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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군님이 무엇보다 존중하는 장점이란 혁명가에게서는 신념의 유일성, 사람에게서는 고지식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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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념은 인생의 가치를 규정하는 기본핵이다." 이것은 김정일장군님의 명언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신념을 사람에게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보십니다. 사람은 신념이 있어야 참인간으로 참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념을 참인간, 참삶의 기본핵으로, 기본척도로 여기시는 분이시기에 그분께서는 늘 일꾼들과 민중들에게 사람은 신념이 있어야 하며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시군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1981년 말 어느날 일꾼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혁명적 신념은 한번 택한 혁명의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끝까지 가는 혁명가의 굳센 의지이며 어떤 바람이 불어도 변하지 않는 지조이며 혁명의 고결한 양심입니다." 말씀을 받아안은 한 일꾼에게는 장군님께서 이전에 들려주신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항일빨치산의 한 소부대가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중요한 정치공작임무를 맡고 어느 한 지방에 나가 광범위한 군중을 묶어세우기 위한 활동을 벌이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소부대의 한 대원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반일민족통일전선노선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데로부터 군중공작에서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과오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으며 혁명규율은 그것을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사령부에서는 곧 그 대원을 소환하도록 지시했으며 소부대에서는 두명의 대원과 함께 그를 사령부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런데 부대로 돌아가던 그들은 불의에 조우한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전투에서 두명의 대원은 장렬하게 희생되었고 부대에 가서 처벌을 받아야 할 대원만이 살았습니다. 부대까지는 아직도 혼자서 적들의 포위 속을 뚫고 간고한 길을 헤쳐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적의 편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신으로 맞다드는 적들과 싸우면서 기어이 자기를 처벌할 부대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야기를 마치시며 그 대원은 자기가 범한 과오가 엄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혁명군대오에서 죽으면 죽었지 적의 편으로는 넘어가지않는다는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에 부대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시면서 우리 일꾼들에게도 이런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꾼은 혁명적 신념이란 혁명하는 사람들이 어떤 역경속에서도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버림이 없이 끝까지 가는 의지와 지조, 양심임을 심장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람이 신념이 있어야 참된 인간으로 참되게 살수 있다는데 대해 이남땅에서 34년동안을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지조를 지켜낸 비전향장기수인 조선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옹을 들어 자주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1991년 11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과의 담화석상에서 이인모옹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그는 전향문만 한장 쓰면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고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힘으로 수십년동안적들에게서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오늘까지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혁명의 지조를 꿋꿋이 지켜나가겠는가, 그것은 그가 당과 수령이 있는 한 우리 혁명은 승리하고 조국은 반드시 통일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는 신념이 확고하고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이인모는 신념과 의지의 화신입니다."라고 크나큰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인모옹을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은 사람은 신념이 있어야 가장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가르치심입니다. 사람은 신념이 있어야 참된 인간으로 참답게 살 수 있다는 장군님의 고귀한 가르치심은 그분의 위대한 인생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장군님이시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신념이 강하신 위인, 위대한 인간이십니다. 이인모옹은 훗날 ‘신념과 의지의 찬가’라는 시에서 이렇게 소리높이 노래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강한 신념이라 함은 세상에서 가장 굳센 의지라 함은 그것은 위대한 강철의 인간 김정일, 당신의 것이옵니다. ... 철의 신념을 지니신 가장 위대한 인간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람들에게서 신념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며 그것을 참삶의 표척으로 내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념이 있는 사람만이 참삶을 누린다는 것을 이인모옹의 오늘의 생을 놓고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인모옹은 신념을 지켰기에 40여년간의 모진 고통을 이기고 드디어 1993년 3월에 처자가 기다리는 이북으로 갔습니다. 그의 귀향은 신념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사랑과 의리에 의해 마련된 것입니다. 이인모옹의 송환에 대해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런 내용으로 회고하신바 있습니다. 이인모로 말하면 34년동안이나 옥중에서 조국을 위해 싸운 전사이다. ...우리를 믿고 30∼40년을 싸워온 동지인데 우리가 그를 구원하여주지 않으면 누가 구원하여주겠는가. 혁명가들에게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의리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그전에 외국의 한 책을 본 일이 있는데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쳐들어갈 때 많은 프랑스병사들이 죽거나 포로가 된 이야기가 씌어져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망하고 다른 왕조가 집정한 후 프랑스포로들을 데려가라고 하였으나 나폴레옹때의 포로들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프랑스포로들의 운명이 이와 같이 비참하게 된 것은 결국 영도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인모를 데려올 때 그전에 보았던 이 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면서 어떻게 하나 그를 꼭 데려와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세계에는 옥중투쟁을 한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남조선에서와 같이 30년∼40년을 옥중에서 지조를 지켜 투쟁하면서 인생의 전부를 보낸 그런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투쟁한 동지들에 대하여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나는 이것이 우리 당이 전사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인모옹은 이런 숭고한 의리와 사랑의 손길에 의해 북 송된 이후 가장 큰영광을 받아안고 참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송환될 때 시력, 청각, 발음기능에서 심한 장애와 팔다리조차 움직일 수 없어 회복 불능을 선고받은 폐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김정일장군님께서 각별한 관심으로 소생시켜주시었고 온갖 사랑과 배려를 다 돌려주시었습니다. 