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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군님의 안타까움이란 하루가 24시간밖에 되지 않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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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조아사회에서는 대통령이 되면 주말, 월말, 하계, 동계 휴가를 받는것이 관행으로, 특전으로 되어있습니다. 국민들도 그것을 응분의 예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이남민중에게 있어서 휴식도 없이 주야장천 민중을 위한 집무에 혼신하는 국가지도자가 있다면 곧이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촌에는 그런 지도자가 엄연히 계시며 그것도 우리 한반도의 이북에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휴식도 주무심도 미루고 때로는 끼니도 건늬시며 정력적으로 사업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민중의 복리증진을 위한 헌신이고 희생성의 발현입니다. 이북민중은 민중을 위해 그토록 노고를 바치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이런 심혈을 '그이의 하루'라는 노래에 담아 칭송하고 있습니다. 1. 친애하는 그이 그이의 하루는 언제 그 언제 시작되는지 인민을 찾아 떠나시는 길 사랑의 자욱에 어리어 있네 불타는 노을아 아침노을아 말하여다오 아 노을아 아침노을아 말하여다오 2. 친애하는 그이 그이의 하루는 언제 그 언제 끝이 나는지 인민을 위해 지새우신 밤 당중앙 창가에 어리어있네 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야 말하여다오 아 흐르는 은하수야 말하여다오 3. 친애하는 그이 그이의 하루는 짧은 순간의 휴식도 없네 인민을 위한 그 하루는 시작은 어디고 끝은 어딘지 세월아 세월아 잊지를 말아 잊지 말아다오 아 세월아 잊지를 말아 잊지를 말아 동서고금의 노래문화에는 위인에 대한 송가가 많지만 위인의 하루를 구가한 노래가 있었습니까. 노래는 감정의 분출이라 했습니다. 이북민중들이 경모의 정으로 '그이의 하루'를 목메어 부르는 것은 장군님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위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노래에도 있는 바와 같이 현지시찰의 길에서 남먼저 새벽을 맞으시는 분이 김정일장군님이시며 삼라만상이 잠들고 샛별마저 기울어도 꺼질줄 모르는 것이 장군님 집무실의 불빛입니다. 장군님의 하루 하루는 말그대로 일과 일의 연속입니다. 1980년 10월 5일도 그렇게 흘러가는 나날에서의 하루였습니다. 이무렵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 준비사업을 주관하시는 장군님께서는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집무실에서 새날을 맞으신 장군님께서는 새벽 4시부터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당 제6차대회 준비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토의하셨습니다. 이어 그분께서는 어느 한 중요건설대상에 나가시어 몇시간에 걸쳐 현지지도를 하시었으며 점심을 미루신채 이번에는 모란봉경기장(오늘의 김일성경기장)에 가시어 오후 5시까지 평양시 청소년학생들의 집단체조를 지도하셨습니 다. 그리고 평양제2백화점을 찾으시어 당대회를 뜻깊게 맞는 민중들에게 몸소 마련해주시는 '당대회제품'공급정형을 알아보셨습니다. 벌써 하루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백화점을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조선중앙통신사에 가시어 기자들의 사업과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시고는 창광거리건설장 초고층건물의 30층노대에까지 오르셔 건설사업을 지도하셨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장군님께서는 점심겸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집무실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문건들을 자정이 넘도록 다 처리하시고 또다시 김일성광장에 나가시어 당 제6차대회와 당창건 35돌 경축 평양시 100만군중시위준비사업을 새벽 3시까지 지도하셨으며 건설중에 있는 인민대학습당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당대회가 열리게 될 2·8문화회관(오늘의 4·25문화회관)에 가셨으며 거기에서 나오셔서는 평양시내를 돌아보시면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에도 그분께서는 댁으로가 아니라 집무실에 가시어 문건을 보시고 새로 나온 영화까지 지도해주셨습니다. 그야말로 불철주야 불면불휴의 정력적 영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탈린이 소독전쟁때 제국주의 봉쇄작전에 대처할 군사적 대응책을 세우기 위해 3년동안에 한 구분대를 7차례 찾아가 새벽까지 군사정보를 청취했다는 사실이 에피소드로 역사의 갈피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전쟁때도 아닌 평상시에 매일매일을 긴장한 집무로 보내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정열은 일화가 아니라 하나의 영웅서사시입니다. 민중의 위업과 행복을 위해 나라의 대소사를 보살피시며 밤과 낮이 따로없는 정력적 활동을 벌이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그분께서는 항상 시간이 모자라고 하루가 24시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일입니다. 1974년 8월 2일이었습니다. 