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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군님의 행복이란 주석님께 드리는 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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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행복이란 인간의 가치가 끝없이 빛나 생활에서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즐거운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행복의 의미를 꼭같이 공유하는것은 닙니다. 어떤 사람은 입신출세하여 권세를 누리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치부하여 향락하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이남 사람들 속에는 기성관념대로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을 오복이라 하면서 그것을 누리는것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며 고대그리스의 철학가 디오케네스는 집도 없이 통 속에서 살면서 철학적 사색으로 한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하루는 마케도니아의 왕이 그를 찾아와 "세상에서 누가 제일 행복한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디오케네스는 "대왕님, 그것은 저올시다. 왜냐하면 저는 아무 것도 가진것이 없도 아무 것도 요구되지 않기 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디오케네스의 행복관은 금욕주의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세상에 떠도는 행복에 대한 이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행복이란 말이 생겨난 그때로부터 수많은 철학가들이 행복의 정의를 내렸고 시인들이 행복의 노래를 불렀으며 수많은 정론가들이 행복의 의미를 갈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참의미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해 오늘의 시대적 요구에 맞게 가장 높은 차원에서 해명되었습니다. 충성의 귀감이시며 탁월한 사상이론가이시며 위대한 혁명가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행복의 참의미를 수령관의 시각에서 풀이하셨습니다. "우리들의 행복이란 수령님께 더 큰 기쁨과 영광을 드리는데 있으며 수령님께 최대의 기쁨과 만족을 드리는 여기에 우리들의 생의 목적이 있고 희열이 있는 것입니다." 장군님께서 1980년 설명절을 맞는 뜻깊은 자리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시대의 투쟁은 본질에 있어서 주체의 위업을 개척하신 수령님의 사상을 실현하는 투쟁이다, 우리는 수령님의 주체의 위업을 받들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혁명의 길에 나선 수령님의 혁명전사들이다, 따라서 수령님의 뜻을 구현하는 투쟁에서 빛나는 결실을 이룩하여 수령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는것이 우리 혁명전사들의 사명이고 삶의 목적이며 여기에 바로 우리의 희열이 있고 행복이 있는것이다, 이것이 김정일장군님의 뜻이고 행복에 대한 견해이고 관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김정일장군님의 행복관은 수령관에 기초한 행복관입니다. 이런 행복관을 지니고 계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그분의 영도의 나날은 김일성주석님의 사상과 의도, 염원을 실현하여 주석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기 위한 충성의 나날이었으며 주석님께서 기뻐하시면 제일 즐거워하시고 주석님께서 심려하시면 제일 괴로워하시는 참다운 혁명가의 참삶의 나날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한가지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과 학생들 모두에게 무료로 옷을 해입히는것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오래전부터 품어오신 소원의 하나였습니다. 전후의 어느해 추운 겨울날에 있은 일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을 모시고 사리원에서 100여리 떨어진 인산군을 찾으셨습니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잡은 인산군 대촌중학교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차창밖을 내다보시던 주석님께서는 홑옷을 입고 길가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을 보시고 차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승용차가 멎자 승벽내기로 달려온 학생들은 하나같이 모자를 벗고 인사를 드렸고 주석님께서는 한 학생의 언손을 감싸쥐시고 물으셨습니다. "춥지 않느냐?" "춥지 않습니다." "춥지 않다니... 이렇게 홑것을 입었는데 왜 춥지 않겠느냐?" 주석님께서는 매 학생들의 잔등을 매만져보셨습니다. 모두 홑옷이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셔 얘들아,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줄것이란 사과 몇알뿐이니 이 사과라도 받으라고 하시며 손수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시고서야 차에 오르셨습니다. 주석님께서는 달리는 차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신채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 심려가 어찌나 깊으셨던지 수원들은 점심식사를 하셔야겠다는 말씀조차 올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슴아픈 사연들을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오랜 세월 잊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당자금으로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선물옷을 해입혀 주석님의 그때의 심려를 덜어드릴 것을 결심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1976년 10월 초 김일성주석님을 찾아뵙고 이듬해 4월 15일명절에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선물옷을 해주려고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석님께서는 기쁨에 넘쳐 인민을 위해 돈을 쓰는데는 절대 찬성이라고, 아이들에게 옷을 해입히겠다는데는 절대 찬성이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날밤 장군님께서는 경공업부문 사업을 맡아보는 한 일꾼을 찾으셔 지체없이 선물타산안을 만들어 제기하라고 과제를 주셨습니다. 며칠이 지나 선물타산안을 받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또 보시며 한가지 두가지 수정보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유치원으로부터 고등중학교까지의 여자들에게는 고운 색깔로 나일론스웨터를 해주고 치마도 제일 좋은 데트론천으로 해주며 고등중학교와 전문학교, 대학의 여학생들에게는 의혁구두를, 남자대학생들에게는 가죽구두를 해주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와이샤쓰와 여름적삼, 넥타이, 혁띠, 모자, 양말, 책가방, 고급학습장, 수첩, 자, 연필, 분도기, 제도기 등도 써넣으셨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 보충해주신 선물명세는 일꾼들이 애초에 타산한 것보다 금액상 무려 4배나 되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손수 완성해주신 선물타산안을 일꾼들에게 내어주시면서 생산전투를 본때있게 벌여 어버이수령님께 가장 큰 기쁨을 드리자고 하시었습니다. 이북에서는 민중이 떨쳐일어나 생산운동을 벌이는 것을 생산전투라고 말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몸소 이 거창한 전투를 진두지휘하셨습니다. 1977년 3월 28일, 선물생산이 끝나자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에서 친히 선물견본품을 보아주셨습니다. 선물견본품을 다 돌아보신 그분께서는 서운한 안색을 지으시며 왜 여자아이들의 리본이 보이지 않는가, 유치원 여자아이들과 인민학교 여학생들에게 고운 옷에 꽃신을 신기고 머리에 리본까지 달아주면 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 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4·15선물제품을 만들기 위한 전투는 여자아이들의 리본을 만드는 것으로 마감을 짓게 되었습니다. 1977년 4월 이북의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 그리고 이북에 체류해있는 외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 재외생활을 하는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한날한시에 김일성주석님께서 보내주신 꼭같이 아름다운 선물옷을 화려하게 떨쳐입었습니다. 온 나라는 말그대로 꽃밭을 이루었습니다. 4월 12일 아침,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선물옷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보고 싶으셔 몸소 평안남도 안주시 연풍고등중학교를 찾으셨습니다. 선물옷을 곱게 차려입고 붉은 넥타이를 나부끼며 윤나는 구두를 신고 산듯하게 책가방을 든 중학교 학생들, 나비 같은 리본을 팔랑거리며 좋아서 어쩔줄모르는 인민학교(초등학교)여학생들... 연풍고등중학교는 천만 꽃송이가 활짝 피어난 꽃밭처럼 화려했고 끝없이 설레었습니다. 장군님께서 몸소 가꾸시고 피워놓으신 대화원, 자연의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 꽃송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시던 주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60평생에 기쁜 날이 며칠 되지 않는데 오늘처럼 기쁘기는 처음이요! 정말 내 마음이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요!" 그러시고는 전후의 어려운 날 길가에서 만난 홑옷입은 아이들을 품에 안으셨을 그때의 아픈 마음의 응어리가 비로소 풀리시는듯 손수건을 조용히 눈언저리로 가져가시어 눈굽을 찍으셨습니다.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은 민중의 어버이 김일성주석님을 충성으로 받드는 길에서 삶의 기쁨과 보람, 행복을 찾으시는 위대한 혁명가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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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군님의 슬픔이란 혁명동지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 곁을 떠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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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행복도 있지만 불행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만 괴로움도 있고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인생길은 평탄하지 않고 범상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험난한 혁명의 길을 헤쳐나가는 혁명가들의 삶에 어찌 우여곡절,파란만장이 없겠습니까. 위대한 혁명가이신 김정일장군님께도 기쁨이 많으신 한편 참기 어려운 고통, 슬픔도 없지 않습니다. 장군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슬픔은 혁명동지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 또 다른 변고로 해서 숨을 거두고 곁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혁명동지를 잃은 김정일장군님의 슬픔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비애의 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혁명동지를 잃고 그토록 슬퍼하시는 것은 그분의 혁명적 동지애가 남다를 뿐 아니라 지극히 다정다감하신 위대한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김정일장군님의 다감한 성품의 일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김정일조직비서는 인정이 많을 뿐 아니라 눈물도 많습니다. 그는 늘 웃는 얼굴이지만 슬픈 일이 생길 때에는 어린애처럼 눈물을 흘립니다. 나도 눈물이 많은데 조직비서도 눈물이 많습니다. 사람은 눈물이 많은 것이 좋습니다. 차고 쌀쌀한 사람은 울라고 해도 눈물 한방울 떨구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릴줄 아는 영웅이 진짜 영웅입니다." 다정다감하신 분, 눈물이 많으신 분, 위대한 인간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혁명동지를 잃고 슬퍼하시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목이 메입니다. 1981년 6월 어느날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불치의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한 일꾼이 생명의 마지막순간에 이르러 동지들을 찾는다는 소식에 접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급히 당중앙위원회에 한 일꾼을 부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펄펄 뛰던 사람이 종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채 죽음의 문어구에서 동지들을 그리며 지나온 한생을 돌이켜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의 병이 불치의 병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시각이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습니다. 