20여명의 전문가들로 각 장기별 치료를 하게 하시어 시들어가던 고목에 소생의 활력을 부어주셨고 그를 만나시어 병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고무해주시고 그에게 당증도 수여하시었고 이미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그에게 김일성훈장도 수여해주시고 훌륭한 주택과 고급승용차를 비롯하여 최상의 생활조건을 다 마련해주시었으며 심지어 미국에까지 보내서 치료를 받게 해주시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일 여든돌에 또다시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인모옹은 꺼져가던 생명에 환생의 활력을 안고 꿋꿋이 일어나 조국통일성업에 헌신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이 다 아는 영웅,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떠받들리고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신념과 함께 고지식한 것을 사람의 장점으로 일러주십니다. 마르크스의 딸인 엔니가 아버지에게 무엇보다 존중하는 장점이 무엇인가고 물었을 때 마르크스는 "사람에게서는 소박성, 남자들에게서는 정열, 여자들에게서는 유순"이라고 대답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소박성이 장점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소박한 사람들에 앞서 고지식한 사람을 일러주십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언제인가 장군님께서는 당시 인민무력부장으로 사업하던 오진우 원수의 고지식함에 대해 일꾼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어떤 사람들은 꾸중을 들을까봐 좋은 것만 보고하고 나쁜 것은 보고하지 않는데 그는 나쁜 것도 잘못한 것도 다 자신께 보고하고 꾸중도 많이 들었다고, 그처럼 고지식하기 때문에 자신께서는 그를 더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앞뒤가 따로없는 이러한 고지식함에 혁명가의 인생의 고결함과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혁명하는 사람은 처세술을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처세술에 능한 사람은 눈치놀음을 하고 요술과 농간을 부리며 기회를 엿보면서 표리부동하게 행동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종당에는 간신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고지식한 사람은 자기 수령, 자기 당만을 알며 안팎이 따로 없고 거짓과 가식을 모르며 수령의 가르치심과 당의 정책을 가장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치의 드팀도 없이 집행합니다. 그러므로 고지식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혁명가, 참된 충신입니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고지식함을 혁명하는 사람들의 장점으로 보시며 고지식한 사람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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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군님이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귀중한 것은 양심과 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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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과 의리는 인간의 고유한 미덕이며 사람들을 자각적이고 아름다운 행동에로 추동하는 정신적 힘의 원천입니다." 이것은 김정일장군님의 명언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양심과 의리를 인간의 고유한 미덕으로, 인간에게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보십니다. 사람은 양심과 의리에 산다 했습니다. 사람이 존엄있고 아름답고 힘있는 만물지영장으로 되는 것은 지능과 함께 양심과 의리라는 도덕윤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양심과 의리를 빼놓으면 그는 벌써 참의미의 사람이 아니며 그런 삶은 참삶이 아닌 것입니다. 예로부터 양심과 의리를 사람의 미덕으로 쳐왔고 양심과 의리에 투철하고 고결한 사람을 선인,덕인, 의인으로 일러왔던 것이며 양심이 없고 의리가 없는 사람을 인간추물로 타매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 봉건왕조시대는 물론 현대인들까지 학문이나 업적에 있어서 성삼문이나 정몽주가 신숙주나 정인지에 필적할 바가 못되지만 성삼문과 정몽주를 높이 일르고 신숙주나 정인지를 비하하는 것은 성삼문, 정몽주가 죽음으로 양심과 의리를 지켰기 때문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민족내에는 자기를 키워주고 믿어주고 자기에게 은총을 베풀어준 그 은인들을 배반하는 것은 물론 자기 혈육까지 줴버리고 변절과 반역의 길로 뛰어드는 자가 있는데 이런 자는 양심과 의리는 고사하고 초보적인 인륜도덕도 없는 짐승이고 야누스인 것입니다.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양심과 의리에 살아야 참다운 인간이고 참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양심과 의리에 살자, 이것이 인간의 미덕이고 참삶의 표척이라는 것이 김정일장군님의 도덕윤리관입니다. 이런 도덕윤리관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양심과 의리로 사는 가장 숭고하고 고결한 도덕윤리의 세계를 이북땅에 펼쳐주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선배들을 존대하는 것을 혁명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숭고한 도덕의리로 내세우시고 몸소 그 구감이 되시어 온 사회에 혁명선배존대기풍이 차넘치도록 하셨습니다. 혁명의 길을 앞서 헤치며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린 선배들을 존대하는 것은 대를 이어 완성해야 할 혁명의 요구이며 후대들이 지녀야 할 숭고한 도덕의리입니다. 혁명선배의 최고대표자는 수령이며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 의리의 최고표현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끝없는 충성으로 받들어모셨습니다.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주석님을 더욱 높이 우러러 모시고 주석님의 위업을 빛나게 이어나가시는 장군님의 그 충성은 혁명적 의리의 최고정화로 만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의 영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을 위해 투쟁한 혁명가들을 높이 존대하십니다. 1971년 8월 김일 제1부주석(제1부수상으로 사업할 때)이 어느 한 요양소에서 병원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 첫 방문자로 불현듯 찾아오신 장군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너무도 반갑고 황송해 "이 늙은게 뭐라고 이 새벽에…"라고 할 뿐 뒷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그를 측은한 눈매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가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김일 제1부수상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백두산에서부터 혁명해온 혁명의 원로가 아닙니까. 그리고 오늘은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을 받드는데서 1번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김일 동무는 내 오른팔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이가 늙었지 우리 당과 우리 혁명에서 김일 제1부수상동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달리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너무 낮추지 말아주십시오…" 믿음이면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어데 있습니까. 이렇듯 장군님께서는 숭고한 혁명적 의리심을 지니시고 항일의 노투사들과 6.25전쟁에 참가한 노병들, 전후 천리마대고조시기의 영웅들과 노력혁신자들, 천리마운동선구자들을 내세우시고 온갖 믿음과 사랑을 베푸시어 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며 죽어서도 영생하도록 하고 계십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주와 민주, 조국통일을 위해 용감히 싸우는 우리 이남 겨레들에게도 숭고한 혁명적 의리를 표시해주고 계십니다. 1980년 설날에 있은 일입니다. 신년경하의 이 아침,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장내에 들어서시자 환영곡이 울렸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그 환영곡의 주악을 중지시키시고 지휘자에게 추도곡을 울리라고 지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무들, 오늘은 설명절이지만 희생된 남조선혁명가들과 애국적 인민들을 위하여 환영곡 대신에 추도곡을 울립시다." 말씀은 천만근의 무게를 가지고 모두의 가슴에 안겨왔습니다. 연주가들과 모임참석자들은 뜨거운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지휘자도 들먹이는 어깨를 자제하며 지휘봉을 들었고 악사들도 눈물을 머금고 악가를 다시 들었습니다. 추도곡의 비장한 선율이 울렸습니다.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울지 말아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있다 장군님께서는 선자리에서 움직일줄 모르시고 관현악의 선율에 맞춤어 추도가를 부르셨습니다. 설명절의 그 뜻깊은 자리에서 환영곡이 아니라 추도곡을 울리게 하시며 조국통일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이남의 혁명가들과 애국적 민중을 생각하시는 그분의 한없이 숭고한 혁명적 의리와 고매한 은정에 목메어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추연히 서시어 추도가를 부르시는 장군님의 눈가에도 뜨거운 이슬이 방울져 내렸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장군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선열들의 고귀한 넋과 애국적 희생을 잊지 않으시고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는 분이 장군님이십니다.