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군님이 주장하는 혁명의 철학은 '노래없는 혁명은 승리할 수 없다'
 
김정일장군님은 노래를 무척 좋아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장군님께서는 노래 듣기를 매우 좋아하실 뿐 아니라 몸소 가사도 쓰시는데 현재까지 알려지고 작곡되어 널리 불리워지고 있는 명가사만 해도 '조국의 품','축복의 노래', '나의 어머니', '대동강의 해맞이', '조선아 너를 빛내리','충성의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등 여러편이나 됩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작곡도 하시고 여러가지 악기도 다루시며 오케스트라에서 한 악기의 반음차이도 가려내시는 천재적 음각과 예능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런 분이시기에 노래에 대한 그분의 견해와 지론은 참으로 탁월하고 고상한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노래를 혁명투쟁의 위력한 무기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 신심을 안겨주고 혁명적 열정을 북돋아주는 혁명의 나팔소리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장군님께서는 혁명투쟁이 순탄할 때나 어려움을 겪을 때나 항상노래를 부르시었고 일꾼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시었습니다.

1970년대 하반기였습니다.

조국통일부문에서 일하고 있던 한 일꾼은 또하나의 연대가 저물어감에도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과 자책감에 잠겨있었습니다. 관할부서 일꾼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던 1978년 11월 어느날이었습니다.

이를 통찰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친히 그를 불러 조국통일운동을 잘해나갈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노래를 부면 힘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래를 부르라는 말씀에 어리둥절해하는 일꾼을 보시고 장군님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혁명이 간고할수록 충성의 노랫소리가 높아야 합니다. 충성의 노랫소리가 높은 곳에 혁명의 승리가 있습니다. 노래없는 혁명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혁명의 철학입니다.

혁명적 노래는 투쟁대오의 앞장에 울리는 진군가입니다. 혁명의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충성의 불길을 지펴줍니다."

장군님의 고귀한 말씀은 지난날 노래의 의미를 단순한 감상의 세계에서만 풀이하던 그를 새롭게 깨우쳐주었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새길수록 그 속에 혁명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탁견이 담겨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혁명은 준엄하고 간고한 투쟁입니다. 투쟁이 어려울수록 민중의 심장을 당과 수령, 혁명에 대한 충성의 열정으로 불태워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투쟁이 전진하고 혁명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혁명적 노래는 민중의 가슴가슴에 혁명에 대한 열정과 충성의 불씨를 지펴주는 투쟁의 진군가이며 혁명대오의 앞장에서 울리는 나팔소리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혁명적 노래는 충성의 불길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의 노랫소리가 높은 곳에 투쟁이 있고 혁명의 승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군님의 혁명의 철학, 음악철학입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고 격동되는 심정에 휩싸인 일꾼에게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고무해주셨다고 합니다.

"피어린 항일혁명투쟁시기에도 혁명가요를 부르며 승리했고 준엄한 조국해 방전쟁시기에도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며 적을 타승했습니다. 조국통일도 충성의 노래를 부르며 앞당겨야 합니다."

조국통일부문 일꾼들은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했습니다.

그들은 충성의 노래들을 묶어 예술소조공연사업도 활발히 벌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후 그들의 예술소조종합공연을 친히 보아주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공연을 높이 평가해주시고 "나는 동무들이 이번 예술소조공연준비과정에 보여준 높은 충성심과 열정을 가지고 자기앞에 맡겨진 혁명과업을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한 사업에서 새로운 성과를 이룩할 것을 굳게 믿습니다."라고 크나큰 기대를 표명하셨습니다.

오늘 이북민중들은 간고한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노래를 더욱 높이 부르고 있습니다. 투쟁이 어려울수록 노랫소리가 더욱 높은 곳이 이북입니다.

이런 장엄한 현실은 김정일장군님께서 혁명적이고 낙천적인 노래로 사람들의 심장을 불태워주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1995년의 어느날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민중들의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고무추동하는 좋은 노래에 대하여 말씀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벌써 오래전에 창작되어 널리 불리워지고 있는 가요‘우리는 총창을 더욱 굳게 잡으리'에

대해 회고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영광 영광의 길에 항일투사 물려준 그총"하고 외우시며 선열들이 피로써 찾아주고 일으켜세운 사회주의 조국을 철옹성같이 지키고 빛내어갈 불굴의 기개가 격조높이 울리고 있는 가사의 구절과 박력있는 선율을 상기시켜주시면서 우리에게는 조선식 철학, 조선식 음악철학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혁명의 보다 큰 승리를 위하여

