령결사옹위의 전형은 리수복, 길영조영웅 등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바쳐 혁명의 수뇌부를 옹위한 충신들이다.
리수복영웅은 6.25전쟁시기 1211고지에서 불 뿜는 적화구를 몸으로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고 조국과 수령을 보위한 18살 꽃나이의 육탄영웅이다.
리수복영웅은 자신의 운명보다 조국의 귀중함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위기일발의 순간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불 뿜는 화구를 덮은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시찰의 길에서 인민군전사들이 리수복의 정신세계를 따라 배우기 위해 애 쓰고 있는 사실에 류의하시여 그를 수령결사옹위의 전형으로 높이 내세워 병사들이 누구나가 오늘의 리수복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것이다.
《90년대의 리수복》으로 불리우는 길영조영웅은 비행도중 뜻밖의 사고가 생겨 불 붙는 비행기에서 리탈하여야 할 정황에 부딪쳤을 때 자신의 비행기가 그대로 추락하면 혁명의 수뇌부가 위험에 처할수 있다는것을 포착하고 탈출하지 않고 비행기를 바다방향으로 조종하여 30살의 젊음을 바친 비행사자폭영웅이다.
길영조영웅의 숭고한 정신세계는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기 위하여 한목숨 스스럼없이 바친 수령결사옹위의 자폭정신으로 음미된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 가시면서 리수복, 길영조영웅을 수령결사옹위의 전형으로 내세워 주시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인민군대안에 일반화하도록 해주시였다.
그 나날에 리수복영웅의 시가 다시금 인민군장병들뿐만이 아닌 온 나라 민중속에 애독되게 되였으며 길영조비행사의 영웅적투쟁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오고 영웅의 안해가 장군님의 접견을 받고 남편이 섰던 초소에 군복을 입고 서게 되였다.
전군에 리수복, 길영조영웅을 따라 배우기 위한 운동이 힘 있게 벌어 지게 되였으며 이를 통하여 인민군대안에는 수령결사옹위정신이 꽉 들어 차고 인민군장병들속에서 수많은 육탄영웅, 자폭영웅이 배출되였다.
주미《공사》를 지낸바 있는 손장래는《이북군의 가장 무서운 병기는 자폭정신》이며《이북군은 세계에서 가장 잘 정신무장된 군인집단》이라고 했다.
사상을 기본으로 틀어 쥐고 나가는 령군술이 군인들을 죽음도 맞받아 나가는 불굴의 용사로 키웠으며 선군정치에 의해 오늘 인민군대는 미군부가 자인하고 이남의 관리들까지 인정하는것처럼《자폭정신이라는 가장 무서운 병기를 가진 세계제일의 강군》으로 그 위상을 돋보이고 있는것이다.

□ 무적필승의 강군

최근 미국과 이남의 매스컴들에는 이북의 인민군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능히 제압할 능력이 있으며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칸지역이나 페르샤만에서와 같이 전쟁이 터지지 않은것은 미국이 인민군의 군력에 의한 피해를 두려워 하기때문이라는 사료들과 론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미군이 인민군의 강력한 대응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데 준비되여 있지 않는 군대라 할 때 인민군의 위상은 분명히 미군의 억지력으로 자리매김된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여기서 론하게 되는것은 이러한 군력의 신장이 좋은 환경에서 쉽사리 이루어 진것이 아니라 최악의 난관속에서 오로지 선군혁명령도가 있었기에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김정일장군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에서 그것을 알수 있다.
《우리가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온갖 도전과 침략책동을 단호히 짓부시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라도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계속 큰 힘을 넣어야 합니다. 동무들은 내가 왜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지만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공장이나 농촌이 아니라 인민군부대들을 끊임없이 현지지도하는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다고 하여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 인민이 제국주의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면할수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민중들이 다시는 제국주의식민지노예의 멍에를 쓰지 않게 하기 위해,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군사를 선행시키고 국방공업을 선차시킨 결과물이 바로 미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할 능력이 있는 인민군의 군력인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대가 군사기술적으로 준비되지 않고서는 적과 싸워 승리할수 없다,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혁명군대가 군사기술적으로까지 준비되면 무적의 군대로 될수 있다는 지론으로 군사가 첫째이고 국방공업이 선차이라는 시각에서 인민군대를 군사기술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문제를 직접 주도해 나가시였다.
탈랭전시대가 도래하면서 세계《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론리에 따라 세계정치가 힘과 힘의 대결로 이루어 지는 오늘의 시점에서 군력의 강화는 나라와 민족의 흥망을 판가름하는 관건적문제로 부상되여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지난 날 군대사의 력사적흐름과 오늘날 조성된 세계정세를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군력의 강화를 사회주의와 민중의 운명을 건 사활적문제로 부상시키신것이다.
김정일장군의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만들기 위한 선군혁명령도에서 중시되는것은 무엇보다도 군인들을 일당백의 무적의 용사로, 만능의 싸움군으로 튼튼히 준비시키신것이다.
군대는 말 그대로 싸움을 위한 존재다. 군대는 싸워야 하며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존재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신력과 정신도덕적품성을 소유한 군인이라 해도 전술능력과 체질이 약하면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할수 없다. 더우기 오늘날 고도로 현대화된 무기나 전투기술기재들이 동원되여 립체전으로 전개되는 현대전은 군인들이 첨단기술기재를 자유자재로 다룰수 있는 기술, 예민한 정황판단과 전술활용능력에 완강한 체력을 겸비할것을 요구한다.
무장장비가 선차냐 그것을 다룰 군인들의 능력이 선차냐 할 때 군인들의 능력갖추기를 앞세울데 대한 문제제기인것이다.
세계 군대사를 소급해 보면 지금까지 군사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군대의 무장장비수준을 꼽아 왔음을 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강대한 군대로 인정 받았던 영국이나 로일전쟁시기 악명을 떨친 일본군은 그 우람하고 든든한 함선들로 무장되였기때문에 다른 나라 군대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될수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시기 세계제패를 호언장담했던 히틀러도이췰란드군은 속도가 빠르고 타격력이 있으며 그 어떤 타격에도 끄떡 없는 땅크로 무장되였기때문에 무적의 강군으로 불리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장화를 다그친 미국이 세계《유일초대국》임을 자처하는것 역시 군사력의 기본요소를 무장장비로 보는데서 비롯되는것이다.
군인대중은 무장력구성의 기본요소이며 혁명전쟁의 주체이라는것이 김정일장군의 군대관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러한 시각으로부터 출발하시여 전쟁에서 무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주인은 어디까지나 군인들이라는것, 군대의 위력과 전쟁의 승패는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는것, 군인들이 혁명적인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되고 군사기술적으로 잘 준비되였을 때 그러한 군대는 어떤 적과도 싸워 이길수 있다는 독특한 군인중심의 군사사상을 제시하시였다.
이로부터 군령도에서 언제나 무기보다 사람을 중시하며 군인대중을 사상적으로 깨우치고 발동시켜 모든 군사문제를 풀어 나가는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우신다.
구체적으로 인민군병사들을 어떤 정세가 조성되여도, 그 어떤 적이 덤벼 들어도 단매에 쳐물리칠수 있는 힘과 지략의 명수로, 그 어떤 현대적무기도 다 다룰수 있는 만능병사로, 하나가 백, 천을 당하는《일당백》의 펄펄 나는 싸움군으로 키워 가신다.
1996년 3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일당백》구호의 발원지라 할수 있는 최전연구분대인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였다.
《일당백》구호가 새겨 진 천연바위앞에 이르신 그분께서는 구호가 나온 력사의 그날을 추억하시는듯 한동안 사색에 잠기셨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63년 2월 6일 몸소 생눈길을 밟으시며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여 인민군대앞에〈일당백〉의 혁명적구호를 제시하시고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에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강령적교시를 주시였습니다.》
부대 책임일군이 구호가 처음 나왔을 때 군대안에 박혀 있던 반당반혁명분자들이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비웃는다느니, 일당백, 일당백 하면 유사시에 우방에서 방조를 주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구호자체를 없애려 하자 군인들이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정대로 천연바위에 구호를 새겨 넣어 일당백을 군력강화의 기치로, 필승의 신념으로 깊이 간직한데 대해 말씀 드리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아주 좋은 일이라고 높이 평가하시며 《인민군대에서는 앞으로〈일당백〉의 혁명적구호에 담겨 진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끝까지 관철하기 위한 교양사업을 더 잘하여 모든 군인들을 일당백의 싸움군으로 준비시켜야 하겠습니다.》라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 《일당백》의 고향 대덕산초소를 찾으신 현지시찰걸음의 의미는 다름 아닌 《일당백》의 구호를 군력강화의 기치로 더욱 높이 추켜 들고 모든 인민군장병들을 무적필승의 강자로, 인민군을 세계으뜸의 군사력을 지닌 강군으로 키울 확고한 결심과 의지의 발현이라는데 있는것이다.
지난 날 군사력이 발전하였다는 나라들에서의 군사원리에서는 병사적기질에 대해 용감성, 신속성, 정확성, 완강성을 각각 이르기도 했지만 오늘 인민군군인들은 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기질을 완비한 만능병사, 일당백의 싸움군으로 자라났다.
강의한 혁명정신과 기묘하고 령활한 전술, 백발백중의 사격술, 무쇠 같은 체력의 소유자, 자기 무기는 물론 분대무기, 소대무기, 중대무기, 심지어는 적의 무기에까지 정통하고 있으며 함선에서 갑판수가 자기 임무와 함께 포수, 기관수, 무전수의 임무를 다각적으로 수행하고 포에서 장탄수가 조준수나 포장의 임무도 감당할수 있게 준비되여 있는것이 인민군 개개인의 면모이다.
미국방성과 밀접한 련계를 갖고 있는것으로 알려 진 재일동포2세인 군사, 외교평론가 김명철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 진 다음의 사실은 인민군 개개인의 전투력상태를 보여 주는 좋은 례이다.
1994년 12월 17일 주《한》미군의 헬리콥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섰다가 조선인민군 병사가 쏜 단 한방의 총탄에 의해 추락된 사건이 있기 두달전의 일이다.
당시 미국방정보국 국장 크랙터가 주《한》미군의 헬리콥터를 타고 비무장대를 시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종사가 실수하는 바람에 그가 탄 헬리콥터가 비무장지대로 들어 가 휴전선쪽 가까이에 접근했다.
주《한》미군인지 《국군》인지 남쪽에 있던 군인들이 그 헬리콥터가 북으로 망명하는줄 알고 총격을 가했으나 단 한방도 맞지 않았다.
이때 북측에서 인민군군인들이 그 헬리콥터가 휴전선을 넘어 서 침입하는것으로 판단하고 총격을 가했다. 인민군의 총탄은 대번에 헬리콥터를 맞추었다. 다행히 엔진과 연유탕크에 맞지는 않아서 격추위기는 간신히 모면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워싱톤에 돌아 간 크랙터는 북조선과 전쟁을 하면 안된다고 말하였다.
피격사건이 일어 나자 미국은 비무장지대부근에 미군헬리콥터가 날아 다니지 못하도록 일시적인 조치를 내렸다. 미국은 우발적인 충돌로 미국이 북조선과 전쟁을 하게 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선군혁명령도는 이렇듯 인민군 병사 개개인을 무적의 싸움군으로 키운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또한 인민군대의 무장장비의 현대화를 특별히 중시하시여 그 어떤 현대전에도 대처할수 있는 무적강군의 수준에 올려 세웠다.
적아간의 대결은 사상의 대결인 동시에 전투기술수단과 무장장비의 대결이다.
오늘날 제국주의련합세력이 위력한 고도무기개발을 앞지르며 강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이건 그에 대응한 강위력한 타격수단을 가져야 한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분렬되고 작은 나라인 이북이 미국과 군비경쟁을 할수는 없는 형편이다.
미국이 대형핵항공모함이나 스텔스비행기와 같은 현대적이며 대규모적인 무기를 만든다고 해서 이북이 미국과 동일하게 국방분야에 투자를 돌릴수는 없는것이다.
서방의 군사전략가들은 이 점에서 이북은 미국이 엄청나게 값 비싼 항공모함이나 이지스함을 만들 때 단 한방에 그것들을 수장해 버릴수 있는 상대적으로 값 싼 미싸일을 개발하는 전략이라고 비유하여 분석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미싸일타격에 무방비상태나 다름 없는 평야지대에 위치한 미국의 대도시들을 미싸일로 공격하면 파괴력은 최고도로 높아 져 미국의 군력, 국력의 피라미드를 일격에 허물어 버린다는것이다.
신빙성이 인정되는 지론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이것은 유고슬라비아전쟁과정에 나토군사령관 클라크가 미공군기들과 함선들이 첨단미싸일을 동원하여 한달이상 유고련방을 공격했지만 미군은 꼬쏘보의 쎄르비아군을 무력화시키는데서 실패했다. 쎄르비아군은 아직도 강력하다고 실토했던것처럼 현대전에서 공군력과 해군력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인것은 아니며 최신무기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립증해 준 사실로써도 설명되는 문제이다.
여하튼 이북은 발전하는 세계군사과학기술에 따라 군사장비의 현대화속도가 빨라 지고 최신식군사장비들이 수많이 출현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 부응한 선견지명의 현대화전략을 갖고 있으며 착실히 실천하고 있는것으로 알려 져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북이《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민군대를 최신식군사장비로 무장시키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실 때마다 그곳 지휘관들에게 세계무기발전추세도 알려 주시고 새로 나온 현대적인 군사장비들의 성능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가르쳐 주신다.
이러한 선군혁명령도의 길에서 인민군대의 무장장비수준은 이미 세계적수준으로 확고히 자리 잡혀 있는것으로 알려 져 있다.
미, 일의 연구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인민군 공군무력은 미군의 최신비행기와 맞서 공중전을 성공적으로 벌리며 적의 주요지탱점들과 군집단을 일거에 소멸할수 있는 현대적비행기들을 갖춘 세계적인 공군으로 확인되고 있다.
해군도 나라의 령해를 완벽하게 지킬수 있는 위력한 전투함선들과 현대적인 해상무기를 가진 대함대로 급성장했으며 장갑땅크무력과 포무력도 높은 수준에 오른것으로 알려 져 있다.
이북의 군부가 발표하는 성명, 담화들에서 강조되는것처럼 적이 행성의 어느 곳에 있건 일격에 소멸할수 있는 강력한 타격수단들이 갖추어 져 있으며 포와 땅크의 기동력은 몇배, 몇십배로 높아 졌다.
포자행화에서 제노라고 하는 나라들을 뒤떨구고 당당히 앞서 나가고 있다.
이렇게 인민군 무장장비는 행성의 그 어디에 있는 적도 능히 타격할수 있는 위력한 공격수단과 하늘과 땅, 바다로 덤벼 드는 그 어떤 침략자도 단매에 쳐부실수 있는 철벽의 방어수단을 다 갖춘 무적의 강군으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다는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무장장비의 현대화는 인민군의 작전능력을 비상한 높이에 올려 세웠다.
선군혁명령도에 의한 인민군대의 작전능력의 수준을 1994년에 있은 《따왕》을 쥐고 《와딩》을 시킨 격의 공군 비행대출동훈련상황을 통해서 알수 있다.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 공군지휘부에 비행대출동훈련에 관한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비행대출동훈련에 들어 가야 할 때까지는 불과 몇시간… 그 짧은 시간내에 한나라의 공군비행대들을 출동시킨다는것은 기성관례의 군사상식으로써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공군무력이 발전되고 그 력사가 오래다고 자처하는 나라들에서도 자국의 모든 비행기들을 한순간에 일제히 출동시킨 례는 없었다. 공군사상 관례를 깨치는 명령을 접한 지휘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훈련조직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국적으로 날씨가 심하게 흐려 지고 어떤 지방에서는 때 아닌 진눈까비까지 내릴것이 예견된다는 기상예보가 알려 졌다. 당황한 지휘관이 변덕스러운 기상예보에 관해 장군님께 보고 드리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태도로 래일 기상조건이 불리하여도 비행기들을 무조건 출동시켜야 한다고 일깨워 주시였다. 그분께서는 이번에 진행하는 비행대출동훈련은 자신께서 직접 공군부대들의 싸움준비상태를 총 검열하는것이라고, 훈련을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일시적이나마 난감한 마음에 사로 잡혔던것을 뉘우치며 지휘관은 비행대출동훈련을 무조건 조직진행하겠다고 말씀 드리였다. 드디여 지휘관의 신심과 멸적의 기상 넘친 출격명령이 내렸다. 온 나라의 모든 군용비행장들에서 다양한 기종의 비행기들이 일시에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올라 자기의 행로를 따라 종횡무진했다. 하늘을 뒤덮었던 비행기편대들은 맡겨 진 전투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고 기지들에 무사히 착륙했다.
이날의 비행대출동훈련을 두고 누구나 공중우세를 떠들어 대는 적들에게 된타격을 안긴셈이라며 필승의 신심에 넘쳐 있을 때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번 비행대출동훈련은 《따왕》을 쥐고《와딩》을 시킨 격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이북에서 비행대출동훈련이 시작되는것과 때를 같이 하여 공중우세로 이북을 놀래워 보려는 심산으로 어느 한 적대국에서 자국내 비행기의 절반을 출동시키는 훈련을 시도했었는데 지휘체계의 분산성과 기상조건으로 하여 그것을 포기하고 만 사실을 념두에 둔 말씀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그 나라에서의 비행대출동훈련을 겨냥하여 인민군 비행대출동훈련명령을 하달하시였으며 그 성공으로 적들을《와딩》시켜 놓으셨던것이다.
선군혁명령도에 의해 인민군의 군사진지들도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완벽하게 꾸려 졌다.
살상력과 파괴력이 강한 전쟁수단들이 대량동원되는 현대전에서 그 어떤 타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견고한 군사진지를 구축하는것은 무장력의 군사기술적위력을 강화하는데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력사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핀란드의 만네르하임선이나 프랑스의 마지노선, 도이췰란드의 지그프리드선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전하고 있다.
이북은 요새화, 현대화수준에서 이것을 완전히 압도하는 갱도화, 요새화된 군사진지들을 갖고 있다.
지난 만전쟁때 다국적군이 수천수만대의 비행기와 미싸일로 이라크의 방위시설물에 파괴력이 강한 폭탄과 포탄을 퍼부었지만 지하구조물들을 다 파괴하지는 못했다. 이라크의 방위시설물이 모래밭을 파고 만든 콩크리트구조물이라는 점을 든다면 이북의 갱도화된 요새는 핵탄을 떨군다 해도 끄떡없을 높은 수준의것으로 평가된다.
세계군사전문가들은 이북의 군사력에 대해 깊이 파고 들수록 그 위력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고대마께또니아군대의 위용과 현대꾸르까인부대의 용맹에 대해 즐겨 쓰던 서방매스컴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위력한 군대, 적이 가장 무서워 하는 군대는 조선인민군이다.》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는것은 인민군대의 막강한 군사기술적위력에 대한 확인에서 비롯된것이 아닐수 없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를 강군으로 만들기 위해 국방공업을 강화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국방공업은 자위적군사력의 기초이며 군사력을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필수적여건이다.
국방공업을 강화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는 군대는 언제든 멸망한다는것은 력사가 가르치는 진리이다.
1991년과 1998년 두차례에 걸쳐 미군의 타격으로 손을 든 이라크나 1999년 3월 미군과 나토의 공중타격에 굴복한 유고련방의 경우 그들은 철저히 자체의 국방력을 건설하고 거기에 의존한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군사원조를 구걸하고 다른 나라의 무기와 군사장비를 사들인데 패배의 결정적원인이 있는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고련방은 12.000m높이에서 날아 오는 나토비행기들과 아드리아해를 비롯하여 300km밖에 안되는 나토비행장들을 타격할 대공무력과 미싸일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것으로 하여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던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어느 한 기회에 나라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눈앞의 어려움만 생각하면서 국방공업에 힘을 넣지 않으면 사회주의를 고수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과자나 알사탕은 만들지 못해도 살아 갈수 있지만 무기와 탄알을 만들지 못하면 살아 갈수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현대전은 알전쟁, 기름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이북이 처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국방공업에 많은 투자를 하게 하시고 친히 국방공업분야의 생산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걸린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 주시였다.
이러한 선군혁명령도에 의해 이북의 국방공업은 그처럼 간고한 시련속에서도 중단없이 강화발전되였으며 그 어떤 군사장비도 마음만 먹으면 꽝꽝 만들어 내는 굴지의 수준으로 뛰여 올랐다.
그러기에 지난 1999년 3월 미군과 나토의 침공으로 페허가 된 유고련방의 한 고위인물은 이북의 군사관계자들에게 이렇게 토로하였다 한다.
《우리는 이번 전쟁을 통하여 자위적국방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주변나라들이 나토에 합세하고 그처럼 믿었던 로씨야까지 도와 주지 않는것을 보고 가슴을 쳤다.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자체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길만이 살 길이다. 이번에 우리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위적국방력강화에 큰 힘을 넣고 계시는 김정일장군의 정치가 얼마나 선견지명한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다.》
김정일장군께서 그처럼 어렵고 간고한 시련의 시기에도 자체의 국방공업발전에 큰 힘을 넣으신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할것이다.
동방에는 예로부터《부비유환》이라는 말이 전해 지고 있다.
즉 군사를 홀시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의미로서 나라를 통치하는데서 군사는 제일의 국사라는것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천일양병, 일일용병》이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하루의 싸움을 위해 천날을 두고 병사들을 키워 낸다는 의미로서 군사력의 착실한 강화발전이 갖는 거대한 의미를 강조해 준다.
김정일장군께서 제국주의자들의 포위속에서 이북이 그처럼 간고한 시련을 겪고 있는 지난 5년간 인민군대의 군력을 강화하기 위한데 힘을 넣지 않았다면 오늘 이북은 사회주의기치는커녕 자기의 존재마저 잃어 버렸을것이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로 하여 오늘 인민군대는 세계제일의 군력의 강군으로 자리매김되게 되였으며 그 어떤 제국주의강적도 단매에 때려 부실수 있는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자라나게 된것이다.