이날로 말하면 장군님께서 몸소 포치하시고 여러날에 걸쳐 지도해오신 전국당일꾼강습을 결속짓는 날이었습니다. 온 수도가 깊이 잠들었지만 그분의 집무실 책상위에는 아직도 비준하셔야 할 문건들과 자료들이 무드기 쌓여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많은 문건들과 자료들을 다 검토하고나서 이날 강습회에서 하실 연설문을 다시한번 검토해나가셨습니다. 열정과 심혈을 기울이시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일하시는 사이에 어느덧 집무실의 창문너머로는 푸른 하늘이 훤히 밝아왔습니다. 새벽이 밝아오자 한 일꾼이 그분께 시간을 알려드리면서 이젠 그만 쉬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는가고 하시며 "나는 지금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시간이 많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늘 말하지만 하루가 24시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참말 안타깝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을 고스란히 밝히신 장군님께서는 이날 아침 완성된 연설문을 안으시고 곧바로 강습장소로 나가셨습니다. 정력, 그것은 열정의 분출입니다. 민중의 위업과 행복을 위해 밤과 낮, 휴식과 주무심도 없이 정력적으로 일하시고도 하루가 24시간밖에 안되는 것을 더없이 안타까워하시는 김정일장군님은 진정 정열의 화신, 열의인중의 열의인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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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군님이 즐기는 일은 한번에 네가지, 다섯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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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은 한번에 한가지 일이 아니라 네가지, 다섯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남다른 복합적인 일처리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많은 일중에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시는 것이 없고 완벽성을 기하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하루 한 일꾼이 장군님으로부터 받은 과제수행정형을 보고하려고 그분의 집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분께서는 문건을 보시며 활달한 필체로 가필하고 계셨습니다. 집무실 한구석에 놓인 녹음기에서는 어느 예술단에서 형상한 새 노래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전화벨소리가 울렸습니다. 녹음기소리를 낮추고 수화기를 드신 그분께서는 즉석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본질을 요해하시고 해당한 결론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이러한 바쁜 모습을 본 일꾼을 분주한 시간을 보내시는 그분께 부담 끼칠까봐 잠시 자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전번에 준 과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장군님께서 일을 다 보신 다음에 들어와 말씀드리겠다고 하자 그분께서는 일없으니 어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꾼은 가지고간 문건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든 그는 저도 모르게 말을 중둥무이해버렸습니다. 보고드리는 내용이 심중한 문제이기에 혹시나 그분께서 스쳐지나지 않으실까해서였습니다. 그분께서 어찌나 문서보시는데 집념해계시는지 자기의 보고를 듣지 못하시는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왜 그만두는가고, 계속하라고, 다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보고를 계속하자 그분께서는 여전히 문서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면서 보고내용에 대해서 수긍도 하시고 어떤 것은 되묻기도 하시며 그 와 관련한 새로운 과제를 주셨습니다. 그동안 돌고 있던 음악작품 녹음테프가 다 풀리자 녹음기를 끄신 그분께서는 해당 단위에 전화를 걸어 가요에 대한 우단점을 말씀하시고나서 옆에 쌓인 새로운 문건을 들어 펼치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완전히 시간을 입체적으로 이용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일꾼을 그처럼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느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얼마나 피곤하시겠는가고 걱정어린 어조로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그날 일은 그날로 처리해야지 자신께서 이렇게 문건을 처리하지 않으면 수령님께 부담을 드리게 되고 정시로 달리던 혁명의 기관차가 잠시 멎을 수 있다고, 물론 어떤 때는 피곤할 때도 있지만 많은 일을 처리해야겠기에 피로를 참아가며 문건도 보고 녹음도 들으며 녹화물도 본다고, 이렇게 일을 해야 일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꾼은 시간을 주름잡으며 많은 일을 동시에 해나가시는 그분의 비상한 사업능력과 정력에 탄복을 금치 못해하면서 늘 보아야 장군님께서 글을 굉장히 빨리 보시는데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고 호기심으로부터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외람되는 물음이었지만 장군님께서는 웃음지으시며 제기된 문건을 다 보는 방법은 빨리 보는 길밖에 없다고, 그래서 나는 글을 볼 때도 최대의 정열을 쏟아 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장군님께서는 초인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일을 하십니다. 