그것을 더 높이 들고 힘차게 나아갈데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가요 '우리는 총창을 더욱 굳게 잡으리'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안에 나타난 현대수정주의자들이 이북에 저들의 수정주의적인 사상독소를 침투시키려고 책동하던 60년대 중엽에 창작된 노래입니다. 그 당시 정세는 어려웠지만 이북의 당과 민중들은 추호의 흔들림도 몰랐으며 오히려 자기 운명에 대한 필승의 신심과 낙관에 넘쳐 가요 '우리는 총창을 더욱 굳게 잡으리'와 같은 혁명적인 노래들을 부르며 굴함없이 전진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김정일장군님의 혁명의 철학, 음악철학이 담겨져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혁명의 철학, 음악철학을 가지고 계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그분께서는 90년대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이 노래를 다시 소리높이 부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우리는 맹세한다',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비롯한 혁명적이며 낙천적인 노래들이 온 나라에 울려퍼지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이북의 신문들에는 연이어 새로운 노래들이 창작발표되고 있으며 방송, 텔레비전에서는 혁명적이고 전투적이고 낙천적인 새로운 노래들이 연일 울려나오고 있습니다.

이북동포들은 곤란극복정신으로 고무추동하고 필승의 신념으로 불태워주는 노래들을 소리높이 부르며 활기와 용기, 신심에 넘쳐 승리의 새 언덕에 힘차게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우로△

2.장군님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명곡은 '김일성장군의 노래'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혁명시인 이찬이 작사하고 작곡가 김원균이 작곡한 것인데 광복직후에 창작한 노래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김정일장군의 노래'는 불멸의 혁명송가이며 세계적인 명곡입니다."

세계에는 동서고금에 걸쳐 위인송가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그것마저 이제는 역사의 망각 속에 파묻히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삭막해진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욱 널리 불려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 정화시키고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세계적인 명곡이라하시고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것은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그분의 열화같은 경모와 명곡에 대한 탁월하고 독특한 이해에 바탕한 것입니다.

1969년 2월 어느날 영화음악작곡가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위대한 수령님을 흠모하는 우리 인민들의 심정을 송가적인 품격도 있고 통속적인 군중가요의 행진곡맛도 나게 예술적으로 잘 형상한 훌륭한 명곡입니다. 지금까지 창작된 노래들 가운데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만큼 좋은 노래가 없습니다."

가슴깊이 새기면 새길수록 명곡에 대한 장군님의 탁견, 그분께서 일러주시는 명곡의 표상이 하나하나 안겨오는 말씀입니다.

작곡가들은 후더운 마음으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속으로 숭엄히 불러보았습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위에

역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빨치산이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노동자 대중에겐 해방의 은인

민주의 새조선엔 위대한 태양

20개 정강위에 모두다 뭉쳐

북조선 방방곡곡 새봄이 온다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부를수록 피어린 항일혈전을 벌이시어 조국광복의 대업을 성취하신 김일성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이 어려와 그분에 대한 경모에 사무치는 노래였습니다.

작곡가들은 절세의 위인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칭송하고 흠호하는 조선민중의 심정을 담았기에 이 노래가 불후의 명곡으로 될수 있다는 것을 폐부로 감득했습니다.

또한 이 노래는 불러보면 송가적이면서도 군중가요적인 맛이 나는 노래여서 부르기 좋고 부르면 부를수록 흠모의 정이 가슴에 차고넘쳐 더 부르고 싶은 노래였습니다.

작곡가들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곡가들이 지은 노래라 하더라도 인민들이 인정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면 명곡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말씀은 참으로 지당한 지적입니다.

사실 세계에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이름난 작곡가들이 지은 노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것들은 민중들의 감정에는 잘 맞지 않고 이해하기도 힘들며 음악전문가들이나 국한된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거나 연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이북은 말할나위 없고 이남에도, 세계방방곡곡에도 널리 알려져있고 지경과 국경을 넘어 수억만 사람들이 즐려부르고있습니다.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만고의 위인이신 김일성주석님을 높이 칭송하고 뜨거이 흠모하는 조선민중과 현시대인들의 사상감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하여, 부르기 좋고 만민이 즐겨부르고 그들의 심장을 틀어잡는 노래인 것으로 하여 그처럼 세계적인 명곡으로 되어 널리 불리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명곡인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이북문단에서 이름있는 시인 이찬이 작사한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찬을 정열있고 재능있는 시인으로 높이 평가하시었습니다.

이찬은 '카프'시절부터 민족의 전설적 영웅이신 김일성주석님을 경모하던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시인입니다.

그의 시인적인 정열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

1946년 4월 19일 함흥의 민주회관에서는 함흥과 흥남지구를 현지시찰하고 계시던 김일성장군님을 환영하는 소박한 연회가 열렸습니다.

광복전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항일대전의 총성을 들으며 참된 시를 쓰려고 혜산, 삼수 등지를 전전하던 이찬, 장군님께서 보천보에 진격하시어 광복의 횃불을 높이 지펴올리셨을 때 격정과 감격에 목메어 서정시 '국경의 밤', '눈내리는 보성의 밤'을 소리높이 읊었던 그, 오매에도 그리던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셔 자기 고장을 찾아주셨으니 그의 감격과 흥분은 하늘에 닿고 장군님을 만나뵙고 싶은 열망이 가슴에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그 절절한 소원히 그렇게 뜻밖에도 이루어질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당시 '함남일보'사 편집국장이었던 한갓 문필가에 불과한 그에게 연회참석의 영광이 베풀어졌던 것입니다.