□ 군 시 찰

김정일장군께서는 90년대 후반기의 5년기간에 무려 12만여리의 로정을 걸으시여 430여개 단위의 인민군부대, 구분대들을 현지시찰하신것으로 알려 져 있다.
오늘 세계는 김정일장군의 끊임 없는 군시찰을 선군정치방식의 구체적실체로 주목을 돌리고 있다.
미주통일학 연구소 한호석소장은 잡지《민》2000년 1월호에 낸 글《선군혁명령도와 제2의 천리마대진군》에서 김정일장군의 끊임 없는 군시찰에 대하여 그것은 이북이 위기와 난관을 겪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하여 온《수령의 현지지도》의 독특한 전통이라고 전제하고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선군혁명령도의 구체적표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김정일장군의 끊임 없는 군시찰이 가지는 의미를 비교적 정확히 함축해 놓은 규제라 하겠다.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무엇보다도 그자체가 제국주의자들과의 직접적인 대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1994년 김일성주석의 뜻밖의 서거이후 이북은 제국주의포위속에서 온갖 만난을 이겨 내면서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기 의하여《고난의 행군》, 강행군 등 시련의 언덕을 넘어 왔다.
이런 맥락에서 짚어 볼 때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인민군대를 강화하여 제국주의군사적압력을 물리치고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것임을 짐작케 한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자신께서 지금 인민군대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는것은 우리 혁명앞에 사회주의를 지켜 내는가 지켜 내지 못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때문이라고, 이 심각한 문제를 풀수 있는 열쇠가 바로 군대에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군시찰이 인민군대를 주력군으로 내세워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취지의 가르치심이라 하겠다.
실지로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인민군대를 끊임없이 강화발전시켰으며 인민군대는 오늘날 이북에서 혁명의 주력군, 나라의 기둥으로서의 위상을 확실하게 갖게 되였고 이북은 인민군대를 내세워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대결전에서 사회주의를 고수해 나가고 있다.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이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는 행보라 할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김정일장군자신이 직접 제국주의와의 대결전의 진두에 나서시여 그것을 진두지휘하신다는 의미가 가미된다.
김정일장군의 위치는 곧 사회주의옹호고수, 주체위업전진의 최고사령부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 최고사령부를 최전연, 최전방위치에 세우고 천리혜안의 지략과 필승의 신념, 담력으로 적들과의 중과부적인 대결을 언제나 승리에로 주도해 나가신다.
사회주의와 민족, 민중의 운명에 대한 높은 책임감이 그분으로 하여금 이렇듯 선군혁명령도, 선군정치의 최고사령부를 언제나 적들과의 대결의 제1선, 최전연위치에 자리 잡도록 한것이다.
하기에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이북이 사회주의를 지켜 내는가 마는가 하는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선군정치가 방어가 아닌 공격적인 성격의 정치방식임을 보여 준다.
이남과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자들이 김정일장군의 군시찰 하나하나를 무게 있게 받아 들이고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 지는데 공포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또한 단순히 인민군대에 대한 현지지도라는 의미를 벗어 나 이북의 혁명과 건설전반에 대한 령도라는 위상을 갖는다.
다른 어느 단위보다도 인민군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많이 하시고 그것을 통해 사회주의위업전반을 현명하게 이끌어 나가시는것은 김정일장군의 혁명령도의 근본특징이다.
김정일장군의 군현지시찰의 길은 인민대중중심의 주체사회주의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시려는 김정일장군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구현된 불멸의 령도자욱이며 혁명의 먼 앞날까지 내다 보시는 선견지명의 령도의 로정이고 당, 군, 민을 일심단결시켜 새로운 창조의 위훈에로 불러 일으키는 위력한 령도의 로정인것이다.
이러한 무게로 하여 이북민중은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을 자기 부문에 대한 수령의 현지지도로 받아 들이고 그분께서 군시찰을 진행하시면서 하신 가르치심 하나하나를 자기들에게 제시하신 과제로 무게 있게 받아 들이며 그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 나선다.
결국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인민군대뿐아니라 사회주의건설전반에 관한 령도로 그 의미가 확대되는것이다. 그것은 이북고유의 전통적인《인민행 렬차》의《인민행》 걸음이라 할것이다.
지금까지 력사에 제노라 하는 지도자와 통치자들이 많았지만 민중속에 깊이 들어 간 례는 없다.
히틀러는 1933년 3월에 집권하여 1945년 5월 지하방공호에서 자살할 때까지 자기의 관저를 떠나 본적 없고 나뽈레옹은 군사들속에 들어 가 꼬냐크를 나누어 마시였다고는 하나 그것은 단순히 적과의 대결에 자기의 병사들을 써먹기 위한 제스츄어에 불과한것이였고 심지어는 사회주의국가들의 경우에도 민중속에 깊이 들어 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온 지도자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비범한 정치경륜, 무비의 담력과 의지를 지레대로 하여 제국주의를 타승하며 정의가 수호되고 진리가 빛을 발하는 현대정치의 위력과시의 현장임이 틀림 없다.
그러면 김정일장군께서 끊임없이 이어 가시는 군시찰의 구체적내용은 무엇인가.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총대의 위력을 최상의 높이에 올려 세우는 백전백승의 령도이다.
총대의 위력은 곧 그것을 틀어 잡은 군대의 정치군사적위력이다.
총대가 녹 쓰는가 서슬 푸른가 하는것은 그것을 틀어 잡은 군대의 정치군사적위력의 강약에 따르게 된다.
김정일장군의 현지시찰이 미치는 어느 단위에서나 총검의 숲이 더욱 높이 추켜 오르고 철벽의 방어진이 구축된다.
최고사령관의 현지시찰은 오늘 인민군대의 생명력으로 자리 잡혀 있다.
1211고지와 351고지, 오성산과 대덕산을 비롯하여 륙해공군의 수많은 군부대들과 군사학교, 군사대상들을 찾고 또 찾으시여 작전능력의 실태를 료해하시고 제기된 모든 문제를 현지에서 풀어 나가시는 그것이 곧 인민군대의 정치군사적위력을 최상의 높이에 올려 세우는 원천으로 작용하는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장병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다 찾아 가신다.
1998년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적들을 코앞에 둔 최전연에 자리 잡고 있는 어느 한 최전방초소를 찾으시였다. 그분께서 밤길을 달려 전연초소가 자리 잡고 있는 고지의 기슭에 도착하신것은 려명이 밝기전 새벽 4시였다. 이제 고지를 올라 병사들이 있는 초소에 이르자면 험한 길과 이득한 벼랑을 톺아야 했다. 그분께서 타신 승용차가 고지를 오르다가 미끄러져 내리기를 다섯번, 여섯번, 고지의 진창길에는 진눈까비가 사정없이 내렸다.
장군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수행원들에게 차를 밀고 올라 가자고 말씀하시며 몸소 진탕길에 들어 서시여 차를 미시였다. 수행원들이 오늘은 날씨도 나쁘고 길도 험하니 그만 돌아 가고 날씨가 좋을 때 초소를 찾아 주실것을 간청 드리였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병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다 가보아야 한다, 좋은 날, 궂은 날 가리면 언제 초소의 병사들을 다 만나보겠는가 하시면서 바지가랭이에 튀여 묻는 흙탕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전연초소에 오르시여 병사들을 따뜻한 사랑의 한품에 안아 주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적들이 지척에 도사리고 있는 최전연, 최전방부대들을 빠짐없이 찾으신다. 군시찰의 길에서 그분께서는 적진을 바라보시면서 지형지물과 력량배치상태, 적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정황보고도 청취하시며 작전지도를 펼치시고 적정에 대비한 전략전술적방안들을 제시하시는가 하면 군인들의 훈련모습도 보아 주시고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중대과제들도 제시하신다.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에서의 령도를 통해 인민군지휘관들이 작전지휘에서 낡은 틀을 마스고 새롭고 신축성 있는 작전지휘능력을 지니며 김정일장군과 같은 위대한 령장을 모신 긍지와 그분께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반드시 싸워 이길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게 된다.
끊임 없는 현지시찰길을 이어 가시다보니 김정일장군께서는 최전연 천리방선의 지형지물로부터 모든 형편을 낱낱이 꿰뚫고 계신다.
1998년 5월 어느 날 최전방일대를 현지시찰하시던 김정일장군께서는 높고 험하기로 소문난 까치봉에 오르시였다.
고지로 오르시는 장군님을 따르는 부대장은 안타까운 심정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 멀고도 험한 길을 헤치시며 부대를 찾으신 그분께 전선형편을 상세히 설명해 드려야 하겠는데 주변이 온통 안개로 뒤덮여 한치 앞도 가려 보기 힘들었기때문이다.
김정일장군께서 고지에 오르시자 안개막이 다소 엷어 지며 구름바다우에 떠 있는 섬마냥 어슴푸레하게 고지들이 자태를 드러내 놓았다.
다행으로 여기며 부대장이 서둘러 주요지형지물에 대해 설명해 드리려 하자 김정일장군께서는 지도를 보면 다 안다고 하시며 펼쳐 놓은 지도를 여겨 보시더니 이윽고 전후좌우의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지명하시였다.
《저쪽에 보이는것이 선조암이고 그앞에 보이는것이 351고지와 월비산입니다.》
짙은 안개에 가리워 어렴풋이 보이거나 전혀 보이지 않는 대상물까지도 일일이 헤아려 지명하시는 그분의 말씀에 부대장은 물론 동행한 군관계자들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께서 이미전에 소문내지 않으시고 이곳을 여러번 다녀 가신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이러한 속생각을 헤아려 보신듯 김정일장군께서는 환한 미소를 띠우시고 자신께서는 안경을 끼고 보니까 다 보인다고, 동무들도 안경을 끼면 다 보일것이라고 시치미를 떼시고 소탈하게 롱담을 하시였다.
끊임 없는 군시찰과 더불어 군력강화를 위해 기울이시는 심혈과 로고가 그분으로 하여금 이렇듯 천리방선의 모든 전선형편을 환히 꿰뚫게 한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시찰의 길에서 군인들의 사상교양사업에 특별히 큰 힘을 넣으신다.
1996년 11월 24일 사상과 사상의 대결장이며 계급투쟁의 전초선인 판문점대표부를 찾으신 김정일장군께서는 먼저 최전연 1선에 서 있는 초병들이 지난 날 나라 없고 주권이 없던탓으로 망국노의 비참한 생활을 강요 당하였던 부모들의 쓰라린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는 높은 계급적각오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언제나 조국의 관문을 철벽으로 지키고 있다고 하시면서 이들의 전투성과를 높이 평가해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모든 군인들이 착취 받고 압박 받던 할아버지, 아버지들의 피눈물나는 과거를 순간도 잊지 않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켜 싸우도록 철저히 무장시키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군인들속에서 계급교양을 부단히 강화하여 착취사회의 반동적본질을 똑똑히 알고 계급적원쑤들과 비타협적으로 무자비하게 투쟁하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계급교양의 형식과 방법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셨다.
1211고지를 지켜 선 전연구분대를 찾으신 김정일장군께서는 그곳 군인들이 운영하는 근무전 계급교양시간에 참석하시였다.
군인들은 근무 나가기에 앞서 정렬한채로 아무런 격식없이 한명씩 구두로 토론을 하였는데 퍼그나 감동적이였다.
내용은 저마끔 달랐지만 하나같이 결사옹위정신과 계급적각오로 충만된 토론들로 서로를 고무해 주고 힘을 주었다.
마지막으로《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를 합창하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만족을 금치 못하시며 계급교양형식이 좋다고, 계급교양시간을 운영하는것을 보니 군인들의 정신상태가 아주 좋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오늘 토론에 참가한 군인들이 한결같이 다시는 제국주의식민지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계급의 총을 더욱 억세게 틀어 잡고 우리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며 명령만 내리면 단숨에 달려 나가 1211고지방위자들처럼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적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겠다고 하였는데 자신께서는 그들의 토론을 듣고 큰 힘을 얻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그분께서는 계급교양을 비롯한 여러가지 정치사상교양사업을 끊임없이 강화하여 모든 군인들을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불변의 신념과 순결한 량심을 지닌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켜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정치사상교양이 지향해야 할 총적목표의 제시였다.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계급교양을 홀시하고 계급투쟁의 날을 무디게 한 결과 사회주의제도를 반혁명분자들에게 빼앗기고 비참한 운명의 길을 걷고 있던 그때 계급투쟁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릴데 관한 김정일장군의 가르치심은 인민군장병들모두의 피를 끓게 하였으며 그들모두가 계급투쟁의 무기, 사회주의수호의 무기를 억세게 틀어 쥐고 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책동을 짓부시고 사회주의와 혁명의 전취물을 옹호고수하기 위한 사상적각오를 튼튼히 다지게 하는 원천으로 되였다.
김정일장군의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은 령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당, 군, 민의 혼연일체를 더욱 공고히 다져 나가는 위대한 령도이다.