빨리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일꾼은 병원에 다녀오는 길로 장군님의 집무실부터 찾아갔습니다. 그분께서는 소파에 앉아계셨습니다. 그 일꾼이 다가오는 기척도 느끼지못하시는 것 같으셨습니다. 장군님께서 거기에 앉아계시는 것을 아직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일꾼은 서둘러 그분의 책상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책상위의 문건은 그가 병원으로 떠날 때 그분께서 보시려고 꺼내놓은 것인데 첫페지도 번지지 않은채로 놓여있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으면 두시간이 지나도록 한페지도 보시지 못하셨을까. 이제 환자의 소식까지 말씀드리면... ) 일꾼이 이런 생각을 하며 서있는데 그분께서 일꾼쪽으로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순간 일꾼은 눈물을 왈칵 쏟고야 말았습니다. 그분의 두눈이 몹시 충혈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일꾼이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하고 환자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것과 그가 평시에 장군님을 잘 받들지 못한 것을 이야기한데 대하여 말씀올리자 장군님께서는 그런 말은 후에 듣자고, 가만히 앉아있어야 눈물밖에 나올 것이 없다고, 시간이 없으니 환자를 빨리 살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를 살려내기 위한 응급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3일만에 끝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그를 3일동안 밖에 더 살리지 못한 것을 원통해하시며 그의 병은 조기에 진단을 받으면 고칠 수도 있다는데 너무 늦게 진단을 받아 병을 고치지 못하였다, 현대의학이 왜 아직도 그런 병을 고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렸기 때문에 언제인가는 그에게 운명의 시각이 닥쳐오리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작 사망하였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 그는 너무도 일찍이 우리곁을 떠났다고 비통함을 금치 못해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시면서 "나는 늘 동무들에게 제때에 휴식하고 제때에 치료받으라고 말하지만 동무들은 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병을 제때에 고치지않고 병이 심하여진 다음에 병원에 갔다가는 이렇게 나에게 슬픔만 남겨놓고 떠나갑니다. 나는 함께 일하던 동무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 떠날 때마다 가슴이 아파 못견디겠습니다. 나는 슬픔앞에서 견디지 못합니다."라고 절통해하셨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장군님께서는 가족들을 따뜻이 위로하고 잘 돌봐 주라고, 장례는 당에서 맡아 잘 치르라고 당부하셨으며 추도사는 내가 쓰려고하였는데 눈물이 자꾸 앞을 가리워 쓸 것 같지 못하니 동무들이 잘 써야 하겠다 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30분후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그 일꾼을 다시 찾으셔 장례준비와 추도사준비정형을 요해하시고 "내가 아껴오던 혁명동지를 잃게 되니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의 애석한 심정도 함께 담아 추도사를 잘 써야 하겠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가족들도 안정이 되어야 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한 일꾼이 생명의 마지막순간에 있다는 통보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가지 않는다면 그가 제대로 눈인들 감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시며 그처럼 중요한 회의마저 중지하시고 그에게 달려가셨고 그의 침상곁에서 갈리신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시며 내가 왔소, 나요라고 하시면서 그를 자신의 품 에 조용히 안아주셨습니다. 살아서 떨어질 수 없고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장군님의 품이 그처럼 뜨겁기에 그 일꾼은 그분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왜 그런 말을 하오, 동무는 일어나야 하오, 아니 꼭 일어날 수 있소,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 함께 큰일을 하자고 서로 결심하지 않았소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금치 못해하셨습니다.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은 위대한 혁명가이시기에 혁명동지들과 고별하는 것을 가장 큰 슬픔으로 여기시며 참기 어려워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다감도 하시고 다정도 하시고 웃음도 많으시지만 눈물이 많으신 위대한 인간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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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군님의 사랑의 철학은 '혁명은 인간에 대한 최대의 사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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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은 사랑의 화신, 사랑의 태양이십니다. 인간, 민중에 대한 사랑은 그분의 사상과 이념, 노선과 정책의 입안, 정치실현의 주춧돌을 이룹니다. 인간에 대한, 민중에 대한 사랑의 철학으로 정치를 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군님은 혁명은 인간에 대한 최대의 사랑이라고 주장하십니다. 누구인가 그분의 사랑은 공간적인 한계를 모르는 가장 포괄적인 사랑일 뿐아니라 아무리 퍼내고 또 퍼내도 그 깊이를 헤아릴길 없는 가장 심도깊은 사랑이라고, 불보다 뜨거운 그분의 심장은 사랑을 간단없이 분출하는 온정의 샘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철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82년 봄 어느날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 탄신 70돌을 맞으며 전체 이북민중들에게 안겨줄 선물의 각양한 시제품을 보아주셨습니다. 질이 높은 제품을 보실 때에는 장군님의 만면에는 못내 기뻐하시는 만족의 빛이 어리고 질이 높지 못한 제품을 보실 때에는 무거운 기색이 그분의 안광에 비꼈습니다.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주고 싶어하시는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였습니다. 시제품을 죄다 보신 장군님께서는 선물생산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다음 민중에 대한 사랑의 심오한 철학을 밝혀주셨습니다. "혁명이란 목적에 있어서 인민에 대한 사랑을 꽃피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인민에 대한 참된 사랑을 위하여 혁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혁명을 하는 목적이 인민들에게 최상의 인격과 최대의 행복을 안겨주자는데 있지 않습니까. 인간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혁명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혁명이야말로 인간을 완성시켜주는 최대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철학입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을 놓고 우리 모두 생각해봅시다. 우리 이남사람들 속에서는 혁명이라면 마치나 두들겨패고 뒤집어엎고 피를 흘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혁명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은 인간에 대한 최대의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혁명이 왜 인간에 대한 최대의 사랑이겠습니까? 사람은 원래 자주성을 지향합니다. 즉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며 발전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혁명은 사람의 본성적 요구인 이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혁명은 사람들을 자연과 사회의 예속과 나아가서는 낡은 사상과 낡은 기술, 문화의 구속에서까지 완전히 해방시켜 모두가 자연과 사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다방면적으로 발전된 인간으로 되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 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주성을 실현하는 혁명이야말로 사람들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힘있는 존재로 완성시켜 최상의 인격과 최대의 행복을 안겨주는 최대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혁명의 목적은 민중에 대한 사랑을 꽃피우기 위한 것입니다. 또 인간에 대한 사랑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 혁명인 것입니다. 지금 이북에서는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이라는 3대혁명을 벌이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제도수립으로 사회계급적 예속과 억압에서 해방시킨 민중을 낡은 사회의 유물인 사상, 기술, 문화적 낙후성의 구속에서 마저 해방시켜 민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고 그들을 자주적인 인간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위대한 투쟁인 것입니다. 3대혁명을 벌이고 있는 이북의 현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고 인간을 완성시켜주는 혁명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최대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이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철학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의 철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참된 사랑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답을 주신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천명하셨습니다. "참된 사랑이란 인간의 자주성을 최대한 발양시켜 인간을 완성시키는 힘이며 인간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정신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세상에 인간이 생기고 인간생활이 시작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만년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랑의 이야기와 노래가 전해오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말을 하고 글을 썼습니까. 그러나 그 어떤 이야기와 노래도, 그 누구의 말과 글도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전해내려오는 가지가지의 전설과 사화, 일화와 야화, 문예작품에 의하면 부모형제, 처자, 벗을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 불우한 사람을 동정하고 도와주고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사랑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사람들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일면이기는 하지만 결코 참된 사랑의 전부는 아닙니다. 남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호의호식하고 향락을 누리는 자들은 동물적인 성욕의 충족과 추잡한 치정관계를 '사랑'이라 했고 위선적인 '자선'도 '사랑'이라했습니다. 이것은 다 자기들의 악랄한 억압, 착취행위와 부패타락한 윤리도덕 생활을 분식하기 위한 요설이며 민중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마비시켜 그들을 무력화하기 위한 마약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은 김정일장군님께서 천명하신 바와 같이 인간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숭고한 정신이며 인간의 자주성을 최대한으로 실현시키고 인간을 완성시키는 자주위업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해명이며 정의입니다. 이러한 해명과 정의는 모든 문제를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시는 위대한 주체의 사상이론가이시며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시고 인간의 운명 개척을 위해 일신을 다 바치시는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이루실 수 있는 위대한 공적입니다. 