환영, 경축, 경모의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연회장에 김일성장군님께서 태양처럼 환한 미소를 가득히 뿌리시며 나오셨을 때 이찬의 감격과 흥분,격정은 폭발직전의 화산처럼 절정에 달?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사례와 격려의 말씀을 끝마치셨을 때 그는 더는 격정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 달려나가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장군님! 설움많던 식민지시인이었던 이찬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삼가 문안인사 드립니다."라고 하며 정중히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연회참가자들을 향해 "김일성장군찬가"라고 외치더니 한손을 번쩍 쳐들었습니다. 시인의 입에서는 불을 토하는 듯한 헌시의 구절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장군이 오시는 것은 아, 아무도 몰랐으나

장군이 오신 것은 누구나 알았다

장군은 가리울 수 없는 우리의 빛

장군은 감출 수 없는 우리의 태양

...

 

격정에 젖은 시인의 열기띤 목소리가 정숙해진 연회장을 울렸습니다. 우렁찬 박수갈채가 연이어 터져올랐으나 시인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시인의 심장의 외침은 계속됐습니다.

아, 장군의 씩씩한 보무를 따라

바야흐로 무르녹으려는 북조선의 난만한 봄을 보아라

장군은 바쁘다 바빠야 한다

기억하자 장군은 우리만의 장군이 아니요

장군은 남조선도 비칠 남조선도 비쳐야 할

 

아아, 삼천리 전강토의 위대한 태양

장군은 만민의 영장 인류의 태양

동방에서 솟은 태양은 온 누리를 비치리

 

시인의 이 즉흥시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쌓이고 쌓인 경모심의 폭발이었으며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영웅을 마음껏 노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었는 그의 불타는 열정의 분출이었습니다.

이찬은 이렇듯 영도자를 끝없이 흠모하는 정열적인 시인이었기에 이남사람들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부르고 있는 시대와 민족의 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사하여 민족사와 인류문화사에 불멸의 장을 아로새겼습니다.

현대 조선의 문단에 빛나는 이름을 남긴 이찬이 세상을 떠나간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광음이 흐르고 연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문인들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입니다.

어느해 정초 현지시찰의 길에서 맞으신 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하늘에 반짝이는 뭇별을 바라보시다가 우리 문예인대오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한 작가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시며 다른 시인과 함께 이찬을 드시면서 김일성주석님께 충직했던 재능있는 시인이었다고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후 장군님께서는 이찬에게 '혁명시인'이라는 값높은 칭호를 주시고 그의 분묘를 애국열사릉에 옮기도록 하셨습니다.

 
△우로△

3.장군님이 사랑하는 노래는 ‘동지애의 노래’
 
‘동지애의 노래’는 이북에서 1980∼1987년에 제작한 혁명영화 ‘조선의 별’(1∼10부)의 주제가입니다.

영화‘조선의 별’은 김일성장군님의 20년대 말 초기혁명활동시기와 30년대 초 항일광복전 초시기의 불멸의 혁명역사를 형상한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한별동지’(김일성장군님)는 동지를 얻고 믿는데로부터 혁명을 시작하며 동지를 위해 주실 수 있는 믿음을 죄다 주십니다.

동지를 위해 험한 먼길을 걸으시고 수많은 눈물도 흘리십니다.

외따로 멀리 떨어져 정치공작을 하고 있는 동지이며 시인인 김혁을 찾아 2백리 밤길을 걸어오시어 그의 수첩에 ‘너는 김혁 나는 성주’라는 동지애에 넘친 글발을 남기십니다.

‘동지애의 노래’는 ‘한별동지’의 이 뜨거운 동지애 속에서 혁명하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의 행복감과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 혁명적 낙관주의,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치 않는 혁명적 의리, 철석같은 충성의 결의를 서정적이며 격동적인 선율에 담은 노래입니다.

 

가는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와도

생사를 같이하리라

천금주고 살 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돌위에 피어나는 꽃은

그 정성 키운 것이고

죽어도 잃지 않는 생은

그 사랑 주신거라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동지애의 노래’를 매우 사랑하시는데 그 까닭에 대해 술회하신 적이 있습니다.

1981년 8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광복절을 맞으며 몸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는 일꾼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한동안 좌중을 둘러보시다가 뜻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지들에게 내가 한마디 말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기도 수령님을 모시고 일을 잘하였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수령님을 모시고 일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동무들을 신임하는 것만큼 동무들도 일을 잘해서 이 신임에 보답하여야 하겠습니다."

일꾼들의 가슴은 뭉클했습니다. 그들로 말하면 장군님의 신임 속에서 장군님을 받드는 하나의 대오에 뭉친 장군님의 동지이며 친위전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뜻깊은 자리에서 또다시 나는 동무들을 믿는다고 사람에 넘쳐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동지들에게 먼저 믿음 안겨주시는 장군님이십니다.

