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1.장군님의 총적 목표는 주체혁명위업의 완성 |
| |
| 정치지도자의 비전은 그가 떠올리는 사회변혁의 총적 목표에 투영됩니다. 김정일시대의 막이 오른 오늘 세계의 이목이 그분의 비전에 쏠리는 것도 이때문이라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분의 비전 즉 총적 목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는 것입니다.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가 있은 후 어느날, 당과 국가의 책임간부들이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6차당대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민중의 한결같은 염원에 따라 장군님께서 당의 수뇌부에 다시금 추대되신데 대하여 열렬히 축하하면서 영광을 드리었습니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인사를 굳이 사양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번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나에 대한 전체 인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수령님께서 나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나는 수령님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 우리는 대를 이어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감으로써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여야 합니다. ... 나는 앞으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나는 또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신 우리 당을 영원히 수령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며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당, 전국, 전민을 힘있게 조직동원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하는 것이 나의 총적 목표입니다. 이것이 수령님앞에, 당앞에, 동지들 앞에 다지는 나의 맹세입니다."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하는 것이 나의 총적목표입니다.", 이것은 김일성주석님의 후계자로서의 본령을 시대와 역사, 민족과 혁명 앞에 다시금 엄숙히 천명하는 위대한 선언이였습니다. 주체혁명위업은 우리 민족을 자주민족으로 존재하고 발전케하는 민족자주위업이고 지구촌의 모든 민족이 자주적으로 살아나가도록 하는 세계자주화위업입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일찍이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어 민족자주의 길을 밝히시고 그 기치밑에 20성상의 피어린 항일혁명투쟁으로 일제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조국의 광복, 민족의 재생을 이루어내시었습니다. 광복후에는 건당, 건국, 건군사업으로 이북땅에 착취와 억압이 없는 민중사회를 세우고 민족의 존엄을 선양하시는 한편 이남땅에서 외세를 척결하고 짓밟힌 민족의 존엄을 되찾으며 조국통일을 이루어 전국적 판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고 융성번영을 안아오기 위해 온갖 노고를 다하시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세계 제 민족들의 자주적 발전의 길도 열어나가시었습니다. 이것은 김일성주석님께 서 민족사와 인류사에 특기할 위대한 공적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개척하시고 발전시켜오신 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해나가는 것을 자신의 총적 목표로, 비전으로 삼고 계십니다. 이것은 장군님의 확고한 혁명적 의지입니다. 그분께서 주체혁명위업을 총적 목표로 삼고 계시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대행운입니다. 그것은 장군님에 의한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만이 우리 민족을 세상에 으뜸가는 자주민족으로, 우리 나라를 부강한 강성대국으로,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중흥시키며 우리 겨레를 가장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향유할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의 앞날이 휘황찬란하다는 것을 굳게 믿고 희망과 신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군님처럼 의지가 굳센 지도자는 없으며 한번 다진 결심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어이 단행하시는 지도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장군님꼐서 주체혁명위업을 완강히 밀고나가시리라는 것은 의심할바 없는 일입니다. 사실상 김일성주석님 서거후의 사태발전이 이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94년 10월 28일 김일성주석님의 서거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한 전체 민중들에게 보내신 감사문에서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주체의 혁명전통과 불멸의 혁명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나갈 것입니다."라고 언명하시었습니다. 이것은 장군님께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것을 전체 민중들 앞에 언약하신 것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언약에 그치지 않으시고 그것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계십니다. 이북에 있어서 김일성주석님 서거후 지난 3년간은 시련에 찬 나날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동구사회주의 좌절을 계기로 이북을 압살하려고 총력을 기울이었습니다. 정치군사적 위협과 경제봉쇄로 말하면 미증유의것이었습니다. 이 앞에서는 이북도 견디어내지 못하고 사회주의를 버리고 개혁, 개방에로 나가리라 보는 것이 그들의 시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사태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북에서는 우리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주체사상에 기초한 민중중심의 사회주의 진군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것은 김정일장군님에 의한 김일성주석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의 강고한 계승발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김일성주석님의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시려는 장군님의 철의 의지를 다시금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김일성주석님의 자주위업의 표지를 자신의 것으로 그대로 넘겨안으시고 그 계승완성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시는 것은 김일성주석님의 주체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인 동시에 민족의 운명에 대한 높은 책임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을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은 민족으로, 우리 조국을 강성대국으로 떨치시려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신 것은 우리 민족의 최대의 행복입니다. 1997년 7월 8일, 김일성주석님 서거 3년상이 되는 이날에 이북에서는 다음과 같은 중대결정을 발표했습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 3돌을 맞으며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당중앙의 영도따라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하려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인민들의 한결 같은 지향과 염원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 생애와 업적을 억만년 흐를 주체조선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내어나갈 것이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의 태양으로 높이 솟아 오르신 1912년을 원년으로 하여 주체연호를 제정한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신 민족최대의 명절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제정한다." 이 결정에 따라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49돌 기념일을 계기로 주체연호가 시행을 보게 되었고 해마다 김일성주석님의 탄생을 태양절로 성대히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민족적인 대경사일 뿐 아니라 전인류적인 특기할 대사변입니다. 이 경사, 이 사변을 이루어내신 분은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장군님꼐서는 우리 겨레와 진보적 인류의 염원을 담아 주체연호와 태양절을 제정하도록 하심으로써 주체혁명위업 계승완성의 의지를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
| |
| △우로△ |
|
|
| 2.장군님의 필생의 과제는 조선노동당을 완전무결한 김일성주석님의 당으로 만드는 것 |
| |
|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선노동당을 완전무결한 김일성주석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삼으십니다. 그것은 조선노동당이 주체혁명위업실현을 위한 투쟁에서 참모부이고 향도자이며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당을 지렛대로 하여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떠올리시려는 것이 김정일장군님의 의지이고 방법론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선노동당이라는 지렛대가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이라는 무게를 떠올리자면 그것이 명실공히 완전무결한 김일성주석님의 당으로 되어야 한다고 보십니다. 조선노동당은 세상 사람들 속에 '주체형의 당'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정당인 '토리당'(보수당)과 '휘그당'(자유당)이 출현한 때로부터 300여년, 1847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첫 노동자계급의 정당인 '공산주의자동맹'이 창건된 때로부터 1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기간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소정당 그리고 유명무명의, 각양각색의 정당들의 존멸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정당사에는 이북의 조선노동당과 같은 '주체형의 당'이라는 특수한 체질의 당으로 불리워진 당은 없습니다.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그것을 구현하여 근로민중의 자주위업실현을 위해 투쟁하는 당이라는데서 그렇게 불리워지는 것입니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초기혁명활동시기인 1926년 10월 17일에 조직하신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에 뿌리를 두고 항일무장투쟁시기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준비를 이뤄낸데 기초하여 김일성주석님에 의해 1945년 10월10일에 창건되었습니다. 조선노동당의 향도자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노동당을 그 창건자이시고 영도자이신 김일성주석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체계적으로 벌여오시었습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1960년대 중엽에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문제를 제시하시었고 7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당의 주체사상화 경륜을 밝히시고 주체형의 당건설작업을 더욱 심화시키시었습니다. 여기서 간단히 짚고 넘어간다면 전당을 주체사상화한다는 것은 곧 모든 당원들을 다 김일성주의 정수분자로 만들며 당건설과 당활동을 철저히 김일성주석님의 사상과 이론, 방법에 기초하여 진행해나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조선노동당을 완전무결한 김일성주의 당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조선노동당을 주체형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신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은 1980년 10월에 소집된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역사적인 당대회가 있은 이듬해인 1981년 6월 어느날 일꾼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조선노동당을 주체형의 당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중요 문제들을 제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수령님께서 창건하신 우리 당을 대를 이어 영원히 영광스러운 김일성동지의 당으로 강화발전시켜야 합니다. 