한시간은 60분, 3천6백초로서 누구에게나 시간의 길이는 같지만 장군님께서는 남들과 같은 시간에 남들보다 4-∼5배의 일을 하시니 그것이야말로 전설로나 알던 축시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일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그러한 현실을 낳은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무슨 일이든 그때 그때 다 해내고 무슨 일이건 거기에 온갖 열정을 쏟아부어 최상의 수준에서 해제끼는 것을 성품으로 간직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왕성한 사업의욕과 열정이 비범한 예지, 해박한 지식, 탁월한 실무능력과 결합되어 한꺼번에 네댓가지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축시법의 전설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회변혁운동에서는 10여년안팎에 해야 할 일도 한두해사이에 해제끼고 어느 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생활 모든 분야에서의 기적을 창조하는 것과 같은 위대한 현실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 질문(대학생):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글을 한줄씩이 아니라 여러줄씩 보시면서도 그 내용을 환히 다 아신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에 대하여 한가지 자료를 소개하는 것으로 답변하겠습니다. 이북의 '노동신문'1994년 5월 31일자에 원로급 항일혁명투사인 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원수가 쓴 글이 실렸는데 그는 자기가 김정일장군님을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는 것중의 하나가 헐하게 말해서 장군님께서 글을 한꺼번에 넉줄씩 보시는 천재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글이한 원래 한줄씩 보게 되어 있는 것인데 장군님께서는 한꺼번에 석줄, 넉줄씩 보시며 그렇게 보시면서도 그 내용을 환히 다 알고 틀린 것도 다 잡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측근에 있으면서 직접 체험한 사실을 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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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군님이 제일 달게 여기는 잠은 쪽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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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 분과 초를 쪼개며 일하신다는데 장군님도 인간이신만큼 어쨌든 주무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여러분은 생각할 것입니다. 옳습니다. 장군님도 주무십니다. 그러면 장군님께서는 언제 얼마나 주무시는가, 이에 대답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제인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중요대상건설장을 밤새워 지도하시고 새벽녘에야 귀로에 오르셨습니다. 그분께서 타신 차가 방금 건설장을 벗어났을 때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좌석에 몸을 깊이 잠그시고 어느새 잠드셨습니다. 그분을 모시고 현지에 갔던 일꾼은 가슴이 알짝지근했습니다. (얼마나 피로가 겹쌓였으면 차에 오르시자마자 이렇게 깊이 잠드셨으랴) 사실 그분께서는 그 전날밤에도 집무실에서 꼬박 지새우신 데다가 어제 낮에는 종일 여러 단위의 사업을 지도하시느라 잠시도 쉬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간밤에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건설장사업을 지도하셨으니 피로가 겹쌓일대로 겹쌓였던 것입니다. 그분의 단잠을 깨칠세라 운전사는 차를 조심조심 몰았습니다. 그랬으나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서 차가 들추는 바람에 그분께서는 얼마 안있어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새 잠들었댔군, 내가 얼마나 잔 것 같습니까?" "10분정도 되나마나합니다." 그분께서는 한잠 잤더니 정신이 든다고 하시며 수원에게 피곤하겠는데 눈을 붙이라고 권하셨습니다. 수원은 자기는 한번 잠들면 적어도 2∼3시간 자야 잔 것 같지 반지빠르게 눈을 붙였다나면 차라리 안잔 것만 못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에 크게 소리내어 웃으시며 그것은 아직 쪽잠맛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자신도 이전에는 쪽잠맛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몰랐다가 일감은 쌓이지 시간은 없지 할수 없이 정 졸음이 올 때면 의자에 앉은채로 잠깐씩 눈을 붙이군 했는데 그때부터 쪽잠맛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잠을 자지 않고 일한다고 하는데 나도 사람인 것만큼 잠을 전혀 자지 않고서는 견디기 곤란합니다. 