김정일장군의 현지시찰은 인민군군인들을 찾아 가시는 걸음으로써 군대뿐아니라 그들의 부모들을 포함하여 온 사회에 거대한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군인들과 민중은 장군님의 군시찰에서 사회주의와 민족, 민중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혁명의 1선에 서시여 붉은기를 휘날려 가시는 절세의 위인, 운명의 구세주의 위인상을 보고 위대성을 감각하며 그분에 대한 숭배심을 더욱 뜨겁게 간직한다.
군인들 한사람한사람을 열렬한 혁명가로 키워 주시는 그분의 진지한 모습에서 민중은 혁명의 위대한 스승의 모습을 본다. 백두령장으로서의 자신의 기질과 담력, 배짱과 신념, 의지를 고스란히 넘겨 주시여 평범한 전사가 온갖 회유와 기만, 압력과 강권이 살판치는 적진속에서도 부모를 생각하기에 앞서 최고사령관을 먼저 생각하며 김정일군대의 병사의 신념과 자세를 티끌만큼도 흐트리지 않으며 세계가 다 아는 신념의 강자가 되여 그 위대한 품에 안기는 모습에서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필승의 신념을 뼈속깊이 간직한다.
그래서 군대와 인민이 노래를 불러도 밤이나 낮이나 쉼없이 전방에서 전방에로의 현지시찰을 이어 가시는 김정일장군을 그리며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노래를 부르며 혁명의 수뇌부결사옹위할 신념의 노래를 부른다.
김정일장군께서 타신 야전용승용차가 바람 세찬 전선길을 달릴 때 아이들은 붉은 넥타이 휘날리며 야영소로 가고 해빛 밝은 교정마다에서는 글소리 랑랑히 울려 퍼진다.
김정일장군께서 최전방초소의 작전대우에 작전지도를 펼치시고 적진을 굽어 보실 때 공장과 농촌, 살림집마다에서는 사회주의생활의 아름다운 화폭들이 그대로 펼쳐 지고《고난의 행군》은 사회주의강행군으로, 사회주의강행군은 강성대국건설의 돌파구를 열어 젖히는 제2의 천리마대진군으로 이어 지면서 주체사회주의는 전진한다.
김정일장군의 군현지시찰은 천출명장의 필승의 기상으로 적을 완전히 제압하고 적진을 와해시키는 위대한 령도이다.
적과의 싸움에서는 먼저 적을 위압하여 기를 꺾어 놓는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군대의 방대한 병력수나 거대한 파괴력을 가진 무장장비의 위력과 함께 군대를 통솔하는 군사령관이나 장군의 위엄에 찬 기상이 큰 작용을 한다.
이로부터 지난 시기 대부분의 군사령관들은 서슬 푸른 인상과 요란하게 장식한 복장으로 위엄을 돋구기도 했고 행차할 때에는 호위병들의 어마어마한 행렬로 위세를 보이기도 했다.
어떤 장군들은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비수 같은 언어나 겉발린 최후통첩과 같은 제스츄어로 저들의 자신만만한 투지와 배짱을 보여 주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위엄을 돋구고 위세를 보인다 하여 누구나 적을 위압하고 기를 꺾어 놓는것은 아니다.
명장이 갖추어야 할 모든 기질을 완벽하게 지닌 장군만이 적을 위압하는 무적필승의 기상을 떨칠수 있는것이다.
세상사람들은 김정일장군을 그러한 무적필승의 기상을 지닌 천출명장으로 높이 내세운다.
그분께서는 비록 원수복이 아니라 수수한 야전복차림으로 최전연초소에 나가시여도 미군이나《국군》은 차림새나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돌려 거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며 부산을 피운다.
포수모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실례의 하나이다.
몇해전 일본의 어느 한 출판물에는 우리 나라 지도주변에 여러 마리의 맹수들이 으르렁대는 만화가 실렸었다. 당시 이북을 압살하려는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공세가 극한계선에 이르고 있음을 형상적으로 시사한것이였다.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은 1994년 10월의 북미기본합의문 채택과 관련하여《북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된것은 지나친 양보이고 미국의 위신저락이다.》, 《북미사이에 기본합의문이 발표되였다고 하여 문제가 풀릴수 없다.》, 《휴전선 북쪽에는 인민군무력이 70~80%나 집중배치되였는데 이것은〈남침위협〉이 계속 존재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어느 때든지 북조선에 무력을 사용할 각오가 되여 있다.》등의 폭언을 쏟아 내며 패트리오트미싸일을 위시한 최신살인장비들을 이남에 대대적으로 끌어 들여 영구배치했으며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때보다 더 방대한 《독수리합동군사연습》과 《화랑전쟁연습》을 벌려 놓고 정세를 격화시켰다.
북미기본합의문 채택으로 정세가 완화될것으로 생각했던 세상사람들은 또다시 1993년의 긴장상태가 재현되는것으로 보고 우려에 찬 눈길을 모았다.
바로 이러한 때 김정일장군께서 수수한 야전복차림에 채양이 짧은 털모자를 쓰시고 전선길에 나서시였다.
서방보도계는 그에 즉각 반응했다.
김정일장군께서 쓰신 모자는 보통모자가 아니라 범을 위시한 맹수들을 잡을 때 쓰는 포수모자라는것, 김정일장군께서 포수모자를 쓰시고 최전연초소에 나가신것은 북《한》을 먹겠다고 으르렁거리는 제국주의맹수들을 잡으시려고 나서신것이라는것, 이북에서 지금《장군님은 명사수 우린 명중탄》이라는 노래가 불리우고 있는데 의미심장한 노래라는것 등등이였다.
미군측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 났다. 이북의 미싸일이 미국본토에 당장 날아 와 터진다고 아우성쳤고 이남의 당국자는 년례적으로 발표하던 대북정책이라는것도 내놓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한》미합동군사연습에 동원되였던 미국의 공격용핵잠수함 《버밍 햄》호는 제 시간에 기동하지 못하여 훈련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서방의 어느 한 군사잡지발행인은 다음과 같은 주제의 글을 발표했다
이북에 대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공세가 최절정에 오른 때에 포수모자를 쓰고 적과의 거리 1,000m에 불과한 최전연에 신출귀몰한 김정일장군이 뜻밖에 나타나시자 온갖 맹수들이 어디론가 다 꽁무니를 사리고 말았다는것, 영국의 어느 한 원수는 장군모표와 장갑병모표를 함께 나란히 꽂은 군모를 쓰고 다니는것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올렸지만 그것은 김정일최고사령관의 포수모자에 대비되지도 않는다는것, 모자 하나로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혼란에 빠뜨리였으며 적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을 단숨에 짓뭉개 버리신 김정일최고사령관을 천출명장으로 높이 칭송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것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현지시찰의 길에서 평범한 모자 하나로써도 상대방의 기를 꺾어 놓고 적진을 와해시키며 승리를 이루어 내시는것이다.
한호석의 표현대로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은 이렇듯 선군혁명령도의 구체적표현이며 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에서 이북이 련전련승하게 하는 필승의 보검인것이다.
 
△우로△

2.군민일치
 
1940년 5월 히틀러도이췰란드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지 1년만에 돌연히 서부전선으로 군대를 진출시키고 프랑스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프랑스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도이췰란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영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련합전선을 펴고 최신식무장을 갖춘 정규군만도 110개 사단이나 가지고 있었지만 도이췰란드군의 침공을 막아 내지 못하고 한달도 채 못되는 사이에 도이췰란드군에 항복하는 수치스러운 전쟁기록을 남겼다.

패전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랑스군대의 무저항주의에도 있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프랑스국민들이 전쟁공포증에 사로잡혀 군대와 행동보조를 맞추지 못한데 있었다.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도이췰란드군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교차점들과 눈에 잘 뜨이는 건물들만 골라서 폭격하는 한편 정탐망(제5렬)을 들이밀어 《시민들이여 빨리 피난하라! 이 도시는 곧 대폭격으로 파괴된다!》, 《게스타포는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벌한다!》는 공포선동을 벌리는 동시에 사람들속에 서남쪽으로 가야 살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을 류언비어로 퍼뜨리였다.

전쟁공포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프랑시국민들은 저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로를 꽉 메우고 서남쪽으로 무작정 피난 가기 시작하였다. 그 바람에 전선으로 진출하던 프랑스군대와 기계화부대들의 앞길은 막혀 버렸고 이 혼잡을 기다렸던 파쑈도이췰란드군대는 아무런 저항을 받음이 없이 빠리를 무혈점령하였다.

결국 도이췰란드군의 첩보전에 녹아 난 프랑스《문명국》국민들은 저들의 목숨을 건질 피난처만 찾다가 아군의 전진을 방해하는《차단물》의 역할을 수행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던것이다.

전쟁공포증에 사로잡힌 국민이 군대와 하나로 융합되지 못하고 서로 별개의 존재로 된데서부터 오는 력사의 비극이고 패전의 쓰라린 교훈인것이다.

군대는 싸움을 위해, 전투와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지만 전투와 전쟁시에는 물론 평화시기조차도 국민을 떠난 군대, 군민화합을 이루지 못한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할수 없다는것이 군력사가 가르치는 하나의 진리인것이다.

오늘날 이북의 인민군대는 력사에 존재해 온 그 어느 나라 군대도 이루지 못했던 사상정신력이나 실천행동에서 가장 공고하고 최상의 수준의 군민일치를 이룬것으로 하여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그 위상을 더욱 확실히 다지고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군민일치의 전통적미풍을 높이 발양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쟁승리의 기본담보는 군대와 인민의 단결된 힘에 있습니다.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나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우리는 수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 우세한 적들을 군민의 단합된 힘으로 타승하고 승리를 이룩하였습니다.

우리가 앞으로의 싸움에서도 군대와 인민이 한덩어리가 되여 적들을 때려 부시자면 군민일치의 구호를 계속 높이 추켜 들고 군대와 인민이 혼연일체를 보장하여야 합니다.》

김정일장군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이북에서 오늘날 인민군대는 일단 유사시에 민중과 한덩어리가 되여 그 어떤 대적도 타승할수 있는 가장 공고한 군민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김일성주석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하신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듯이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 살수 없다는 항일혁명전통의 계승이다.

군민일치는 이북사회의 튼튼한 밑뿌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김정일장군께서는 혁명적군인정신에 기초한 군대와 인민의 사상과 투쟁기풍의 일치, 이것이 군민일치사상의 본질이며 우리 사회의 밑뿌리이라고 군민일치의 본의를 밝히셨다.

군민일치는 오늘날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사회주의건설과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한 력사적대업을 담당한 사회정치적력량, 선군정치의 대중적정치지반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이북에서의 군민일치는 오늘 선군정치의 추동력으로서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의 승리와 주체위업완성의 담보로 작용한다.

이러한 군민일치는 지난 날 이북사회에서 강조되여 온 군민일치의 계승이기는 하지만 그 성격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김정일장군께서 하신 군대가 인민을 돕고 인민이 군대를 성심성의로 원호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군민일치에서 기본은 군대와 인민의 사상의 일치, 투쟁기풍의 일치를 보장하는것이라는 가르치심이 그것을 잘 알게 한다.

이북이 처한 어려운 환경속에서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제일기둥으로 내세워 90년대의 어려운 고비를 뚫고 사회주의를 끝까지 수호하며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것이 오늘날 김정일장군의 정치방식, 선군정치이다.

이런 조건에서 군민일치는 단순히 군대가 민중을 도와 주고 민중이 군대를 옹호하는 상호보완적인 단합을 초월하여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서의 군대가 발휘하고 있는 높은 정신세계를 민중이 본 받고 인민군대에서 창조된 투쟁기풍을 민중이 따라 배워 군대와 민중이 사상과 투쟁정신, 투쟁방법과 투쟁기풍에서 완벽한 일치를 보장하는 고차원적인 단결을 의미하는것이다.

군대를 선도자로 한 이같은 군민의 사상의 일치, 투쟁기풍의 일치는 아직 력사에 있어 본적 없는 가장 독창적이고 새로운 높은 단계의 군민관계지론이다.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와 민중의 운명에 사활이 걸린 90년대의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 인민군장병들이 발휘한 사상정신력, 혁명정투쟁기풍을 혁명적군인정신으로 명명하여 그것이 군민일치의 정신적, 실천적기초가 되게 하시였다.

인민군대는 가장 준엄한 시기 혁명의 기둥, 주체위업완성의 주력군으로 내세우시는 김정일장군의 믿음은 군인들의 정신력을 백배, 천배로 고양시켰다.

그것은 자기 수령,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신뢰와 무한한 충실성의 폭발이 아닐수 없는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대표되는것이다.

민중이 김정일장군을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김정일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생활체험을 통해 형성된 신념의 기둥을 마음속깊이 새길 때 군대는《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결사옹위의 구호를 전면에 추켜 들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대표적으로 1996년 10월에 완공된 안변청년발전소는 군인들의 이러한 높은 정신력의 발현에 의해 일떠설수 있은 결과물이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은 강원도일대의 전력문제해결을 목표로 한것으로써 모든것이 부족한 90년대의 환경속에서 진척되지 않으면 안된 세계적규모의 대자연개조공사였다.