노동계급의 당은 본질에 있어서 수령의 당입니다. ... 나는 우리 당을 세대가 바뀌어도 대대손손 영원히 김일성동지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이것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창건하신 조선노동당을 완전무결한 주석님의 당으로 만들며 영원히 빛내어나가는 것을 필생의 과제, 본령으로 내세우고 계시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시대와 역사, 혁명과 민중 앞에 다지시는 엄숙한 맹세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선노동당을 완전무결한 김일성주석님의 당으로 만들기 위하여 전당 주체사상화방침 관철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끄시었습니다. 조선노동당은 당안에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이 꽉 들어차고 주석님의 두리에 전당이 사상의지적으로,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치고 당이 군중 속에 깊이 뿌리박은 필승불패의 강위력한 당으로 강화발전되었습니다. 동구권 나라들에서 서방의 압력과 황색바람에 공산당, 노동당들이 변질되고 무력화되어 하루아침에 사회주의를 말아먹는 충격적 사태가 빚어졌지만 조선노동당은 추호의 동요나 이탈도 없이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백승의 한길로 향도해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나갔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석님 서거후에도 조선노동당을 완전무결한 김일성주석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영원히 빛내이시는 것을 필생의 과제,본령으로 튼튼히 틀어잡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이시었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을 잃은 그 헤아릴 수 없고 가실 수 없는 비애속에서 조선노동당 창건 50돌을 맞으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피눈물을 의지의 펜에 묻혀 저서'조선노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당이다'를 저술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주석님의 한생이 어려있고 주석님의 사상과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주석님의 당임을 세계에 다시한번 각인시키시고 노동당을 영원히 주석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킬 자신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만방에 선포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마음속에 상복을 입고 계시는 그 절통한 나날에 만수대에 높이 모신 김일성주석님의 동상 맞은편 문수거리 한복판에 당창건기념탑을 높이 세우셨습니다. 만수대언덕위에 한손을 높이 드시어 자주의 새세계를 가리키시는 김일성주석님의 동상이 높이 솟아있고 그 손길아래 문수벌에 노동자, 농민,근로인텔리를 상징한 마치와 낫, 붓이 창공높이 솟아있는 당창건기념탑,김일성주석님 서거 이후 김정일장군님께서 맨 처음으로 세우신 이 기념탑은 조선노동당을 창건하시고 영도하신 김일성주석님의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며, 조선노동당을 김일성주석님의 당으로 영원히 강화발전시켜 주석님의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하시려는 장군님의 높은 뜻을 떨치며, 자주의 붉은 노을을 온 누리에 불러오며 오늘도 거연히 서있습니다. |
| |
| △우로△ |
|
|
| 3.장군님의 당면과제는 조국통일 |
| |
|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투쟁을 영도해나가심에 있어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당면과제로 내세우십니다. 금년 7월 이북에서 김일성주석님 서거 3년상을 치르고 발상한 직후였습니다. 이무렵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과 관련한 노작을 연이어 발표하시어 이남민중은 물론 국제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장군님께서는 7월 13일 미국백악관출입기자이며 '아시아뉴스'대표인 재미교포기자 문명자 여사에게 보내신 서한에서 "주석님의 유훈을 받들고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언명하신데 이어 8월 4일에는 저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발표하시어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입장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방도들이 전일적으로 체계화되고 집대성된 조국통일의 3대헌장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 확고한 의지를 피력하신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통일을 주체혁명위업수행에서 당면과제로 내세우시는것은 비단 김일성주석님 서거 이후라는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 대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김일성주석님의 후계자로서의 그분의 비전인 것이고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간직하고 의지로 키워오신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은 누구보다도 분열의 아픔과 고통을 가슴깊이 안고 통일을 바라십니다. 그분의 가슴속에 분열이 민족최대의 불행이고 우리 민족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내어 단일민족으로 존재해야 하며 융성번영해야 한다는 통일의 절박감, 사명감을 부여해주신 분은 김일성주석님과 더불어 위대한 어머님이시었습 니다. 1981년 9월 22일은 장군님의 어머님이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서거 32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을 현지시찰의 길에서 보내고 계셨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한 일꾼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르신 장군님을 위로해드릴 마음으로 어머님의 영구를 모란봉에 안치하던 추도식의 그날을 추억하며 몇마디 말씀을 올렸습니다. 묵묵히 듣고 계시던 그분의 안색은 갑자기 흐려지셨습니다. 그분의 안광에는 무거운 그늘이 비껴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공연히 그분의 가슴속에 서린 마음의 상처를 아프게 해드린 자신을 몹시 후회했습니다. 창가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유심히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처럼 조국통일을 바라신 분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항일투사들이 찾아와 이제는 백두산시절과는 달리 영토도 있고 주권도 서고 나라의 재부도 많은데 옷 한벌쯤이야 왜 못해입으시겠느냐고 간절히 말씀해도 통일이 되어 모든 겨레가 다같이 잘 입고 잘 살 때 우리도 비단옷을 입고 잘 살아보자고 타이르시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늘 조국통일을 먼저 생각하시며 모든 행복을 뒤로 미루시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백두산에서 고생하시던 수령님을 잘 모시자면 빨리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었습니다. 1940년대 말에 어머님으로부터 수령님을 받들어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길데 대한 말씀을 받은 나는 80년대에 들어선 오늘도 아직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일꾼은 자기들이 조국통일사업을 잘 추진하지 못해 그분의 무거운 심려를 덜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자책감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었습니다. "조국통일은 나의 사명입니다. 조국통일은 수령님앞에서 책임진 나의 당면과업입니다." 장군님에게 있어서 조국통일은 겨레의 숙원을 풀어주기 위한 당면과제인 동시에 주석님의 후계자로서 주석님앞에 책임진 당면과제이며 어버님의 유언을 실현하기 위한 당면과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늘 조국통일문제때문에 수령님의 머리에 흰서리가 많이 내렸다, 수령님께서 젊어지시게 하자면 조국통일을 빨리 성취하여 수령님께 기쁨을 드려야 한다고 안타까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때로는 설날에도 조국통일문제로 하루를 보내셨고 자신의 생신날에조차 조국통일사업부문의 일꾼들과 한밤을 지새우셨습니다. 그분께서 조국통일을 위해 지새우신 밤과 걷고 걸으신 길이 그 얼마인지 모르며 조국통일과 관련해하신 말씀과 취하신 조치를 백이나 천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통일의 한길에 충성을 다 바치셨건만 주석님께서 통일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셨으니 그 절통함이 얼마나 크시며 주석님 생전에 통일의 기쁨을 드리지 못했으니 그 한이 얼마나 깊으시겠습니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96년 11월 24일, 그 절통함과 애석함을 가슴에 안고 판문점을 찾으셨습니다. 여러분도 김정일장군님께서 판문점을 시찰하신 소식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불과 20cm폭의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적아가 맞붙어 하루 24시간동안 초긴장상태에 있는 판문점에까지 장군님께서 나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과시 백두산빨치산 아들이신 강인담대하신 그분이 아니고서야 누가 엄두나 낼 수 있는 장거이냐고 모두들 경탄을 금치 못해하지 않았습니까. 또 집권당국은 자기들의 목전에까지 장군님께서 나타나신데 대해 얼마나 기절초풍하고 복닥소동을 피웠습니까. 이날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에 세워져있는 김일성주석님의 통일친필비부터 찾으셨다고 합니다. 친필비에는 주석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순간에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에 친필비준하신 "김일성 1994.7.7."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경건한 자세로 친필을 우러르며 김일성주석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이룩하신 업적과 노고를 깊이 돌이켜 보시면서 말씀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수령님의 염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합니다. …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철의 의지를 담은 장군님의 말씀은 주석님의 친필비앞에서 다지시는 거룩한 맹세였으며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온 겨레앞에 하시는 위대한 선언이었으며 내외의 반통일세력에게 내리는 준엄한 선고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이남민중은 통일이 금시 이루어질 것만 같아 가슴부풀은 일을 여러번 겪었습니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었을 때가 그러했고 또 91년 1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을 때 특히는 94년7월 초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통일의 구성으로 우러러 마지 않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성큼 이 땅에 내려서실 그날을 기다릴 때가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시고보니 이제 통일은 썰물에 밀려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보낸 쪽배인듯 좌절감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님께서 최근연간에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의지를 더욱 굳히시며 통일의 밝은 전망을 환히 열어주시니 그것은 정녕 민족사적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특히 이번에 김정일장군님의 저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 접하면서 장군님이시야말로 주석님께서 그 기초를 닦아놓으신 민족통일의 위업을 완성하실 통일의 구성이시라는 신뢰감을 깊이 갖게 되었습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장군님의 이 저작을 통해 통일에 관한 정치지도자의 비전이나 의지만이 아니라 근본 원칙과 방도들까지 다 천명된 통일의 설계도를 받아안게 된 것입니다. 조국통일의 근본 원칙과 방도들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조국통일의 3대헌장이 바로 그렇습니다. 조국통일 3대헌장은 어느 것이나 다 주체성과 민족성을 견지 할데 대한 원칙적 요구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또 그것으로 일관되어있습니다. 