이날의 선물시제품 전시장은 아직까지 그 어떤 철학가, 사상이론가, 정치가,윤리학자도 내놓지 못한 위대한 사랑의 철학과 참된 사랑에 대한 정의가 개진된 뜻깊은 장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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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군님이 제일 귀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혁명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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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을 인간에 대한 최대의 사랑으로 보시기에 혁명을 같이하는 혁명동지를 제일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옛날 속담에는 팔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고 했지만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혁명동지이다." 이것은 김정일장군님께서 내놓으신 금언입니다. 혁명동지의 귀중함을 이르는 가르치심입니다. 동지라는 말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동지라는 말은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 이전에도 씌었습니다. 갑오농민전쟁시기에 농민군들은 상호간에 '동지'또는 '동덕'이라고 불렀습니 다. 중국책 '수호전'에도 반정부군들이 상호‘동지'라고 불렀다고 씌어있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의미에서의 동지라는 말은 노동자계급의 변혁투쟁에서 뜻을 같이하는 혁명가들 사이에 불리우는 고귀한 칭호입니다. 이북에서는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는 의미에서 혁명동지라고 합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제일 귀중히 여기시며 또 사랑하십니다. 장군님께서 왜 혁명동지를 제일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1981년 8월 어느날, 측근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부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동지라 부르시며 크나큰 믿음을 표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동지를 제일 좋아합니다. 동지는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혁명동지는 수령님을 따르는 충성의 길에서 사상도 같고 목적도 같고 운명도 같이하는 전우입니다. 고난도 시련도 함께 이겨내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운명을 같이하는것이 동지입니다. 때문에 나는 혁명동지를 제일 귀중히 여기고 제일 사랑합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일꾼들은 그분께서 혁명동지를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것은 혁명동지는 김일성주석님을 높이 받들어모시고 따르는 충성의 한길에서 다같이 하나의 사상,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하나의 목적,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해 끝까지 싸워나가며 고난도 시련도 함께 이겨내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운명을 같이하는 혁명전우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심장깊이 체득했습니다. 깊어가는 밤, 하늘의 별빛을 한동안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우리 수령님처럼 동지를 사랑하고 믿으신 위인은 없을 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동지를 얻고 믿는 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시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동지를 위해 주실 수 있는 믿음은 죄다 주시었고 하실 수 있는 일은 죄다 하시었습니다. ... 수령님께서는 동지를 위해 험한 먼길을 걸으시고 수많은 눈물을 흘리시었습니다. 한사람의 동지를 얻기 위하여 수천리길을 걸으셨고 귀중한 동지를 잃을 때마다 몸소 추도사도 쓰시고 땅을 치셨습니다." 폐부를 찌르며 새겨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듣는 한 일꾼의 머릿속에는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임종을 앞둔 어느날 맏아드님이신 김일성주석님을 옆에 앉히시고 하신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혁명사업을 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지를 잘 사귀는 것이고 좋은 동지를 얻기 위해서 사람볼줄을 아는 것이다. 일단 동지를 얻으면 생사를 같이해야 한다. 동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동지를 얻을 수 있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동지를 얻는데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시고 동지들을 위해 한평생 주실 수 있는 것을 다 주시고 하실 수 있는 일을 다하신 김일성주석님이시야말로 혁명적 동지애의 최고귀감이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듯 동지에 대한 사랑과 의리를 귀중히 여기고 언제나 동지를 진심으로 믿고 아끼며 뜨겁게 보살펴준 만경대 혁명일가의 전통적인 가풍과 미덕을 이어받으셨기에, 김일성주석님의 동지애를 그대로 받아안으셨기에 혁명동지를 더없이 귀중히 여기시며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그 일꾼은 후더운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혁명동지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고 극진히 사랑하시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동지를 굳게 믿으시며 일단 믿으신 다음에는 변함없이 끝까지 믿으십니다.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던 어느 한 일꾼이 사업상 과실로 사상수양을 쌓기 위해 현지에 내려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며 그를 평양에 소환하여 다시 중요직책에서 사업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실수를 하여 과실을 범했고 다시 현지에 내려갔습니다. 그때로부터 얼마간 시일이 지난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그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중요한 과제를 주어 그를 외국에 보내셨습니다. 그때 그 일꾼은 장군님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고 거듭 심려를 끼쳐드린 자책감으로 하여 자기는 아직 그러한 중책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사업을 통해서 과실을 깨끗이 씻어내라고 하시며 굳이 과제를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가 맡은 과제를 잘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에는 몸소 신새벽에 비행장에까지 나가셔 그를 뜨겁게 포옹하시고 일을 잘했다고 치하해주셨습니다. 아무리 관용한 사람이라도 관대하게 용서해준 사람이 또 과실을 저지르면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두번이고 세번이고 믿음을 베푸시어 진정한 혁명가, 혁명동지로 만드십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동지들의 정치적 생명을 철저히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혁명동지, 혁명전사라는 고귀한 믿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정치적 생명을 빛내이면서 충성의 한길, 혁명의 한길을 끝까지 걸어나가도록 극진히 보살피시고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장군님께서 혁명동지들과 혁명전사들의 정치적 생명을 구원해주시고 보호해 주신 이야기는 많고 많습니다. 장군님의 은덕으로 정치적 생명을 찾은 한 시인은 자기의 시에서 이렇게 진정을 터쳤습니다. 그대는 어머니! 피도 숨결도 다 나누어주고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안아주며 바람도 비도 죽음까지도 다 막아나서주는 우리들의 어머니 준엄한 싸움길에 하나의 전사 뒤떨어져도 천리길 만리길을 다시 달려가 붉은기에 휩싸안아 대오에 세워주는 영원한 삶의 품! 혁명의 어머니! ... 아, 나의 생명의 시작도 끝도 그 품에만 있는 조선노동당이여 하늘가에 흩어지고 땅에 묻혔다가도 나는 다시 그대 품에 돌아올 그대의 아들! 그대 정겨운 시선, 살뜰한 손길에 몸을 맡기고 나는 영원히 아이적 목소리로 부르고 부르리라- 어머니! 어머니 없이 나는 못살아! 시인이 어머니로 노래한 조선노동당이란 곧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동지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동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시며 혁명동지들에게 온갖 사랑과 은덕을 다 베풀어주시는 장군님은 진정 자애로운 어머니이십니다. 동지에 대한 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 중병으로 입원하고 있는 한 일꾼을 찾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장군님을 보는 순간 환자는 너무도 반가워 침상에서 뛰어내려 그분을 향해 달려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는 자기가 앓고 있는 병이 전염성을 띤 것이기에 그분을 몸가까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환자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그분께서 돌아가주실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찾아온 손님을 대접은 못할 망정 쫓아버리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시며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서있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고 어깨를 쓸어주시며 알고 있소, 설사 그렇다 칩시다, 그래 나를 동지의 아픔보다 제 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 작정입니까,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자기를 위해서 바치는 것보다 남을 위하여 바치는 것이 더 많아야 하는 것이 혁명동지들 호상간의 관계인데 그것이 빈말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그러지 마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그와 무릎을 같이하시고 오랫동안 그의 병을 위로해주셨습니다. 독일의 속담에 '벗은 모든 보물보다 더 귀중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처럼 혁명동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고 극진히 사랑하시는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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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군님이 제일 아름답다고 보는 것은 혁명적 동지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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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혁명적 동지애라고 생각합니다. 혁명동지들 사이에 오고가는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수령님을 중심으로 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칠 수 있으며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의리로 생사운명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혁명적 동지애를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보시는 것은 그것이 혁명의 수령과 혁명전사들 사이의 의리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수령은 혁명전사에게 끝없는 믿음과 사랑을 부어주며 혁명전사는 그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수령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 것이 수령과 혁명전사들 사이의 혁명적 동지애인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과 광복후 부수상의 직책에서 주석님을 보좌한 항일혁명투사 김책사이에서 발현된 동지애를 이러한 동지애의 최고모델로 삼으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선호하시는 이러한 동지애를 말해주는 감동적인 화폭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일성주석님의 금고에 보관되어있던 한장의 사진입니다. 주석님께서 생전에 귀중히 여기시던 금고가 있었는데 그분께서 서거하신다음 열어보니 거기에는 김책과 같이 찍으신 한장의 사진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책은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김일성주석님을 받들어모시고 항일전에 참가했고 광복된 다음에도 주석님을 높이 모시고 모든 시련을 앞장에서 헤치며 충실히 사업하다가 6·25전쟁때 전사한 혁명전사였습니다. 