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은 도덕의리의 최고성인이십니다. 장군님 계시어 이북겨레들은 양심과 의리에 사는 도덕적 인간으로 완성되어가고 있으며 이북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건전한 최문명국으로, 온 나라가 고상한 도덕윤리에 기초해 일심단결된 공고하고 위력한 나라로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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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군님이 생각하는 인간의 향기란 인간성과 인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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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정많은 정의인이시기에 어느 철학가, 사상가, 윤리학자도 내놓은적이 없는 인간성과 인정미에 대한 탁월하고 특유한 철학을 가지고 계십니다. 1970년 여름의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당일꾼들을 대동하시고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나가시다가 어느 한 지방의 경치좋은 호수가에서 휴식하셨습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가에는 여러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었습니다. 나무그늘밑에서 땀을 들이시며 그 꽃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그분께서는 한 일꾼에게 어떤 꽃에 벌과 나비가 많이 모여들고 어떤 꽃에 모여들지 않는가 잘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일꾼들이 살펴보니 정말 어떤 꽃에는 벌과 나비가 연속 날아드는데 어떤 꽃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일꾼에게 겉으로 보기에는 다 향기로운 꽃들같지만 이렇게 앉아서 벌과 나비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어느 것이 향기있는 꽃이고 어느 것이 향기가 없는 꽃인가를 쉽게 가려낼수 있다, 이러한 이치는 인간과 인간생활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꽃을 향기가 있어야 벌과 나비가 찾아들고 당일꾼은 인정미가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당일꾼의 향기는 곧 인간성과 인정미입니다. 인간성과 인정미는 사람을 진짜 사람으로 되게 하는 인간의 향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향기가 없는 꽃이 종이꽃이나 같다면 인간성과 인정미가 없는 당일꾼은 가짜 당일꾼입니다. 인정미 없는 사람은 도대체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바쁘신 길에서의 짧은 쉴참에도 꽃떨기들을 보시고 인간과 생활, 당일꾼과 당사업의 이치를 깨우쳐주시는 장군님이셨습니다. 옛말에 고기가 물 속에 살고 사람은 인정 속에 산다고 했습니다. 인정이란 사람들 사이에 서로 나누는 따뜻함입니다.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남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슬퍼하고 도와주며 기쁨도 같이 나누는 감정이 인정이고 인간성입니다. 사람은 이런 정이 있기 때문에 짐승과 다른 인간인 것입니다. 정이 없는 사람은 향기없는 꽃이고 잎이 없는 나무나 다름없습니다. 정에 대한 이런 견해와 논리로부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정미와 인간성을 인간의 향기라 하시며 참인간과 인간아닌 인간, 진짜 당일꾼과 가짜 당일꾼을 가르는 표척으로 보고 계시며 몸소 인정미와 인간성에 대한 전설같은 일화들을 수많이 창조하시어 사람들을 교양하십니다. 김정일장군님과 ‘약크림에 대한 이야기’는 이남에도 널리 퍼져있는 사랑의 전설입니다. 95년 2월 초 여성해안포중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병실에 들려 군인들의 사물함을 열어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크림통하나를 집어드시고 손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시면서 군인들이 바닷바람에 얼굴이 텄던데 어떤 크림이 좋으냐고 물으셨습니다. 한 일꾼이 크림보다 분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께서는 경공업부문 일꾼들에게 분을 보내주도록 이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고도 무엇인가 생각을 고르시는듯 손에 쥐신 크림통을 얼른 놓지 못하시다가 한참만에야 걸음을 떼셨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여성해안포중대를 찾으셨던 일을 두고 일꾼들과 말씀을 나누시던 그분께서는 아무래도 내일 사람을 보내어 여성군인들의 생활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게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그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몇몇 여성일꾼들에게 내일 아침에 중대에 갔다오라고 이르셨습니다. 중대에 온 여성일꾼들에게 여성군인들은 자기들에게는 아무런 불편도 부족함도 없다고, 그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을 바랄 뿐이라고, 조국의 초소는 염려마시라고 보고드려달라고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그들의 절절한 말에 몹시 감동된 여성일꾼들은 중대에서 보고 들은 그 모든 것을 그분께 보고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느때 같으면 병사들의 활기에 넘친 모습을 생동하게 말씀드리는 일꾼들의 말을 들으시며 몹시 기뻐하실 그분의 안색이 별로 밝아지지 않았습니다. 미덥고 사랑스러운 병사들을 더 잘 돌봐주어야 할 일꾼들이 좋은 것만 보고 와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이것이 못내 서운하셨던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아침에 중대에 갈 때 약크림을 가져다주지 않았는가고 물으셨습니다. 한 일꾼이 자기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그분께서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 여성해안포중대에 갔다왔지만 여성군인들이 바닷바람에 얼굴이 튼데 대해서 가슴아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사에게 얼굴이 튼데 바르는 약크림과 고약을 달라고 하여 내일 아침 당장 갖다주어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일꾼들은 깊이 수그린 머리를 쳐들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한 장성이 장군님께서 보내시는 고약과 약크림을 가지고 다시 여성 해안포중대를 찾아갔습니다. 고약과 약크림에 깃든 사연을 전해들은 중대장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저같은게 뭐라고 이다지도 마음쓰신단 말입니까!"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였습니다. 온 중대가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에 목이 메고 여성군인들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인정과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기에 이북민중들은 그분의 인간성에 매혹되어 그분을 더 열렬히 경모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나라 민중들이 자애로운 장군님의 그 뜨거운 인정미와 인간성을 가슴가슴에 받아안고 사람마다 인정많은 인간으로 향기를 풍기고 있으며 서로서로 정과 정, 사랑과 사랑을 나누면서 화목하고 단합되어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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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군님이 사랑하는 남성영웅은 이수복,여성영웅은 최희숙, 안영애, 신포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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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값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견해를 말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삶에 대한 상반되는 두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와 집단을 위해 보람있게 살려는 집단주의적 생활관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 개인만의 이익과 향락을 위해 살려는 개인주의적 생활관입니다. 사람은 고립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의 성원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것만큼 삶의 가치는 그가 사회와 집단을 위해 얼마나 이바지하는가 하는데 따라 평가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민중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이 기여한 삶일수록 그만큼 값높은 삶으로 되며 이러한 값높은 삶을 사는 사람만이 삶의 참된 보람을 느낄수 있습니다. 