남북이 7·4공동성명을 통해 확인하고 내외에 엄숙히 선포한 조국통일 3대원칙은 통일을 위한데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민족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근본입장과 근본방도를 제시한 조국통일의 초석입니다. 민족대단결의 목표와 이념적 기초, 단결의 원칙과 방도를 전면적으로 명시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은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공산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무산자이건 유산자이건, 무신론자이건 유신론자이건 누구나 다 통일의 주체적 역량이라는 큰 배에 동승하여 함께 노를 저어가며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정치강령입니다. 통일국가의 전모와 그 실현방도를 밝힌 설계도이기도 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북과 남의 사상과 제도를 서로 용납하는 기초위에서 오직 민족공동체의 이익에 기반하여 나라의 통일을 민족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가장 공정하고 순조롭게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기본방도입니다. 이 조국통일의 3대원칙,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통일을 민족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민족자체의 힘으로 이룩해나가는데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는 백과전서이기에 통일의 대헌장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주통일이 우리 민족의 지향일진대 그것을 확실하게 담보해주는 조국통일3대헌장이야말로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 모두가 받들고 나갈 최선의 통일대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을 통일의 구성으로 높이 받들고 모시는 근본당위가 바로 그분께서 이렇듯 우리 민족통일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우리 겨레를 통일의 한길로 이끌어주시는데 있는 것입니다. 통일은 결코 그 누가 우리 민족에게 은쟁반에 받쳐 안겨줄 선물일 수 없고 오직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모두가 주인이 되어 민족 자체의 힘으로 이루어내야 할 민족자주위업입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통일의 주인으로서 주인구실을 해야 한다는 자세와 입장,사명감을 깊이 간직하고 통일을 당면과제로 내세우고 우리 겨레를 이끌어주시는 김정일장군님을 받들어 통일의 한길에 힘있게 나서야 할줄로 압니다. |
| |
| △우로△ |
|
|
| 4.장군님의 사명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 충실하는 것 |
| |
| 얼마전에 저는 미국에 사는 한 교포지식인을 만나 금년 7월 방북하여 김일성주석님 서거 3년상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김정일장군님의 하늘에 닿은 충성에 받들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우리 민족과 인류의 태양으로 영생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거 한돌 때에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생애의 마지막 시기 오랫동안 계시면서 집무를 보신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잘 꾸리게 하고 여기에 김일성주석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정중히 모시도록 하시었으며 김일성주석님을 찾아뵙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최신식의 훌륭한 궤도전차가 달리고 궁전앞 마당을 광장으로 변모시키셨는가 하면 서거 두돌때에는 궁전앞 광장의 규모를 크게 확장하여 훌륭히 건설하게 하시었으며 주변에 풍치림구역을 형성하고 김일성주석님을 찾아뵙는 사람들이 여름에는 비바람과 뙤약볕을 받지 않고 겨울에는 눈바람과 추위를 겪지 않게 대규모 궁전외랑을 건설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의 서거 세돌때에는 궁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욱 경건하게 김일성주석님을 찾아뵙도록 궁전외랑에 장거리 수평승강기를 놓게 하시었는가 하면 금수산기념궁전이 있는 금성거리 입구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새긴 대형 영생탑을 일떠세우도록 하시고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을 크게 확장하는 등 그 면모를 보다 일신시키시었다고 합니다. 금수삼기념궁전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김정일장군님께서 김일성주석님을 생전시에도 잘 모시었지만 서거 이후에 더 잘 모시는데 대해 한결같이 감탄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장군님의 충성심은 역사가 알지 못하는 최상의 경지에 이른 충성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금수산기념궁전을 통해본 김정일장군님의 충성은 단순히 부자지간의 도리에 바탕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민족의 영수에 대한 입장과 관점이 있고 나라와 민족의 존망에 대한 책임감, 사명감이 놓여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김일성주석님을 잘 모시는 것이 곧 주석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하는 길이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떨치며 융성번영을 이루어나가는 길이라는 것, 이것이 김정일장군님의 신념이고 의지인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이러한 신념과 의지는 김일성주석님께 충실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내세우시는 것으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충실하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이것은 김정일장군님께서 하신 뜻깊은 말씀입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사명이라 할 때 그것은 주체혁명위업계승의 대권자로서 시대와 역사 앞에 부여받으신 기본임무를 뜻하겠습니다. 이것은 주체혁명위업계승의 대권자로서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그것을 주체혁명위업의 창업자이신 김일성주석님께 충실하는 것으로 지향시키고 오로지 주석님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하여 모든 일을 전개해나가는 것을 철칙으로 삼으시려는 장군님의 의지의 표명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이 후계자로 공식추대되신 직후인 1974년 4월 14일에 김일성주석님을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는데서 표척으로 삼을 제 원칙을 새롭게 제시하시면서 여기에 주석님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혁명가들의 가장 기본적인 품성으로 규정하시었으며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성을 충실성의 기본징표로 제시하시고 충실성의 산모범을 보이시었습니다. 1975년 1월 1일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이 없다면 김정일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무렵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한 일꾼이 김정일장군님께 사업보고를 드리면서 조국방문 해외교포인사가 제기하여온 문제를 말씀드리었습니다. 그는 머지 않아 귀로에 오르게 되는데 떠나기에 앞서 장군님을 꼭 만나뵙고야 떠나겠다고 간절히 청원했던 것입니다. 일꾼은 그 인사가 너무도 간절히 청원하는데 편승해 다문 얼마간만이라도 만나주시어 그의 소원을 풀어주시었으면 하는 자기의 의향을 덧붙여 말씀드리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일꾼은 그분께서 대번에 사양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를 만나주시려는가보다 하고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생각깊은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만나겠다는 심정을 알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난감한 기색으로 앉아있는 일꾼을 한참이나 여겨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시고 말씀을 이으시었습니다. "나도 그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동무는 얼마전에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지 않았습니까. 수령님을 만나뵈온 그 인상이 그의 골수에 영원히 새겨져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그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의 처지에 비추어 하늘에 하나의 태양이 있듯이 이 세상에 오직 수령님 한분만이 계신다는 것을 그가 알면 그만입니다. 수령님을 만나뵈온 그를 내가 열렬히 축하한다고 전달해주시오." 장군님의 말씀과 의도를 전달받은 그 인사는 너무도 큰 감동에 젖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백골이 진토되어도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뵈온 그 영광을 잊지 않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께서는 위대한 주석님의 접견을 받은 그 행운의 시각을 저의 골수에 영원히 새겨주시었습니다. 저는 위대한 주석님을 뵈온 감격과 함께 위대한 후계자를 모신 행복과 흥분을 동시에 안고 길을 떠납니다. 하늘에 태양이 있듯이 이 세상에 주석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저는 한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오로지 주석님의 권위를 최상의 높이에 이르게 하시고자 언제 어디서나 주석님만을 내세우셨지 자신에 대해서는 무한히 낮추셨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보통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석님에 대한 장군님의 충실성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가를 폐부로 느끼게 하는 숭고한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충실성이야말로 김정일장군님의 최고인격을 특징짓는 풍모중의 기본풍모입니다.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충실성은 또한 가장 숭고하고 순결한 충실성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비범한 사상이론활동과 정력적인 혁명실천, 숭고한 덕성의 기초에는 주석님에 대한 깨끗한 충실성이 놓여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한권의 저술을 하셔도 주석님의 사상을 빛내이시는데 그 목적을 두고 계시고 한 단위를 열정적으로 지도하셔도 창조와 기적으로 주석님께 기쁨을 드리시는데 그 지향점을 두시었으며 어느 한 전사를 사랑의 품에 안아주셔도 주석님의 사랑의 온기가 따뜻이 스며들도록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 하시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씀과 취하시는 하나하나의 조치, 옮기시는 매 걸음의 자국 자국에서 주석님에 대한 순결한 충실성의 맥박이 넘치고 있습니다. 주석님을 높이 우러러 모시는 충실성, 장군님께서는 바로 여기로부터 모든 것을 출발하시고 바로 여기에 모든 것을 귀착시키십니다. 주석님의 기쁨과 만족은 장군님께 있어서 최상의 행복이고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주석님의 안녕과 만수무강은 그분께 있어서 최대의 사명이며 지상의 기쁨이었습니다. 장군님의 모든 사고와 활동의 지향점은 바로 주석님의 기쁨과 만족, 안녕과 만수무강에 바쳐졌습니다. 실로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열화같은 충실성은 국제공산주의운동사상 그 어느 후계자나 그 어떤 혁명가도 지녀본적이 없는 가장 숭엄하고 순결한 충실성의 결정입니다. 세계 정치사에는 후계자들이 자기의 수령에게 충실했던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영도자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주석님에 대한 충실성은 그 높이와 순결도에 있어서, 그 폭과 심도에 있어서, 그 불변성과 강도에 있어서 일찍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고결한 충실성이며 전혀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최고봉의 충실성입니다. 진정 김정일장군님은 역사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 충성의 구감이시고 최고정화이시며 전무후무한 충신사표이십니다. |
| |
| △우로△ |
|
|
| 5.장군님의 보람은 김일성주석님의 높은 뜻을 이 땅위에 하루빨리 꽃피워나가는 것 |
| |