주석님께서는 동지가 그처럼 귀중했고 그를 그렇듯 열렬히 사랑하셨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지 반세기가 되도록 그와 찍은 사진을 금고에 보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석님의 금고는 억만금의 황금덩이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귀중한 동지애를 간직하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숭고한 동지애를 그대로 이어받으시고 혁명전사들에 대한 열화 같은 믿음과 사랑을 베푸십니다. 1969년 7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셨다가 한 일꾼과 함께 어느 한 호수에서 자그마한 배를 타시고 휴식의 한때를 보내셨습니다. 맑은 수면위로 배는 조용히 흘러갔습니다. 기슭에 뱃머리를 대게 하신 장군님게서는 자유로이 날아예는 물촉새떼를 잠시 바라보시다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망한 연출가 천상인 동무 생각이 납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그때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 정말 애를 먹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일꾼은 콧마루가 찡해지고 목이 메어와서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떠나간 전사를 두고두고 잊지 못하시며 거듭 외우시는 그분의 심정이 가슴을 에이며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잠시 지켜보시더니 내가 이곳에 정을 붙이게 된것은 다만 이 호수와 주변의 경치가 수려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도 바로 여기서 동무들과 함께 문학예술혁명의 구상을 무르익히면서 혁명에 유익한 일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령님께서는 혁명을 하자면 무엇보다도 뜻을 같이하는 혁명동지를 많이 얻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었는데 바로 여기서 우리들은 함께 일을 하고 휴식도 하고 때로는 밤도 같이 새우고 때로는 허물없이 이야기도 나누면서 서로 더 잘 알게 되었고 믿음도 더욱 두터워졌다, 동무들도 이 과정에 당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결의를 마음속으로 다졌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지들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사랑이 담긴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그 일꾼은 그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죄송스럽기만 하여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했다 합니다. 이렇듯 혁명적 동지애는 수령과 전사들 사이를 의리로 맺어주는 사랑이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인 것입니다. 혁명적 동지애가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되는 것은 또한 그것이 같은 사상과 목적을 위해 싸우는 동지들 사이의 가장 고상하고 귀중한 사랑이기 때문 입니다. 혁명적 동지애는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한길에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도와주는 고상한 사상감정입니다. 사상의 공통성은 혁명적 동지애의 전제이며 원천입니다. 어제까지 사상이 같았으나 오늘은 사상이 다르면 거기에는 동지애가 작용할 수 없으며 증오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적 동지애는 사람들을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결합시키며 사람들 사이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도와주는 미풍이 높이 발양되게 합니다. 부모, 형제, 부부, 벗 사이의 사랑도 혁명적 동지애와 결합될 때에만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공고한 사랑으로 될 수 있습니다. 어느해 꽃피는 봄날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협동농장의 여성관리위원장에게 남다른 고충이있다는 것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그 고충이란 결혼을 하고도 오랜 기간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한 일꾼에게 그들이 왜 헤어져 사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일꾼이 알아본데 의하면 관리위원장의 남편은 먼 타지방에서 인민군대에 복무하는 군관인데 군복을 벗을 수 없다면서 바늘가는데 실따라 간다고 아내더러 농사를 그만두고 자기에게로 오라는 요구를 제기하고 있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한 농장의 관리위원장인데 어떻게 농장을 훌쩍 뜨겠는가고 하면서 남편더러 제대될 때까지 지금과 같이 지내며 살자고 하여 하는 수 없이 떨어져 살게 된것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사정이 깊이 헤아려질수록 자기의 본분에 그토록 성실한 이 사랑스러운 부부의 고충이 기특하여 즐거운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마치 견우, 직녀의 옛이야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 사이에 칠월칠석의 오작교가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고향땅을 살기 좋은 낙원으로 꾸려놓으려는 여성관리위원장의 소행이 더욱 마음에 드시어 남편을 제대시켜 이곳 군의 어느 한 기관에 파견해주셨습니다. 관리위원장방에 불쑥 나타나 아내의 손을 덥석 잡은 남편은 장군님께서 돌려주신 꿈 같은 은정에 대해 흥분에 넘쳐 말하면서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꿈 속에서만 그려보던 사랑하는 남편을 만난 여성관리위원장은 장군님의 그 사랑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렇게 되어 그들 부부는 장군님의 은덕을 이야기하며 기쁨속에 고향땅을 더 잘 꾸려나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부부간의 사랑도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한길에서 꽃필 때 혁명적 동지애로 승화되며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된다고 보십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적동지애를 사랑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시고 온 나라에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한 혁명적동지애가 높이 발양되도록 하십니다. 이북에서는 수령과 혁명전사들 사이, 동지와 동지들 사이에 혁명적 동지애가 뜨겁게 오고감으로써 수령과 영도자의 두리에 민중이 한마음 한뜻으로,의리적으로 굳게 뭉쳐있으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도와주는 미풍이 봄날의 대화원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1993년 12월에 세계정치사에서 전무한 전국공산주의 미풍선구자대회가 열렸으며 김정일장군님께서 자주 공산주의 미풍을 높이 발양한 민중들에게 감사를 보내주시는 이 희환한 현실은 충성과 사랑, 의리의 도의국, 유토피아인 이북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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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장군님이 제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경치란 '우리 조국의 사회주의 경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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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해 가을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안남도 덕천시에 대한 현지지도를 끝내고 개천시로 가시던 길에 알일령마루에서 잠시 휴식하셨습니다. 그 영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산발들과 산골짜기에 들어 앉은 새로 생긴 마을이며 그 앞으로 흐르는 시내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개천군 알일령지구도 산세가 험하고 골짜기가 깊어 그전에는 인적이 드물었는데 오늘은 골짜기마다 수많은 탄광이 생겨 나라의 유망한 석탄산지로 전변되었습니다. ... 이것이 바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날을 따라 몰라보게 변모되는 우리 조국의 새로운 모습입니다." 그분께서는 알일령아래에 펼쳐진 탄전지구의 경치를 한품에 안으시려는듯 두팔을 벌리고 몇걸음 앞으로 나가시더니 끓어오르는 격정을 억제할 수 없으신듯 시적인 감정을 담아 이런 경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막 울렁거리고 새힘이 솟구친다고, 나는 이런 경치를 제일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나라는 산천경개 아름다운 명승의 나라입니다. 금강산, 묘향산, 한나산, 다도해...이르는 곳마다에 절승경개의 명승지들이 있어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지게 합니다. 명승지뿐만 아니라 계곡의 졸졸거리는 물소리도, 푸른 산아래 오붓이 자리잡은 산촌의 정경도, 맑은 시내를 끼고 가없이 펼쳐진 들판과 풀을 뜯는 소의 영각소리도, 푸른 파도 바위에 부딪쳐 흰갈기를 날리고 눈부신 백사장에 해당화 붉게 핀 바닷가 풍경도 끝없는 정취에 잠기게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사람에게 미에 대한 감정과 정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서가 풍부하시고 다정다감하시기 이를데 없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송도원이나 서호의 백사장을 거니실 때면 바다는 언제 보아도 마음에 든다고, 앞이 확 트이고 속이 깊고 담찬 것이 꼭 대장부의 기상같다고, 바다는 해돋이와 같은 열정이 있고 노도와 같은 격조가 있으며 달밤과 같은 서정이 있어 참 좋다고 하시며 떠나기 아쉬워하십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토록 이름난 명승지보다도 더 귀중히 여기며 사랑하시는 경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김일성주석님의 현명한 손길에 의해 마련되고 나날이 변모되어가는 사회주의 조국의 경치인 것입니다. 사회주의 조국의 경치에는 이 땅위에 민중의 낙원을 일떠세우기 위해 한 평생을 바쳐오신 김일성주석님의 높으신 뜻과 불면불휴의 노고, 은혜로운 사랑이 깃들어있으며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모든 것이 민중을 위해 봉사하며 민중의 행복이 활짝 꽃펴난 민중중심의 사회주의 제도의 참모습이 담겨져 있으며 오늘도 살기 좋지만 내일은 더욱 융성번영할 사회주의 조국의 찬란한 미래가 비껴있습니다. 그러기에 김정일장군님에게는 사회주의 조국의 경치가 제일 아름다우며 그분께서는 그것을 가장 좋아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장군님의 사회주의 조국의 경치에 대한 유다른 사랑과 정취는 그분의 수령관에 기초한 조국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열화같은 조국애의 발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주체의 조국관을 지니시고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인민학교 시절인 1952년 8월에 몸소 작사하시고 그후 작곡까지 하신 '조국의 품'은 이것을 잘 말해줍니다.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인가요 대동강에 곱게 비낀 무지갠가요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은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입니다 진달래꽃 방긋 웃는 새봄인가요 종달새가 지저귀는 하늘인가요 봄날처럼 따사로운 조국의 품은 나를 안아 키워준 어머닙니다 바다위에 둥실 솟은 아침핸가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인가요 햇빛처럼 밝고밝은 조국의 품은 아버지장군님 품이랍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신 첫날에 용남산마루에 오르셔 '조선아 너를 빛내리'라는 시를 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과 국가의 영도자로 활동하시면서 조국애에 관한 수많은 저술과 명언들을 내놓으셨으며 1989년 12월 28일에는 저작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를 발표하셔 우리 수령이 제일이고 우리 당이 제일이며 우리 조국, 우리 사회주의 제도가 제일이라는 명제를 내놓으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셔서 사람도 산천도 비애와 절통에 잠겨있는 속에서 맞은 1995년의 새해 첫날에 전당, 전군, 전민에 보내신 서한에서 "피눈물 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위대한 수령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아갑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나라는 단군민족, 김일성민족이 사는 조선이라는 뜻이고 내 조국이란 김일성주석님께서 마련하신 항일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아 무궁번영하는 사회주의 조국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김정일장군님은 내 나라, 내 조국을 가장 열렬히 사랑하시는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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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장군님이 제일 사랑하는 꽃은 목화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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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꽃에 대해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렸으며 꽃에 대한 이야기도 엮었습니다. 