내가 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일하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남이 2∼3시간동안 자는 잠을 10∼15분동안에 집중적으로 자는 습관을 붙인 것입니다. 쪽잠은 잠으로서는 불만족스럽지만 피로를 집중적으로 풀어주는 좋은 단잠입니다. 나는 쪽잠이 제일 답니다." 수원은 가슴가득 괴어오르는 뜨거운 것을 애써 누르며 장군님께서 그렇게 무리하시는데 대해 우리 인민 모두가 여간만 가슴아파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의 그 마음이 고맙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신새벽에 청신한 공기를 마시면 침대에 누워서 편안히 밤잠을 잔 것만 못지 않게 몸과 마음이 거뜬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도 인간이십니다. 장군님도 밤이 깊으면 잠이 그리우시고 새벽이면 피곤하여 쉬셔야 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남들이 두세시간씩 자는 잠을 10∼15분의 쪽잠으로 굼때십니다. 집무실에서, 달리는 차안에서 쪽잠으로 엄습하는 피로를 몰아내시며 사업으로 낮과 밤을 이어가십니다. 그러시면서도 쪽잠을 제일 단잠이라고 하시니 사업을 위해 바치시는 김정일장군님의 헌신성은 이 세상 그 어떤 위인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하고 고결한 남다른 풍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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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군님이 제일 맛있게 여기는 밥은 줴기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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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날 가난하게 살던 이 나라의 어머니들과 아낙네들이 객주집에 들려 요기할 동전 한닢 주지 못하는 설움 속에 한숨과 눈물로 빚어 먼길 떠나는 자식과 남편에게, 부역과 수자리에 끌려가는 남정들에게 쥐어주던 줴기밥(주먹밥), 서민들의 길양식인 이 줴기밥을 일국의 영도자이신 김정일장군님꼐서는 달게 잡수십니다. 지난날 봉건왕조와 양반관료들의 악정과 잔학을 뒤집어엎기 위해 일어난 농민군과 민중들이,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해 정의의 창검, 조국광복의 기치를 높이 든 의병들과 독립군들, 항일빨치산들이 전장으로 떠나면서 옆구리에 차고간 줴기밥, 군사들의 끼니거리인 이 줴기밥을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싸움길 아닌 현지시찰의 길을 떠나시면서 가지고 가십니다.무슨 사연때문이겠습니까. 그 사연을 알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간밤을 집무실에서 꼬박 새우신 김정일장군님께서 새벽녘에 측근의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시고는 갑자기 동해안쪽으로 다녀와야 할 일이 있으니 도중식사를 줴기밥을 준비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아침식사도 하지 못하신채 길을 떠나신 그분께서는 한낮이 다 되어서야 인적도 없는 어느 한 산굽이에서 차를 멈춰세우게 하신 다음 여기서 간단히 요기나 하고 떠나자고 하셨습니다. 몇명의 수원들은 의아해했습니다. 길섶에는 일행이 겨우 둘러앉을만큼한 너럭바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던 도중에 경치가 좋고 야외식사를 하기도 알맞춤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분께서는 부디 그런 곳을 피하여 그 조그마한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수원이 아까 올 때 좋은 자리가 있었는데 왜 그곳을 피했는가고 문의하면서 조금만 더 가면 식사도 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경치좋은데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수원들도 다문 얼마간이라도 쉬셔야 한다고 청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수원들을 둘러보시며 시간도 동무들처럼 너그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시간은 나에게 너무도 인색하다고 하시며 "옛날에 어떤 왕은 삼일포에서 잠깐 다리쉼이나 하고 간다는 것이 그만 그곳 절경에 취해서 사흘이나 묵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야 우리야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도 아닌데 만약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시간이라도 지체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그러지 않아도 도중에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서 줴기밥을 준비하라고 했다고 하시며 이제는 배들도 고프겠는데 아무데서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곧 떠나자고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수원들과 허물없이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가지고온 줴기밥을 드셨습니다. 줴기밥 속에 넣은 반찬은 무우오가리와 절인오이 그리고 까나리무친 것이 다였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줴기밥을 달게 드시며 "그래 어떻습니까. 