서방세계가 40억딸라이상 투자된것으로 본 서해갑문 총 공사량의 2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로 산출되고 있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발전소건설과제를 인민군대에 맡겨 주시고 그 성공적진척을 위해 깊은 관심을 돌리셨다.

공사의 전 과정이 엄청나게 어려운것이려니와 특히 《고난의 행군》시기에 그것을 계획대로 완결한다는것은 현실적가능성을 찾아 보기 힘든 난공사가 아닐수 없었다.

군인건설자들은 이 비현실적인것을 현실적인것으로 전환시켜 마침내 성공의 테프를 끊게 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완공을 앞둔 1996년 6월 10일 이곳 건설장을 찾으시여 석수가 출렁이는 100리물길굴까지 돌아 보시며 군인건설자들의 영웅적투쟁을 일일이 료해하신데 이어 그로부터 몇달후인 9월 중순의 어느 날 또다시 현지를 찾으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날 안변청년발전소는 당의 요구라면 산악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조선인민군의 혁명적군인정신의 고귀한 산물이라고, 군인건설자들이 발휘한 대중적영웅주의와 숭고한 희생정신, 조국과 인민앞에 쌓아 올린 그들의 위훈을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인민군군인들이 발휘한 혁명적군인정신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당이 맡겨 준 전투적과업을 어김없이 수행하는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이며 아무리 어려운 과업도 자체의 힘으로 해내고야 마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이며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서는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바쳐 싸우는 자기 희생정신, 영웅적투쟁정신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강원땅의 천험의 산발을 맨손으로 길들이며 기어이 대형물길굴을 뚫고 전기를 일군 군인들의 결사관철의 정신, 조국이 가장 어려운 때 그 만난을 앞장서 헤치며 이 땅우에 만년대계의 자연개조언제를 일떠세운 결사의 행동에 대한 높은 평가의 말씀이였다.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이 발휘한 명령집행에서의 결사관철의 투쟁기풍은 다름 아닌 자기 수령, 령도자의 사상과 령도를 한몸을 내대고 받드는 수령옹위정신의 발현이였고 총대처럼 강한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으며 무슨 일에서나 승리만을 아는 군인기질의 발현이였다.

이러한 결사관철의 투쟁기풍, 수령옹위정신, 혁명적군인기질은 전군에 확산되여 조선인민군의 혁명적군인정신으로, 혁명적군풍으로 확고히 자리 잡혔으며 군대뿐아니라 온 사회에 《고난의 행군》을 이겨 내고 사회주의강행군, 강성대국건설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기 위한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추동하는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 항일유격대와 민중사이에 발현된 옹군애민의 혁명전통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부응되게 새로운 높이에로 발전시키시여 군민사이에 혈연적뉴대를 그 어느 때보다도 공고히 다지도록 하시였다.

인민군대가 창조한 혁명적군인정신이 온 나라에 파급되는 가운데 군대는 민중을 위하고 민중은 군대를 위하는 군민의 오가는 정이 날이 갈수록 두터워 갔다.

전군의 모든 부대들에서 자기들에게 차례진 롱구공들을 들고 주둔지역의 학교들을 찾아 가 제국주의침략자들이 조국의 촌토를 0.001mm 도 침범하지 못하게 할터이니 너희들은 마음껏 배우고 마음껏 뛰놀라며 아이들에게 넘겨 주는가 하면 농장마을에서 뛰쳐 난 소고삐를 잡고 수십리길을 걷고 걸어 끝내 주인들에게 돌려 주었으며 뜻밖의 일로 화재가 일어 가산이 모두 불 탔을 때 군대가 먼저 달려 와 더 훌륭한 새집을 지어 주고 살림살이에 필요한 크고작은 모든것을 다 마련해 주는것과 같은 미거들이 수없이 꽃 펴났다.

한편 민중들속에서는 처녀가 강행군길을 떠나는 군인들의 발이 얼세라 탐스런 머리태를 잘라 신발에 깔아 주고 사경에 처한 군인을 소생시키기 위해 수백명의 민중들이 피와 살을 바치겠다고 병원으로 달려 가며 온 가족이 달라붙어 10년도 넘게 수백마리의 집짐승을 길러 군인들에게 고스란히 보내주는것과 같은 옹군일화들로 답해 나섰다.

이러한 때인 1996년 12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황해북도 은파군 양동마을의 평범한 농민들이 올린 편지를 받으셨다.

《…

장군님,

저희들은 두석달분 식량을 떼여 군량미로 보내주어도 일없습니다. 식량을 절약해 먹고 밀과 보리를 전작으로 심고 남새도 심어 먹으면서 식량보탬을 하면 얼마든지 굶지 않고도 다음해 농사를 지을수 있습니다. 광복직후에 김제원농민이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애국미를 바치였다면 오늘은 우리가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 더 많은 군량미를 보내겠습니다.…》

후방의 자기들은 배를 곯아도 일없지만 조국의 안전을 지켜 선 군대가 배를 곯아서는 안된다는 이 절절한 원군기풍은 군대일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온 나라 민중의 진정 그대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지휘일군들에게 그 편지를 가지고 군인들을 교양할데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동무들도 그 편지를 보았겠지만 그 편지에도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지키고 당과 영원히 운명을 같이 하려는 우리 인민들의 철석 같은 신념과 의지가 잘 반영되여 있다고, 자신께서는 그 편지를 보고 커다란 힘을 얻었다고, 그 편지내용을 전국의 농장원들에게 다 알려 주었는데 그들속에서 좋은 반영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으며 농업근로자들은 지금 양동협동농장 제7작업반 농장원들의 모범을 따라 군량미도 잘 보장하고 영농준비를 잘하기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 나서고 있다고, 그 편지는 인식교양적의의가 매우 크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분의 가르치심에 의해 양동마을 농민들의 소박한 편지는 전군에 내려 보내지고 이를 계기로 군민사이에는 혁명적의리와 혈육의 정의 뉴대가 더욱 깊어 졌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러한 군민관계에서 군대가 그 채를 잡고 주도적역할을 하도록 이끌어 주시였다.

그분께서는 군민일치의 전통적미풍을 높이 발양하는것은 인민군대의 본성적요구이며 불패의 힘의 원천이라고, 인민군대는 혁명의 군대, 인민의 군대이며 인민군대가 인민을 떠나서는 존재할수도 없고 적과 싸워 승리할수도 없다고, 인민군군인들을 우리 당의 군민일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인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도와 주며 군민관계를 더욱 두터이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민중이 군대를 위해 하나를 바치면 군대는 민중을 위해 열백을 바쳐야 한다는, 군대가 민중을 위하고 도와 주는것은 의무이고 본분이라는 취지의 가르치심이라 하겠다.

군민사이의 사상의 일치, 투쟁기풍의 일치는 곧 단결이고 그 위력은 가장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 온 나라가 떨쳐 나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행위를 저지시키고 사회주의를 수호하며《고난의 행군》을 사회주의강행군으로 이전시키고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돌파구를 열어 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여실히 과시되고 있다.

 
△우로△

3.강성부흥의 길 열어 나가다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군대가 다 맡아

이북은 1994년 이후 몇년간에 걸쳐 건국이래 가장 어려운 시련의 시기라 할수 있는 물질생활분야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1998년부터는 그것이 최후승리를 위한 사회주의강행군으로 양상을 바꾸었으며 1998년 9월 공화국창건 50돐을 앞두고 있은 《광명성1호》위성발사를 계기로 하여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제2의 천리마대진군으로 한단계 도약하였음을 보게 된다.

가장 어려운《고난의 행군》시기, 사회주의강행군시기에 주체혁명을 좌절이 아니라 승리를 향해 상승발전시키자면 경제건설분야에서 주공전선을 옳바로 정하고 그에 력량을 집중하여야 했다.

그 첫째 가는 대상으로 꼽혀 진것이 농업분야, 에너지분야였다.

경제사정의 악화는 먹는 문제를 가장 초미의 문제로 부상시켰으며 공업의 혈관이라고 할수 있는 에너지분야를 추켜 세워야 멎었던 공장들을 살리고 생산을 활성화할수 있었던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 주공전선분야에 혁명의 주력군, 핵심부대의 지위를 부여하고 사명감을 새겨 준 인민군대를 내세우셨다.

그것은 《혁명의 주력군》이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군대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혁명의 기본전선에서 닥쳐 드는 위험도 막아 나서고 제기되는 큰 일감들도 맡아 해제껴야 한다는 선군정치의 근본원리에서 비롯된 분담이였다.

조성된 정세에 부응하여 인민군대를 앞장에 내세워 난관을 돌파하려는것이 김정일장군의 의도였던것이다.

일반적으로 군대는 규률을 생명으로 하는 집단이며 상명하복의 체계가 가장 철저하며 그 어느 집단에 비해 전투력이 강한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인민군대는 군대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이같은 특성을 최상의 높이에서 체현한 특수형의 위력한 군집단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가장 강하고 사회주의제도를 목숨으로 수호하려는 정신으로 무장되였으며 자기 최고사령관에 대한 충실성이 가장 투철하고 애국심이 강한 부대이다.

그리고 집단적정신과 투쟁력에 있어서도 그 어느 사회정치집단보다도 강위력하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주공전선에 인민군대를 세워 주심으로써 인민군대가 실제적으로 주력군, 기둥으로 역할하도록 이끌어 주시였다.

1997년 농사를 인민군대에 통채로 맡겨 주신것은 그 대표적례로 된다.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고난의 행군》에서 가장 난문제가 식량부족이였던것처럼 90년대의 《고난의 행군》에서도 식량부족은 가장 초미의 문제로 제기되였다.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준엄한 난국을 타개해 나갈수 없었다.

서방은 이북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기화로 쌀로써 사회주의붕괴를 노린 목조르기를 시도하며 저렬한 수법들을 가리지 않았다.

대적투쟁에서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는 사회주의원칙의 고수, 강경고압자세에 식량문제가 사소한 그늘이라도 지게 해서는 안되였다.

그래서 김정일장군께서는 1997년의 농사를 인민군대에 맡겨 주시면서 올해 농사를 잘하는것은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순한 경제실무적사업이 아니라 적들의 반공화국, 반사회주의책동을 짓부시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기 위한 심각한 정치투쟁이라고 하시면서 올해 우리앞에 나선 기본과업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농사를 잘하는것이라고 농사문제에 심각한 정치적의미를 부여하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여러 기회에 걸쳐 군지휘일군들에게 올해에는 전당, 전군, 전민이 총 동원하여 죽으나 사나 농사를 잘하여 식량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하고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해야 한다, 인민군대에서 올해에 농촌지원사업을 통이 크게 적극적으로 벌려야 하겠다, 지금 형편에서 인민군대가 동원되지 않고서는 농사를 잘 지을수 없다, 인민군대에서는 농촌지원사업을 잘 짜고 들어야 하며 한명의 인원이라도 더 많이 농촌지원사업에 내보내야 한다, 올해 인민군지휘성원들의 당성과 책임성은 농촌지원사업을 잘하는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여야 한다고 인민군대에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표시하시였다.

어느 기회에는 군지휘일군들에게 농촌지원사업에 동원된 군인들이 혁명적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는것은 올해농사를 잘 짓기 위한 근본방도의 하나이라고, 혁명적군인정신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바쳐 싸우는 고귀한 희생정신이며 당의 명령지시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관철하는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이라고 하시면서 군인들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관철하기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충성의 구호를 높이 들고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서 영웅적위훈을 떨친 군인건설자들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농촌지원사업을 잘하여 나라의 알곡생산을 높이는데서 한몫 단단히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분께서는 이밖에도 농사일은 시간과 날자를 다투는 긴장한 전투라는 사정을 고려하여 군인들은 농촌지원전투기간에 포전에 제일 먼저 나가고 거기에서 제일 늦게 들어 오는 기풍을 세워야 한다, 어렵고 힘든 일에 남 먼저 어깨를 들이 밀어 올해농사에서 제기되는 애로와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특히 모내기전투에서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긴장한 전투를 벌려 모내기를 제철에 질적으로 끝내야 한다는 등으로 구체적인 방도까지 가르쳐 주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은 김정일장군의 가르치심에서 농업분야는 사회주의수호의 치렬한 계급투쟁의 1선이며 이해의 농사는 총포성 없는 하나의《전쟁》이라는것, 김정일장군께서는 그 《전쟁》을 다름 아닌 혁명의 주력군인 인민군대의 력량으로 치를 비상한 작전을 구상하고 계시는것으로 받아 들였다.

인민군군인들은 격전장에 달려 나가는 심정으로 농장벌로 달려 나갔다. 한손에는 총을, 한손에는 농쟁기를 들고 혁명군가를 높이 부르며 명령집행에 총 매진하였다.

그들은 농촌에 나가 배낭도 풀기전에 영농기구수리부터 하고 거름생산을 비롯한 영농준비에 만전을 기했으며 모내기철에는 낮과 밤이 따로없이 전투를 벌려 그 어느 해보다도 모내기를 빨리 끝내였다. 련이어 진행된 김매기전투에서도 일찌기 있어 본적 없는 실적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인민군장병들의 위훈으로 하여 탐스런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알알이 익어 가던 때인 초가을 이북의 일부 해안에 전례 없는 무서운 해일이 들이닥쳤다.

이로 하여 농경지들이 침수되고 그처럼 땀을 바쳐 가꾼 농작물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였다. 인민군군인들은 맥을 놓고 주저앉은것이 아니라 해일피해를 가시기 위한 대대적인 구조전투에 떨쳐 나섰다.

허리까지 치는 감탕에 뛰여 들어 돌을 쌓고 흙가마니를 날랐고 물구멍이 터지면 몸을 내던져 막았으며 날이 어두워 져 보이지 않으면 손더듬으로 제방을 쌓았다.

견인불발의 의지와 무비의 희생성을 요구하는 그 마당에서 《100리 물길굴을 뚫기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고 웨치던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의 혁명적군인정신이 《바다물을 막기전에는 조국의 마른 땅을 밟지 말자!》는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승화되여 분출되였다.

농촌지원전투에 참가한 인민군장병들의 투쟁이 얼마나 간고했는지 가을한 벼이삭을 가리켜 사람들은《이것은 낟알이 아니라 군인들의 피와 땀이고 정신》이라고 했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지시를 결사관철한 인민군장병들의 위훈과 투쟁정신에 대한 열렬한 공감이고 높은 평가가 아닐수 없다.

인민군전사들의 그토록 높은 정신세계, 위훈을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리신분은 김정일장군이시였다.

모내기가 한창이던 이해 5월 어느 날이였다.

끊임 없는 군시찰의 길을 이어 가시던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인들의 모내기현장에 나붙었던 한장의 속보를 대하게 되시였다.

현지에 나갔던 수행일군이 늘 군인들의 사상정신상태에 먼저 관심을 돌리시는 김정일장군께 보여 드리고저 속보판에 나붙어 있는것을 떼온것이였다.

《우리가 다 맡자》는 표제아래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농업전선도 우리가 다 맡아 〈고난의 행군〉의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는 활달한 필체의 글발이 적혀 있고 마치와 낫우에 총과 칼이 그려 진것이였다.

마치와 낫우에 총대가 놓여 지는 선군정치의 력량관계구도를 선명히 묘사한 속보는 혁명의 주력군, 기둥으로서의 인민군대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 갈 철석의 의지와 결심을 그대로 반영한것이였다.

농장벌에 달려 나간 군인들의 정신력과 숨결이 그대로 닿아 오는 그 한장의 종이장에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김정일장군께서는 이 한장의 속보를 통해서도 인민군군인들이 농사일을 진심으로 잘 도와 주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정치사업은 이렇게 해야 하는것이라고, 인민군대는 무엇이나 다 잘한다고 거듭 높이 평가하시였다.

이렇게 인민군대가 앞장에 서서 온 나라가 힘을 합쳐 첫 영농공정인 벼모내기를 다 끝냈을 때인 1997년 6월 6일 모내기를 끝낸 전국의 농업근로자들과 지원자들에게 감사를 줄데 대한 최고사령관의 전신명령이 하달되였다.