만일 사회와 집단과 떨어져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살다가 죽는다면 그런 사람의 삶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회와 집단을 위해 기여하는것도 없고 남겨놓는 것도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한생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또한 개인의 한생은 끝이 있지만 사회와 집단은 영원히 존재하며 발전하기 때문에 사회와 집단을 위해 기여하는 삶은 자기 개인과 자기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집단의 영원한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더없이 보람찬 삶으로 됩니다. 사회와 집단을 위해 보람있고 값있게 사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빛내이며 영생하는 길입니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에 육체적 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생명은 사회정치적 생명입니다.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버림을 받으면 살아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하여 값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한순간을 살아도 값있게 살아야 합니다. 생의 마지막순간에 지나온 생을 후회함이 없도록 떳떳하게 총화지을 수 있고 부끄러움이 없도록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김정일장군님의 생활관의 요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생활관을 가지고 계시기에 최희숙, 이수복, 안영애, 신포향을 가장 값높고 보람차고 영웅적인 삶을 산 시대의 모델로 내세우고 계십니다. 최희숙은 김일성장군님의 항일빨치산 여대원으로서 적들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되었습니다. 적들은 모진 고문끝에 그의 두눈을 빼내고 가슴까지 도려냈습니다. 그래도 그는 굴복하지 않고 "나에게는 지금 눈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삼천만 인민이 만세를 부르며 해방을 알리는 그날이 보인다"고 소리높이 외치며 장렬히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수복은 6.25전쟁때 "나는 해방된 조선의 청년이다. 생명도 귀중하다 찬란한 내일의 희망도 귀중하다. 그러나 나의 생명, 나의 희망, 나의 행복 - 그것은 조국의 운명보다 귀중치 않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 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라는 시를 남겨놓고 적의 기관총화구를 몸으로 막아 진격로를 열고 영웅적으로 전사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여덟살이었습니다. 안영애는 6.25전쟁때 인민군간호병으로서 자기의 피를 뽑아 전상자들을 수많이 구원해냈으며 환자후송도중 적탄에 맞아 숨지게 되자 조선노동당 당원증을 꺼내놓고 "이 당증을 당중앙위원회에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이 돈으로 나의 당비를 물어주십시오."라고 당부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가열한 전화 속에서도 낙원기계공장을 찾으시어 10명당원의 당세포총회를 지도하셨는데 그중 한 여성당원인 신포향은 주석님께서 전후 복구건설문제에 대해 말씀하시자 "수령님, 염려마십시오. 우리가 싸워이기기만 하면 복구건설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일제놈들이 그렇게 마사놓고간 것도 우리는 2∼3년동안에 복구해가지고 잘 살지 않았습니까? 전쟁이 끝나면 또 복구해가지고 잘 살 수 있으니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위로해드렸습니다. 그는 휴전후 주석님께 말씀드린 맹세대로 파괴된 공장을 복구하기 위해 작업현장에서 침식을 하면서 주야분투하다가 숨졌습니다. 이와 같이 최희숙, 이수복, 안영애, 신포향은 당과 수령, 조국과 혁명을 위해 한목숨 기꺼이 바쳤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최희숙, 이수복, 안영애, 신포향의 영웅적 생을 높이 평가하시고 길이 빛내어주기 위해 그들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주시고 최희숙의 반신상을 혁명열사릉의 상단에, 이수복의 동상을 그의 모교에 세워주셨으며 안영애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와 가극‘당의 참된 딸’과 신포향을 주인공으로 한 2부작 영화 ‘언제나 한마음’, ‘그날의 맹세’를 창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지명과 직장명, 학교명으로 부르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최희숙, 이수복, 안영애, 신포향의 생은 비록 짧았으나 그들은 김정일장군님의 품 속에서 영생의 별로 빛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들처럼 당과 수령, 조국과 혁명, 사회와 집단을 위해 영웅적으로, 헌신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값있고 보람차게 사는 삶이며 이것이 바로 김정일장군님의 참삶의 자막대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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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군님이 생각하는 혁명가의 생명은 원칙성, 고유한 기질은 자각성, 자본은 건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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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람이 참되게 살자면 혁명가들처럼 살아야 한다시며 혁명가의 생명인 원칙성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1930년대 중엽 북만의 한 중국인 반일부대에 항일빨치산의 한 지휘관이 중요 임무를 맡고 파견되어 갔습니다. 그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그는 반일부대와의 연합전선형성임무를 맡고 이미 파견되어있던 자기 형이 변질 타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도 자기의 과오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으며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어떤 책벌도 스스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형을 용서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민중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혁명이 입는 손실로 보나 반일부대를 혁명의 편에 돌려세워야 할 요구로 보나 형에게 엄한 혁명규율을 적용해야 했습니다. 그는 주저함이 없이 전체 반일부대 성원들 앞에서 형의 죄상을 폭로한 다음 그를 혁명의 이름으로 총살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마다 늘 혁명가가 죽을 때까지 버리지 말고 베고 죽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 투사가 간직한 혁명적 원칙성이라고 하시면서 "혁명가에게 있어서 원칙성은 생명과 같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은 사람들이 참되게 살자면 혁명가들처럼 모든 것을 혁명의 이익의 견지에서 보고 거기에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혁명적 원칙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고귀한 명언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참되게 살자면 또한 혁명적 자각성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1969년 8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 일꾼과 함께 동해바닷가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아침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일렁이는 바다가 온통 노을빛에 물들은 장관을 바라보시며 조선혁명의 벅찬 오늘과 찬란한 내일을 생각하시는 듯 깊은 사색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는 민중들 특히 새 세대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할데 대한 구상을 펼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각성, 이것은 혁명가의 고유한 기질이며 품성입니다. 혁명사업은 철두철미 자각적인 사업이며 혁명가는 자각적인 투사입니다. 