줴기밥맛이?"라고 물으셨습니다. 수원 모두가 참별맛이라고 말씀드리자 그분께서는 웃음을 지으시며 "배가 고플 때에는 아무 음식이나 다 맛이 있습니다. 아마 동무들이 좀전에 밥을 먹자고 했을 때 줴기밥을 먹었더라면 지금처럼 맛있게 먹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먼길을 떠날 때에는 줴기밥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배가 고플 때 먹군 합니다. 줴기밥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배가 고플때 먹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분께서는 줴기밥은 감도 특별한 것이 필요없고 만드는데 품도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급히 길을 떠나야 할 때 준비하기 쉬우며 아무데 가서나 펼쳐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얼마 떼우지 않고 현지사람들의 폐를 끼치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을 무심히 들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줴기밥의 편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오로지 사업만을 생각하시며 거기에 모든 것을 다 바치시는 장군님의 열정에 넘친 거룩함이 깃들어있습니다. 줴기밥은 진정 장군님의 길동무입니다. 오로지 나라의 대업을 위해 분과 초를 쪼개가시며 집무에 전심전력하시는 김정일장군님은 진정 일을 위해 태어나신 위인이시며 일만을 아시는 열의인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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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군님의 휴식은 사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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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풍자작가 스위프트, 죠너선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가는 "세계의 명의는 쾌활박사, 근로박사, 휴양박사이다."라고 했습니다. '쾌활박사'는 종일 쾌활하라고 가르치며 '근로박사'는 매일 운동을 포함하여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가르치며 '휴양박사'는 적당히 휴식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 '3대명의'의 충고를 따르면 절대로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휴식은 건강의 전제입니다. 사람은 적당한 휴식을 해야 원기를 회복할수 있고 체력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휴식이 없이 불철주야 일만 하시니 그분의 건강에 대한 이북민중들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김정일장군님의 건강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제일 안타까워하신 분은 김일성주석님이셨습니다. 1979년 초 어느날에도 주석님께서는 김정일장군님과 전화대화를 하시다가 겹친 피곤으로 하여 장군님의 음성이 갈리신 것을 헤아리시고 그분의 건강에 대해 깊이 심려하셨습니다. 주석님께서는 한 일꾼을 부르셔 이렇게 안타까운 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동무들이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를 잘 받들어야 합니다. 조직비서도 사람입니다. 그도 쇠로 만든 사람이 아닌 이상 밤이 깊으면 자야 하고 때가 되면 식사를 해야 합니다. 피곤이 몰리면 좀 쉬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동무들이 아다시피 조직비서가 매일 휴식도 없이 새벽에도 문건을 보고 앉아있으니 사람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 주체위업을 위해 조직비서를 아껴야 합니다. 동무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습니다." 이 얼마나 절절한 말씀입니까. 그럼에도 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의 말씀은 어느 것 하나 추호의 드팀도 없이 집행하시면서도 이 요구만은 받아들이지 못하셨습니다. 주석님의 당부에 따라 측근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장군님께 쉬어가시면서 일하시기를 청드리면 "다른 요구는 다 들어줄 수 있어도 휴식하라는 요구만은 들어줄 수 없소."라고 단번에 밀막아버리십니다. 하도 주석님의 거듭되는 권고와 측근 일꾼들의 끈질긴 요청에 못견뎌 휴양지에 가시게 되는 경우에도 집무실에 쌓인 일감을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가십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측근에서 사업하는 일꾼들을 부르셔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 일요일에 휴식할겸 교외에 다녀오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바라던 일이어서 서둘러 준비하며 좋아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와서 그분을 모시고 길을 떠난 수원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가를 대뜸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달리는 차안에서 소형녹음기로 평양시건설과 관련한 주석님의 교시를 주의깊게 들으시면서 그 집행대책을 탐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적지인 호수가에 도착하셔서는 그길로 가까운 숙소에 가시어 전화로 평양의 몇몇 일꾼들에게 평양시건설과 관련해 중요한 가르치심을 주셨습니다. 