|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무한한 충실성의 기저에는 장군님의 숭고한 인생관이 놓여있습니다. 1975년 2월 어느날 저녘에 있는 일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한 일군은 장군님의 집무실에 들어서기는 했으나 인차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몹시 바쁘게 시간을 보내시는 장군님께 힘겹게 말머리를 떼더니 아침에 현지지도를 떠나시는 길에 김일성주석님께서 주신 교시를 전달해드렸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조직비서가 지금처럼 밤늦게까지 일하면 건강이 인차 나빠질 수있다, 사람이 무쇠가 아닌 이상 밤3시, 4시까지 일하고서는 견디어낼 수 없다, 물론 조직비서가 나의 사업부담을 덜어주자고 그러는줄 나도 알고있다, 하지만 혁명이란 하루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 혁명앞에는 아직 멀고 험한 길이 놓여있지 않는가, 그런 것만큼 건강해야 혁명을 끝까지 잘할 수 있지 몸이 아프면 마음뿐이지 일을 많이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꾼은 주석님의 그 안타까워하시는 심정을 전해드리면서 정말 장군님께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돌려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을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신중히 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령님께서 나의 건강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한평생 피바다, 불바다를 헤쳐오시고 험한 가시덤불길을 헤쳐오신 수령님의 노고를 아직 덜어드리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자기 한몸을 먼저 생각한단 말입니까.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신 수령님의 높은 뜻을 이 땅위에 하루빨리 꽃피워나가는 보람찬 투쟁 속에 한몸바치는 것이 나의 보람입니다." 장군님의 삶의 보람의 숭고함과 그 높이가 가슴후덥게 안겨오는 말씀이 아닐수 없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삶의 모든 표척을 오로지 김일성주석님의 높으신 뜻에 맞추시고 그 실현을 위해 모든 정력과 노고를 다 바치는데서 삶의 보람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람있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있게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그 생각이 각이합니다. 어떤 사람은 치부와 기업의 성공을, 어떤 사람은 입신출세를 또 어떤 사람은 위훈과 공명을 떨치는 것을 보람있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가는 혁명에 한몸바쳐 싸우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다르게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인생관 이 각이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삶의 보람의 기저에 놓으시는 김일성주석님의 높으신 뜻이란 백두산에서 그 창업의 기치를 높이 드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주석님의 혁명전사는 주석님의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고 완성하는데 삶의 목적과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 장군님의 인생관입니다. 그러므로 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의 주체혁명위업을 이 땅위에 하루빨리 꽃피우기 위한 투쟁에 한몸바치는 것을 자신의 삶의 보람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잠도 휴식도 잊으시고 새벽3시, 4시까지 일하시는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몸을 돌보며 일할데 대한 김일성주석님의 교시를 전달하는 일꾼에게 이렇게 심중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 없이 오래 살아서는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비록 한순간을 살아도 수령님의 전사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수령님의 노고와 심려를 덜어드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주체의 혁명위업에 몸바쳐나선 혁명가의 신념이며 생활관입니다." 장군님의 인생관이야말로 김일성주석님께 끝없이 충직한 후계자, 주석님의 참된 혁명전사의 인생관입니다. 바로 이런 인생관을 지니신 장군님이시기에 주석님의 주체혁명위업완성을 총적목표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에 모든 것을 다 바치시는데서 삶의 보람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 * 일인지계는 일년지계이고 가정지계는 십년지계이며 국가지계는 백년지계라 했습니다. 국가지계의 중대함을 이르는 말이겠습니다. 수령의 대를 잇는 후계자의 본령은 국가지계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김일성주석님의 주체혁명위업완성을 본령으로 내세우셨으니 주석님께서 백두산에서 그 기치를 높이 드신 자주의 창업은 대를 이어 빛나게 완성되어나갈 것이며 우리 민족은 기어이 통일을 이룩하고 자주민족으로 무궁번영할 것입니다.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은 김일성주석님과 그 위업에 끝없이 충직하신 충신중의 충신,위인중의 위인이라 격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 |
| △우로△ |
|
|
| 6.장군님의 특징은 사상론자 |
| |
| "나는 사상론자입니다. 사상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김정일장군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은 철저한 사상론자이십니다. 사람의 활동에서 사상이 기본이라는 것이 사상론의 요체입니다. 이것은 사회변혁운동에서 사람들의 사상이 기본이며 사람들의 사상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상론을 주장하시는데서 사상이론가로서의 김정일장군님의 비범성을 보게 됩니다. 위대한 사상이론가가 아니고서는 사상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그렇듯 독특한 견해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찍이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철학의 세계에 깊이 파묻혀 그것을 연구하시는 과정에 사상을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의 무기로 파악하시면서 중요하게 문화일반으로부터 사상을 분리해내시고 사람의 사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상론을 내놓으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사람들의 사상이 기본이고 사람들의 사상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혁명과 건설에서 사상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나가면 승리하고 사상을 놓치면 실패를 면치 못한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는 역사적 과정을 놓고 보아도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먼저 사회주의 사상이 나오고 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혁명적 당을 조직하고 당이 인민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사회주의정권을 세우며 그다음 사회주의 정권에 의거하여 사회주의 경제제도를 수립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무슨 일에서나 그러하지만 조국통일과 같은 첨예한 민족문제해결에서도 사상이 결정적 작용을 한다고 보십니다. 그분께서는 물질적 힘이 아니라 사상의 위력에 의하여 그 승리가 결정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도 사상론을 주장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위대한 사상,위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은 자기의 사상이 없고 철학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누가 승리자가이고 누가 패배자인가 하는 것은 이미 결정된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요인도 사상론의 견지에서 분석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 저작에서 역사적 경험은 사상이 변질될 때 노동계급의 당도 사회주의 제도도 변질되고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안에서 배신자들이 나오고 당이 조직사상적으로 와해된 것도, 민심이 변한것도 사상의 변질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상이 변질되면 강대한 경제력과 군사력도 맥을 추지 못하게 되고 수십년의 발전과정을 거쳐온 사회주의 제도도 허물어지기 마련이라고 하시면서 사회주의는 사상을 틀어쥐면 승리하고 사상을 놓치면 망한다는 것이 역사에 의해 확증된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사상론자로서의 특징은 사상론을 정치방식에 구현하여 사상중시의 정치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시는데서 여실히 나타납니다. 장군님께서는 경제건설에서도 그리고 조국통일사업에서도 그렇게 하시며 사회주의 사상진지를 고수하고 튼튼히 다져나가는 것으로 오늘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 반공화국 압살소동을 짓부수고 이북의 주체사회주의를 고수하십니다. 1993년 8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노동신문사를 찾으시어 이곳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복잡하고 긴장한 정세 속에서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사회주의 위업을 완성하자면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당의 두리에 더욱 굳게 묶어세워야 하며 사회주의 건설을 힘있께 다그쳐야 합니다. 여기에서 당보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날 당보가 변천된 환경의 요구에 맞게 내부교양에 힘을 넣으며 사람들을 주체사상, 사회주의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킬데 대한 문제로부터 지하막장에서 일하는 탄부들, 어려운 환경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신념과 지조를 확고히 지킬 수 있는 정신적 양식을 잘 줄데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가르치시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당시 내외정세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사상사업을 더욱 힘있게 벌여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사상진지를 강화하여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배신자들의 악랄한 반동적 사상공세를 단호히 격파하고 사회주의 위업을 고수하시려는 철의 의지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지를 장군님께서 1995년 6월 19일 역사적 노작 '사상사업을 앞세우는 것은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필수적 요구이다'를 발표하신 사실에서도 찾아보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노작에서 사상사업을 어떻게 하고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어떻게 준비시키는가 하는데 사회주의의 공고발전과 그 운명이 달려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상사업을 앞세우고 끊임없이 심화시켜야 사회의 정치사상적 통일을 보장할 수 있고 동지적 단결과 협조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사회관계를 강화발전시킬 수 있으며 사회주의 경제건설도 성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사회주의 사상진지를 튼튼히 다져야 사회주의가 정치, 경제,문화, 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불패의 위력을 지니게 할 수 있다고 하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노작에서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사상사업의 기본임무와 조선노동당의 사상교양사업의 기본내용, 사상사업의 원칙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신 다음 사상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사상사업을 확고히 앞세우는 것이 조선노동당이 일관하게 견지하고 있는 원칙임을 밝히시고 앞으로도 사상사업을 강화하고 모든 사업에 사상사업을 앞세우는 원칙을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주체의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고수하고 빛나게 완성해나갈 의지를 피력하시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이 노작은 사회주의에 대한 온갖 도전 속에서도 주체사회주의를 굳건히 고수하고 빛내어나가고 있는 오늘의 경이적인 이북 현실을 우리가 장군님의 사상론에 기초하여 이해하는데서 필수 교본으로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인은 여러분들이 장군님의 이 불후의 고전적 노작을 필독하기를 굳이 권고하는 바이며 아울러 사상론이 구현된 이북의 참모습의 일단을 보여주는 한가지 자료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이북의 자연재해지대로 널리 알려져있는 황해북도 은파군을 돌아본 외국인 지자들과 재미교포 여류기자 문명자의 기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은파군은 1995년의 대홍수와 96년의 수해, 올해의 왕가물로 연 3년째 계속되는 자연재해를 겪어옵니다. 