그러므로 조선혁명의 교대자인 새 세대들을 자각적인 투사들로 키워내자면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든 투쟁의 마당에 그들 자신이 의식적으로 뛰어들어 자신을 혁명적으로 단련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젊어 고생은 금을 주고도 살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뜻이 깊은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생활의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꾼은 새 세대들이 청춘시절에 자각적 투사들인 혁명가들처럼 거창한 혁명과 건설의 실천활동에 자각적으로 참가하여 의식적으로 자신을 단련해나갈 때 혁명의 교대자로, 혁명가로 자라나 가장 값있는 삶을 살고 조선혁명의 미래를 줄기차게 이어나갈 수 있다는 그분의 높으신 뜻이 가슴가득 안겨와 흥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또한 건강을 혁명가의 자본이라 하시며 일꾼들과 민중들이 건강한 체력을 가지도록 일상적인 관심과 뜨거운 배려를 돌리고 계십니다. 1989년 9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연구기관을 현지시찰하시면서 후방공급사업에 각별히 유의하시며 그곳 일꾼들에게 모두가 건강해서 일을 잘하는 것이 자신의 사업을 제일 잘 돕는 것으로 된다고 다정히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장군님을 수행하던 한 일꾼의 머리에는 장군님께서 "사람은 사상이 좋을 뿐 아니라 건강하여야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상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자기 앞에 맡겨진 혁명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건강은 혁명가의 자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병약한 자기를 병원으로 떠나보내시던 일이 숭엄한 화폭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장군님께서 그 누구를 만사시든 그 어데를 가시든 건강이 혁명의 밑천이라 하시며 사람들의 건강을 알아보시고 모두가 씩씩한 몸으로 혁명을 위해 보람차게 살고 일하도록 보살피시는 그 높으신 뜻과 뜨거운 은정에 눈시울이 뜨거워났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사람들이 혁명을 위해 보람있고 값있게 살자면 혁명적 원칙성과 자각성을 가져야 하며 건강하여야 한다고 늘 가르치고 계십니다. *질문(회사원) : "혁명가의 고유한 기질이 자각성이라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듣고보니 장군님 자신의 기질에서 최근시기 특별히 두드러지고 있는 지략과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보건대도 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지략과 무비의 담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지략과 담력으로 역경을 정면돌파하여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승리만을 거두시는 위대한 정치가이시며 무적필승의 영장이십니다. 여러분은 북의 ‘핵의혹’문제를 둘러싸고 이북과 미국사이에 첨예하게 벌어졌던 대결을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북미핵문제대결은 총포성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때 미국은 사회주의를 견결히 지키고 있는 이북을 압살하기 위해 ‘특별사찰’을 강요했고 ‘집단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해나섰으며 일시 중단했던 ‘팀 스피리트’군사연습을 재개하고 한반도정세를 각일각 전쟁접경에로 몰아갔습니다. 미국의 이런 강도높은 압력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준전시상태의 선포와 핵확산금지조약탈퇴의 초강경대응으로 반격하여 미국을 수세에 몰아넣고 북미고위급 회담에 끌어내시었습니다. 뒤이어 장군님께서는 이북의 흑연감속로를 경수로로 교체하는 협상카드를 가지고 미국에 연속 공세를 들이대어 미국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결국 미국은 자기들의 돈으로 이북에 경수로를 세워준다, 이북과 관계개선을 하며 제재도 푼다,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쓰지 않고 전쟁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서약하는 합의문에 도장을 찍지 않을수 없었으며 클린턴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영도자 김정일각하’라고 경칭하면서 장군님께 경수로건설을 담보하는 편지를 보내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북을 건드렸다가 김정일장군님에게서 된매를 맞고 질질 끌려다니는 미국의 몰골은 마치 곡예단에서 난장이의 손바닥위에서 노는 코끼리와 같았습니다. 미국‘뉴욕타임스’94년 10월 23일자는 ‘누가 핵교섭에서 이겼는가?’라는 글에서 "대승리자 김정일", "그분은 미국인들을 지략으로 타승하실 뿐 아니라 수십억달러를 바치게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미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위협을 가하여 아이티정부가 정권을 내놓게 만들었고 이라크에도 군사적 압력을 가하여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국경에서 무력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지만 북조선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경고하자 클린턴은 손을 들고 항복하였다"고 평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시는 사례는 또한 사회주의 재건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신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련과 동구권사회주의 나라들이 붕괴되고 서방이 사회주의의 ‘종말’에 대해 요란히 떠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를 동경하고 지향하던 사람들이 맥을 놓고 주저앉았을 때 장군님께서는 92년 4월 평양에서 각국 공산당, 노동당을 비롯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 당수들과 대표들의 다무적, 쌍무적 회담과 접촉을 마련하시고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자’라는 제하의 평양선언이 채택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노선’, ‘혁명적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사회주의는 과학이다’등 노작들을 연이어 발표하시어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붕괴의 원인과 교훈을 분석하시고 사회주의 재건운동의 진로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고 사회주의 재건운동이 활성화, 적극화되도록 하셨습니다. 사회주의 재건운동에서의 김정일장군님의 거대한 위치와 역할에 대해 97년 8월 30일 ‘미국의 소리’방송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냉전종식과 이념대결의 종식, 공산주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강경보루국으로 건재해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 3국제당본부가 사실상 평양에 옮겨졌다고 말하여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북조선에는 사회주의 이념이 가장 투철한 김일성주의자인 김정일영도자가 건재해있고 그 정치세력이 세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으로 건재해있기 때문이다." 영활무쌍안 지략과 산악같은 담력을 지니시고 ‘대응하는 더큰 대응’으로 맞서 난국을 정면돌파하고 역풍을 순풍으로 길들여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시는 김정일장군님은 참으로 동서방의 모든 위정자, 정치지도자들도 경탄하고 존경해마지 않는 위대한 정치가, 천하무적의 영장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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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장군님이 제일 쓸모없다고 보는 사람은 사색을 게을리하는 사람, 남의 이론을 본따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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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5월 5일이었습니다. 이날은 마르크스의 탄생기념일이 었습니다. 이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꾼들과 이런 여담을 하셨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방안을 거닐면서 사색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들의 사색은 주로 마르크스의 서재에서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방안의 양켠에 마주서서 대각선을 지으며 걸어갔다 걸어오군 했습니다. 한번 갔다와서 방구석에 이르게 되면 급격히 돌따서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구두뒤축에 마룻바닥 이 패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걸음을 옮겨 엇갈리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자기가 생각한 문제를 기탄없이 털어놓고 논쟁하였습니다. 이러기를 수백수천번, 그러는 사이에 마르크스의 서재 마룻바닥에는 X모양으로 구두발자리가 패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르크스가 걸어다닌 자리는 더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엥겔스보다 다리가 짧은 마르크스는 더 부지런히 오가면서 사색에 몰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나신 장군님께서는 지금 우리 학자들이 사색을 게을리하는 것이 큰 결함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색을 태만하면 결국 이론의 빈곤과 교조적인 조립물밖에 가져올 것이 없습니다.나는 사색을 게을리하는 사람과 남의 이론을 본따는 사람을 제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자기 머리로 새롭게 착상하고 전개하는 사람을 특별히 일러줍니다. 나는 언제나 탐구는 진지하게 하고 사색은 창조적으로 할 것을 주장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김정일장군님께서 제일 쓸모없다고 여 기시는 사람은 사색을 게을리하는 사람과 남의 이론을 본따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학자들 뿐만 아니라 사람 일반에 대한 장군님의 평가의 척도입니다. 장군님께서 사색을 게을리하면서 남을 본따는 사람을 쓸모없다고 보시는 것은 이런 사람은 아무 것도 새것을 창조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창조성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의 하나이며 따라서 창조는 인간의 장점이라고 보고 계십니다. 1975년 말 한 일꾼은 장군님께서 일러주시는 인간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내가 제일 일러주는 인간의 장점은 창조의 열정입니다. 