명령에서 장군님께서는 조국보위도 농업전선도 우리가 다 맡자는 충성의 일념을 안고 사회주의협동벌에 달려 나간 인민군군인들이 농장벌에서 해와 달을 맞으며 한포기의 벼모와 옥수수영양단지모를 옮겨도 황금나락 설레이는 풍년가을을 그려 보며 농사일을 전투적으로 벌려 나감으로써 혁명군대의 본분을 다한데 대해 지적하시고 모내기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는데 크게 기여한 전국의 농업근로자들과 인민군군인들, 농촌지원자들에게 감사를 주시였다. 그리고 모내기를 제철에 끝낸 승리자의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말고 김매기와 농작물에 대한 영농공정별 비배관리를 잘하여 전례 없는 대풍을 이룩할데 대해 지적하시였다.

전례 없는 장군님의 전신명령은 농업전선에 달려 나가 혁명적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고난의 행군》을 앞장에서 헤쳐 나가며 주력군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 인민군대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기대의 표시였고 높은 표창이였다.

인민군군인들은 김정일장군의 믿음과 기대에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기전에는 포전을 뜨지 말자!》는 구호를 추켜 들고 혁명적군인정신을 발휘하는것으로 화답하였고 이해 알곡생산을 늘이기 위한 돌파구를 열어 제꼈다.

인민군대는 농업전선에서뿐아니라 전반적경제를 활성화하는데서도 혁명의 주력군으로서의 자기의 역할을 다했다.

경제를 활성화하는데서 두가지 길이 있었다.

자립이냐 외자도입이냐를 놓고 량자택일해야 했다.

자립의 길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의연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것을 의미했고 외자도입은 제국주의앞에 완전히 손을 드는것을 의미했다.

선군정치가 뜻하는 경제활성화는 두말할것없이 자립에 대한 선택에 기초한것이였다.

1998년 9월 17일 로동신문, 근로자 공동론설로 발표된 《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을 끝까지 견지하자》의 론조에서 그 당위성을 찾아 보게 된다.

《경제를 활성화하는 참다운 길은 자립의 길 이외에 있을수 없다.

제 힘에 의거하지 않고 외자를 마구 끌어 들이는 방법으로 경제를 추켜 세운다는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다. 외자는 말그대로 최대한의 리윤을 짜내기 위하여 투하되는 외국자본이다. 세상에 민족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외자란 있어 본적도 없었고 또 있을수도 없다. 외자는 아편과 같은것이다. 누구나 외자를 한번 구걸하게 되면 더욱더 외자에 의존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엄청난 빚더미우에 올라 앉게 된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 함정에 들어 가는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외자도입은 망국의 길이고 자립만이 살 길이다!ㅡ이것이 90년대 후반기의 복잡한 국제정세하에서 이북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추켜 든 슬로건이였던것이다.

하지만 자체의 힘으로 경제를 활성화한다는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석탄, 전력, 철도 등 중요기간공업분야부터 일떠세워야 했으나 모든것이 부족하고 엄청난 어려움이 앞을 막아 서고 있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그 난관돌파의 중임을 인민군대에 맡기시였다.

1997년 10월 어느 날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 하신 장군님께서는 북창화력발전소를 군대에 맡기려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가 북창화력발전소를 전적으로 맡아 나라의 긴장한 전기문제를 푸는데 한몫 단단히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또한 어느 한 기회에는 군대에서 철도수송을 추켜 세우기 위한 사업도 잘 도와 주어야 하겠다고 하시였으며 국토관리사업과 인민생활을 추켜 세우기 위한데서도 군대가 온 나라의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일장군의 믿음은 인민군군인들의 심장을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불 태웠다. 수천척 지하막장을 전투장으로 여기며 서슴없이 달려 들어 갔고 한몸이 그대로 한줌의 석탄이 되고 하나의 침목이 되는 심정으로 맡겨 진 임무수행에 달라붙었다.

북창화력발전소에 진출한 군부대들은 전력설비보수공사와 련관탄광들의 갱보수 및 석탄생산정상화를 위한 일판을 통이 크게 벌려 놓고 전격적으로 내밀어 전력생산을 정상궤도에 올려 세우고 장안탄광, 제남탄광, 덕천탄광을 비롯한 10여개 련관탄광들의 침수갱들을 기본적으로 복구하고 굴진과 석탄생산실적을 높은 수준에로 끌어 올리였다.

탄광들에 진출한 군인들은 탄광을 정치적으로, 물질적으로, 로력적으로 도와 주면서 갱현장에서 탄부들과 한덩어리가 되여 석탄생산실적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리였다.

이뿐이 아니다. 이북이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 진행한 9.9절거리와 4.25려관, 4.25예술영화촬영소 등 대형건축물공사도 인민군대가 다 맡아 성공적으로 끝내였고 이북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된 국토관리사업에서도 그 앞장에는 언제나 인민군대가 서 있었다.

그야말로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다 맡아 나선 혁명의 주력군, 기둥의 모습이였다.

인민군대를 시대와 력사의 그렇듯 높은 곳에 내세워 주시고 자기의 명분을 지켜 나갈수 있게 걸음걸음 손 잡아 이끌어 주신분은 김정일장군이시였다.

인민군대가 혁명의 주력군, 기둥으로서 혁명과 건설을 앞장에서 밀고 나가고 있는 이북의 독특한 정치상황에 대하여 미국의 소리방송은 이렇게 보도하였다.

《지금 북조선의 모든 양상은 김정일최고사령관의 군유일중심의 특이한 공산주의강경정치로 펼쳐 지고 있다.

군대는 이 나라 사회주의정치실체를 고수하는 유일한 주력군으로 되고 있을뿐아니라 북조선이 처한 모든 경제적난관을 극복하는 말그대로 최고사령관의 돌격대, 주력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김정일장군의 군중시정책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라고 할수 있다.

김정일장군께서 이렇듯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 기둥으로 내세워 주시고 그들이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다 맡아 해제끼도록 현명하게 이끌어 주시였기에 오늘날 이북은 그처럼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고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맞이 할수 있었던것이다.

이북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그러했던것처럼 앞으로도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 기둥으로 내세워 강성대국을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두말할것없이 그러한 전략은 성공할것이며 인민군대는 혁명의 주력군, 기둥으로서의 자기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나갈것이다.

 
△우로△

4.군풍의 창조물
 
기원전 336년 고대그리스의 알렉산드르대왕은 수십만의 원정군을 이끌고 지중해연안의 수리아, 에짚트, 이란의 넓은 지역을 강점하고 이 지역에 자기들의 속국을 세워 놓는다.

이때로부터 지중해연안에 정착되여 오던 수리아, 에짚트, 이란의 토착문화는 그리스문화에 흡수, 융합되여 말살되게 되며 새롭고 세계적인 성격을 띤 문화가 창출되게 된다.

력사에서 세칭 헬레니즘시대, 헬레니즘이라고 불리우는 이 문화는 후날 헤브라이즘과 함께 서양문화의 량대기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오늘까지도 지중해연안국가들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헬레니즘에 대하여 말하는것은 그 문화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는 명백히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그 시대를 알려면 그 시대가 창조한 문화 즉 문화유적들이나 창조물들을 살펴 보는것이 력사고찰의 원칙이라고 할수 있다.

90년대 후반기 인민군대에 의해 창조된 물질문화적재부들에 선군정치의 구체적면면이 투시되여 있고 력사의 중요시점인 이 시기의 시대상이 비껴 있다는 지론인것이다.

90년대 후반기 인민군대에 의해 창조된 물질문화적재부는 구체적으로 선군정치의 나날에 확립된 군풍의 창조물들이다.

조선인민군의 군풍은 자기 수령, 최고사령관의 구상과 의도, 명령지시에 관한 결사관철의 투쟁기풍이다.

90년대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 나가는것을 응당한 본분으로 삼은 인민군대의 적극적이며 혁명적투쟁기풍, 역할에 의해 이루어 진 수많은 창조물들은 그것이 크건작건 후세년년 전해 질 귀중한 물질문화적재보들로서 참으로 지대한 시대적, 력사적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락관의 산물이다.

그처럼 어렵고 시련에 찬 시기에 명승지들을 만년대계의 문화휴식터로 꾸리고 일터를 궁전같이 꾸리는가 하면 공장을 하나 건설하고 집을 하나 지어도 가장 현대적이고 높은 수준의것으로 해낸다는것은 래일에 대한 희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무릇 인간은 어려움을 당할 때 세가지 부류로 나누어 진다고 한다.

좌절하여 쓰러져 버리는 사람이 가장 아래의 인간이고 당장의 고난만을 보며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이 중간의 인간이고 닥쳐 온 고난앞에 당황하지도 않을뿐더러 반드시 이겨 낸다는 신심과 그 다음의 미래까지도 내다보는 사람이 가장 높은 인간이라는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인민군장병들은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미래에 사는 인간들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후날 력사가들은《고난의 행군》시기 인민군대가 창조한 만년대계의 창조물들에서 그들이 얼마나 미래를 락관했으며 후대들을 사랑했는가를 정당하게 평가할것이다.

그것은 또한 승리에 대한 확신과 열렬한 조국애의 상징이다.

그처럼 어렵고 고난이 겹치던 때 인민군군인들이 민중의 여가문화를 위한 문화휴식터를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는 최상의것으로 건설하였다는것은 벌써 그들이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내고 승리한 래일에 살고 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또 열렬한 조국애를 떠나서는 기대할수 없는 일이다.

인민군대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조국강산을 더욱 살기 좋고 아름다운 민중의 락원으로 꾸려 놓았으며 후손만대에 물려 줄 귀중한 물질적재보들을 창조한것은 조국과 민중에 대한 참다운 사랑과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이 없으면 불가능한것이였다.

이북도처에 일떠선 군풍의 창조물들은 인민군대가 지닌 참다운 조국애와 민족애를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것이다.

인민군대가 발휘한 참다운 조국애와 민족애는 김정일장군의 선군혁명령도와 떼여 놓고 생각할수 없다.

래일에 대한 희망과 승리에 대한 신심이 있을 때 고난과 시련도 더 빨리 헤칠수 있다는것이 김정일장군의 지론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고난과 시련이 겹쌓이고 가는 곳마다 난관이 가로 막는 때인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승리한 래일을 내다보시며 그토록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민중들에게 행복이라면 제일 큰 행복을, 생활이라면 가장 아름다운 생활을 안겨 주시려는 숭고한 뜻을 지니시고 조국강산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락원으로 더욱 훌륭히 꾸릴 결심을 하시였으며 그것을 인민군대에 맡겨 주시였던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가 조국의 명승지들마다에 민중을 위한 최상의 문화휴식터를 꾸리는 일을 훌륭히 해내도록 세심히 이끌어 주시였다.

명산 구월산이 민중을 위한 문화휴식터로 그 면모를 일신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 5대명산중의 하나로 꼽아 왔고 그 기묘함과 아름다움에 있어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황해금강》이라 불러 온 구월산, 그것은 지금껏 자연의 명산일뿐이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구월산을 민중의 행복이 꽃 펴나는 민중을 위한 산으로, 민중의 유원지로 꾸릴데 대하여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분께서는 평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구월산의 지리적특성을 고려하여 평양시민들이 주말에 서해갑문을 거쳐 구월산에서 휴식을 즐길수 있도록 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아직 등산길이 열리지 않은 구월산을 잘 꾸려 민중의 유원지로 만들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주석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고 이북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자 구월산을 민중의 유원지로 꾸리는 사업은 먼 후날의 일로 미루어 지고 일군들과 민중들의 기억속에 차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러한 때 김정일장군께서는 주석님의 유훈을 지켜 구월산을 민중의 문화휴식터로 훌륭히 꾸릴데 대한 문제를 발기하시고 여기에 수많은 인민군장병들을 보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처럼 어렵고 간고한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구월산에서는 《미래를 위하여》라는 숭고한 구호를 추켜 든 인민군군인들의 건설작업이 중단없이 진척되게 되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수차례에 걸쳐 직접 현지에 나가시여 잘못된것은 바로 잡아 주시고 잘된것은 높이 평가해 주시는 등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1996년 10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참관도로로정을 따라 구월산에 오르시여 건설장의 여러 곳을 몸소 돌아 보시였다.

어느 한 참관도로에 이르신 그분께서는 절토사면 주변나무들을 한대도 다치지 않고 산릉선을 따낸것을 헤아려 보시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사실 인민군군인건설자들은 건설에 진입한 첫날부터 명산의 환경을 보호하는것을 첫째 가는 구호로 내세우고 구월산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상할세라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건설을 진행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처럼 방대한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명산을 사랑하여 바친 군인건설자들의 수고를 속속들이 헤아려 보시고 구월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병사들만이 할수 있는 아름다운 소행이라고, 조국의 일목일초를 사랑하는 군인들이 참관도로를 건설하였다고 생각하니 구월산의 경치가 한결 더 아름답게 보이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당과 수령, 조국와 인민에게 끝없이 충직한 이런 군인들을 가지고 있는것을 크나큰 자랑으로, 긍지로 생각한다고,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세상에서 제일입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1997년 9월 23일 또다시 구월산유원지를 찾으신 김정일장군께서는 건설장의 여러 곳을 돌아 보시다가 《지원》폭포에 이르시여 폭포의 벽과 바닥사이의 콩크리트이음띠에 새겨 진 작은 글발에 주의를 돌리시고 그것을 한자한자 읽어 나가시였다.

인민군건설자들이《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마지막해1997》이라고 새겨 넣은 작은 글발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며《2단폭포 옹벽에〈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마지막해 1997〉이라고 쓴 글을 보니 새힘이 솟습니다.〈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마지막해〉, 바로 이 글에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우리 병사들의 참된 인생관과 혁명적랑만의 세계가 그대로 비껴 있습니다.》라고 평범한 그 글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시였다.

그러시고도 확신에 넘치신 어조로 혁명적랑만과 전투적기백에 넘쳐 보다 희망찬 미래를 그려 보며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병사들의 앞길을 가로 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고 힘 주어 말씀하시였다.

인민군병사들이 쓴 자그마한 글발 하나에서도 그들이 지닌 혁명적랑만의 세계를 읽으시고 높이 평가해 주시는 김정일장군의 크나큰 믿음에 떠받들리여 인민군병사들은 짧은 기간에 100여Km의 도로공사와 274개의 구조물공사, 30여Km의 안전연석공사, 13만여㎥의 옹벽쌓기공사, 27개의 정각 및 부감대건설공사, 227개의 각종 표식물 및 조각설치공사, 51개의 명소들에 대한 건설공사, 유원지내부망공사를 비롯한 수많은 어렵고 방대한 작업량을 해제낌으로써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결사관철하는 혁명적투쟁기풍을 과시하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1997년 9월 인민군군인들에 의하여 훌륭히 꾸려 진 구월산을 또다시 돌아 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군인건설자들의 땀이 깃든 구월산의 곳곳을 다 돌아 보시면서 조국과 민중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안고 온갖 지혜와 정성을 다 바쳐 구월산유원지를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게 꾸린 군인건설자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감사를 주시였다.

그분께서는 민중들이 구월산에 와서 마음껏 레저를 즐길수 있도록 충분한 조건을 마련해 주는 문제, 등산로정을 등산객들의 체력을 튼튼히 단련할수 있게 잡는 문제, 등산객들이 많이 오는 조건에서 환경관리를 잘하여 구월산의 아름다운 환경을 파괴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할데 관한 문제 등 구월산유원지를 더 잘 꾸리고 관리운영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또한 구월산에 보존되여 있는 태엽사, 월정사, 구월산성터 등 문화유적들을 잘 보존관리하여 그를 통한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강화하고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구월산을 비롯한 명산들에 대한 소개선전을 널리 벌릴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그처럼 어렵고 고난한 시기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상상조차 못했던 구월산을 민중의 유원지로 꾸리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것은 김정일장군의 숭고한 민중애와 민중의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그분의 불면불휴의 로고가 낳은 결실이며 자기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면 산도 옮기고 바다도 막아 무조건 관철하려는 철석의 의지를 지닌 인민군군인들의 혁명적군인정신이 높이 발휘되였기때문에 가능한것이였다.