은파군의 수해만 하더라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재난을 이곳 사람들에게 들씌웠습니다. 수해현장을 돌아본 한 외국기자가 "바다가 된 재령평야에 소도 못 먹는 썩은 벼만… 평야가 바다로 변하고 콘크리트다리의 절반이 유실되고 인민학교(초등학교)가 온데간데 없어지고 포플라들이 뿌리채 뽑혔다. …그야말로 폐허였다."라고 쓴바와 같이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마시지고 떠내려갔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잃고 가산을 잃고 졸지에 바깥에 나앉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에는 비관의 빛이 전혀 없었고 자기들의 생활걱정, 앞날 걱정을 하는 사람을 단 한사람도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국제기구의 한 성원이 초구리에 사는 장현비(74세)노인과 나눈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일곱식구가 사는 노인집을 찾아갔을 때 모든 것이 떠내려갔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 작정인가고 동정어린 어조로 물으니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 다고 합니다. "걱정이 무엇이겠소. 우리 장군님꼐서 계시는데 이쯤한 수해가 무슨 큰 일이겠소. 집도 잃고 가산도 잃어버렸지만 우리 장군님께서 다 돌보아주기 때문에 이제 집도 생기고 재산도 생기고 우리가 더 잘 살게 되는 것을 두고보시오." 노인의 이 소박한 대답은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은파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런 마음을 안고 수해복구에 떨쳐나서 제손으로 재난을 가셨습니다. 그들은 짧은 기간에 수해피해를 와닥닥 가셔내고 전보다 더 훌륭한 집을, 더 튼튼한 제방을, 더 번듯한 도로와 다리를, 수많은 구조물들을 건설해놓았다고 합니다. 은파군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또 얼마나 순결하고 숭고한지 모릅니다. 은파군 양동협동농장 7작업반 농민들의 애국적 소행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수해로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낟알을 거두어들이고 한자리에 모여앉았다고 합니다. 한해 농사를 결산하는 모임에서 그들은 자기들의 호구지책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식량난을 겪는 나라일을 걱정했습니다. 한 여인이 먼저 자기집 죽솥에 물 한두사발을 더 부을셈치고 분배받은 낟알가운데서 얼마를 나라에 애국미로 바쳐 인민들의 생활을 두고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겠노라고 토론했습니다. 그러자 온 작업반 농민들이 너도 나도 호응해나와 12t의 애국미를 마련해가지고 여러대의 자동차에 싣고 평양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어려운 식량사정으로 말하면 나라에 손을 내밀어야 할 그들인데 오히려 나라의 형편을 먼저 생각하며 나라에 보탬을 주었으니 그들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높은 것입니까.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지난해 수해때 큰물이 너무도 갑자기 들이닥쳐 사람들은 가산을 어쩔 사이도 없었지만 홍수경보가 울리자 집들과 학교, 기관들에 모신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초상화만은 정중히 모시고 안전지대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속에 이런 사실을 현지에서 확인한 재미교포 여류기자의 취재기를 잡지 '말'에서 본 이들이 있으리라고 봅니다만 그는 이 글에서 은파의 수해민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영도자님의 초상화를 구원한 사실은 차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미담이라고 하면서 이북을 비방중상하는 서방의 여론과 이남집권자들의 궤변의 황당함을 반론했습니다. 이북동포들의 높은 사상정신상태와 그 순결도를 말해주는 이런 이야기는 은파땅 그 어디에 가봐도 수많이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밤에 본인이 은파땅의 이야기를 길게 소해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이야기속에 김정일장군님의 사상론의 위대한 생활력, 생명력이 깃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상론은 성공과 승리의 보검입니다. 사상론을 보검으로 삼고 혁명과 건설을 백승의 길로 영도하시는 김정일장군님은 인류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 위대한영도자, 희세의 탁월한 정치가이십니다. |
| |
| △우로△ |
|
|
| 7.장군님의 정치는 인덕정치, 광폭정치 |
| |
| 세계 정치사의 갈피를 뒤적여보면 굉장히 많은 정치형태들이 잡혀지는데 그것은 대체로 다수를 위한 정치인가 소수를 위한 정치인가 그리고 선정인가 악정인가 하는 것으로 대별해볼 수 있습니다. 민주정치, 선정에 대한 사람들의 숙망이 그 지저에 놓여있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정치, 선정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민중이 참삶을 누리게 하는 정치를 의미합니다. 착취사회에서는 이러한 민주정치, 선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민중을 위한 참다운 정치가 결코 베풀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일성주석님과 더불어 김정일장군님의 정치에서 인류의 오랜 지향이 구현된 참다운 민주정치, 선정을 보게 됩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정치는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인덕정치, 광폭정치로 특징지어집니다. 인간,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그분의 인덕정치,광폭정치의 원리입니다. 옛날에도 인덕정치란 말은 있었습니다. 공자는 무력이나 권모로 공리를 오로지 하는 패도를 반대하고 인덕을 근본으로 하는 왕도의 정치사상을 내놓았으며 묵자도 하느님이 만백성을 똑같이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자는 겸애교리설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나라 이조시기의 정치가이며 학자인 송시열도 "봉건왕조정치는 오직 행복의 원천"이라고 하면서 봉건왕도정치를 신성한 것으로 정당화했습니다. 이것을 표방해 동서의 통치자들 가운데는 '선정'과 '덕치'를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다 민중의 불만과 반항을 무마하고 전제정치를 유지공고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참다운 인덕정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해 비로소 이북땅에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정치, 인덕정치는 사람, 근로민중을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로 보고 사람, 근로민중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람중심,민중중심의 철학적, 원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장군님의 사랑의 정치는 민중이 나라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가장 존엄있게,가치있게 살도록 하는 정치이고 민중이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누리도록 끊임없는 배려를 베풀어주는 정치입니다. 장군님의 믿음의 정치는 민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힘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민중을 믿고 그에 의거해 모든 문제 를 풀어나가는 정치입니다. 제가 김정일장군님의 인덕정치, 광폭정치의 일단을 보여주는 에콰토르 '볼룬타드'출판사 사장 움베르토 오르티스 플로레스의 회상실기 '인민에 대한 숭배사상과 조선의 사회주의'의 한대목을 옮기겠습니다. "나는 평양의 어느 한 중앙병원을 돌아본 일이 있었는데 이곳 병원원장은 나에게 한장의 두툼한 병력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평양으로부터 수백Km나 멀리 떨어져있는 함경남도 단천돌광산 노동자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중태에 빠져있었다. 단천시병원에서 최대구급치료대책을 세웠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지금은 노동자들을 가장 내세워야 하는 세상인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를 소생시켜야 한다고 하시며 조선인민군 공군부대의 직승기를 띄우게 하시었다. 그런데 환자를 태우고 오던 직승기가 예상외의 기상변동으로 도중에 착륙하게 되었다. 영도자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고 평양민항에서 불리한 기상조건에서도 비행할 수 있는 대형여객기를 동원하도록 긴급대책을 세워주시었다. 그런데 그날은 5·1절 명절이어서 비행기 승조원들이 모두 휴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그대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만 취할 수 있는 비상조치를 취하여 대형여객기를 띄워 보내게 되었다. 한 노동자의 생명을 위해서 대형여객기를 띄워보낸 이 신화와 같은 이야기는 인민을 무한히 귀중히 여기시는 김정일영도자께서만이 취하실 수 있는 조치였다. 그리하여 죽음의 계선에서 헤매던 노동자가 의식을 회복하고 대지를 활보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 병력서에는 계속 다음과 같이 씌어있었다. 환자치료를 위하여 무어진 의료집단의 구성 원사, 교수, 박사, 학사 10여명 의사, 간호원 10여명 환자치료에 사용된 약품의 종류 사향, 광폭항생제를 비롯한 고가약 72종 환자에게 수혈한 피 근 6ℓ(사람의 몸에 5ℓ의 피가 있다.) 달러로 환산한 총 치료비 약 15만달러…" 1984년에 이남에서 큰 수해가 나서 20여만의 이재민이 났을 때 미국과 일본이 구제금으로 준 돈이 도합 12만달러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김정일장군님께서 한 노동자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배려를 돌리셨는가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너무도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이남에 사는 사람들은 최덕신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줄로 압니다. 북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남정부의 외무부장관을 지내고 군장성으로, 종교계의 지도급 인물로 있던 최덕신이 인생말년에 이르러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품에 안기고서야 죄많았던 인생마무리를 잘 지었다든가 이러저러하게 이북에 죄를 지은 사람들의 일가족이나 후대들이 아무런 차별없이 복된 삶을 누리고 있는 등 이런 이야기는 끝이 없이 많습니다. 저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폭과 깊이에 대해서 최근에 발표된 저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서 김일성주석님의 민족대단결 경륜인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그대로 수용하시어 자기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고 조국과 민족의운명에 대하여 걱정하는 사람은 북에서 살건 남에서 살건 해외에서 살건 모두다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 계급과 계층의 차이에 관계없이 조국통일의 기치아래 굳게 단결할 것을 주장하시며 이렇게 언급하시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적 양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상과 신앙을 가졌건 또 그가 자본가이건 군장성이건 집권상층에 있건 관계하지 않고 함께 손잡고 나갈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민족의 편에 돌아선다면 과거를 백지화하고 관용으로 대하며 그와 단결할 것이다." 정녕 민족대단결을 위한 김정일장군님의 경륜은 애국, 애족, 애민의 광폭정치인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정치인 인덕정치, 광폭정치는 이북민중뿐아니라 우리 이남민중 아니 온 겨레를 한품에 안아 그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며 찬란한 미래에로 이끌어주는 참정치라 할 것입니다. |
| |
| △우로△ |
|
|
| 8.장군님이 숭배하는 가장 위대한 스승은 민중 |
| |