나폴레옹은 "그대들이 나를 믿노니 나도 그대들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장군님께서는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 그대들도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장군님의 동지에 대한 믿음의 철학입니다.

일꾼들이 장군님의 숭고하고 열화같은 믿음에 목메어 하는데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믿음과 동지와의 관계에 대해 깨우쳐주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동지가 있고 사랑이 있어야 동지관계가 이루어집니다. 믿음이란 곧 사랑입니다.

믿음은 동지적 관계의 기초입니다. 사람은 서로 믿어야 제속을 털어놓고 한마음으로 결합됩니다. 제 마음을 감추는 것은 진짜동지가 아닙니다. 가짜동지는 변하기 쉽습니다. 진짜동지는 충신으로 되고 가짜동지는 간신으로 됩니다.

믿음으로 시작되고 신념으로 다져지는 것이 동지관계입니다."

정녕 이것은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는 그분의 신조였고 진정한 동지에 대한 절대적인 관점입니다.

일꾼들은 장군님의 그 믿음의 철학, 믿음의 세계, 믿음의 품 속에서 지나 온 영광의 나날을 감격에 겨워 돌이켜보면서 그분의 믿음에 어긋남이 없이 충성으로 보답하는 진짜배기 충신, 참된 전사로 살려는 철석의 각오와 결의로 가슴불태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을 미덥게 바라보시며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나는 동지를 제일 좋아합니다. 동지는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혁명동지는 수령님을 따르는 충성의 길에서 사상도 같고 목적도 같고 운명도 같이하는 전우입니다.

고난도 시련도 함께 이겨내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동지입니다.

때문에 나는 혁명동지를 제일 귀중히 여기고 제일 사랑합니다. 내가 ‘동지애의 노래’를 사랑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입니다."

일꾼들은 격정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사상감정에 알맞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동지를 더없이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위대한 혁명가이시기에 ‘동지애의 노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로△

4.장군님이 높이 평가하는 정열있고 재능있는 시인은 ‘혁명시인’조기천
 
이번에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시는 시인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갰습니다.

장군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정열있고 재능있는 시인은 이찬과 함께 조기천이며 그분께서는 그의 서사시‘백두산’을 좋아하십니다.

시인 조기천은 러시아에서 살다가 광복이 되자 김일성장군님께서 개선하셨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듣고 달려나와 이북문단에서 활약한 이름있는 시인입니다.

조기천은 남다른 정열가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서사시 ‘백두산’을 비롯한 뛰어난 좋은 시작품들을 수많이 창작발표?습니다.

그는 6·25전쟁시기에도 종군작가로서 전쟁문제를 취급한 많은 시들과 가사들을 창작발표하여 군인들과 민중들을 전쟁승리에로 무한히 고무해주었습니다.

멸적의 필봉을 잡고 싸우던 시인 조기천은 전장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정열있고 재능있는 시인을 잃은 것을 지금도 가슴아파하시며 그가 쓴 시들과 가사들을 좋은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하십니다.

어느해 정초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지시찰의 길에서 문예인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문예작품창작에서 새로운 개화를 가져올데 대해 가르치시면서 시인 조기천이 쓴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아주 잘쓴 작품입니다, 광복직후에 쓴 작품이지만 오늘 읽어보아도 손색이 없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 높이 평가하시고 못잊어하시는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광복 조선의 문단에 첫 기념비로 높이 솟은 대걸작입니다.

이 서사시는 전7장으로 되어있고 서시와 종장이 있습니다.

제1장은 홍산골전투를 지휘하시는 김일성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서사시는 제4장과 제6장에서 김일성장군님의 위대한 풍모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제4장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농민의 소를 잡은 항일빨치산 대원 석준이를 엄격히 비판하시며 깊은 밤에도 책을 읽으시고 조국광복을 구상하시는 숭고한 모습을 감명깊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서사시의 절정을 이루는 제6장에는 장군님께서 조직지휘하신 항일빨치산의 국내 H시 진공전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술주정꾼과 술집여편네로 가장한 정치공작원 철호와 솔개골꽃분이가 주재소에 들어가 당직순사를 처단하고 신호를 하자 삽시에 온 시내가 총폭탄소리로 진감하고 삼단 같은 불길에 휩싸입니다. 머리벗은 노인도 발벗은 여인도 발가 벗은 애들도 모두가 달려나와 밤바다와 같이 움실거립니다. 열광하는 군중들 앞에 김대장(김일성장군님)이 높이 올라 서 외칩니다.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아있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원수의 머리에 불을 지르라!"

 

만세소리가 거리를 떨치고 캄캄한 밤하늘을 뒤흔듭니다.