수수천년 잠 자던 구월산은 오늘날 김정일장군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비로소 민중의 행복이 넘쳐 나는 민중의 산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사회주의생활로 비쳐 지는 명산중의 명산으로 자리 잡게 되였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민중의 문화휴식터로 전변되여 명산, 명소의 가치를 새롭게 빛내이는 곳으로는 함경북도의 칠보산, 평북도의 룡문대굴과 황해북도의 정방산 등이 있다.

선군정치에 의한 군풍의 창조물로 부상되는것은 다음으로 중소형발전소, 양어장, 기초식품공장들이 꼽혀 진다.

1996년 10월 어느 한 인민군구분대를 현지시찰하신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인들이 자체로 건설한 월비산발전소를 돌아 보시였다. 엄혹한 시련속에서 계속되는 전기사정의 악화로 하여 구분대들에 필요한 전기수요를 충족시킬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자 그곳 인민군군인들이 앉아서 우만 쳐다 보면서 우는 소리를 한것이 아니라 자체로 건설해 놓은 수력발전소였다.

이곳 인민군구분대에서는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로 관하 부대들의 전기난방화를 실현하고 전기로 밥을 짓고 목욕탕운영까지도 하고 있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내고 자체의 힘으로 전기문제를 푼 이곳 군인들의 혁명적군인정신과 투쟁기풍을 높이 평가하시고 이들의 모범을 온 나라에 일반화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김정일장군의 월비산발전소 현지지도는 전군에, 온 나라에 각이한 형태의 중소형발전소건설붐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이북에서《고난의 행군》시기 경제문제에서 비상이 걸린 부문은 전력이였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우에서 풀어 줄것만 바라면서 자체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때 인민군부대들에서 발전소를 건설하여 자체로 전기문제를 풀자 그들은 자기들의 현실을 대하는 그릇된 견해와 립장을 털어 버리게 되였으며 군대의 투쟁기풍을 본 받아 발전소건설에 달라붙게 된것이다.

무슨 일에서나 하자고 결심한 사람에게 성공이 오는 법이다. 그야말로 조그마한 락차를 조성할수 있는 조건의 지형이라면 그 어디나 중소형발전소들이 생겨 났으며 그런 락차가 없는 곳에도 띄우개식수차발전소를 건설하였다.

인민군대가 기치를 드니 온 나라가, 전민이 따라 나서 건설한 군풍의 창조물들이였다.

발전소건설붐은 양어장건설로 이어 졌다.

1997년 어느 한 인민군구분대를 시찰하시던 김정일장군께서는 그곳 구분대군인들이 양어장을 건설해 놓고 사철 신선한 물고기를 먹고 있는데 커다란 관심을 돌리셨다. 현지에서 상세히 료해하여 보시니 양어야말로 물고기를 떨구지 않고 먹을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음을 헤아리게 되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인민군군인들과 온 나라 민중이 양어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양어를 발전시킬데 관한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가장 어려운 시기 자기들의 식생활을 그토록 념려하시는 김정일장군의 의도를 가슴에 새긴 민중들은 군인들의 경험을 받아 들여 각지에 크고작은 양어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였다.

양어장을 건설하는것은 일반적인 건축물이나 발전소를 건설하는 문제와는 달리 여러가지 조건이 구비되여야 하며 과학적인 양어를 할 때만이 그 은을 낼수 있는 어려운 문제였다. 우선 물원천이 있어야 하고 그 물온도에 맞는 물고기 종자가 있어야 했다. 또 흐르는 물을 막아 계단식으로 양어장을 건설할 경우 웃쪽의 양어장의 물온도와 아래쪽의 양어장의 물온도가 차이나는 점을 고려해서 물고기를 배치하여야 하며 한 양어못에도 물의 웃층과 아래층의 물온도가 다르다는 점에 류의해야 했다.

이외에도 물고기사료문제, 물고기의 종자문제 등 제기되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대와 온 나라의 각지에 건설해 놓은 양어장들의 실태도 몸소 현지에 나가시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거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자신께서 하나하나 해결해 주시였다.

1999년 8월 새로 건설된 한 양어장을 찾으시여서도 양어를 하자면 종자문제를 해결하고 우량품종을 육종보급해야 하며 선진과학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문제 등 양어에서 나서는 구체적문제에 이르기까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수십t의 물고기먹이와 새끼고기, 엄지고기를 실을 자동차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 이렇게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돌아 보신 양어장이 1999년에만도 5개나 된다.

김정일장군께서 양어에 그토록 관심하시는것은 인민군대의 투쟁기풍을 본 받아 건설한 양어장들이 확실하게 은을 내도록 함으로써 이북민중들과 군인들에게 사철 신선한 물고기를 먹이시려는 의도에서였던것이다.

이북도처에 건설된 기초식품공장들과 각종 목장들도 군인들과 민중의 물질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건설한 군풍의 창조물들이다.

1998년 5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인건설자들이 광량만기슭에 새롭게 일떠세운 현대적인 정제소금공장을 찾으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깨끗하고 알뜰하게 건설된 공장과 눈송이처럼 새하얀 질 좋은 가루소금이 쉬임없이 쏟아 져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시면서 여러가지 영양소가 포함되여 있고 반찬의 맛을 한층 돋굴수 있게 하는 질 좋은 소금을 군인들에게 더 많이 공급하게 될 새로운 정제소금공장을 훌륭히 건설한 군인건설자들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분께서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보드랍고 새하얀 소금맛도 보시고 만져도 보시면서 군인들에게 맛 있고 질 좋은 간장과 소금을 먹이려던 자신의 소원이 드디여 풀렸다고 하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이어 그분께서는 새로운 정제소금을 군인들뿐아니라 인민들에게도 풍족히 공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바다를 끼고 있는 모든 도들에서 자체의 힘으로 정제소금공장들을 많이 건설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이때로부터 이북에는 기초식품공장들이 새롭게 건설되거나 이미 있던것을 개건확장하는 등으로 건설붐이 일게 되였다.

그 대표적인것이 김정일장군께서 1999년 10월 28일에 현지지도하신 엄을룡동무가 지배인으로 일하는 식료공장을 들수 있다.

이 공장은 원래 그다지 크지 않은 식료공장이였던것을 인민군군인들이 발휘한 혁명적군인정신과 투쟁기풍을 본 받아 공장능력을 새롭게 확장한 공장이다.

제대군인들이 핵심이 되여 군복무시절에 그러했던것처럼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없는것은 만들어 내고 모자라는것은 찾아 내면서 건설을 진척시켰고 강바닥도 쩡쩡 갈라 터지는 추운 겨울에 기초굴착과 콩크리트치기 등 어려운 공사를 진행하여 보다 현대적이고 큰 능력을 가진 공장으로 그 면모를 일신하여 일떠세웠다. 여기서는 민중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간장, 된장, 맛내기, 빠다 등의 기초식품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민중의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건설된 군풍의 창조물은 이밖에도 송암명기소목장, 현대적인 닭목장과 타조목장, 메기공장 등 수많이 꼽혀 진다.

이 목장, 공장들은 군인들과 민중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는 김정일장군의 구상과 의도에 따라 혁명적군인정신, 자력갱생의 투쟁기풍의 발휘로 건설된 군풍의 창조물들이며 현대화수준에 있어서나 생산품의 질적수준에 있어서 세계적이다.

이렇듯 이북에 차고 넘치는 혁명적군풍은《고난의 행군》을 단순히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는데 머무른것이 아니라 맞받아 나가 래일의 승리를 열어 제끼는 공격형의 행군이 되게 하고 그것이 락원의 행군으로 이어 지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고 할수 있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시대상을 반영한 군풍의 창조물들은 선군정치의 위대성, 사회주의수호의 증견자로 영원히 빛을 뿌릴것이다.

 
△우로△

5.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 떨치다
 
사상, 정치, 외교적대결에서 승리

력사의《종말론》으로 유명해 진 프랑시스 후쿠야마는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시점에 《내셔널인터리스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한바 있다.

《이제 세계는 력사의 종말을 경험하였다. 자본주의체제이외의 대안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상황에서 자본주의무한경쟁의 경제체제와 그것의 다른 한면인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더 이상 상대적인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인류를 이끌어 나가는 최상의 유일한 진리로서 존재하게 되였다.》

후쿠야마의 주장에 따르면 이제 사회주의리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필요도 없다는것, 그래서 지금까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 량극체제로 유지되여 온 력사는 이미 끝났으며 자본주의의 일극체제로서의 새로운 세계는 앞으로 그 어떤 위협도 받음이 없이 영원한 진리로 존재할것이라는 사상이 담겨 있다.

당시는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가 붕괴되여 세계를 경악시키던 때여서 후쿠야마는 예언자인양 꼽혀 지고 자본주의의 진보적인 학자들마저도 사회주의리념의 종말론에 동조해 나서고 있었다.

세계가 사회주의리론에 마침표라도 찍혀 진것처럼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1994년 11월 김정일장군께서 사회주의총서로 일컬어 지는 력작《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발표하시였다.

로작은 쏘련방과 동유럽사회주의붕괴의 주요요인의 하나로 되였던 선행사회주의리론의 력사적제한성을 밝히고 주체사상원리에 기초하여 사회주의리론을 새롭게 전개함으로써 사회주의리론의 과학성, 진리성, 정당성, 우월성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 세웠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대결이 군사적대결, 정치외교적대결이기에 앞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사상간의 대결일진대 이북은 김정일장군의 이 사회주의사상을 무기로 틀어 잡고 제국주의와의 사상전에 림했던것이며 사상의 위력, 사상의 우월성으로 승리하고 후쿠야마의 사회주의종말론을 휴지쪼각으로 만든것이다.

이에 대하여 공산당련맹ㅡ쏘련공산당리사회 위원장 올레그 쉐닌은 자기의 글《사회주의광명은 조선에서》에 이렇게 썼다.

《수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리념을 버린 오늘 조선인민은 너무도 가혹한 환경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수십년동안 지속되여 온 미국의 군사적위협과 도발, 경제봉쇄, 항시적인 전쟁위험, 거기에 지난 날 사회주의전체에 가해 지던 압력과 모략까지 두어깨에 받으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그 어려움속에서 조선인민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미국을 위압하는 국방력을 가지게 된 그 불가항력의 힘은 바로 주체사상이 낳은 자력갱생의 힘이고 그들이 틀어 쥔 로선은 바로 주체사상에 기초한 세계최초의 사회주의건설리론인 3대혁명로선이다.

바로 인민대중에게 파악된 조선로동당의 사상, 조선로동당의 로선이 그처럼 거대한 물질적힘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구상의 그 어떤 인민도 견딜수 없는 압력, 방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거하던 대국도 이겨 낼수 없었던 그 압력과 회유, 모략을 조선로동당과 인민은 사상의 힘으로 이겨 내고 있으며 전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북에서 90년대 후반기 더욱 치렬해 진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사상적대결에서 사회주의사상이 어떻게 옹호고수되였는가 하는것이다.

무릇 군사학에서는 진지를 사수하자면 그 진지의 지탱점을 옳바로 정하고 그 지탱점을 강화하는것이 중요하며 반대로 진지를 점령하자면 그 진지의 지탱점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를 무력화시킬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 사회학에서도 유용한 주장이다.

제국주의자들과의 사상적대결에서 사회주의사상진지를 지키자면 그 어떤 자본주의사상독소에도 끄떡하지 않는 전위투사들의 집단, 사상의 강자들로 꾸려 진 지탱점이 있어야 한다.

사상진지의 지탱점은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공세가 사상분야뿐아니라 군사적, 정치외교적분야를 포괄하여 립체적으로 행해 지는 조건에서 그 모두에 대응할수 있는 시각에서 마련되여야 한다.

선군정치는 인민군대를 바로 그러한 위치에 놓았다.

군대가 사상적, 정치외교적, 군사적대결의 모든 분야를 통털어 대응할수 있는 최선의 적임자이라는 리유와 함께 주요하게는 가장 어렵고 복잡한 시기 사회주의수호의 제1선에 선 군대야말로 사상정신력에서 누구도 따를수 없는 높이에 이른 집단으로 서게 된다는 당위에서였다.

인민군대를 사회주의사상진지의 지탱점으로 내세운 의도는 구체적으로 두가지로 음미된다.

그것은 첫째로, 사회주의사상적진지를 고수할 전위부대를 튼튼히 준비하기 위해서다.

제국주의자들과의 사상적대결에서 승리하자면 사상적진지를 철저히 고수할 사회주의사상의 전위부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사회에서 사상적으로 가장 투철하고 사회주의운명을 두어깨에 짊어 지고 있는것이 바로 혁명군대이다.

혁명군대는 그 혁명성과 사상적신념이 그 어느 계급이나 계층보다도 투철하고 우월하다.

또한 사회주의사회에서 조직력이나 규률성에 있어서 혁명군대를 따를 사회적집단은 없다는것이다.

더우기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고 있는 이북을 압살하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압력이 더욱 로골화되고 있는 상황은 인민군대만이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고수할 전위부대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둘째로, 사회주의사회에서 혁명군대가 사상적으로 무장해제되면 사회주의적인 모든것이 허물어 질수 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혁명군대는 사회주의사상진지의 지탱점이라는것이다.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사상진지의 지탱점문제가 상정되지도 않았을뿐아니라 사회주의를 총대로 수호하여야 할 군대가 사상적변질, 사상적와해의 앞장에 섰었다.

공민전쟁시기와 제2차 세계대전시기《쏘베트정권을 위하여!》, 《쓰딸린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웨치며 목숨도 두려움없이 바쳐 싸운 붉은 군대는 흐루쑈브집권시기부터 군대안의 사상사업을 줴버리기 시작하였고 특히 고르바쵸브대에 이르러서는 군대의 비사상화, 비정치화가 로선화되면서 사상교양을 홀시하는 한편 1989년에 수십년간 실시해 오던 자본주의나라 방송들에 대한 전파장애를 전면적으로 해제하는 등 자본주의사상침습에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군인들은 미국의 소리방송, 자유방송 등 서방매스컴이 내보내는 반공, 반사회주의선전을 그대로 접하게 되였으며 국내텔레비죤은 시청률이 제일 높은 시간을 골라 서방소식과 미국식생활양식을 찬미하는 광고와 노래를 방영했다.

군대내에 미국을 숭배하는 서적, 신문 등이 아무런 려과없이 물밀듯 흘러 들었으며 그로 하여 군인들은 국내소식보다 미국의《발전모습》, 생활풍조를 더 잘 알수 있게 되였다.

신문《쏘베쓰까야 꿀뚜라》1989년 9월 21일부는《수십년간 반동작품으로 평가되여 공연을 금지 당했던 희곡들, 서방연극들이 물밀듯이 극장들에 쓸어 들고 있다.》고 하면서 군인들과 청년학생들이 그것을 보고《구역질을 일으킬 대신 모방하고 싶은 느낌을 받고 있다는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라고 개탄하였다.

군대가 술풍에 물 젖었으며 종교를 부활시킬데 대한 법령의 발표로 종교신자들이 군대에 쓸어 들었다.

자본주의사상에 물 젖은 군인들은 당과 조국도 모르는 무기력한 존재로, 돈밖에 모르는 미치광이로, 개인의 안락과 향락만을 추구하는 타락분자로 전락되여 앞을 다투어 당과 공청조직에서 탈퇴했으며 총 잡는것까지 거부해 나섰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에서의 군대에서 시작된 사상적와해로 인한 사회주의붕괴는 오늘날 단독으로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치렬한 대결전을 벌리고 있는 이북에게 있어서는 반면교사로 비쳐 지는것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를 철두철미 사회주의사상을 신념으로 간직한 사상의 강군, 신념의 강군으로 키움으로써 제국주의와의 사상적대결에서 주도적역할을 하는 지탱점이 되도록 하시였다.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사이에 도이췰란드의 포츠담에서 쓰딸린, 트루맨, 쳐칠(후에 애틀리로 교체)이 제2차 세계대전후 처리문제와 관련하여 회담을 진행하였다.