| "나는 인민대중을 위대한 스승으로 숭배합니다." 이것은 김정일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민중'이란 말이 언제 생겨난지는 딱히 말할 수 없지만 노예사회에서는 노예와 평민이, 봉건사회에서는 농노,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민중이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계급과 농민이 기본이 되어 민중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급사회에서 민중은 언제나 피지배, 피착취 계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 착취자들은 민중을 '천한 자들', '무식하고 우매한 자들'로 무시하고 천대합니다. 지금 우리 이남사회에도 민중에 대한 이런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계급, 계층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중을 '위대한 스승'이라고 존중하십니다. 장군님께서는 왜 민중을 위대한 스승으로 존중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어느해 여름 장군님께서는 한 산간지대 협동농장앞을 지나시다가 유별나게 잘된 논벼작황을 보시고 한 나이지숙한 농장원에게 어떻게 되어 이런 좋은 작황을 마련하였는가고 물으셨습니다. 농장원은 샘줄기들이 많아 냉해를 받는 자기 고장 논들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래서 올벼종자를 심고 물도랑을 길게 째서 물을 덥힌 다음 논에 대주거나 그럴 수 없는 곳에서는 물웅덩이를 만들어 오랫동안 물을 잡았다가 논에 대주고 있다고 말씀올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농민들을 산간지대의 농사에 밝은 선생님들이라고 격찬하셨습니다. 그날저녁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그 협동농장의 논농사경험을 전국의 산간지대에 일반화할데 대한 과제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은 훌륭한 학교이며 인민대중은 선생입니다. 내가 인민대중을 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인민대중이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며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개조하면서 흘러온 인류력사는 인민대중의 힘과 지혜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인민대중의 힘보다 더 큰 힘은 없으며 인민대중의 지혜보다 더 슬기로운 것은 없습니다. 나는 인민대중을 위대한 스승으로 숭배합니다. 나는 인민대중의 사랑받는 아들이 되기 위하여 한평생 머리를 숙이고 인민들로부터 배울 결심입니다. 이것은 나의 좌우명입니다. 동무들이 나를 천재라고 하는데 원래 타고난 천재란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아는 것이 있다면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도 인민들 속에 들어가 그들에게서 열심히 배운 결과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뜨거운 말씀입니다. 과연 동서고금의 어느 나라 역사에 민중을 스승으로 숭배하고 그들 속에 들어가서 배운 그런 지도자가 있었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김정일장군님은 민중에 대한 비범한 견식과 투철한 안목,숭고한 민중적 풍모를 지니신 위대한 민중의 영도자, 희세의 민중정치가이시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영도하심에 있어서 걸리는 문제가 있으면 늘 민중들 속에 들어가 그 해결책을 찾으시고 민중의 힘과 지혜에 의거하여 풀어나가십니다. 언제인가 평양시에서 교통이 긴장하여 버스정류소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군 했다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해당 부문 일꾼을 부르시어 토의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통한 묘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군님께서 일꾼더러 아무래도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조언을 받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말씀에 일꾼은 여객운수문제를 전공하는 학계의 노교수들을 떠올리며 따라나섰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일꾼을 데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시었습니다. 버스안은 손님들로 붐비었습니다. 손님들은 버스가 좀 자주 다녔으면 좋겠다고 저마다 한마다씩 했습니다. 운전사도 안타까운 자기들의 심정을 알아달라는듯 부속품들이 보장되지 않아 고장난 버스를 제때에 수리할 수 없는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손님들과 운전사들의 말을 유심히 들으시던 그분께서는 어느한 정류소에 내리시어 김일성종합대학쪽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타셨습니다. 동행한 일꾼은 그분께서 대학의 교수들을 찾아가시려는가부다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점에서 내리신 그분께서는 뜻밖에도 대학쪽이 아니라 주차장쪽으로 향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는 수리공들이 고장난 버스들을 수리하면서 주고 받는 말소리가 도간도간 들려왔습니다. 고장난 버스들을 단번에 살려낼 신통한 방도가 없겠는가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큰 공장, 기업소들에서 몇대씩 수리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고 수리기지를 꾸리면 자체로 부속품들을 깎을 수 있다는 의견도 들렸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시며 사색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일꾼더러 이제는 밤도 깊었는데 사무실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은 11시가 가까워오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그 일꾼은 버스운행시간이 마감되기 때문에 예정했던 교수들을 만나는 일을 미루시는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분을 따라 청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온지 몇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이었습니다. 장군님의 부름을 받고 그가 집무실에 가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았는데 참고되겠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하나의 문건을 넘겨주셨습니다. 그 문건을 받아든 일꾼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문건에는 당분간 시안의 공장, 기업소들이 버스사업소들을 하나씩 맡아 고장난 버스를 되살려낼데 대한 문제, 수리기지들을 꾸릴데 대한 문제, 출퇴근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절할데 대한 문제 등 긴장한 여객수송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안이 세워져있었습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하던 문제를 순간에 다 풀게 된 일꾼이 환희에 넘쳐 장군님을 우러르자 그분께서는 스승의 생각을 그대로 글줄에 옮겼을 따름이라고 겸허하게 말씀하시면서 어젯밤에 만났던 분들이 자신께서 '가장 숭배하는 스승'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그 일꾼은 그분꼐서 조언을 받겠다고 하시던 선생님들이 머리흰 교수들이 아니라 어데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소박하고 근면한 근로자들이었으며 그분께서 걸으신 걸음이 바로 군중의 목소리를 들으시려고 떠나신 걸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 삼국시기 위나라의 조조에게 쫓겨난 한 왕실의 유비는 재사이며 모사인 제갈양의 지혜와 계략을 써서 나라를 수복하기 위해 그를 세번이나 찾아가서 애원했다고 합니다. 구두쟁이 셋이 모이면 제갈양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이 제갈양이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민중들의 지혜보다는 못합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민중들 속에 들어가서 민중들에게서 힘과 지혜를 얻으시고 문제해결의 묘책을 찾으시니 그분의 정치가 성공만을 거두시는 것은 필연지사인 것입니다. 민중을 스승으로 여기시고 민중에게서 배우며 문제해결의 방도를 찾아내시는 것은 김정일장군님의 영도풍모이며 기본영도방법입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민중적 영도풍모와 탁월한 민중적 영도방법을 재삼심장과 뇌리에 각인하기 위해 장군님의 금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선생이며 모든 것의 창조자이다." "이 세상에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인민대중이다." "개인의 힘은 제한되어있지만 인민대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지도자는 지혜도 영도력도 덕성도 인민대중 속에서 체득하게 된다." "기적은 하늘이 준 우연이 아니라 인민들이 준 필연이다." |
| |
| △우로△ |
|
|
| 9.장군님의 생활신조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
| |
| 민중을 위해 복무하고 모든 노선과 정책을 민중을 위한 것으로 일관시키는것은 조선노동당의 고유한 활동원칙, 사업원칙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에 맞게 일꾼들이 언제나 군중 속에 들어가 군중에게서 배우며 민중을 위해 복무하는 것을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내세워오셨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는 새해 첫날에는 조선노동당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정치슬로건을 전면에 추켜들고나갈데 대해 강조하시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의미에서 출발한 문제의 제기였습니다. 90년대를 향한 조선노동당의 중요한 결심의 피력이었던 것입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정치슬로건에 함축된 것은 주체형의 당인 조선노동당의 투쟁 목적과 사명이 곧 민중을 위해 복무하는데 있다는 것, 따라서 당일꾼들과 행정경제일꾼들 모두가 민중의 심부름꾼, 충복이라는 높은 자각과 사명감을 가지고 언제나 민중을 위해 충실히 복무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동유럽의 여러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가 집권당이 민중을 위해 복무하는 당으로가 아니라 관료당, 권력당으로 변질된데서 자초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김정일장군님께서 조선노동당으로 하여금 민중에 대한 복무의 슬로건을 전명에 추켜들게 하신 것은 참으로 의미깊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중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민중의 이익을 첫자리에 놓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일꾼들은 장군님께 올리는 일보의 마지막에 어느 한 지방에서 성냥이 떨어진 사실을 간단히 한줄 써넣었습니다. 그들이 성냥문제를 일보의 마지막에 써넣은 것은 성냥문제 같은 것은 장군님께서 돌보시는 대해 같은 국사를 놓고보면 물방울같이 작은 문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보를 보신 그분께서는 한 일꾼을 급히 부르셔 성냥이나 소금 같은 것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한시도 떨어져서는 안될 필수품인데 어째서 일보의 마지막에 반영하였는가고 추궁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인민생활과 관련된 문제,인민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문제는 그것이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관계없이 일보의 첫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인민들의 생활과 관련된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날 장군님의 첫 일과는 성냥생산문제를 푸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후부터 그분께 올리는 일보의 첫자리에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대외관계 문제에 앞서 민중생활과 관련된 문제가 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장군님께서는 민중의 이익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그것을 철저히 옹호실현하기 위해 활동하십니다. 민중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은 또한 민중들에게 최상의 행복을 안겨주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바치는 것입니다. 민중에게 최상의 행복을 안겨주시려는 것은 장군님의 가장 큰 숙망이며 철석 같은 의지입니다. 그러기에 장군님께서는 민중에게 무엇을 하나 주셔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주시고 색다른 것을 보셔도 먼저 민중들부터 생각하시며 민중을 위해서라면 억만금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1976년 11월 하순 어느날이었습니다. 