서사시의 제2, 3, 5장에서는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을 받고 솔개골에 도착한 철호와 연락원 영남 그리고 그곳 화전농의 딸 꽃분이 등 여러 인물들의 활동을 보여줍니다.

종장에서는 조국에 개선하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맞이한 이 나라 민중의 환희와 감격, 장군님의 영도밑에 힘차게 전진하는 민중의 기개를 감동적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

천산성악아, 백두산아!

오늘은 이 땅에 날이 밝아

오늘은 너의 천지에 채운이 서리우고

오늘은 너의 머리위에

창창한 대공이 열렸거니

너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어떻게 떨어졌던 태양이

이 나라에 솟았느냐?

떨어졌던 태양이 다시 솟는 그때

네 누구를 맞이?느냐?

*

세기의 백발을 휘날리며

백두산은 대답한다

"여봐라!

내 말하노니 들으라!

두만강 물결이

포격에 솟아 구름을 헤치고

준령에 올라선 항일빨치산-

치명의 철화를 왜적에게 내뿜을 때

떨어졌던 태양이

이 나라에 다시 솟았다!

내 머리 황홀한 흰빛에 휩쌔이고

내 가슴속 갈피에서

푸른 기류 회오리쳐일제

...

내 그때

이 나라 백성이 그렇게 그리던

나의 참된 아들-

나의 양심이고 나의 의지인

나이 신념이고 나의 희망인

나의 빨치산

김대장을 맞이했다"

*

...

백두는 외친다─

"너, 세계야 들으라!

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

내 천만년 깎아세운 절벽의 의지로

내 세세로 모은 힘 가다듬어

온갖 불의를 족쳐부시고

내 나라를,

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

내 뿌리와 같이 깊으게

내 바위와 같이 튼튼케

내 절정과 같이 높으게

내 천지와 같이 빛나게

세우리라-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외친다!

백성은 이렇게 외친다

 

서사시가 그리고 있는 불멸의 역사적 화폭을 떠올리시는듯 한동안 숭엄히 상념에 잠겨계시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이 시에는 당의 유일사상이 잘 구현되어있습니다.

일제침략자들에게 짓눌려 암흑천지로 변한 조국땅위에 혁명의 봉화를 높이 추켜올리신 수령님을 작품의 중심에 모시고 수령님의 혁명업적과 고매한 풍모를 예술적으로 훌륭히 형상한 것으로 하여 이 시는 오늘도 커다란 감화력을 가지고 우리 인민들의 혁명교양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문예인들은 서사시 ‘백두산’과 같은 좋은 시를 많이 쓸 것을 바라시는 그분의 뜻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넣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9년 9월 중순 어느날에도 장군님께서는 조기천을 생각하시며 피아노로 그가 작사한 전시가요 ‘문경고개’를 타고 계셨습니다. 그때 방에 들어온 일꾼에게 그분께서는 좋은 노래라고 하시면서 작곡가가 ‘문경고개’와 같은 훌륭한 가요곡을 창작할 수 있은 것은 가사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하시고 가사를 쓴 조기천에 대하여 말씀하시었습니다.

"조기천은 열정이 있고 재간이 있는 시인이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는 종군작가로서 남진하는 인민군대오를 따라 낙동강까지 나가면서 수많은 시를 썼습니다. 가사 ‘문경고개’는 그가 남진의 길에서 쓴 것입니다.

...

시인 조기천은 가벼운 안개도 힘겨워 오르지 못하는 높은 영, 적의 요새가 겹겹이 막아서고 불비쏟아지는 이화령을 단숨에 돌파해나가는 인민군용사

들의 투쟁모습을 보고 끝없는 격동 속에 붓을 들었을 것입니다. 시인의 격동된 감정이 가사의 매 구절마다에 세차게 맥박치고 있습니다.

나는 노래 ‘문경고개’를 들을 떄마다 조기천을 생각하군 합니다.

나는 조기천을 만나보지는 못하였습니다.

...

그는 재간있는 시인이었는데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정열이 있고 재능이 있는 시인을 잃은 것을 못내 애석해하시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그를 자주 회상하시면서 그에게 ‘혁명시인’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셨으며 그의 분묘를 애국열사릉에 옮기고 묘비에 ‘혁명시인’이라는 글발을 새겨넣도록 하셨습니다.

시인 조기천은 죽어서도 위대한 영도자가 계시기에 영생의 삶을 누리는 영광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시인과 시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평가를 살펴본 것만큼 이와 관련한 그분의 문예관에서 중요한 특징의 하나인 수령형상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려고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된 서사시 ‘백두산’, 가사‘문경고개’는 다같이 영도자와 조국에 관한 송가, 구체적으로 민족의 전설적 영웅, 위대한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과 그분께서 찾아주신 조국에 대한 송가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시인들은 마땅히 민족의 영수, 참다운 조국을 찬가해야 한다고 보시며 그런 시인, 그런 시를 높이 평가하고 내세우십니다.