꽃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미의 세계는 곱고 향기를 풍기는 그런 화려한 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향기도 없고 꽃모양새도 그리 곱지 못해 사람들의 안중에도 들지 않는 목화꽃을 제일 사랑하십니다. 장군님께서 왜 천만가지 꽃들중에서 목화꽃을 제일 사랑하실까요. 1969년 9월 어느날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안주시 원풍리의 어느 목화밭을 찾으셨습니다. 목화꽃과 열매들을 만족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목화가 아주 잘되었다고 하시며 여기서는 10년전에 수령님께서 목화를 재배할데 대한교시를 훌륭히 실행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동행한 수원들중에는 목화를 처음 보는 북관내기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목화꽃이 소박해보여서 마음에 든다거니 또 색깔은 다르지만 할미꽃 비슷하다느니 하며 신기해하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그분께서는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어떤 꽃을 제일 좋아하는지 차례로 말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수원들은 제각기 진달래꽃이 좋다느니, 은방울꽃이 좋다느니, 장미꽃이 좋다느니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사람들은 물론 곱고 향기로운 장미꽃과 같은 꽃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고운 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목화꽃이라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목화꽃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어 한 수원은 그분께 왜 목화꽃을 사랑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수원의 물음에 잠시 동안을 두셨던 그분께서는 대답대신 먼저 질문을 하시면서 한사람은 얼굴도 곱고 향수냄새도 풍기면서 다니지만 일에는 성실하지 못하고 자기의 잇속만 채우려는 사람이고, 또 한사람은 얼굴도 곱지 못하고 향수냄새도 풍길줄은 모르지만 누가 보건말건 양심껏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인데 어느 사람이 곱다고 생각되는가 말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한 수원이 두번째 사람이 곱다고 제꺽 말씀드렸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의 대답에 수긍하시면서 사람치고 고운 용모와 향수냄새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고운 용모와 향수냄새가 인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는 미운 것으로, 역겨운 것으로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속담에 사람이 고운 것이 아니라 일이 곱다는 말이 있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며 그분께서는 첫째 부류의 사람은 줄장미와 같고 둘째 부류의 사람은 목화꽃과 같다고 하시면서 아마도 솜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화꽃은 그렇게 장한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줍은 듯 꽃송이를 활짝 터치지도 않고 땅만 보면서 피어있습니다. 나는 목화꽃이 큰일을 하면서도 제 모습을 드러낼줄 모르는 꽃이기 때문에 더 정이 가고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한 말을 생각하면서 목화꽃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목화꽃이 장미 못지 않게 곱게 보일 것이고 동무도 그 꽃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장군님께서 목화꽃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목화꽃이 비록 겉모양이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솜을 가져다주며 민중의 생활향상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는 꽃이기 때문이며 그렇게 장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고 소박하게 피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미의 세계입니다. 민중의 이익, 민중의 행복을 위해 묵묵히 자기를 바치는 것을 더없이 아 름다운 것으로 보시는 장군님의 미학관은 민중중심의 세계관과 민중의 충복이되어 민중을 위해 복무하려는 생활신조로부터 출발한 그분의 사상감정세계인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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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장군님이 좋아하는 빛갈은 붉은 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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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색은 김정일장군님께서 좋아하시는 색깔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붉은 색을 진실과 친절, 애정과 행복, 감사와 열정,힘과 용기, 희망과 미래를 나타내는 색깔로 여겨왔습니다. 장군님께서 붉은 색을 좋아하시는 것은 이런 통례적인 미학정서적 감흥에 서만이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붉은 색을 압제와 착취를 반대하고 인간의 자유와 해방, 존엄을 쟁취하기 위한 혁명가들의 고상한 이념과 위대한 혁명투쟁, 철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의 상징으로 여기십니다. 이런 사상감정으로부터 장군님께서는 붉은 색을 좋아하시며 붉은 색이 진하게 물들여져있는 붉은기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붉은기는 8세기에 이란의 고르간농민폭동에서 농민들이 붉은기를 들고 싸운 것을 시작으로 하여 피압박근로대중의 반항과 해방투쟁의 산물로 지구상에 나타나났습니다. 1832년 파리폭동때에 붉은기는 민중들이 흘린 피의 상징으로, 혁명의 기치로 되었으며 1871년 파리코뮌후에는 프롤레타리아혁명과 세계 혁명적 노동운동의 기치로 되었습니다. 자기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한 노동자계급과 각성된 민중들은 영웅적 투쟁을 벌여 첫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탄생시켰고, 지구상에는 붉은기아래 사회주의 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초에 이르러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들에 의해 소련과 동구권사회주의 나라들이 일시에 무너지고 붉은기가 내리워지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기고만장한 서방은 그 어떤 정치적 파동과 이상기류에도 끄떡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이북을 고립압살하고 이 사회주의 보루에서 붉은기를 마저 내리워보려고 위협과 제재의 봉쇄망을 초강도로 조여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이북은 혁명의 수령이시며 사회주의의 기치이시며 민중의 어버이이신 김일성주석님을 잃는 최대의 상실을 입었습니다. 이 최악의 역경과 엄혹한 시련 속에서 이북이 계속 사회주의의 길로 나갈것인가 주저앉을 것인가, 붉은기를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세계의 이목은 이북에 집중되고 이북의 정세추이는 세계정치의 초점으로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주체의 붉은기, 사회주의 옹호고수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드신 분이 강철의 위인 김정일장군님이셨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의 서거 100일제가 엄숙히 거행된 직후인 94년 11월 1일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저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발표하시었습니다. 사회주의의 과학성과 불패성을 심오한 사상이론과 철의 논리로 편 장군님의 저서를 접한 세계는 커다란 충격과 격정에 휩싸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저서를 통해 장군님의 사회주의에 대한 절대적 신봉과 불변의 신념,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해나갈 그분의 철석같은 결의와 불굴의 의지를 읽었던 것입니다.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주석님을 잃은 그 절통한 애도기간에 왜 피눈물을 삼키며 이 저서를 한자한자 적어나가셨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논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발표하여 우리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사회주의 위업을 끝까지 고수하고 완성해나갈 것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결국 나의 사상이 붉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나 같습니다." 세계가 사회주의의 보루인 이북의 전도와 주체사회주의의 운명에 대해 주시할 때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사상이 붉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께서는 김일성주의자로서 김일성주석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사회주의 위업을 끝까지 고수하고 완성해나갈 것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셨으며 이북의 그 어떤 변화에 대해 꿈꾸는 자들에게 망상하지 말라는 준엄한 선고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뒤이어 평양의 하늘에서는 '높이 들자 붉은기'라는 노래가 온 누리에 장엄히 울려퍼졌습니다. 1. 백두의 성스런 붉은 깃발엔 수령님의 한생이 어리어있다 높이 들자 붉은기 맹세로 불타라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2. 역사의 준령을 헤쳐넘으며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어왔다 높이 들자 붉은기 신념의 이 깃발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3. 이 깃발 들고서 당을 받들고 이 깃발 지키며 내 조국 빛내리 높이 들자 붉은기 주체의 한길에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이북에서 울려퍼진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의 붉은기를 더욱 높이 드셨음을 알리는 역사의 메아리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노래를 두고 특히 가사에서 '백두의 성스런 붉은 깃발엔 수령님의 한생의 어리어있다'와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어왔다'라는 구절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서도 혁명가의 일생은 붉은기를 휘날려가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게 된다고, 이 노래는 나의 사상을 담고 있으며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힘과 신심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분께서 높이 드신 주체의 붉은기는 김일성주석님의 한생이 어려있는 영광의 기치이며 승리만이 아로새겨져있는 불패의 기치입니다. 돌이켜보면 김일성주석님께서는 1926년 송화강기슭에서 'ㅌ.ㄷ' (타도제국주의동맹)를 결성하시고 백두밀림에서 혁명의 붉은기를 추켜드신 그날로부터 근 70평생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험로역경의 길을 헤쳐오시면서도 언제나 굴함없이 억세게 이 깃발을 휘날려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북땅에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낙원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러시고도 주석님께서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붉은기를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사업에 모든 심혈을 다 바치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의 성스러운 한생이 어려있고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주석님의 불멸의 업적이 깃들어있는 주체의 붉은기를 끝까지 고수하고 높이 휘날려 주체의 사회주의 위업을 완수하고 인간의 자주성과 존엄이 완전히 실현된 이상사회를 건설하시려는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주체의 붉은기를 더욱 높이 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주체의 붉은기는 혁명가들과 민중들에게 혁명가의 일생은 붉은기를 펄펄 휘날리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불타는 각오를 가지게 하고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면서 동방의 사회주의 조선에서 힘차게 나부끼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드신 붉은기는 어떤 난관과 시련도 박차고 혁명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굴함없이 억세게 싸워나가시려는 그분의 신념과 의지의 깃발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앞에 난관이 가로놓이고 시련이 닥쳐왔을 때는 늘 '적기가'를 생각하십니다. ...