새로 꾸릴 유희공원설계를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설계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관성열차 선로의 길이가 얼마입니까?" "1,350m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긴 것은 얼마입니까?" "우리들이 설계한 것과 같습니다. 1,350m입니다." "1,350m가 제일 길단 말이지요. 1,350m라…"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는 나는 우리 인민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큰 유희기구를 만들어줄 구상을 하여왔습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계적으로 제일 긴 것이 1,350m라 해서 그이상 크게 해서 안된다는 법이야 없잖습니까. 이왕이면 관성열차의 선로를 좀더 길게 하여 1,500m로 합시다. 순간 설계자들은 얼굴이 뜨거워오름을 금할 수 없었답니다. 사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어느 한 나라의 관성열차를 보고 부러워한 나머지 그와 꼭 같은 길이로 설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아무리 세계에서 제일 크고 좋은 것이라 해도 민중에게는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을 안겨주어야 한다고, 1,350m의 선로를 가지고 있는 그 나라 사람들도 부러워 바라보게 1,500m의 선로를 가진 관성열차를 만들어 세우라고 하시니 그들이 격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민중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은 또한 민중들 속에 깊이 들어가 민중의 염원과 요구를 잘 알고 그것을 실현해주며 민중의 사업과 생활을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따뜻이 보살펴주는 것입니다. 이북에 '인민행 열차를 탄다'는 말이 있습니다.'인민행 열차를 탄다'는 말은 김일성주석님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쓰신 바와 같이 1920년대 후반기 길림육문중학교를 다니실 때 방학이 되면 부자집 자식들은 유람열차를 타고 놀러다녔지만 자신께서는 인민행 열차를 타시고 민중들 숙에 들어가서 혁명의 씨앗을 뿌리셨다는데서 연유된 말입니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민중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인민행 열차를 탄다'고 말하는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천수만리 인민행 열차를 타시고 전국 방방곡곡의 민중 속에 들어가셔 민생을 요해하시고 지도를 주시는 한편 민중의 사업과 생활을 어버이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십니다. 이것을 '현지지도'라고 합니다. 1975년 7월 장군님께서는 마천령의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검덕광산을 찾으셨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광부들이 광석을 캐는 '4·5갱'이라고 부르는 갱의 막장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 일꾼들은 막장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앞을 막아나섰다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일꾼들에게 갱안에 들어가지 않을 바에야 우리가 무엇때문에 여기에 오겠습니까, 우리의 귀중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아 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들어가보아야 합니다, 광부들을 찾아온 우리들이 막장에도 안들어가고 그냥 돌아가면 그들이 얼마나 섭섭해 하겠습니까, 내 걱정은 말고 들어갑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끝내 광부용 인차를 타시고 굴 속 길을 들어가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시며 광부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셨고 앓는 사람은 없는가, 일이 힘들지 않는가 일일이 물어보시며 건강문제부터 보살피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곳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땅 속의 보물이 아무리 귀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결코 당과 혁명의 가장 귀중한 보배들인 우리 노동계급의 건강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광부들의 생활을 구석구석까지 보살펴주신 장군님께서는 검덕골안의 노동자들을 위해 다층주택을 해마다 수백세대씩 지어주며 버스와 자동차도 보내주고 갱마다 취주악기도 한조씩 보내줄테니 온 광산이 들썩하게 노래를 부르며 쇳돌을 쾅쾅 캐내라고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민중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은 일꾼들이 민중의 충복이라는 확고한 관점을 가지고 민중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인민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이상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간부들은 언제나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듯이 인민들을 생각하여야 하며 인민들에게 하나라고 더 차례지게 하기 위하여 애써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늘 교시하시는 것처럼 자기가 배부를 때 인민들이 배고파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여야 하며 자기가 뜨뜻하게 지낼 때 인민들이 춥게 지내지 않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간부라야 당과 수령에게 충실할 수 있고 인민의 충복이 될 수 있다고 늘 간곡히 가르치십니다. 이와 함께 민중에게 호령하고 세도를 쓰는 현상, 민중의 이익을 침범하고 민중생활에 무관심한 현상들을 비롯해 민중의 충복답지 못한 현상을 철저히 뿌리뽑도록 하셨습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슬로건의 바탕에는 이민위천, 이신위민의 정치철학이 놓여있습니다. 이민위천은 말그대로 민중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서 민중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것을 결정하는 절대적 존재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신위민은 민중을 위해 헌신한다는 뜻으로서 민중은 주인이고 자신은 그 심부름꾼이라는 입장에서 민중을 위해 한몸바쳐 복무한다는 것입니다. 이민위천과 이신위민은 다 주체사상의 정치에의 구현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민위천, 이신위민의 정치철학에 기초하여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민중중시, 민중복무의 슬로건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구현해나가시는 것입니다. |
| |
| △우로△ |
|
|
| 10.장군님이 틀어쥔 주체혁명위업완성의 근본열쇠는 일심단결 |
| |
| 미국의 소리'방송(97.9.5)이 최근에 평양에 갔다온 미국 사람들의 반향을 보도하였는데 그중에는 이런 대화도 있습니다. 미국관리들의 질문:"북조선은 경제도 악순환하고 있고 자연재해도 그치지 않고 있으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고집하는 당신들을 곱게 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살아 갈 것 같은가?" 북조선사람들의 대답:"세계가 모두 뒤집힌대도 우리는 능히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영토가 있고 자기 인민이 있고 자기 제도가 있고 자기 수령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시기에도 이렇게 어렵게 살았다. 1950년 전쟁때 미국과 16개 나라들이 우리를 식민지노예로 만들려 할 때도 우리는 자기의 모든 혈육을 다 잃으면서도 끝까지 싸웠다.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 굶어죽는다고 하여도 우리는 자기 수령이 있는 자기 조국땅에 묻힐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조이다. 그러나 우리도 언제인가는 반드시 일떠설 것이 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위대한 수령이 있고 위대한 당이 있고 위대한 인민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21세기위원회기금, 미국-캐나다국제관계연구소 고위연구원의 평론:"순박한 최하층부류의 사람일수록 그런 답이 거침없이 나오군 하였다. 나는 이것이 오늘 북조선이 이룩한 정신적 총화이며 그들의 정신적 깊이라고 생각한다.또 바로 이것이 아직까지 이 나라가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집행자로서 사회주의 이북의 해체작업의 앞장에 선'미국의 소리'방송이 이북의 실태에 접근할수록 백악관의 정책작성자들의 실책이 크게 다가와 개탄하여마지 않는 내용의 보도라 해야 할 것입니다. 실지 그렇습니다. 오늘 이북은 미국이 아니라 온 서방세계가 다 접어들어도 허물 수 없는 요지부동의 나라입니다. 이북의 존재와 발전을 담보하는 가장 큰 힘은 다름아닌 정신적 힘 즉 일심단결의 힘입니다. 이북은 이미 세상사람들 속에 일심단결의 나라,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오늘 이북을 제국주의 고립압살책동 속에서도 끄떡없는 사회주의 강국으로, 일심단결의 나라로 다지신 분이 다름아닌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때부터 일심단결을 혁명의 무기로 튼튼히 틀어쥐었습니다. 일심단결은 나의 혁명철학입니다. … 일심단결은 우리 혁명의 천하지대본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이 김일성주석님께서 마련하신 통일단결의 전통을 이으시어 그것을 변혁운동발전의 요구에 부합되게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로 심화발전시키시었으며 그에 기초하여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투쟁을 확고하게 주도해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김정일장군님의 혁명철학인 일심단결의 요체는 무엇이겠습니까? 일심단결이란 하나의 중심, 하나의 사상에 기초한 단결을 뜻합니다. 여기서 일심단결의 중심은 수령이며 일심단결의 사상적 기초는 변혁운동의 지도사상입니다. 수령을 중심으로 변혁운동의 지도사상에 기초하여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결합된 상태를 일심단결이라 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을 중심으로 하고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조선노동당과 전체 민중이 똘똘 뭉쳐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이룬 것이 오늘 이북사회의 일심단결의 면모입니다. 이 일심단결의 위력의 핵은 김정일장군님의 위대성, 조선노동당의 위대성이며 당과 수령에 대한 전체 민중의 충실성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심단결을 주체혁명위업완성의 근본열쇠로 틀어쥐시고 일심단결의 사상과 위력, 기상으로 세계반동들과 맞서 주체사회주의 위업을 수호해나가시며 오늘의 고난을 헤쳐나가십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정치가치고 단결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단결을 이루어내기 위하여 애쓰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역사에서도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전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는 슬로건을 내놓은 이래 공산주의자들과 공산당, 노동당들은 당의 통일단결을 강화하고 그것을 첫째가는 과제로 내세우고 투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북에서와 같은 하나의 중심, 하나의 사상, 혁명적 동지애와 의 리에 기초한 단결, 온 사회의 일심단결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 당도 그 어느 정치인도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김일성주석님에 이어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그러한 지고의 일심단결의 사상을 내놓고 빛나게 실현하셨습니다. 이북에서 실현된 일심단결의 현장을 녹화화면으로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녹화화면은 1980년 10월에 평양에서 있는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와 당창건 서른다섯돌을 경축하여 진행된 시위장면입니다. 이 경축시위에 100만명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김정일장군님께서 김일성주석님을 모시고 주석단에 계십니다.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의 100만 군중시위대열이 각종 가장물과 구호판을 앞세우고 지축을 쾅쾅 울리며 지나갑니다. 한사람같이 보조를 맞추며 전진하는 시위군중은 주석단앞에 이르러 발을 동동 구르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목청껏 부르고 또 부릅니다. 그들의 얼굴마다에서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위군중들에게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손을 높이 드시어 답례를 보내십니다. 두분의 눈도 이슬로 젖어있습니다. 참으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감격의, 격동의 장면들이 아닙니까. 전체 민중이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쳐 사상도 뜻도 하나이고 숨결도 마음도 하나이고 발걸음도 하나인 것이 김정일장군님께서 창출하신 이북의 일심단결의 장엄한 화폭인 것입니다. 