서정시 ‘나의 조국’이 그런 시중의 하나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서정시 ‘나의 조국’은 시인 김상오가 1979년에 창작발표한 작품입니다.

시인은 서정시에서 조국은 고향마을의 정든 집과 산천, 다정한 사람들이며 우리의 운명이고 삶이며, 김일성주석님께서 한생을 바쳐 찾아주시고 꽃피워주신 품, 영원한 수령님의 품이라고 격조높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92년에 발표하신 저서 ‘문학예술론’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었습니다.

"서정시‘나의 조국’은 조국애를 노래한 우수한 작품으로서 시대의 주도적인 감정을 깊이있게 형상한 본보기로 된다. ...서정시 `나의 조국'은 조국애를 노래하였지만 단순히 나서자란 어머니조국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자주성과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이 보장된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으며 조국에 대한 사랑을 혁명적 수령관에 기초하여 생활적으로 감동있게 형상하고 있다."

이 말씀에는 서정시 ‘나의 조국’을 좋아하시고 높이 평가하시는 그분의 문예관이 함축되어있습니다.

조국은 단순히 나서자란 고향이 아니라 사람들의 참된 삶이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라야 합니다. 비록 나서 자라기는 하였지만 참된 삶이 없고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나라나 고향은 조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기고 갖은 민족적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민족이 사람다운 대우를 받으며 참다운 삶과 행복을 누릴수 있게 된 것은 오직 김일성주석님께서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시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련하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석님을 떠나서 우리 민족은

한시도 살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으며 후손만대의 번영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조국은 주석님이시며 주석님은 곧 조국이십니다. 이것이 김정일장군님의 조국관의 중핵입니다. 이 조국관은 그분의 혁명적 수령관으로부터 정립된 조국에 대한 관점과 입장입니다.

서정시 ‘나의 조국’은 바로 조국애를 혁명적 수령관에 바탕해 소박하고 진실한 생활적 언어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장군님께서는 그 시를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북의 시단에서는 김정일장군님의 이 독창적인 문예관이 구현되어 인류의 문예사에 일찍이 없는 영도자에 대한 송가가 수많이 창작되어 대하를 이루고 있습니다.

* 질문(과학도) : "장군님께서 정열의 시인들에 대해 높이 내세우는데 과학자들로서는 누구를 그러한 반열에 놓으시는지, 본인이 과학도이다보니 알고 싶습니다."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되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하기로 하겠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린 학창시절에 책상앞에 ‘정열, 그것은 위대한 창조의 원천이다!’라는 글발을 써붙이고 과학탐구의 좌우명으로 삼으셨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그분은 어려서부터 슬기롭고 총명하셨고 그분을 가르친 교사들도 비상한 두뇌를 가진 기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 자신은 재능보다 노력을 더 내세우시고 정열적인 사색, 탐구를 진행하시었습니다. 이러하셨기에 그분께서는 재능있는 사람보다 정열이 있는 노력가를 존경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에디슨, 타마스 앨버를 비상한 노력가, 정열가로 높이 평가하신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지능발달을 위한 일을 구상하시던중 한 일꾼을 찾으시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린이들에게 다방면적인 지식을 주기 위해서는 세계의 이름난 탐험가들과 발명가들, 영웅들, 작가, 음악가, 화가들에 대한 일화나 일대기형식으로 쓴 책들을 많이 출판하여 그들이 읽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에디슨에 대해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세계적으로 ‘발명의 왕’으로 알려진 에디슨에 대해 쓴 책이있는데 그는 사람에게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재능이라고 말하였다고 하시며 그는 자기의 말대로 한생을 순간의 안일도 허용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 사색하고 탐구하여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이바지하는 수많은 가치있는 발명을 해냈다고 높이 평가하시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이들에게 그에 대한 책을 보여 주면 인류의 진보를 위하여 무엇인가 큰 발명을 하겠다는 의욕을 키워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에디슨은 학교교육을 석달밖에 받지 못하고

일생 독학의 노력과 정열로 미지의 전자공학분야를 개척하면서 1,300여건의 발명특허를 받아 ‘발명의 왕’이 되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에디슨의 그 노력, 그 정열을 높이 평가하심은 노력과 정열을 위대한 창조의 원천으로 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로△

5.장군님이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소설,영화와 가극, 연극, 무용과 미술작품
 