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준엄했던 1935년, 항일유격근거지 왕청현 다홍왜에서 높이 울러퍼졌던 '적기가'는 안팎의 원수들이 사면팔방에서 달려들고 비겁분자들이 대오에서 도주할 때 조선의 혁명가들이 김일성주석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부른 신념과 의지의 노래입니다. 조선노동당창건 50돌이 되는 1995년 10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노래에 대해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적기가'의 가사와 같이 당을 따라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야 합니다. 나는 우리 혁명이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확신합니다." 마디마디에 혁명을 끝까지 하려는 각오와 의지, 혁명승리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뜨겁게 맥박치는 말씀입니다. '적기가'의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간고한 시련의 시기마다 장군님께서 늘 심장으로 외우시고 다짐하신 신념이며 의지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북이 어려운 시련을 겪던 1956년 12월 강선제강소의 노동자계급을 찾으신 김일성주석님께서 안팎의 정세와 나라의 어려운 형편을 알려주시면서 나는 오직 혁명의 주력부대인 노동계급을 믿고 있다고 하셨을 때 주석님께 종파의 오물들을 강선에 보내달라고, 전기로에 콱 처넣겠다고 말씀올린 노동자계급의 그 신념과 의지를 놓고 '적기가'의 이 구절을 생각하셨습니다. 국제무대에서 수정주의가 대두하여 혁명앞에 난국이 조성되었을 때의 어느날, 달리는 차안에서 '적기가'를 한번 두번 계속 반복하여 들으시면서 단호히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고, 혁명을 배반한 자들과 결별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노래에도 있듯이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붉은기를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말씀하신 장군님이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가장 엄혹한 시기인 오늘 다시금 '적기가'의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나갈 의지와 우리 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불같은 신념을 다지시는 것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드신 주체의 붉은기는 오늘 이북땅에 붉은기사상이 힘있게 나래치게 하여 민중들을 주체사회주의의 옹호고수와 완수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전체 민중들이 장군님께서 펄펄 휘발리시는 붉은기의 두리에 붉은기사상,주체사상으로 굳게 뭉쳐 온갖 난관과 시련을 박차고 사회주의 승리의 한길로 대하처럼 굽이쳐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이북의 장엄한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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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장군님이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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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흔히 계절을 두고 각이하게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꽃피는 봄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만물이 무성하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을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면 아마도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겨울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1970년대 초의 어느해 겨울날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지방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서 한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그가 급히 장군님께로 달려갔을 때는 겨울해가 서산으로 저물어가던 석양녘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눈덮인 들길에 나오셔 그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잠시 드신 수수한 집의 주변은 소복이 쌓인 흰눈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산야가 흰눈에 덮인 겨울의 설경은 순결하고 상쾌한 정서를 자아냈습니다. 어느 누가 말한 것처럼 겨울은 시인들이나 화가들의 계절인가 싶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겨울의 풍치가 안겨주는 정서에 잠겨계셨다가 일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좋은 겨울입니다. 조선의 겨울은 참으로 힘의 정서를 풍기는 인상깊은 계절입니다. 백두산에서 싸우시던 우리 어머님은 겨울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나도 겨울이 좋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꾼을 데리시고 눈길을 한동안이나 거니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겨울을 제일 좋아하시는 것은 이 계절이 힘의 정서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장군님께서는 겨울에서 왜 힘의 정서를 느끼시는 것일까요. 장군님께 있어서 겨울은 요람의 계절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백설이 강산을 뒤덮은 그 겨울에 백두산밀영에서 탄생하셨으며 영하 4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와 천고밀림을 뒤흔들며 지동치는 눈바람속에서 성장하시면서 견인불발의 의지와 강인담대한 담력을 키우셨습니다. 이런 분이시기에 그분께서는 눈내리는 겨울 어느 계절보다 정다우시어 설경을 보시면 힘이 솟는 것입니다. 겨울은 또한 장군님의 가슴속에 투쟁의 계절로 간직되어있습니다. 아버님이신 김일성주석님과 어머님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눈보라 울부짖고 설한풍이 살을 에이는 백두밀림과 만주광야에서 20성상 항일혁명투쟁을 하셨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을 따라 항일빨치산들은 생눈을 씹고 얼음덩이를 깨물면서 눈보라 만리길, 불길 만리길을 헤치며 원수들을 족쳤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의 영솔하에 항일빨치산들이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까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어내면서 원수들의 끈질긴 추격과 2중3중의 포위망을 뚫고 100여년이래 처음으로 되는 대강설을 한치한치 헤치며 일주일이면 가닿을 350리 길을 7,000여리를 에돌아 100여일만에 목적지에 가닿은 그 '고난의 행군'도 바로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의 겨울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겨울이 되어 눈보라 일고 찬바람 불어닥칠때면 역사에 유례없이 간고했던 그 항일혁명투쟁이 생각되시어 마음이 숭엄해지고 항일혁명투사들처럼 온갖 간난신고를 헤치고 혁명을 해야겠다는 각오와 의지, 힘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1972년 5월이었습니다. 계절은 신록이 우거지는 봄이었지만 고산지대인 양강도, 특히 백두산일대는 아직도 겨울이었습니다. 이 지방을 현지지도하고 계시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눈보라 울부짖는 어느날 백두산에 오르시러 길을 떠나셨습니다. 자동차가 무두봉을 지나 대연지봉기슭을 끼고 달릴 때 별안간 백두산마루쪽에서 쏴-하고 요란한 바람소리가 나더니 눈보라가 타래쳐와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자동차는 겨우 눈 속을 빠져나왔으나 얼마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백두교를 지나서부터는 눈이 허리를 넘게 쌓여있어 자동차길이 아예 막혀버린데다가 눈바람이 아까보다 더욱 이악스레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일행이 차에서 내려 눈을 헤가르며 몇걸음 걸어갔을 때였습니다. 바람이 광목찢는 듯한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더니 눈산을 움씰움씰 밀고 일행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제 얼마후이면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일꾼들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위험합니다. 돌아갑시다."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태연자약하게 일꾼들은 보시며 "생각해보시오, '고난의 행군'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렇지도 않소. 자, 또 갑시다."라고 격려하시고 앞서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일꾼들은 장군님의 앞을 성벽처럼 막아서며 더는 가시지 못한다고, 훗날 날씨가 좋은 때에 올라가시자고 애원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의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무들은 왜 그리도 내 마음을 몰라줍니까. 내가 왜 이런날에 백두산에 오르려고 하는지 압니까? 백두의 혁명정신이 어떤 간고한 시련 속에서 이루어졌는가를 마음속으로 나마 더 깊이 체득해보기 위해서요. 이렇게 백두의 사나운 눈보라와 맞서도 보고 험한 눈길도 헤쳐보면서 '고난의 행군'길을 돌이켜보아야 조선혁명이 어떤 혈로를 헤쳐왔는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고 또 앞으로 우리 혁명의 앞길에 중중첩첩 산악이 막아서도 쉬이 넘을 수 있는거요. 우리는 혁명의 먼길을 걸어가야 할 사람들이 아니요. 혁명의 먼길을 변함없이 걷자면 지난날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오. 자, 백두산정으로 오릅시다." 그제야 일꾼들은 장군님께서 눈보라 울부짖는 날에 백두산으로 오르시는 까닭이 헤아려져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목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그분앞에 길을 내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백두산정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길을 톱으셨습니다. 이렇듯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의 울부짖는 눈보라 속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이 김일성주석님을 모시고 조국진군의 혈로를 헤친 그‘고난의 행군'을 돌이켜보면서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싸운 그 투쟁정신, 꺽이면 꺾일지언정 주체혁명위업에 대한 신념은 버리지 않는 그 혁명정신,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풍파사납고 시련에 찬 혁명의 길을 대를 이어 꿋꿋이 헤쳐나가시려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려고 지동치며 태질하는 눈바람을 헤쳐 백두산에 오르셨던 것입니다. 질문(노동자): "이북에서 요 몇해동안 벌이고 있는 '고난의 행군'이 항일전때 항일빨치산들이 단행한 그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나라의 어려움을 뚫자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옳게 생각하셨습니다. 