나는 창조의 열정이 불타는 인간, 새것을 끊임없이 창조하는 인간을 제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분께서는 그 논리에 대해 흘러온 인류역사를 찬찬히 돌이켜보면 인류역사는 인민대중의 창조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창조를 떠나서 흘러온 인류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창조를 떠난 인간이 있다면 그는 벌써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창조적 열정이 불타야 하지만 창조의 선구자들인 혁명가들은 누구보다도 창조적 열정이 불타야 한다, 창조는 위인의 기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색은 창조를 낳고 창조는 인류의 행복과 찬란한 미래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사색을 게을리하고 남의 본이나 따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이고 장점인 창조성이 없는 사람이며 인간의 행복과 인류의 진보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인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사색을 게을리하는 사람과 남의 이론을 본따는 사람을 제일 쓸모없다고 보시는 이러한 이유를 창조에 대한 그분의 높은 요구와 지향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김정일조직비서는 창조형의 지도자입니다. 세기적인 창조는 그의 기질이고 취미이기도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86년 7월 4일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설계형성안을 보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것을 끊임없이 창조하여 인민들에게 선물하는 것은 나의 행복이며 삶의 방식입니다." 창조는 김정일장군님의 기질이고 취미이며 행복이며 생활방식인 것입니다. 장군님은 이런 창조형의 영도자이시기에 끊임없이 새것을 창조하십니다. 장군님께서는 저서를 하나 쓰셔도 기념비적 건축물을 하나 일떠세우셔도 혁신적인 안목으로 참신하게 착상하시어 ‘우리 식’으로, 독창적으로 저술하시고 건설하십니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세기적인 기념비적 건축물을 비롯한 창조물들을 불이 번쩍나게 최단기간내에 그리고 최상의 질적 수준에서, 그것도 자체의 힘으로 창조하도록 하십니다.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그리고 최단기간내에 질량적으로 최상의 수준에서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내도록 하시는 장군님의 창조솜씨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말해주는 몇가지 자료를 소개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인류 사상사에 불멸할 독창적이고 심오한 사상이론을 담은 저서들을 수많이 저술하셨는데 그 건수는 당중앙위원회에서 당무를 보시는 기간인 1964년부터 1994년 6월까지의 30년동안에만도 8백90여건에 달합니다. 장군님께서 1975년부터 1992년사이에 평양에 건설하신 거리들은 낙원거리, 비파거리, 창광거리(1계단), 대학거리, 창광거리(2계단), 광복거리, 통일거리등 11개 거리입니다. 이 거리들은 다 한개 도시와 맞먹는 방대한 규모에 10층∼40층짜리 고층건물들이 들어앉아있는 현대적인 거리들입니다. 1989년에 완공된 광복거리는 기본도로가 근 15리구간에 100미터의 폭으로 직선으로 뻗어있으며 그 양옆에는 수만세대의 현대적인 아파트들과 그에 따르는 봉사시설들,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들어 앉아있습니다. 광복거리와 살림집들은 3칸짜리를 기본으로 하고 4칸짜리를 배합했으며 5칸짜리이상의 고급 살림집도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1975년부터 1989년사이에 평양에 일떠세우신 기념비적 건축물들은 만수대예술극장, 만수대의사당, 고려호텔, 창광원(목욕탕과 물놀이장), 빙상관, 청류관(요정), 인민대학습당, 옥류관(증축함),평양국제문화회관, 평양제1백화점, 김일성경기장, 5월1일경기장, 평양산원, 동평양대극장, 청년중앙회관, 2.8문화회관(오늘의 4.25문화회관), 평양국제영화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위시해 무려 100여개가 넘습니다. 건축속도를 보면 연건평 6만㎡에 2천30개의 방과 1천5백대의 침대를 가진 평양산원은 9개월에, 청류관과 빙상관은 각각 1년에, 15만석의 관람석을 가진 5월1일경기장은 2년반에, 20리 서해바다를 막고 건설한 서해갑문은 5년동안에 건설했습니다. 이러한 저술건수와 건설실적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놀라운 기록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김정일장군님이시야말로 세계가 공인하고 칭송해마지 않는 창조의 영재이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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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장군님이 생각하는 사람의 물욕은 ‘도둑놈의 심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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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참사람으로 참답게 사는데서 철저히 뿌리뽑아야 할 독초는 개인이기주의, 물욕이라는데 대해 거듭 지적하고 계십니다. 장군님께서는 근 30년전에 일꾼들에게 물욕의 본질과 본성적 특성, 그 해독성에 대해 깊이 깨우쳐주셨습니다. 1969년 3월 어느날 평안남도일대를 현지시찰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곳의 숙소에 이르셔 정원을 거니시며 동행한 일꾼에게 일부 사람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물욕에 대해 심려하시면서 물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보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적요구이며 우리가 경제건설을 다그치는 것도 더 많은 물질문화적 재부를 창조해 유족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마디마디에 역점을 찍으시며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그 욕망을 자신의 성실한 노력으로 실현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공짜로, 남의 덕으로 이루어보려고 하는가 하는데 있으며 다같이 잘 살려고 하는가 제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시고는 잠시 동안을 두셨던 그분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물욕은 남이야 어떻게 되건말건 제 혼자만 잘먹고 잘살며 자신의 뼈심은 들이지 않고 불로소득을 하려는 욕심을 말한다, 그러니 물욕이란 개인이기주의의 표현으로서 남을 착취하려는 사상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황금만능의 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일과 같이 빚어지고 있는 살인, 강도, 협잡행위를 비롯한 온갖 비극적 인현상들과 나아가서 제국주의자들이 감행하는 침략과 약탈만행도 무제한한 물욕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물욕의 본질에 대해 일일이 분석하신 다음 장군님께서는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물욕은 한마디로 말하여 도둑놈의 심보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해서 물욕은 생활이 넉넉치 못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생활수준이 높아진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견물생심이라고 돈맛과 물건맛을 볼수록 욕심이 생겨서 더 많이 먹자고 덤벼드는 것이 바로 물욕의 본성적 특성이라는데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이야기를 잠깐 끊고 불란서 작가 발자크의 장편소설 ‘우제니 그랑데’를 상기해봅시다. 아궁에 지피는 장작개비 하나하나를 헤아리며, 가정파산으로 찾아온 조카의 식탁에 사탕 한알을 더 놓았다고 하여 치를 떨며, 외동딸이 동인도로 떠나가는 애인에게 금화 몇닢을 주었다 하여 찬방에 가두고 굶기며, 아내가 이것으로 하여 병이 나서 죽어가도 돈이 아까워 의사조차 부르지 않는 치부욕과 탐욕에 환장한 포도주장사꾼 그랑데영감, 그는 늙어죽는 최후의 순간 저승길을 축복하려고 나타난 신부가 들고온 도금한 예수의 십자가상에서 금빛이 번뜩이자 그것을 황금으로 착각하고 움켜잡으려고 몸을 부르르 떨다가 넘어져 숨집니다. 그랑데 영감의 이런 물욕에서 돈맛과 물건맛을 볼수록 욕심이 더 생겨서 더 많이 먹자고 덤벼드는 것이 물욕이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이 얼마나 지당한가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물욕의 해독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황금만능의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욕문제에 대해서는 더 논의할 여지조차 없지만 사회주의제도하에서 교양받는 사람들도 일단 물욕에 빠지게 되면 죄를 짓고 집단과 동지들한테서 버림을 받게 되며 나중에는 정치적 생명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물욕은 다만 성격적, 인륜적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이 물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집단과 동지도, 의리와 양심도 다 버리게 되며 나중에는 몇푼의 돈을 위하여 혁명을 배신하는 무서운 죄악까지 저지를 수 있습니다. ...