앞에서 음악과 시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취향을 이야기했습니다. 문학예술에 대한 장군님의 취향을 이런 정도로 이야기하자 해도 분야가 많기 때문에 며칠밤을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가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다른 문예분야에 대한 취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에 앞서 언급할 것은 김정일장군님은 문학예술에 뛰어난 견식과 조예로 하여 세계적으로 공인된 대문호, 예술의 대가, 뛰어난 창작가, 한마디로 문학예술의 모든 분야를 무불통달하신 문예의 영재이시라는 것, 그러므로 장군님께서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시는 작품은 그런 차원의 명작, 걸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먼저 소설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소설작품은 많습니다. 그가운데서 장편소설 ‘시련 속에서’는 그분께서 감명깊게 읽으신 작품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장편소설‘시련 속에서’는 커다란 감동을 주는 소설입니다. 누구나 그 소설을 읽으면 작품의 주인공처럼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불굴의 신념과 강의한 의지를 가지고 수령님의 교시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가겠다는 각오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장편소설 ‘시련 속에서’는 작가 윤세중이 1957년에 발표한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임태훈은 대학교 야금과 교수인데 휴전직후 자진하여 어느한 제철소에 진출하여 50t 노를 100t 노로 복구확장할데 대한 대담하고 창발적인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를 적극 지지해나서는 오랜 평로공인 김유상과 그의 딸 영옥이, 인민군대에서 제대한 유갑석 등 노동자들과 새 세대들의 발기는 보수적이며 출세욕과 공명심에 사로잡힌 박봉서, 서만덕, 이재호 등의 반대와 불순분자 김대준의 암해로 인해 시련의 고비를 넘지 않으면 안됩니다.

평로가 50t 노로부터 100t 노로 확장된 다음에는 고속도용해방법을 도입하기 위한 임태훈과 김유상을 위시한 긍정인물들의 투쟁이 보수주의자들의 반대로 계속 난관에 부닥치게 됩니다.

사건은 T번호 특수강시험생산을 둘러싸고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평로폭발사고와 관련해 임태훈은 모든 사업을 박봉서와 김대준에게 인계하고 기술행정부로 옮겨갔지만 T번호 특수강시험생산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러나 시험생산은 대준의 암약과 이기와 공명심에 사로잡혀 대준에게 이용당한 서만덕 등에 의해 연속 실패하게 됩니다.

이때 공장당위원장 박창민이 임태훈이네를 적극 고무해주고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줍니다.

T번호 특수강시험생산은 굳은 의지와 깨끗한 양심을 지닌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을 한편으로 하고 그에 대치되는 인간들을 한편으로 하는 심각한 갈등 속에서 드디어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괴암해분자인 김대준이는 적발폭로되고 그에게 이용당했던 박봉서, 서만덕 등은 노동자계급의 양심과 자각으로 자신을 뉘우치게 됩니다.

이렇듯 장편소설 ‘시련 속에서’는 사람들에게 불굴의 신념과 강의한 의지를 지니고 김일성주석님의 교시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가려는 각오를 가지게 하는 감동적이고 감화력이 큰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영화와 가극, 연극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쉬는 시간에 대학교수선생님으로부터 79년 여름에 파리에서 이북예술단이 공연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본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교수선생님은 공연이 끝나자 관람자들이 너도나도 일어나 ‘세계최고봉의 가극’, ‘돌부처의 심장에도 피가 높뛰게 하는 예술’, ‘황홀한 조선의 가극예술에 키스를!’, ‘코레아, 코레아!’이렇게 외치면서 폭풍 같은 환호를 보낼 때 민족적 자긍심이 북받쳐올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어찌 그러지 않겠습니까. 교수선생은 그 자긍심이 다름아닌 세계에 없는 경이적인 혁명가극을 창조하도록 하신 분이 다름아닌 김정일장군님이시라는데서 오는 것이었다.

고 말씀했는데 본인 역시 전폭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러면 본 이야기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먼저 영화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가극이야기는 그 다음에 하려고 합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북에서 1960년대에 문학예술혁명의 포문을 열 때 가극혁명에 앞서 영화혁명부터 단행하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영화혁명으로 문학예술혁명의 돌파구를 여신 것을 영화가 생활을 현실과 꼭같은 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면서도 그 어느 예술형태보다 강한 감화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생활과 투쟁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위력한 대중교양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영화혁명을 일으키는데서 장군님께서는 맨먼저 김일성주석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몸소 창작하신 혁명연극 ‘피바다’를 영화에 옮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혁명연극 ‘피바다’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착취와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한 어머니의 생활과 성장을 통하여 조선민중에 대한 일제의 야수적 만행을 폭로규탄하고 혁명의 진리를 깨우쳐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장군님께서는 1968년 4월 영화예술부문의 창작가들에게 연극 '피바다'를 영화로 옮길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무려 120여차에 달하는 지도를 주시어 영화‘피바다’를 1969년 말에 완성시키셨습니다.

뒤이어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몸소 창작하신 고전적 명작들인 ‘한 자위단원의 운명’과 ‘꽃파는 처녀’를 영화로 만들도록 지도하시었는데 ‘한 자위단원의 운명’은 100여차의 지도와 보살피심을 주시어 불과 4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시켜주셨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1930년 가을에 창작공연하신 혁명연극 ‘꽃파는 처녀’를각색하여 만든 영화 ‘꽃파는 처녀’는 가난하고 소박한 한 처녀가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리기 위해 온갖 천대와 모욕을 받으면서도 꽃을 꺾어 파는 갸륵하고 눈물겨운 이야기를 통하여 나라잃고 수난당한 민족의 운명을 심각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된 혁명연극들을 가지고 새롭고 우수한 영화들을 연이어 만들도록 하시어 영화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도록 하시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가극혁명도 영화혁명과 같은 방법으로 벌이시었습니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이북에서 말하는 ‘피바다’식 가극의 첫 모델 작품입니다.