미국은 회의개막전날인 7월 16일에 첫 원자탄시험을 진행함으로써 힘의 립장에서 회담을 저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하려 했다.

미국의 의도는 도이췰란드에서 민주주의적단체들의 활동을 억누르고 파쑈무장력을 재생시켜 저들의 목적에 리용하며 유럽령토의 조정에서 더 많은 지배권을 차지하려는것이였다.

그러나 쓰딸린은 미국의 원자탄위협에도 끄떡없이 강경립장을 고수하였다.

그리하여 회담에서는 민주주의적정당, 단체들의 활동허용, 완전한 무장해제와 파쑈무장력 청산, 군사 및 반군사조직, 나치스기관 철페, 독점체의 청산과 경제의 비군사화, 무장장비의 생산금지 등 도이췰란드문제해결을 위한 제 원칙이 제시되였다.

미국은 원자탄위협으로도 자기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던 포츠담회담결과에 대한 앙갚음으로 정치외교에 있어서는 더욱더 힘에 의한 외교방향으로 나갔으며 1990년대에는 쏘련방을 굴복붕괴시키기에 이르렀던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의 북미외교대결에서 미국은 이북의 힘의 외교앞에 완전히 손을 들고 저자세외교로 림하고 있어 세상사람들의 조소를 받고 있다.

오늘날 세인들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이 이북이 발사한 로동1호 미싸일위력앞에 북미기본합의문에 도장을 찍었고 1만 2천Km 탄도미싸일 발사를 가능케 하는 위성발사의 위력앞에 《채찍》으로서의 《5027작전》계획실행의 포기, 일부 경제제재해제조치와 같은 《당근》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으로 보고 있다.

무릇 외교는 말과 말, 두뇌와 두뇌의 싸움이다.

력사에는 순수 언변과 두뇌전으로 싸움에서 승리하거나 외교무대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력사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 짓는 중대문제결정에서는 반드시 군사경제적힘이 안받침될 때 성공하는것이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는 한갖 말싸움으로 끝나고 만다는것을 뚜렷한 진리로 새기고 있다.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련전련승하는 불패의 정치이다.

선군정치의 이러한 불패성은 90년대 후반기 북미정치외교의 쟁점으로 부상되였던 《지하핵시설의혹》, 탄도미싸일발사문제 처리에서 더욱 확실하게 확인되였다.

1994년 10월 제네바북미회담에서 클린톤대통령 담보서한에 따른 북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되였을 때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은 그 채택을 달가와 하지 않았으며 파기를 주장해 나섰다.

미국회에서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 공화당은 북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된 초기부터 북미기본합의문자체가 잘못된것이라면서《클린톤정권은 너무 양보하였다.》느니, 《백악관이 미북합의와 관련해 공화당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느니 하면서 그 합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1995년 1월에 접어 들면서 미국회 상임위원회별로 기본합의문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문제점》들을 따지고 들었다.

미국회 상원외교위원회 위원장은 북미기본합의문을《하나의 보수》로 묘사하였고 공화당 원내총무는《미국이 지내 많이 양보》하였다고 반격을 가했다. 공화당의 주요의원들도 클린톤대통령이 《북조선이 핵계획》을 저지시키기 위한 흥정에서 지나치게 많은것을 양보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합의문리행을 위한 자금제공을 거부함으로써《그것을 뒤집어 엎기 위해 노력할것》이라고 했다.

공화당은 《북미제네바합의의 파기, 경수로건설지원저지, 이것이 공화당의 립장이다.》며 공공연히 도전해 나섰다.

1996년 11월 초 미국 대통령선거전은 민주당과 공화당사이에 북미기본합의문 리행문제를 놓고 일방은 주요외교치적으로, 타방은 외교치욕으로 위상지으며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비난전으로 일관되였다.

강경보수세력은 마침내 북미기본합의문을 파기하여 이북에 대한 고립압살기도를 관철시키고 클린톤행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축구공을 차올렸다. 금창리《지하핵시설의혹》이라는것을 들고 나온것이다.

미국에서 이미전부터 퍼지던 핵의혹설이 증폭되기 시작한것은 《뉴욕타임스》1998년 8월 17일부가 정보자료를 인용하여《북조선이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는 지하시설이 핵무기개발을 재개하기 위한것으로 보인다.》고 전한 때부터였다.

미국《워싱톤 포스트》1998년 11월 22일부는《제네바핵동결합의를 좋아 하지 않는 의회와 국방성, 정보기관내 비판세력들은 최근의 지하핵시설의혹을 미북기본합의를 깨고 평양과의 대결정책으로 나아갈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전하였다.

민주당은 보조를 맞춘다는 심리를 내비치며 공화당이 마련해 놓은 지하핵시설의혹 레루우를 달리는 렬차에 동승하였다.

미행정부는 대북정책의 재검토에 들어 갔으며《핵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기본합의문의《보류도 어쩔수 없다》는 방침을 굳혔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방장관은 1998년 11월 1일《아사히신붕》과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지하시설사찰을 수락하지 않으면 미조틀거리합의는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공언하였으며 미국무성 대변인은 1998년 11월 9일 인터뷰에서《북조선의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이 관철되지 않으면 북미핵협정의 존립자체가 문제시될것》이라고 위협해 나섰다.

이북이 지하시설에 대한《사찰》을 끝내 거부할 경우 미행정부의《단호한 대응》이 결정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을것이라는 《경고신호》들이 미당국자들과 강경보수세력들속에서 련이어 흘러 나왔다.

마침내 이북이 대응해 나섰다.

《지하핵시설》사찰소동은 공화국의 자주권과 국가안전에 관한 란폭한 유린행위로서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 그 무슨 의혹이라는것을 정 풀려거든 비렬한 중상모독으로 우리 공화국의 영상을 흐려 놓은데 대한 보상을 정치, 경제적으로 응당하게 하라는것이였다.

그것은 분명 화를 복으로 역전시킨다는 안속의 전략이였다.

미국은 이북이 요구하는대로 회담장에 나오지 않을수 없었고 몇차례에 걸치는 회담끝에 이북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여《참관료》를 바치는 조건에서의 참관이라는 문서채택에 도장을 눌렀다.

그리하여 1999년 5월 비싼 《참관료》를 지불하는 조건에서의 미전문가팀의 금창리《지하시설》참관이 이루어 졌다.

당시 세계의 언론계는 미국의 여전한 굴욕외교에 대해 떠들었고 이북이 3억불의 참관료를 불렀는데 미국은 금창리 지하구조물에 5억딸라상당의 쌀을 가득 채워 주었다는것을 꼬집어 미국의 외교능력을 조소하였다.

당시의 북미사이의 외교전은 이남에서도 언론의 태풍으로 초점 맞추어 져 있었다.

1999년 8월호《말》은 그처럼 길고 지루한 대결끝에 미국이 얻은것이란 텅 빈 금창리굴간에 식량을 가득 태워 준것이였다고 조소하면서 이북이《의혹》을 만들면 미국은 식량을 지원하는 등 방도를 모색한다고 신랄히 폭로하였다. 또 이전YS의 비서실장을 지낸바 있는 한나라당의 박관용의원은《핵과 미싸일문제 등에 있어서 북〈한〉의 대미전략에 미국이 놀아 나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이북이 강성대국과 핵과 미싸일개발을 다그치여 세계강대국으로 발돋움해도 미국과 이남정권은 그를 막아 내지 못할것이라고 아우성쳤다. *

금창리《지하핵시설의혹》이 공중분해되자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이 전면에 들고 나온것이 이북의 이른바《미싸일위협》론이다.

이 《미싸일위협》론의 본질은 한마디로 북의 미싸일이 미국본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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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99. 9. 17자

타격할수 있다는것이다.

1998년 초 미국방성 년례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이북이 미국을 타격할수 있는《탄도미싸일을 개발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지명되여 있다.**

《미싸일위협》론은 이북이 1998년 8월 31일 위성발사후 본격화되였다.

미국강경보수세력은 《광명성1호》위성을 한사코 탄도미싸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당장 미국본토에 날아 들것처럼 법석 고아 댔다.

미공화당 지도자는 1998년 8월 31일《북조선이 탄도미싸일을 발사》하였다고 하면서 《미국본토를 타격할수 있다》,《대단히 위험하다》고 떠드는 한편 미행정부에 《강력한 국제적지도력》을 행사할데 대해 촉구하였다.

미국방성은《북조선이 탄도미싸일을 발사》한것을 확인하는것과 함께 이것이《아시아의 안전보장을 뒤흔들수 있는 심각한 사변》이라고 인식하고 《북조선측의 의도와 미싸일개발 능력에 대한 분석》을 서둘렀다.

《미싸일위협》론은《광명성1호》위성발사 한돐이 되는 1999년 8월 31일을 계기로 극한상황에 치닫고 있었다.

평양이 미국의 순항미싸일공습을 당하기라도 할것 같은 위구가 팽배해 지고 있을 때 이북은 또다시 미국에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고 회담탁에 불러 냈으며 그리고 몇차례의 격돌끝에 미국의 강경의사를 꺾어 놓은데 이어 1999년 9월 17일 베를린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할데 대한 조치가 취해 지도록 하는 결과를 따냈다.

미국내와 세계는 그것을 초강대국의 또 한차례의 굴복외교로 떠들었다. 미공화당소속 의원들은 클린톤의 조치를《백악관이 북의 압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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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통신 1998년 2월 3일부

굴복》*하였다고 비평했으며 미국회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수십년간

지속되여 온 제재를 완화할데 대한 계획을 반대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클린톤행정부의 북조선에 대한 접근방식은 국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다음번 대통령하에서 유지되지 못할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세계《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을 쥐락펴락하며 국제정치정세를 솜씨 있게 조정하여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외교적대결전에서 련전련승하는 이북의 정치외교를 어떻게 볼것인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이북이 취한 정치외교를 한마디로 특징 짓는다면 그것은 타협 없는 원칙외교라 할수 있다.

지금까지 력사에는 팔레랑식웅변과 설득외교, 비스마르크식철의 외교, 쳐칠식타산외교, 마쯔오까식간계외교, 몰로또브식침묵의 고압외교 등 각종 외교형태가 존재하여 왔다.

무릇 외교란 자기가 얻고저 하는바를 얻기 위한 하나의 정치예술이라 할수 있다.

때문에 력사에 기록된 그 어떤 유명한 외교형태도 다 하나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타협으로 자기가 얻고저 하는것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곧 외교라고 믿어 왔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북이 취한 외교는 시종 타협을 모르는 원칙적인것이다.

그들은 능란한 정치정세조정술로 미국과 일본 등을 대화마당에 끌어 내고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자기들의 주장을 고수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기들의 주장은 곧 원칙이였고 한치도 양보할수 없는 건곤일척의 카드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하게도 이북의 타협 없는 원칙외교에 끝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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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피통신 1999년 9월 18일

미국과 일본 등 그 어떤 대화상대도 다 타협을 하며 이북의 조건을 들어 준다는것이다.

왜 그런가? 다시 말해서 이북의 정치외교가 그처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미국의 위력한 비정부연구단체인 외교관계협의회는 1998년 6월에 낸 정책보고서에서 《김정일체제는 망하지 않는다. 북조선을 무력으로 무릎 꿇게 할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북외교지침을 발표한바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외교의 배경에는 군사적힘 내지는 경제력이 있는것이다. 그 힘에 의거하여 외교는 전개되는것이고 외교는 얻고저 하는것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도 말할수 있다.

이북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북이 그처럼 든든한 담력과 배짱으로 세계정치정세를 솜씨 있게 관리하고 그처럼 외교에서 원칙을 고수할수 있는것은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라는 힘이 있기때문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김일성주석 서거이후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고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나라의 기둥으로 내세우시고 조성된 어려운 난국을 타개해 나가시는 무적필승의 선군정치를 펼치고 계신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로 하여 이북은 내부적으로 인민군대와 민중이 똘똘 뭉쳐 김정일최고사령관을 받드는 세계최초의 일심단결의 총폭탄집단으로 준비되고 대외적으로는 그 어떤 강적에게도 머리 수그리지 않고 당당하게 싸워 나가는 강력한 정치군사대국으로 등장하게 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북의 타협 없는 원칙외교의 배경이라고 할수 있다.

그 어떤 강적도 무서워 하지 않고 일격에 타격하여 때려 눕힐 위대한 힘ㅡ선군정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북의 정치외교에 그 어느 나라인들 승자가 될수 있겠는가.

1993년《핵사찰》소동과 1998년《지하핵시설의혹》소동, 이북의 위성발사후 미싸일소동 등을 끈질기게 벌려 온 미국이나 일본 등 제국주의련합세력들이 오늘날 이북과의 정치외교적대결에서 흰기를 들고 평양을 찾아 가고 있는데서 쉽게 그 답을 찾을수 있다.

미국은 1999년 5월 클린톤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인 페리를 평양에 파견하여 북과의 대결의 평화적해결을 주문했다.

페리는 평양을 다녀 온 후 평양을 무력으로 굴복시킬수 없으며 평양은 바그다드나 베오그라드와는 전혀 양상이 다른 국가이며 그를 쉽게 보아서는 된타격을 받을수 있다는것을 전제로 하고 평화적방법으로 북미관계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페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처럼 미싸일소동에 열을 올리던 일본은 전 총리인 무라야마를 단장으로 하여 소위《초당파》대표단을 무어 평양에 보내 조일국교정상화회담재개를 주문하고 수십만t의 식량을 평양에 보내는 등 조일관계정상화를 위해 추파를 던지고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로 하여 이북은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외교전에서 승자가 된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대한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이며 세계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이나 경제대국임을 표방하는 일본이 결코 이북의 승리를 완전히 무릎 꿇고 축복하여 주고 있는것은 아니다.

미공화당의《아미타지보고서》작성자들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아직도 이북을 선제공격하여 군사적방법으로 짓눌러 버려야 한다는 침략야망에 들떠 있고 일본에는 아직도《평양을 일격에 괴멸》시켜 버리겠다고 호언하는 신따로 도교도지사와 같은 극우익보수세력들이 결집되여 있다.

그러나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고 했다.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가 있어 이북은 그 어떤 위기도 솜씨 있게 조정관리하여 자기의 의도와 요구를 완전무결하게 관철시켜 나갈것이다.

이북이 이미 동북아시아의 무시할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으며 오늘의 국제정치가 평양을 축으로 하여 펼쳐 지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해 준다.

□ 군사적대결에서 승리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로 하여 이북은 제국주의자들과의 군사적대결에서도 백전백승을 떨치고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랭전이 종식되고 평화적시대가 도래하였다고는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힘의 정책》은 의연히 강행추진되였고 주로 자원지대와 군사전략적지대를 제압하고 장악지배하기 위한 군사적책동은 더욱 로골화되였다.

미국은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고 21세기 역시 미국만이 유일초강국으로 남게 되는 미국의 세기가 될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면서 유일한 패권국가는 미국이며 미국은 이에 걸맞는 군사적힘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해 나섰다.

그중의 하나로서 미국의 브레진스키 이전 합참의장이 주장한 세계지배전략인 림랜드리론을 들수 있다.

브레진스키는 세계의 중심은 유라시아대륙이지만 그를 지배하는 세력은 그 밖에 있는 미국이라고 전제하고《하트랜드(유라시아 중심부)를 효률적으로 지배하려면 하트랜드를 둘러 싼 주변부의 가장자리 즉 림랜드를 지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림랜드지역으로서 동서유럽이 부딪쳤던 도이췰란드지역, 미쏘간의 군사력이 격돌했던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지역, 《한》반도가 포함된 동아시아지역을 지명하고 이곳에서 미국의 지배를 공고히 할 때 미국은 세계를 제패한 유일초강국으로 될수 있다고 고창하였다.

브레진스키의 이 논리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며 미국의 군사정책에서 어느만큼 영향력을 가지겠는가는 차치하고 이 세계패권주의론리에서 미국이 지배하려는 림랜드지역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브레진스키가 지명한 림랜드지역중 도이췰란드와 아프가니스탄은 랭전종식이후 이미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 갔다고 볼수 있고 중동지역 역시 1990년과 1998년의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타격을 하여 이미 미국의 군사적지배를 받고 있는셈이다.