물욕이 많으면 결국 거기에 빠져 죽는 법입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의 진리성을 우리는 한때 사회주의 나라에서 최고위직에 있던 자들이 물욕에 빠져 적의 간첩이 되고 나중에는 혁명과 사회주의까지 말아 먹은 변절자, 반역자로 굴러떨어진 사실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전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바로 그런 너절한 인간입니다. 그는 미국 시아이에이가 찔러준 돈은 받아먹고 소련을 허물었습니다. 그는 인간살육, 부정축재의 원흉으로 장기형을 받고 있는 노태우로부터도 10만달러를 받아먹었습니다. 소련제국을 파괴하고 벗들을 배반한 덕으로 그는‘노벨평화상’을 받고 수십만달러의 횡재를 보았지만 오늘 역사의 오물로,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 추물로 세계 정의인, 양심인들의 지탄의 표적으로, 지구촌의 웃음거리로 되고 있습니다. 물욕이 사람들을 인간쓰레기로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남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편화된 현실이라는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욕이 지독하게 많은 큰도둑은 누구누구 해도 이남의 역대집권자들입니다.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극악한 살인악마인 전두환이 그 살인마의 기질로 입을 꽉 다물고 있기에 그가 가로챈 돈이 얼마인가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도 2천659억원입니다. 국민들은 그의 비자금을 2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도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지만 노태우는 95년 10월 대국민사과란데서 제입으로 말한 비자금이 5천억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2조원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를 뺨쳐먹은 왕도둑의 왕도둑은 김영삼입니다. 김영삼이 노태우로부터 넘겨받은 돈만도 3당통합독려자금 1천5백억원, 14대 대선지원금 5천2백억원, 대통령당선축하금 6백억원, 정권인수자금 3천억원, 청와대입주축의금 50억원등 도합 9천3백50억원입니다. 이번에 한보비리에서 드러났지만 김영삼이 한보에서 뜯어낸 돈이 1조원입니다. 그러나 그가 밑에 깔고 있는 비자금은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국민의 밝은 눈은 8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정주부 : "대통령이라는 것들이 정치는 다 망쳐먹으면서 제배만 불리기 위해 도둑질만 일삼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요. 허탈감까지 느낍니다." 교수 : "이 땅의 역대 통치자들을 보면 이승만은 쫓겨나 하와이에서 객사하고 박정희는 총에 맞아 죽고 전두환, 노태우는 감옥행이 되고 김영삼의 운명도 뻔하니 이런 자들을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있은 우리가 국제사회앞에 수치스럽습니다." 노동자 : "그러니 이 땅의 악폐와 부조리를 쓸어버려야 하며 정권욕과 물욕에 이골이 난 집권자, 정상배들을 징벌해야 합니다. 김영삼의 죄악은 160년의 징역형에 해당된다는데 지체없이 그를 잡아가두고 처형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격분은 응당한 것입니다. 이런 돈벌레, 악덕인간추물들을 척결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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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장군님이 생각하는 가장 힘있는 교양은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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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여름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을 부르시어 어느 한 작가에 대해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로 말하면 재간있는 작가로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좋은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심하고 술을 자주 마시어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군 하였으며 이 시기 어느 한 제강소에 내려가 현지체험을 하면서 혁명화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일은 잘하는데 자유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술먹는 버릇을 떼지 못하여 노동자들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일꾼들은 그런 내용을 말씀드리면서 그가 어린 나이에 의용군에 입대하여 잘 싸웠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덧붙여 말씀드리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심중한 안색으로 하나의 문건을 넘겨주시었습니다. 거기에는 그가 법 규범과 질서를 어긴 자료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그가 어린 나이에 혁명을 하겠다고 의용군에 입대하여 잘 싸웠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자료를 이해할 수 없다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우리 당은 지난날 남조선에서 못살고 천대받던 그에게 행복하고 보람찬 생활을 안겨주었고 대학공부까지 시켜주었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영예로운 작가대열에 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 열의를 믿고 조선노동당원의 영예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사람답게 살게 되고 자기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우게 된 그가 이 은덕을 고맙게 생각하면 생각했지 무엇때문에 우리 당에 반감을 가지고 나쁜짓을 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의 창작생활과정을 놓고보더라도 나쁜짓을 하였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일꾼들에게 사실을 구체적으로 요해할데 대한 과제를 주시었습니다. 일꾼들은 장군님의 믿음의 말씀을 지침으로 삼아 그가 소속되어 생활하고 있는 당세포조직에도 들어가고 그와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과도 만나 상세히 요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그들은 제기된 비행자료가 왜곡되고 과장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결함은 역시 자유주의와 술풍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장군님께 그대로 보고되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을 현지에 내려보내신 후 그 작가가 쓴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시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 작가의 사상정신상태를 파악하셨고 그에 대한 믿음을 깊이 간직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보고하는 일꾼에게 이러한 사연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언급하시었습니다. "나는 좋은 작품을 쓴 그 작가를 믿습니다. ... 그는 우리와 한대오에 서있는 혁명동지입니다. 결함과 과오는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허물처럼 함께 가슴아파하며 고쳐주고 이끌어주고 함께 혁명을 해나가야 할 귀중한 혁명동지란 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경력에 대하여 그리고 당과 국가가 그를 공들여 키워온 과정을 말씀하시면서 그가 범한 과오를 자신의 허물처럼 가슴아파하며 일깨워주고 도와줄 대신에 그를 막다른 골목에 밀어놓으려 한 일부 편협한 사람들의 그릇된 처사를 지탄하시었습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사람들의 정치적 생명을 다루는 일꾼들이 동지를 사랑하고 사람을 믿는 마음이 식어지게 되면 무서운 후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혁명동지를 뜨겁게 사랑하고 믿어주면서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신중하게 다루는 것은 당일꾼들을 비롯한 모든 일꾼들의 숭고한 임무이며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의 표현이라시며 이렇게 강조하시었습니다. "믿음에는 마음이 따르는 법입니다. 다시 말하여 정치적 믿음에는 충성심이 따릅니다. 우리 인민이 바라는 것도 당의 믿음뿐입니다." 장군님의 이 크나큰 믿음 속에서 그 작가는 자신의 결함을 깊이 ?틈腑 정신수양을 쌓아 민중의 사랑을 받는 이름있는 작가로 자라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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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장군님이 생각하는 사랑중에서 제일 큰 사랑은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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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북에는 사람들사이에 비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함을 지적해주고 그 사상적 근원을 밝혀주며 결함을 고칠 방도를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비판을 사랑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이라하십니다. 