그후 1년 남짓한 사이에 연이어 이런 가극이 창작되어‘피바다’,‘꽃파는 처녀’,‘당의 참된 딸’,‘밀림아 이야기하라’,‘금강산의 노래’는 5대피바다식 혁명가극으로 명성을 떨치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가극혁명에 이어 연극혁명을 일으키도록 지도하시어 ‘성황당’식 연극을 창조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연극작품이 ‘성황당’을 비롯하여 ‘혈분만국회’, ‘3인1당’, ‘딸에게서 온 편지’등입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북에서는 영화혁명, 가극혁명, 연극혁명을 통하여 영화, 가극, 연극 분야에서 낡고 보수적인 창작경향과 방법들이 극복되고 새롭고 독창적인 영화, 가극, 연극들이 개화만발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무용부문도 쇄신하셨습니다. 대표적인 무용작품으로는 4대 무용이라고 말하는 ‘눈이 내린다’와 ‘조국의 진달래’,‘사과풍년’,‘키춤’이 있습니다.

다른 무용들도 그러하지만 무용 ‘눈이 내린다’와 ‘조국의 진달래’에는 무용에 대한 탁월한 견식과 깊은 조예를 지니고 계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의 손길이 미쳐있습니다.

사상예술성이 높은 무용을 창작할데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이북의 무용창작가들은 무용 ‘눈이 내린다’의 창작에 달라붙었으나 성과작으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용 ‘조국의 진달래’ 창작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무용창작가들의 고충을 헤아리시고 그들의 미숙한 작품들을 보아주시고 일일이 가르치심을 주시며 고무해주셨습니다.

무용창작가들은 김일성장군님께서 무장대오를 거느리시고 국내에로 진군하셔 삼지연못가에 이르셨다가 대홍단벌로 행군을 계속하신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행군길에서’라는 무용을 만들었는데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작품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무용의 이름을 ‘조국의 진달래’로 바꾸고 여대원들만으로 무용을 만들되 주인공을 내세워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깊이있고 세심하게 형상하라고 하시면서 작품의 구성과 세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수정방안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후에도 여러차례 창작현장에 나와 세심한 지도를 주시던 장군님께서는 무용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계셨던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창작가의 머리에는 창작적 영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것은 항일무장투쟁시기 밀림의 등불가에서 혁명가무 `단심줄'과 총춤을 빨치산대원들에게 배워주신 항일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숭엄한 모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 모습은 1939년 5월 무산지구전투때 압록강을 건느신 여사께서 휴식명령이 내리자 한달음으로 달려가 그립던 조국땅에 활짝 피어있는 붉은 진달래포기를 그러안고 꽃잎 속에 얼굴을 묻으시며 어깨를 들먹이신 숭엄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김정숙어머님의 조국에 대한 그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무용으로 형상하도록 해야 한다.)

창작가는 이런 충동으로 무용을 완성해서 무대에 올려 대절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군님께서 좋아하시는 그림으로는 조선화 ‘백두산호랑이’와 ‘강선의 저녁노을’이 있습니다.

조선미술박물관에는 세계적 명화로 널리 알려진 조선화 ‘강선의 저녁노을’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그림의 옆에는 이 그림은 당의 조선화건설방침을 받들고 창작한 훌륭한 본보기작품이라고 쓴 해설판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일찍이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미술분야에서도 주체를 튼튼히 세워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조선화를 기본으로 하여 미술을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치심을 받들고 미술가들이 조선화의 본보기작품을 창작하는데 달라붙었는데 좋은 종자가 떠오르지 않아 모대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강선제강소에 나가 보았는데 저녁노을이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그 노을을 잘 그리면 좋은 조선화작품이 될 것이라고 하시며 친히 그림의 종자를 주셨습니다.

장군님께서 잡아주신 종자로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는 흥분된 심정을 안고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강선땅을 수없이 찾으며 자기의 있는 힘과 지혜, 열정을 다하여 그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그린 그림의 초안들과 본작들을 보시고 부족점을 일일이 바로잡아주시어 마침내 "이것이 조선화이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걸작으로 완성시켜주셨습니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장군님께서는 몹시 만족해하시며 조선화는 아름답고 선명하여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는다고 하시면서 ‘강선의 저녁노을’은 명작이라고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이 그림은 국제전람회에 나가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백두산천지를 배경으로 호랑이가 층층절벽에 한발을 억세게 내짚고 남쪽을 바라보며 따웅-하고 소리치는 것을 형상한 조선화‘백두산호랑이’도 장군님께서 명작으로 평가하시고 좋아하시는 그림입니다.

 
△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