장군님께서 펴내신 일심단결은 수령과 전민이 사상의지적으로,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친 통일단결이고 대를 이어 계승되는 통일단결입니다. 1994년 1월 조선인민경비대의 김철진, 김경철 두 사병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의식을 잃고 서울의 육군병원에 들어왔던 일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을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이남 당국의 귀순 설득을 단호히 거절하고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김정일장군님 칭송가요를 부르면서 "부모를 떠나서는 살수 있어도 김정일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단언했으며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호칭에서 존경어를 쓸 것을 강경히 요구해나서지 않았습니까. 이에 관해 '한국일보' 1994년 1월 30일자를 비롯해 이남의 매스콤이 북의 사병들이 고문과 기만에 실수라도 할까봐 "혀를 끊으려고 이빨로 깨물었기때문에 밤늦게까지 의식을 차릴 수 없었다"고 하면서 "김정일최고사령관에 대한 노래를 부른 것은 탄복할만한 일"이라고 전했고 그들의 정치사상상태를 일등급의 군인기질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었습니다. 그후 이남에 억류되었던 이북의 김영길, 정광선 사병들도 단신으로 100만국군과 당당히 대결하여 끝내 승리하고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전민이 김정일장군님을 높이 받들어모시고 장군님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장군님께 충성의 일편단심을 바치고 장군님을 결사옹위하고 있는 것이 대를 이어 불변하는 이북의 위대한 일심단결의 감동적인 화폭입니다. 가장 위력하고 공고한 일심단결을 이루시어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해나가시는 김정일장군님은 진정 위대한 영도자이시며 정치의 대가, 거장이십니다. |
| |
| △우로△ |
|
|
| 11.장군님이 생각하는 노동자계급의 당의 존재방식이란 민중과의 혼연일체 |
| |
| 어느해 꽃피는 계절이었습니다.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잠시 휴식하시는 참에 곱게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시다가 수행원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벌과 나비가 향기로운 꽃을 찾아오는 것은 향기가 풍기는 꽃에 꽃꿀이 있고 꽃꿀을 날라갈 수 있기 때문이며 꽃이 향기를 풍기는 것은 벌과 나비가 모여들어야 가루받이가 잘되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과 인민과의 관계도 그 이치는 똑같습니다. 인민대중은 자기의 전위조직인 당에 자기의 운명을 의탁하고 당의 영도를 받아야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빛내일 수 있으며 당은 또한 대중을 자기의 두리에 묶어세워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당과 인민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당 자체의 존재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민대중과의 혼연일체, 이것은 우리 당의 존재방식입니다." 참으로 깊은 의미를 담은 말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래 혼연일체라 함은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된 운명공동체를 뜻합니다. 그 운명공동체를 하나의 핏줄로 이어진 혈연적 관계의 유기체로 이해할 수 있을것입니다. 자연계의 꽃과 벌, 나비의 이러한 존재방식은 당과 대중의 혼연일체의 혈연적 관계를 생동히 그려보이는 화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과 대중의 이러한 혼연일체를 노동자계급의 당의 존재방식으로 보십니다. 수령에 의해 창건되고 영도되는 노동자계급의 당은 민중에게 정치적생명을 안겨주고 민중의 운명을 빛나게 개척하기 위해 투쟁하는 전위조직입니다. 그러므로 민중은 자기의 전위조직인 당에 자기의 운명을 의탁하고 당의 영도를 받아야 정치적 생명을 빛내일 수 있고 자기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민중은 노동자계급의 당이 의거하고 있는 지반이며 당의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당은 민중을 자기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 자체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 지지를 받고 민중과 한덩어리가 된 당은 대지에 깊이 뿌리박은 소나무가 아무리 광풍이 휘몰아쳐도 끄떡하지 않고 사철 푸르러 서있듯이 필승불패의 강위력한 당으로 굳건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노동자계급의 당이 민중과의 혼연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당을 어머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독창적인 당건설원칙을 내놓으시고 그 실현을 위해 끊임없는 심혈을 기울이십니다. 어머니란 말은 사랑과 희생의 상징어입니다.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고 아들딸들에게 모든 것을 묵묵히 바쳐가는 것이 이 세상의 어머니들이고 또한 그것이 어머니들의 보람으로, 낙으로 되어있습니다. 당을 어머니당으로 만든다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와 같이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고 안아주고 돌보아주고 이끌어주는 그러한 당으로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민중이 진심으로 조선노동당을 어머니당으로 부르게 하자면 당의 노선과 정책이 인민대중을 위한 것으로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당일군들이 어머니다운 심정을 가지고 민중을 대하며 그들을 교양하고 보살펴주어야 한다 고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이 구감이 되시어 그 모범을 보여주시었습니다. 온 사회, 온 나라의 방방곡곡을 한가정으로, 전체 민중을 피를 나눈 자식으로 여기며 어머니의 손길로 빠진데 없이 골고루 보살피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온나라 전체 민중을 하나같이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민중들에게 더 좋은 살림집을 안겨주시고 온갖 근심걱정 없이 행복을 누리도록 하셔야 했습니다. 한가정에 일년열두달 대소사가 끊기지 않듯 민중생활에 대소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모두를 부모된 심정에서 일일이 보살피셔야 했습니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일이라 해도 민중을 위한 것이기에 천만금을 들여야 하셨고 아무리 값진 것이기는 해도 민중에게 해되는 것이라면 하늘로 날려보내셔야 했습니다. 불행에 처한 사람, 외진 곳에서 사는 사람,멀리 타향에 나가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마음을 쓰셔야 했습니다.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자식의 어머니노릇을 하자 해도 5만공수가 들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전민을 자식으로 여기시고 돌보셔야 하는 그 공력은 하늘에 닿을 그러한 높이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친어버이의 손길로 세심히 보살펴주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북민중은 그 불보다 뜨거운 극진한 보살피심에 하도 감동되어 장군님을 어머니당의 모습으로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살고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만민이 어머니가 되시어 민중 한사람 한사람을 따뜻이 품어 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고 보살펴주시어 당과 대중과의 관계를 어머니와 자식간의 혈연적 관계로 굳히셨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중의 운명을 책임진 모든 당일꾼들이 민중의 진정한 어머니가 되도록 간곡히 일깨워주시고 따사로운 손길로 키워주셨습니다. 어느 하루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일꾼들이 지녀야 할 풍모에 대해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우리 당일꾼들의 일이 갑절이나 힘들고 속을 썩여야 하기 때문에 제구실을 하자면 조련치 않다, 당일꾼들은 어머니품성을 지녀야 한다, 어머니구실을 한다는것은 결국 자식을 위하여 속을 썩일줄 안다는 것이다, 정말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 속을 태우기도 하고 참아내기 어려운 일도 용케 참아내면서 묵묵히 자식을 키워간다고 절절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당과 민중의 혼연일체가 마련되어온 나날에 김일성주석님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풍모를 실례로 드시었습니다. 주석님께서 분계연선마을을 찾으신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주석님께서는 지난 6·25전쟁시기 조국과 민중 앞에 떳떳하게 살지 못한 사람들의 가족들을 모이게 하셨습니다. 주석님께서는 그들에게 남편없이 아이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는가고 하시며 위로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가 그만 친부모를 만난듯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주석님께서 그들을 모아놓고 가슴아파하시는 모습은 불행을 당한 딸자식을 만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고 주석님을 뵈옵고 흐느끼는 여인들의 모습은 정녕 친아버지를 만난 딸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매우 감동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참으로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들의 마음을 그렇듯 잘 알아주시고 너그러이 대해주시는 분이 어디 또 있겠는가, 노동자들을 만나시면 그들의 기름묻은 손을 서슴없이 쥐어보시고, 농촌에 나가시면 두엄냄새가 구수하다고 하시었다, 진정 우리 수령님은 어린이와 이야기하실 때에는 어린이의 심정이 되시고 노인들과 이야기하실 때는 노인들의 심정이 되어주시었다고 뜨거운 감회에 잠겨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당일꾼들은 어떤 품성을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높은 뜻과 어머니의 심정 그대로 민중을 대하고 그들과 혼연일체를 이룰데 대한 크나큰 기대가 담겨져있었습니다. 장군님의 이렇듯 크나큰 심혈과 노고에 의해 조선노동당은 민중의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어주는 어머니당으로, 당일꾼들이 민중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민중들의 정치생활과 물질문화생활에 한점의 그늘도 없도록 극진히 보살펴주는 민중의 어머니로 그 모습과 체질이 완벽하게 부각됨으로써 이북에는 당과 민중의 혼연일체의 대화원이 만발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탁월한 정치가, 당활동가들도 많았지만 민중과의 혼연일체를 당의 존재방식으로 내놓고 당을 어머니당으로 만들데 대한 정치경륜을 펼친 그런 지도자는 없었으며 세계 정치사에는 부지기수의 정당들이 있었지만 어머니당이라고 불리운 당은 없었습니다. 당과 민중과의 혼연일체의 위대한 정치경륜을 펼치시고 조선노동당을 세계 초유의 어머니당으로 만드신 것은 정치가로서의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을 돋구어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북 민중은 위대한 정치가이신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사는 기쁨과 행복, 어머니당의 사랑 속에서 사는 긍지를 담아 '당은 어머니 모습'이라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노래를 지어 자랑스럽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 노래를 소개해드립니다. 1. 태어나 처음으로 눈에 익힌 어머니 얼굴 아기가 반기는 이 세상 기쁨이라네 아 어머니 있으면 아기는 언제나 어머니 있으면 마음을 놓네 2. 우러러 볼수록 당은 어머니의 그 모습 아기가 엄마 찾듯이 내 한생 당을 따르네 아 그곁에 있으면 이 몸은 언제나 그곁에 있으면 행복에 겹네 3. 사랑 속에 자라며 정이 들은 당의 그 품은 내 운명 맡겨둔 이 세상 전부이라네 아 어머니당이여 한생을 살면서 이 몸은 언제나 그대만 아네 * * 김정일장군님의 정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정치철학으로, 만능의 보검인 사상론을 정치원리로, 만물을 비쳐주고 키워주는 햇발 같은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정치방식으로, 하늘같이 위대한 민중을 주인으로, 스승으로 내세우고 그에 복무하는 것을 정치의 기본원칙으로, 일심단결을 정치의 대본으로, 당을 정치의 무기로 하는 그런 정치입니다. 그것은 지금껏 어느 나라 영도자, 어느 정치가도 내세운적이 없는 독특하고 위대하고 완벽한 정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
| |
| △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