이 몇해사이 이북의 내외정세와 형편은 항일전시기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때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방은 어떻게 하나 이북의 사회주의를 허물어보려 달려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힘의 정책'을 계속 추구하면서 군사적 위협과 압력을 가하는 한편 이북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보려고 각방으로 획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북과 경제관계를 맺으려는 나라들에 압력을 가하고 따라다니면서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북은 지난 몇해동안 거듭되는 홍수와 자연재해로 농사가 잘되지 못해 식량사정이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항일빨치산들이 사선을 헤친 그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현 난국을 극복해나갈 것을 전당, 전군, 전민에게 호소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을 보면 항일빨치산이 '고난의 행군'을 할 때와 같은 상황이라고 하시면서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싸워나갈데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님의 연두사와 같은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당보 '노동신문', 군보‘조선인민군', 청년보‘노동청년' 95년 1월 1일 공동사설도 '고난의 행군' 정신을 높이 발휘해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지켜나갈데 대해 역설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정신이란 항일빨치산들이 '고난의 행군'때 수백, 수천배나 되는 적의 포위와 추격 속에서 김일성주석님께서 계시는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이며 영하 4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다 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한홉의 미숫가루를 나누어먹고 생눈을 씹으며 모든 것을 자체로 해결하면서 혈로를 헤쳐간 자력갱생의 혁명정신, 난관극복 정신이며 혁명의 승리를 굳게 믿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일어날 힘마저 진하면 기어서라도 끝내 목적지에 가닿아 혁명의 새로운 전환기를 열어놓은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입니다. 이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싸워 오늘의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킬데 대한 장군님의 호소를 심장에 받아안은 사람들은 안변청년발전소를 건설한 인민군군인들이었습니다.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은 100리 물길굴공사에서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기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고들하면서 지하수가 터져 홍수처럼 밀려오는 속에서도, 붕락으로 굴이 막혀 갇힌 몸이 되어도 착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두개의 야장간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큰 설비수리공장을 차려놓고 모든 기계설비들을 자체로 생산도 하고 수리도 하여 공사를 보장하였으며 지휘관들은 "나를 따라 앞으로!"라고 외치며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뛰어들어 어깨를 들이밀고 산더미같은 암반이 붕락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병사들을 구원하고 자기 목숨을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사비 40억달러가 들었다는 서해갑문보다 2배나 되는 방대한 규모의 발전소건설을 마침내 96년 8월 30일에 끝냈습니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서 인민군군인들이 발휘한 이 혁명적군인정신은 김정일장군님께서 몸소 안겨주시고 펼쳐주신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공사기간 100여차례의 가르치심을 주시어 군인건설자들을 영웅적 투쟁에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병사들이 무너진 굴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는 그들을 구조해내기까지 며칠밤을 주무시지 않으셨습니다.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은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을 가슴에 지니고 자기의 고귀한 피와 땀을 바쳐 기어이 공사를 끝내고 장군님께 자랑찬 보고를올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몸소 준공된 발전소를 돌아보시고 건설자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었습니다. 그러시고는 안변청년발전소를 건설하는 거창한 대자연개조과정에 높이 발휘된 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배우기 위한 운동을 발기하시고 모든 경제부문과 단위들에서 혁명적 군인정신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이북민중들은 김정일장군님께서 안겨주신 '고난의 행군'정신, 혁명적 군인정신을 가슴가슴에 안고 용약 떨쳐나서 '고난의 행군'의 최후돌격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북은 새로운 전변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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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장군님이 제일 증오하는 것은 배신과 변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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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지 우화를 말하겠습니다. 옛날에 짐승들과 새들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먼데서 그 싸움을 지켜보던 박쥐가 새들이 우세한 것 같이 보이자 그들에게로 날아가 자기는 짐승처럼 생겼지만 날개를 가진 새가 틀림없으니 함께 싸우자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짐승편이 우세해지자 이번에는 그쪽으로 재빨리 날아가서 자기는 새가 아니라 틀림없는 짐승이니 당신네 족속에 받아주기만 하면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노라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싸움은 새들이 이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들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박쥐는 목숨을 건지려고 숲 속을 헤매다가 동굴 속에 숨어 살면서 모든 새들이 둥지에 들어가 잠자는 밤에만 나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정일장군님께서 1970년 4월 어느날 일꾼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형세에 따라 변하고 바람따라 돛을 다는 신념이 없는 인간들, 배신과 변절을 일삼는 자들을 비유한 우화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배신과 변절을 제일 증오하십니다. 그것은 배신과 변절이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에 손상을 줄 뿐만 아니라 배신자, 변절자는 양심도 의리도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양심과 의리는 인간의 미덕이며 인간의 됨됨을 규정하는 척도입니다. 양심과 의리를 저버리는 배신자, 변절자는 인간이기를 그만둔 자이며 짐승만도 못한 추물인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십년전 퍽 오래전에 있은 일입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자신의 탄생일에 몇몇 일꾼들을 댁으로 초청하셔 검소한 식사를 나누신 다음 정원으로 나가 그들과 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군부출신의 한 자가 촬영시 모자를 내려쓰고 얼굴을 숙인채 있어 누구인가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상한 사진을 받으시고 격분을 금치 못해하면서 한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일꾼에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머리를 숙인 것은 순간의 실수가 아니다,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다, 그가 수령님께 죄를 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죄를 져도 큰 죄를 지은 것 같다, 수령님께서는 벌써 그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시고 솔직히 비판하도록 여러 차례 기회를 주시었는데 아직까지 아닌보살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분기를 참을 수 없으신듯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결연한 음성으로 아량을 가지고 믿어주고 이끌어주는데도 속을 주지 않는 사람은 우리와 한길을 갈 수 없다. 우리는 그와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며 동상이몽하는 자의 정체를 더욱 똑똑히 가려볼 수 있도록 사진을 빨리 수령님께 가져다드리라고 일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진봉투를 받아드신 주석님께서는 사진이 벌써 나왔는가고 하시며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어 보셨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이게 누구야, 이놈이 내앞에서는 얼굴도 못들면서 뒤에서 나쁜 짓을 해."라고 하시더니 아무리 보아야 이놈이 배신자가 틀림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석님께서는 분기를 눅자치시려는듯 시원하게 창문을 열어놓으라고 하시더니 장군님의 이름을 외우시며 그가 사진을 보고 뭐라고 하던가고 물으셨습니다. 그 일꾼은 그분께서 너무도 격분하여 점심식사도 제대로 드시지 못한데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주석님께서는 그는 어려서부터 배신자, 변절자들을 제일 증오했다고, 이제 그놈의 배신행위를 낱낱이 발가놓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때까지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릴적부터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들을 끝없이 증오하며 추호의 타협도 없이 견결히 싸우셨으며 끝없는 분노를 안고 그자들과 단호히 결별하군 하셨습니다. 6·25전쟁때입니다.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들은 전쟁으로 하여 조국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을 기화로 반당적이며 반혁명적인 행위로 당을 음으로 양으로 공격해나섰습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매일 매시각 아버님께서 겪으시는 마음속 고충을 속속들이 헤아리시고 놈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아버님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내셨습니다. "아버지! 한줌도 못되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 때문에 얼마나 근심하십니까? 그러나 아버지 안심하십시오. 놈들이 아무리 쏠라닥거려도 전체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아버지를 높이 받들과 그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종파놈들을 조금도 용서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그놈들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전체 인민들이 아버지를 모두 지지하며 아버지의 말씀대로 눈을 밝히는데야 어디 꿈쩍이나 하겠습니까. 아버지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주석님께서는 그 편지에서 큰 힘을 얻으셨다고 일꾼들에게 여러번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주석님께 기념사진을 올린 그날부터 장군님께서는 군대안의 군벌관료주의자들의 비행을 더욱 주의깊게 살펴보셨으며 그자들이 저지른 수많은 반당적인 행위들을 발가내셨습니다. 1969년 1월, 김일성주석님을 모시고 진행된 조선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는 당의 영도를 거부하면서 군벌주의 지반을 닦으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던 배신자들의 책동을 낱낱이 폭로하고 놈들을 당대열에서 제거했습니다. 그때로부터 몇달이 지나 김일성주석님의 탄신기념일을 맞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주석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은 한 일꾼과 함께 정원을 거니시던 장군님께서는 비둘기떼가 날아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이렇게 비둘기떼가 날아왔습니까?" 일꾼이 그렇다고 대답올리자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비둘기떼가 날아왔다고 하는데 비둘기는 주인을 알아보는 영리한 새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올 때는 날아오지 않지만 수령님께서 나오시거나 내가 나오면 어디에 갔다가도 날아옵니다. 이제 보겠습니까." 그분께서 신호를 하자 사방에서 수많은 비둘기들이 날아와 그분의 주위를 감돌기도 하고 발앞에 내려앉기도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비둘기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날짐승인 비둘기도 고와해주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자기를 키워주고 아껴주는 은인을 모르는 인간들이 더러 있다고 하시면서 그런 자들은 제가 잘나서 한자리하는 것으로 여기며 나중에는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수령을 배반하는데로까지 굴러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그런 인간을 두고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과정에 범한 과오는 고칠 수 있지만 배반은 고치지 못합니다. 