때아닌 장소에 지방당일꾼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미 그분께서 전날밤에 그들과 만나자는 통고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장시간 가르치심을 주시는 사이에 오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분께서는 저녁녘에야 잠깐 일꾼들과 같이 호수가에 나가 낚싯대를 잡아보셨습니다. 그런데 낚시터에서도 새 세대들의 체력향상대책이며 예술인들의 창작문제와 관련하여 여러모로 사색을 거듭하시며 많은 가르치심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모처럼 마련된 휴식은 자신보다도 일꾼들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마련하신 것이었으며 그분의 일터는 집무실에서 호수가로 옮겨졌을 따름이었습니다. 어느해 6월 강원도 고성일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시고 배편으로 원산쪽을 향하시던 도중 장군님께서는 한 나루터에 배를 정박시키도록 하시고 일꾼들에게 일광욕을 하도록 지시하시었습니다. 일꾼들은 며칠동안의 현지시찰의 피로가 겹쌓이신 장군님께서 쉬실줄로 생각하고 성수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파라쉿 밑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어 문건을 보시었습니다. 수행일꾼들은 일광욕을 하게 하시고 그 옆에서 사업하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나루터의 배관리원은 갈린 목소리로 "옛날에 '신로군일'이라고 하더니 이건 진정 그 반대로일세!"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신하들이 수고하면 나라님이 편안하다고 해서 '신호군일'이란 말도 생겼지만 장군님께서는 그 따가운 폭양밑에서 사업을 하시고 아랫일꾼들은 시간가는줄 모르고 뛰놀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그 반대인 '군로신일'이 아니냐는 뜻이었습니다. 이렇듯 장군님에게 있어서 휴식은 아랫사람들을 위한 휴식이지 자신을 위한 휴식이 아니었으며 그분의 휴식은 곧 사업이었습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마음괴로워 일꾼들은 김정일장군님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제안을 만들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 냈다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한 일꾼에게 결정서 초안을 보았다고,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 나는 일하는 것이 휴식입니다. 나는 아직 휴식을 따로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인간생활에서 사업이 휴식일 수 없는 것은 말할 여지조차 없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업을 휴식으로 여기십니다. 이것은 높은 사명감을 지시신 장군님께서만이 내세우고 실천하시는 독특한 생활관, 혁명관입니다. 일하는 것이 휴식이라 하시며 불면불휴의 정력과 무한대의 열정으로 주체혁명위업에 헌신하시는 김정일장군님의 고결한 풍모야 말로 인류역사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 절세의 위인의 풍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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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장군님이 아무때나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아첨이란 일감을 안겨주는 '아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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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 휴식을 사업으로 바꾸시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이것은 유다른 이야기입니다. 1976년 4월 어느날 한 설계일꾼이 휴양지에 가계시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설계일꾼은 일꾼들의 간청에 못이겨 모처럼 휴양지에 가계시는 그분께 부담을 드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아무 도면도 문건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시던 장군님께서는 빈손으로 왔다는 것을 아시고는 여간만 서운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휴식'하는 사람을 만나러 오면서 그렇게 빈손으로 오는 법이 어데 있는가, 나는 동무가 그렇게 까지 '인색'한 사람인줄 미처 몰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농으로 하시는 말씀이었으나 기대에 어긋난데 대한 질책이 담겨져있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까지 서운해하실줄 몰랐던 설계일꾼은 죄송함을 금치 못하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여기에 계시는 기간에는 사업을 못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어이없으신듯 소리내어 웃으셨습니다. "...