결국 나머지는《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지역뿐인데 여기서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지대는 《한》반도이라는것이 브레진스키의 발언에서 은연중 표출되고 있다.

또 실지로 1990년 만전쟁에서 승리하고 랭전이 종식되자 미국은 두개 지역분쟁에서 동시대처, 승리를 거둔다는 윈ㅡ앤드ㅡ윈전략을 포기하고 두개 지역 전쟁을 차례로 종식시킨다는 윈ㅡ홀드ㅡ윈전략으로 수정채택하였다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충돌을 감안하여 다시 윈ㅡ앤드ㅡ윈전략을 채택한바 있다. 이것은 미국에 있어서《한》반도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미국에 있어서《한》반도는 세계제패의 제1선이고 가장 전략적인 요충지인것이다.

이런것으로 하여 이남과 일본의 오끼나와에 자기들의 군사기지를 두고 수만의 군대와 각종 최신식군사장비를 배비하고 있는것이고 막대한 군사비를 여기에 쏟아 붓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미국이《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제압하려는 가장 중요한 리유는 브레진스키의 말대로 지역적인 림랜드적인것에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랭전이 종식되고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붉은기가 내려 진 속에서도 계속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미국과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당당히 맞서 나가고 있는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인 이북과의 군사적대결에서 누가 승리자가 되는가 하는것에 중요한 력점이 찍혀 져 있는것이다.

민족사적대국상이후 김정일장군께서는 제국주의자들의 봉쇄와 고립압살책동에 대처하여 인민군대를 강화하고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 기둥으로 내세워 전국, 전민을 하나로 총 결집시켜 난관과 시련을 뚫고 나가는 선군정치를 펼치고 계신다.

김정일장군께서는 1994년 10월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고 인민이라는 독창적인 군중시정치철학을 천명하시고 이를 구현한 선군정치를 펼치심으로써 미제를 위시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반공화국책동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고수할뿐 아니라 더욱 발전시켜 나가신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세계제패전략에 가장 큰 장애였고 이북은 미국에게 있어서 반드시 지배하고 장악하여야 할 첫번째 국가였던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하여 미국과 제국주의련합세력을 한편으로 하고 그 어떤 지원도 없이 단독으로 그에 정면도전한 이북을 한편으로 한 가장 첨예한 군사적대결이 시작된것이다.

그러면 1990년대 중반기이후 국제정치에 괄목할만 한 사변으로 기록된 이 군사적대결에서 승자는 누구이며 패자는 누구인가?

이 군사적대결의 제1막은 아마 1994년 12월 17일 주《한》미군헬기격추사건으로 하여 올려 졌다고 볼수 있다.

1994년 12월 17일 전연경계근무를 서던 인민군병사들이 휴전선 비무장지대 북측지역을 침범한 주《한》미군헬기를 단 한발에 격추시켜 세계를 놀래웠다.

헬기의 잔해가 북측지역에 떨어 지고 2명의 승조원중 한명은 죽고 한명은 살아 남아 자기들의 고의적인 정탐행위를 인정하고 돌려 보내줄것을 이북측에 간청함으로써 미국의 죄행은 폭로되였다.

그러나 미국은 파렴치했다. 그들은 주《한》미군사령관 명의의 메쎄지를 인민군측에 보내면서 우연적인 실수니, 유감이니 식의 말로 범죄를 부인하고 죽은 조종사의 시체와 포로된 조종사를 성탄절전으로 보내줄것을 요구하는 위협조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의 군사적행동을 암시함으로써 이북의 기를 꺾으려는 미국의 시도였다.

그러나 이북은 당당하였다. 이북은 인민군 판문점대표를 내세워 주《한》미군사령부측 대표를 불러 호되게 추궁하고 미국이 미군기의 북측령공침범 사실뿐아니라 공화국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찰목적을 사죄하지 않는 한 절대로 포로된 조종사를 돌려 보내지 않겠다는것을 선언하였다.

세계《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에게 있어서 뜻밖의 도전이였고 의외의 강경반응이 아닐수 없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사건은 미국이 대통령의 특사를 평양에 파견하여 미군기의 이북령공침입을 인정하고 사죄하였으며 사건의 재발방지를 담보하고 조미군부접촉을 약속하는것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를 놀래운 뜻밖의 결과였다. 그처럼 오만무례한 미국이, 이라크를 군사적타격으로 굴복시키고 세계에서 무적의 《강군》임을 과시한 미군이 이북과 인민군대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던것이다.

미국의 군사행동을 완전히 제압한 이 사건해결은 김정일장군의 깊은 관심 속에 이루어 진것으로 알려 져 있다.

미군의 군사적침공행동을 크든작든 나라의 자주권침해행위로 보시며 문제를 그러한 시각에서 다루어 나가도록 하신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미국이 헬기불법침입사실을 우연적인 실수로 그 엄중성을 약화시키며 저들은 힘을 밑받침하는 압력을 가하고 제3국을 내세워 포로된 조종사를 데려 가려고 할 때 그것을 어리석은것으로 단죄하시며 이 사건은 공화국과 미국이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시며 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한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해 엄중시할데 대해 가르치시였다.

이북이 강경고압자세로 미국을 굴복시키는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된것과 관련하여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이번에 미군직승기를 쏴떨구고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 또다시 사죄를 받아 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커다란 승리입니다. …우리는 미제에 대하여 환상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에서 양보하거나 후퇴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나가야 합니다.》

미국과의 군사적대결에서 양보, 후퇴를 하지 말고 혁명적원칙을 고수하며 당당하게 맞받아 나가는것ㅡ이것이 중요한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헬기를 단방에 쏴떨군 병사를 높이 평가하시고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여 전체 인민군장병들이 자기들도 적기가 다시 덤벼 든다면 단방에 쏴떨구겠다는 욕망과 신심을 가지고 조국의 전초선을 철벽으로 지켜 나가도록 하시였다.

1996년 초 미국은 이북과의 군사적대결에서 또 한차례의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이해에 들어 서면서 미국은 핵잠수함 《버밍 햄》호를 《한》반도주변에 끌어 들여 《련합대잠수함훈련》이라는것을 벌리였고 2월에는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를 조선동해에 출동시키고 핵잠수함과 핵전략폭격기를 위시한 공격용작전장비들까지 투입하여《벨리언트 아셔 96ㅡ2K》해군합동군사연습을 벌리였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미국방장관은 《년례방위보고》에서 이북을 겨냥하여 《미국의 사활적리익을 위태롭게》하는 위협을 억제할뿐아니라《싸워서 승리》할것이라고 호전적인 폭언을 늘어 놓았다.

이것은 1995년 큰물로 인한 이북의 경제적난관을 호기로 삼아 이북을 군사적으로 장악지배하려는 미국의 계산된 행동이였다.

세계는 그처럼 곤난한 상황에 처한 이북이 이번의 군사적대결에서는 어쩔수 없이 타협하거나 양보할것으로 보고 있었던것이다.

이북에 대한 미국과 이남의 군사적침공이 실전상태에 들어 간 시각 이북은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자기의 의지를 선언하였다.

《조국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지키기 위한 우리 인민군대의 사명은 침략행위를 방어하는데만 국한되여 있지 않다.》, 《불은 불로, 몽둥이는 몽둥이로 다스리는것이 우리 군대의 기질이다.》, 《우리 조국의 한치의 땅, 한포기의 풀이라도 건드린다면 강력한 자위적조치로 짓뭉개 버릴것이다.》등의 내용으로 일관된 담화는 침략자들을 단매에 짓뭉개 버릴 이북의 드팀 없는 결심과 의지를 담은 폭탄선언이였다.

이 담화가 나가자 세계는 들끓었고 미국내에서는 혼란이 일어 났다. 북을 공격하는것은 닭알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비명도 울려 나왔고 공연히 잠자는 호랑이의 코를 찔렀다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아우성도 울려 나왔다. 그처럼 세계《유일초대국》연하던 미국이 겁 먹고 놀라는 모습에서 세계는 이북의 군사적힘의 폭과 세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북은 1996년 4월 4일 판문점대표부 대변인담화를 통해 조선인민군측은 정전협정에 의해 지닌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와 관련한 자기의 의무를 포기한다는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조치로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비무장지대에 출입하는 인원들과 차량들로 하여금 제정된 모든 식별표식을 착용하지 않도록 할것이라는것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미국에 대한 련속강타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큰 소리 한번 못 치고 전쟁도발소동을 황급히 중지하는것으로 대답했다. 이번에도 역시 이북의 완전한 승리였다.

1998년 8월 이북이 쏴올린 위성으로 하여 미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련합세력과 이북과의 군사적대결에서도 이북의 승리를 확인할수 있다.

1998년 9월 5일 이북이 위성을 발사하여 정확히 자기의 궤도에 진입시켰다는 공식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련합세력은 이북이 탄도미싸일발사시험을 하였다고 아우성치며 그 무슨《제재》요, 《대응》이요 하면서 이북과의 군사적대결을 고취하였다.

미국은 군부우두머리들이 대거 참석한 비밀모의를 벌리고 《미군이 조선의 전쟁준비상태를 유지할데 대하여》를 결정하고 19억딸라의 추가군사예산을 이에 지출할것을 채택하였다.

이남에 날아 든 미대통령 클린톤은 1998년 11월 22일 오산미공군기지에서《미국은 미국민과 우방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여 있으며 능력도 있다.》고 하면서《우리의 힘은 외교적노력과 함께 강력한 군사적뒤받침속에서만 이루어 지는것》이라고 폭언하였다.

미국내 보수세력은 외교적인 협상이 실패할 경우 주《한》미군의 증강과 《전역미싸일방위》체계의 구축 등을 통해 이북에 대한《억제력》을 강화하고 최악의 경우에는《북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이북의 위성발사를 탄도미싸일발사로 보면서 이북의 탄도탄미싸일타격거리안에 일본이 들어 있는 이상 그에 해당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분주탕을 피웠다.

미국과 일본을 위시한 제국주의련합세력들은 이북을 군사적으로 압살할 모의를 벌렸다. 그 모의의 결과가 미국이 이미 80년대에 작성하고 90년대 초에 추진하던 《한》반도《유사시》를 가상한《작전계획ㅡ5027》을 대폭 재검토하여《작전계획 5027ㅡ98》을 책정한것이다.

《작전계획 5027ㅡ98》은 《한》미련합군이 이북을 선제공격하여 《국가기능을 붕괴시키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북침전쟁계획이다.

이 전쟁계획은 5개의 단계를 설정하여 이북을 군사적으로 제압한다는 씨스템을 설정하고 있다.

첫 단계로서 미국은《한》반도와《한》반도주변에 미군을 집결시키고 공중과 해상, 국경을 봉쇄하여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북을《억제》하며 둘째 단계에서는《무력화타격》단계로서 방대한 야전포병무력과 비행대, 순항유도무기들로 공화국북반부 전 지역에 대한 장기적인 공중타격전으로 이북을《무력화》시킨다는것이다.

셋째 단계는《지상공격작전》단계로서 이북의 동서 량해안에 대한 대규모적인 상륙작전과 항공륙전작전, 직승기륙전작전, 특공대작전을 배합한 전면적인 지상공격작전으로 평양에 대한 작전적포위를 실현하고 청천강계선까지《점령》하는 단계이다.

넷째 단계는《전쟁성과확대》단계로서 청천강이북의 공화국북반부전역을《점령》하며 제5단계는 《종전》단계로서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실현한다는것이다.

또한 이 계획에는 이북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는 방법이 3가지로 설정되여 있는바 첫째: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구실로 이북에 대한 제재를 가하다가 그 연장선우에서 타격을 가하는 방법, 둘째: 이북의《핵의혹시설》들에 대한 《외과수술식》타격을 가하는 방법, 셋째: 정세를 지속적으로 긴장시키다가 정세악화를 구실로 이북에 대한 선제타격을 단행하는 방법이다.

미국은 이 작전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군 54만 5천명, 《국군》63만명, 항공모함전단 5~7개, 스텔스전투폭격기 《Fㅡ117》, 《Fㅡ111》, 핵무기를 적재한 전략폭격기 《Bㅡ1》, 《Bㅡ2》, 《Bㅡ52》를 비롯한 현대적인 첨단장비들과 대형타격수단들을 투입시키려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전쟁계획을 미리 간파한 이북은 1998년 12월 초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성명을 통해《작전계획 5027ㅡ98》의 진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다음과 같은 폭탄선언을 하였다.

《우리에게는 우리 식의 작전계획이 있다. 〈외과수술식〉타격이요, 〈선제타격〉이요 하는것들은 결코 미국만의 선택권이 아니며 그 타격방식도 결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다.

우리 인민군대의 타격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 타격을 피할 자리가 이 행성우에 없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이북이 만약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이 반공화국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기고 민족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것이라는 결심과 각오를 세계앞에 보여 준것이다.

그런데 6. 25전쟁의 참패를 만회하고 이북을 군사적으로 제압하여 사회주의를 짓뭉개버림으로써《한》반도에 대한 저들의 지배를 강화하려던 미국은 이에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움츠러 들고 말았다.

결국 이북을 타격하여 지배하려던 미국의《5027작전계획》은 물거품이 되였고 이 사건으로 하여 미국은 이북의 군사적위력을 인정하고 이북을 강대국의 위치에 올려 세워 주는 역할만을 수행하였다.

미국 씨엔엔TV의 특파원 마이클 취노이는 인터뷰에서《북조선은 인공지구위성발사를 통하여 역시 조선민족은 간단치 않은 민족이며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다시 한번 시위하였다.

미국과 일본이 북조선의 위성발사를〈탄도미싸일발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 공포감에서 출발한것이다. 북조선은 이번 발사를 통하여 지구의 어느 곳이나 강력한 미싸일로 타격할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고 하면서 세계《유일초대국》임을 표방해 온 미국을 면전에서 강타한 이북의 군사적힘에 대하여 높이 찬양하였다.

사실 미국 역시 이북의 군사적힘의 강대함을 인정하고 있다. 1999년 유고련방에 대한 공습에 뒤이어 미국방성의 전략가들은《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 날 경우 얼마만한 비용이 들며 누가 승자가 되겠는가 하는것을 콤퓨터시뮬레이션 한적이 있다.

이때 콤퓨터는《한》반도전쟁에서 미국이 지불할 물질적비용은 일평균 57~71억딸라이며 승자는 이북이라는 답을 내였다. 이것은 일평균 5,000여만딸라가 탕진된 대유고련방공습에 비해 100~140배가 넘는 엄청난 액수이며 2,600억딸라의 미국방예산중 870억딸라에 해당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 군사비를 전쟁개시 2주일만에 다 소모하고도 패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미국에 있어서는 참으로 무서운 결론인것이다.

결국 콤퓨터까지도 미국과 이북과의 군사적대결에서 이북의 승리를 점 치고 있는것이다.

현실적으로나 가상적으로나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도 미국은 이북과의 군사적대결전에서 승리할수 없다는것이 오늘 세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것은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로 하여 이북의 인민군대는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자라나고 군대와 민중모두가 김정일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똘똘 뭉친 일심단결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그 위력한 힘을 원자탄은커녕 그 어떤 최신식군사무기로도 깰수 없는것이다.

동방에는 앞서면 누를수 있으나 뒤떨어 지면 눌리운다는 말이 있다.

김정일장군께서 필승의 보검인 선군정치로 군대를 강화하고 군사를 발전시켜 이북의 국력을 강화하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간고한 시기 이북은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군사적압살책동으로 이미 식민지노예가 되였을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참으로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을 단호히 짓부시고 공화국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고 미제와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군사적대결을 승리에로 이끈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야말로 이북을 세계제일의 군사강국으로 빛내주신 위대한 정치이다.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가 있는 한 이북은 그 어떤 대적이 덤벼 들어도 일격에 쳐부실 세계 최강국으로 더욱 강화발전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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