한번 배반한 자는 두번 배반하게 되고 계속 배반합니다. 대오안의 배신자는 대오밖의 적보다 더 위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배신자들을 제일 증오합니다." 뜻깊은 말씀입니다. 숭고한 의리심과 열화같이 타오르는 뜨거운 심장을 지니셨기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배신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그 누구보다도 강하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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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장군님이 제일 경멸하는 것은 아부아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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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아부아첨하는 사람들을 매우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중학시절에 있은 일입니다. 학과성적도 우수하고 재능도 누구만 못하지 않는 한 학생이 아첨기가 있어서 말밥에 오르고 있었는데 장군님께서는 남의 환심을 사려고 웃지 않을데서도 공연히 헤푼 웃음을 흘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입에 담기도 하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동무는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열배나 더 훌륭한걸 가지고 있다. 아니, 열배가 아니라 그보다 더 될 수도 있다. 헌데 그 모든 훌륭한 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한가지 결점 즉 아첨기 그것으로 하여 모조리 상쇄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열배가 아니라 스무배나 보기 흉한 사람으로 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첨하는 나쁜 버릇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기 힘, 자기 머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첨을 한다." 아부아첨하는 사람은 인간의 존엄도 없이 남에게 발라맞추고 굴종하면서 비열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장군님께서는 저열한 속물로 보시고 싫어하신 것입니다. 러시아 작가 체호프의 단편소설‘관리의 죽음'에 나오는 지방의 하급관리는 극장에서 오페라를 구경하다기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자기의 침이 튀어 앞에 앉은 장군의 뒷덜미에 묻은 것을 고민하던 나머지 죽어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아첨기가 있는 인간이 얼마나 비굴한 것인가를 실감있게 보여줍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런 비굴한 인간들의 아부아첨을 매우 미워하고 경계하십니다. 장군님께서는 아부아첨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보시고 경멸하십니다. 어느 기관의 한 일꾼이 반당반혁명분자들에게 아부굴종하면서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는데 놈들의 정체가 드러나자 뒤가 켕겨 일꾼들을 찾아가서 반성하는 척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이 얼마 안가서 드러났습니다. 1970년 가을 어느날 몇몇 일꾼들을 부르신 장군님께서는 죄를 감추기 위해 겸손한체 하면서 '열성'을 부린 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가 앞에서는 늘 귀맛이 좋은 말만 하기 때문에 뒤에 돌아가서 당의 사상과 어긋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시며 죄지은 사람이 아첨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부아첨하는 사람이 사리와 공명을 노리며 고난과 시련, 회유와 유혹 앞에서 쉽게 흔들리며 권력에 굴종하기 때문에 경멸하시며 경계하십니다. 1981년 8월 말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외국영와‘헤롯데대왕'을 보여주시고나서 영화가 시사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사람은 권력에 아부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을 존중해야지 직위를 보고 따르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맡고 있는 당조직비서의 직위는 어디까지나 당직이고 김정일은 인간입니다. 때문에 인간 김정일을 따라야지 관직을 따르면 안됩니다. 관직을 따른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아부아첨입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이 혁명의 영도자를 어떤 관점과 자세, 입장을 가지고 받들어야 하는가를 깨우쳐주시는 심오한 말씀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관직을 보고 따르면 권력에 대한 아부아첨이 생기지만 혁명의 영도자를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믿으면 신념이 굳어지고 의리가 생긴다, 신념이 있고 의리가 있어야 참된 충신이 될 수 있다, 신념이 없고 의리를 버리는 자는 예외없이 변절자로 떨어진다는데 대해 일깨워주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제일 증오하는 것은 배신과 변절이며 제일 경멸하는 것은 아부와 아첨입니다. 배신과 변절은 대세와 추세에 따라 변하는 반역이며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는 배은망덕입니다. 아부와 아첨은 고난과 시련, 회유와 유혹 앞에서 쉽게 흔들리는 악덕이며 권력에 대한 굴종입니다. 바람따라 돛을 다는 인간, 동상이몽하는 간신들은 망하고 맙니다. 때문에 우리는 배신과 변절, 아부와 아첨을 예리하게 살피고 경계하여야합니다." 배신, 변절과 아부아첨을 다같이 하나로 위험시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배신과 변절, 아부와 아첨은 한동아리안에 넣을 수 있는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배신과 변절, 아부와 아첨은 반역이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아부와 아첨은 뒤집어놓으면 배신과 반역으로 굴러떨어지고 배신과 변절을 뒤집어놓으면 아부와 아첨으로 탈바꿈을 합니다. 이전 소련의 흐루시초프의 사례가 그것을 잘 말해줍니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이 생존해있을 때에는 그를 스승으로 존경한다고 했고 자기가 그의 '충실한 제자'라고 하면서 스탈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별의별 아양을 다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이 서거한지 20분도 안되는 시각에 시신옆에 앉아서 독사의 눈을 굴리면서 스탈린이 사망했으니 이제는 내가 그자리를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기와 엇서나가는 사람들을 경계했습니다. 권력을 쥔 그는 태도를 일변하여 스탈린을 헐뜯기 시작했고 공장, 기업소, 도시와 거리들에서 스탈린의 이름을 없애버렸으며 심지어는 스탈린의 동상과 기념비들을 제거했고 나중에는 붉은 광장에 영구안치되었던 스탈린의 유해까지 꺼내어 화장해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배신자, 변절자들은 처음에는 아부아첨의 가면을 썼다가 기회가 되면 그것을 벗어던지고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배신자, 변절자들과 함께 아부 아첨자들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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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장군님이 싫어하는 것은 거친 일본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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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로 통이 큰 사람은 일을 큼직큼직하게만 하고 일에서 구체성, 섬세성이 없는 것이 상례입니다. 하지만 담대하기 이를데 없는 김정일장군님은 늘 일판을 크게 벌이면서도 매사에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신 것이 영도풍모의 하나의 특징입니다. 그분께서는 당과 국가의 중대사를 모두 돌보시면서도 수천수만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세심히 지도하십니다. 하나의 가극을 지도하시면서도 가사의 문구와 노래의 선율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 하나의 문건을 보시면서도 문장과 단어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검토하시고 바로잡아주신다고 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무한히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지론입니다. 이런 분이시기에 그분께서는 거친 일본새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장군님께서 거친 일본새를 싫어하시는 것은 그것이 사업에 대한 무책임성,민중생활에 대한 무관심성의 표현이라고 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새집들이를 앞둔 창광거리의 아파트들을 돌아보셨습니다. 어느 한 집에 들리셔 내부를 구석구석까지 세심히 살펴보신 그분께서는 베란다에 나가시더니 창광거리건설을 맡아한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그가 다가가자 그분께서는 손으로 베란다의 한쪽 모서리를 가리키셨습니다. 무슨 흠이 없는가 자세히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봐야 그의 눈에는 미흡한 점이 띄우지 않았습니다. 그가 종내 부족점을 찾지 못하자 장군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물빠지는 구멍이야 밑바닥에 바싹 붙여서 내야지 이렇게 올려다 내면 어떻게 합니까." 그제야 일꾼이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니 아닐세라 베란다의 물빠지는 구멍이 바닥보다 알릴듯 말듯하게 약간 높이 나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당황해하는 일꾼에게 이것은 결코 어느 누가 이런데까지 살펴보지 못했다는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다, 비록 사소하고 하찮은 것 같지만 우리 일꾼들의 일하는 본새와 마음씨를 그대로 말해준다고 신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옥의 티는 허용할 수 있어도 인민을 위한 우리 일꾼들의 마음의 티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후 일꾼들은 베란다의 물빠지는 구멍의 위치가 바닥보다 얼마나 높은가를 재어보았습니다. 그 높이는 고작 1mm였습니다. 이렇듯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거친 일본새가 무책임성과 민중생활에 대한 무관심성 등 일꾼들의 마음속에 티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시기에 그것을 싫어하시며 철저히 바로잡기 위해 마음쓰시는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거친 일본새를 싫어하시는 것은 또한 그것이 요령주의,형식주의의 표현이라고 보시기 때문입니다. 1981년 8월 13일 이른아침 장군님께서는 준공식을 앞둔 빙상관을 돌아보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1층 홀에서 빙상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여닫아보시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문을 초대소에 다는 문처럼 만들어놓으면 얼마 가지 못합니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문을 되는대로 만들어 달았습니다. ... 지금 설계와 시공에서 형식주의가 많습니다. 아무렇게나 시공하여 건물을 해당 부문에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형식주의적으로 일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빙상관 내부를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1층 홀벽의 안팎에 같은 외장재를 바른 것은 잘못되었다고, 안벽에 외장재를 바르는 것은 미장벽을 바로잡기 힘드니 외장재를 가지고 손쉬운 방법으로 곰보미장을 한 것 같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요령주의적으로 일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빙상관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빙상관이 '100m 미인'같이 되었습 니다. '100m 미인'이라는 것은 멀리에서는 고와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밉다는 뜻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꾼들은 빙상관을 '안팎미인'이 아니라 '100m 미인'으로 만들어놓게 된 원인이 다름아닌 자신들이 지난날 일을 거칠게 해오던 타성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후 빙상관은 재 시공을 하여 '100m 미인'을 '안팎미인'으로 만든 다음에야 준공식을 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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