동무는 정말 고지식합니다. ...동무는 그렇게 고지식하다보니 '아첨'할줄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응접탁에 두 무지로 갈라 무드기 쌓아놓은 여러가지 문건들을 가리키시며 오늘아침에 아무개가 보내온 것이 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대식가는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야 좋아하고 물욕이 있는 사람은 물건을 찔러주어야 좋아하며 일욕심이 있는 사람은 일감을 안겨주어야 좋아합니다. 나는 아첨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지만 일감을 안겨주는 그런 '아첨'이라면 아무때나 기꺼니 받아줍니다." 여전히 농조로 하시는 말씀이었으나 그는 뭐라고 말씀드릴수 없었습니다. 그는 한참만에야 쌓여있는 문건무지를 바라보며 말씀드렸습니다. "다문 며칠동안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으시고 쉬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정색을 하시며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나는 손에서 일감을 놓으면 몸살이 나서 못견딜 것만 같습니다." 이때 한 일꾼이 문건을 안고 들어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부피두터운 문건을 잠깐사이에 다 보시고 결론을 주셨습니다. 그 일꾼이 나가자 장군님께서는 저 동무는 언제봐도 일욕심이 많다, 나는 저렇게 일욕심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동무는 오늘 나를 생각해서 도면을 안가져왔다는데 그때문에 도리어 나한테서 '점수'를 떼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이틀후였습니다. 그 설계일꾼은 또다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날의 '실책'을 잊지 않은 그는 무려 10여건이나 되는 도면을 안고 그분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많은 '일감'을 안고온 그를 보시며 여간만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날 그분께서 잠시의 휴식도 없이 그 도면들을 하나하나 다 봐주시면서 가르치심을 주시고났을 때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뒤였습니다. 그는 장군님께 너무 무리한 부담을 드린데 대한 죄송함을 금치 못하며 절절히 말씀드렸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오늘은 더 사업하지 마시고 쉬셔야 합니다." "또 그 소리입니까." 장군님께서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고싶어 하는 일은 힘들지 않는 법입니다. 내가 늘 말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일하는 것이 휴식입니다. 나는 일을 하여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일이 밀릴 때에는 힘든줄 모르다가도 어쩌다 일감이 떨어질 때가 있으면 마음이 별로 불안스럽고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동무가 가져온 설계도면을 보면서 휴식을 좀 하였습니다. 나는 설계도면을 보면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머리도 시원해서 좋습니다." 그러시고는 전날에는 도면없이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점수'를 떼웠는데 오늘은 일감을 안고 왔기 때문에 떼웠던 '점수'를 봉창했다고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셨습니다. 휴양지에서 있은 이 이야기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얼마나 일욕심이 많은 분이신가를 느끼게 합니다. 장군님의 이 일욕심이 어데서부터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여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위상을 누리에 떨치시려는 원대한 포부와 열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정열의 화신이십니다. 장군님께서 왜 불철주야 불면불휴로 일하시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 주석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는 것을 더없는 기쁨으로, 보람으로 여기시기 때문이며 둘째로 자신의 사업을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으며 자신께서 잠을 못자고 휴식을 못하고 끼니를 건느더라도 제기된 사업을 제때에 처리해야 혁명의 기관차가 제대로 달리고 나라 일이 펴나간다는 높은 역사적 사명감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이며 셋째로 사람은 일감을 많이 가지고 바쁘게 일하면서 일 속에 파묻혀 살아야 사는 보람, 일하는 보람이 있다는 것을 기질화, 품성화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의인의로서의 김정일장군님의 풍모입니다. 영국의 정치활동가였던 디즈레엘리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의 정열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불타는 정열, 지칠줄 모르는 정열을 지니고 불면불휴의 활동으로 영도의 하루하루를 수놓아가시는 김정일장군님은 역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위인중의 위인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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