1969년 가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영화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이’를 사상예술적으로 우수한 작품으로 만들어 평양에서 열리게 되는 반미세계기자대회에 내놓을데 대한 김일성주석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작품의 작가와 연출가는 영화의 마지막 수정작업을 했는데 연출가는 일부 장면들을 수정대본대로가 아니라 제 마음대로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제작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엄중한 결함을 발로시켰습니다.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연출가와 작가를 부르시어 연출가를 엄격히 비판하셨습니다. 자기 과오의 엄중성을 통절히 느낀 연출가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그만..."하고는 말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를 옆에서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작가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워낙 제가 영화대본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연출가는 그래도 영화를 만드느라고 뛰었지만 대본이 신통치 못하다보니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반미세계기자대회에 내놓기 어렵게 된데는...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 라고 하다가 그만 중둥무이하고 말았습니다. 장군님께서 놀라움과 의혹이 섞인 안색을 지으시고 작가를 유심히 바라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픈 마음을 진정하시려는듯 아무 말씀도 없이 깊은 생각에 오랫동안 잠겨계시더니 "됐소. 오늘은 더 말하지 맙시다."하시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작가는 어째서 그분께서 자기의 말을 들으시고 그처럼 괴로워하셨을까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사무실에 돌아온 그는 그날도 다음날도 자신을 검토했습니다. 그는 그분앞에 서있었을 때의 자기 사상상태를 깊이 검토해보니 번개처럼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장군님께서 연출가의 과오가 엄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엄하게 비판하신 것인데 연출가가 혼자 비판받게 된 것을 미안하게 여기면서 두둔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연출가를 그분의 자애로운 사랑의 품에서 떼어내려고 한 망령된 행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자책의 실마리를 찾은 작가는 그후 장군님을 만나뵙고 잘못을 깨달았다고 아뢰고 자기를 비판해주실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는 작가를 연민의 정이 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아직 깨달은 것 같지 않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령님의 교시가 관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걸린 고리를 혁명적으로 풀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동무는 당의 의도를 어기고 영화완성에 지장을 준 연출가를 비판할 대신 두둔하고 있으니 말이 됩니까. 수령님의 교시 관철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그런 서푼짜리 인정은 소용없습니다. 비판에 대한 관점이 바로 서지 않았습니다.집에 가서 더 검토하시오." 장군님의 말씀은 비판은 사람들을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한길에서 정치적 생명을 빛내이며 보람찬 삶을 꽃피우게 하는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틸貳컨獵 가르치심이었습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이 동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동지의 정치적 생명에 손상이 없도록 극진히 보살피고 엄격히 타일러주어야 한다는 요구였습니다. ‘귀한 자식 매로 기른다’는 말이 있듯이 동지들사이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지의 결함을 보고도 타일러주지 않거나 가까운 동무라고 하여 결함을 싸고든다면 그 결함을 조장시켜 결국 동지를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판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며 사랑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입니다. 이것이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철학입니다. 작가는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의 철학을 깨달은 기쁨에 가슴이 마냥 높뛰었습니다. 참으로 작가의 자기 검토의 나날은 참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비판이 얼마나 소중한 사랑중의 사랑인가를 가슴후렷이 깨닫게 한 귀중한 나날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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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장군님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검열은 ‘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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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참삶을 꽃피워주는 김정일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다른 이야기입니다. 1973년 6월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사람들과의 사업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다음과 같은 가르치심을 주시었습니다. "실천, 이것은 곧 검열입니다. 이 원칙에서 사람들을 보고 평가해야 합니다." 실천이 곧 검열이라는 말씀에는 김정일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의 철학이 구현되어있습니다. 실천을 통해 검열하라는데는 우선 사람을 믿고 대담하게 일을 맡기라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이 깃들어있습니다. 과제를 주어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괴제없는 실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을 믿고 대담하게 일을 맏겨야 한다는 것이 장군님의 뜻입니다. 실천을 통해 검열하라는데는 다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정확히 평가해주라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이 깃들어있습니다. 사람들의 사상은 실천활동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사람들은 역경에 처했을때 진속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실천은 사람들의 사상을 검증하는 척도입니다. 혁명사업에 나선 사람들에게 있어서 실천이란 영도자의 사상, 당의 노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이것을 이북에서는 `혁명적 실천'이라고 합니다. 실천만이 사람들을 검증하는 시금석인 것만큼 영도자의 사상, 당의 노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실천을 놓고 평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경력을 가진 사람이건 혁명과제수행과 생활에서 영도자와 당이 내놓은 사상과 노선, 정책 관철을 위해 헌신분투하는 사람은 충직한 사람이며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믿어주고 혁명의 한길에서 정치적 생명을 빛내이고 보람찬 삶을 꽃 피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장군님의 뜻입니다. 실천을 통해 검열하라는데는 또한 사람들을 혁명사업을 통해 단련하여 모두 다 열렬한 혁명가로 키우라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혁명적 실천은 사상개조의 힘있는 수단입니다. 실천은 사람들의 사상을 단련하는 용광로이며 사람들을 영도자와 당, 혁명과 민중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않고 투쟁하는 열렬한 혁명투사로 키우는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적 실천을 통해 사람들을 다 참된 혁명가로 키워 혁명의 한길에서 값있고 보람차게 살게 하려는 것이 장군님의 뜻입니다. 혁명사업의 실천속에서 사람들을 검열해야 한다는 믿음과 사랑의 철학은 이북에서 당사업을 비롯한 모든 사업분야에 빛나게 구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을 믿고 일을 맡기며 일한 것만큼 응당한 평가를 합니다. 또 일을 하는 가운데서 사람들의 자각성, 성실성, 헌신성을 알아보고 부족한 것은 일깨워 고치도록 합니다. 앞선 사람들은 뒤떨어진 사람을 이끌어주고 뒤떨어진 사람은 각성해서 앞선 사람을 따라서는 것이 이북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사회가 생기발랄하지 않을 수 없고 화기애애하지 않을 수 없고 일심단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김정일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의 철학의 빛나는 결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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