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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군님이 좋아하는 우리 식의 속담은 ‘열길 물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속은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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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담은 옛적부터 내려오는 민간의 격언입니다. 여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굳어진 경험과 교훈,그들의 염원과 지향이 집약적으로 투사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속담은 사람들이 삶을 옳게 살도록 인생의 걸음걸음을 깨우쳐주고 밝혀주는 촛불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가운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은 알기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북에는 이 속담이 역설적으로 전화된 ‘열길 물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의 속은 알아야 한다’는 명언이 새로 생겨나 민중들 특히 당사업을 하는 일꾼들 속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러면 이 명언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70년 10월 어느날이었습니다. 어느 한 대상을 현지시찰하시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검소한 저녁식사를 하신 후 일꾼들과 함께 숲 속을 거니시며 당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얼마전에 당회의에서 비판을 받은 몇몇 예술인들의 그후 생활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일꾼들은 비판을 받은 후 그들의 생활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확실히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렇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방심하지 말고 꾸준히 교양하여야 한다, 시기질투하는 고질병이 한두번의 된 비판에 뿌리뽑힌다면 왜 사람들과의 사업이 힘들다고 하겠는가고 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사람과의 사업을 잘하자면 사람을 잘 요해해야 한다, 그의 진짜 속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속마음이란 말그대로 가슴속에 묻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면 그의 마음속을 파고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면 사람을 요해하는데서 무엇이 중요하게 나서겠는가고 문제를 제기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사람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깊이있게 분석해보고 해부학적으로 갈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활이란 매우 복잡한 것이며 사람들의 사상이나 성격 또한 천태만상이기 때문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왜 해부학적으로 깊이있게 분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세상만물이란 참 묘하게 생겼는데 예하면 과일을 하나 보더라도 도마도나 딸기 같은 것은 겉과 속이 다 빨갛지만 사과같은 것은 겉은 빨간데 속은 희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의 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겉은 빨갛다 해도 속도 빨간가 아니면 흰가를 알자면 그 과일을 빠개보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가슴속에 들어있는 사상을 알자면 해부학적으로 깊이 분석해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말 속에 말이 있다는 속담도 있지만 어머니가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에게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하면서 종아리를 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진짜 죽으라는 소리겠는가, 아마도 그렇게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도 말을 듣지 않으니 너무 속이 타서 제발 좀 똑똑히 살라는 말을 그렇게 비틀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부 당일꾼들은 이러한 인간심리의 묘리를 모르다보니 누가 말다툼을 하다가 결김에 비틀어진 소리를 하면 그것이 진심에서 나온 말인지 아닌지도 가려보지 않고 말꼬리를 잡아서 마구 다루고 있다, 이렇게 하면 오금이 저려서 기를 펴지 못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발언 한마디를 옳게 가려보는 것이 이렇게 심중한 것인만큼 당일꾼들은 하루속히 정치실무수준을 높여 사물현상을 철학적으로 깊이 분석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끝맺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을 철학적 깊이에서 가려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생겨났겠습니까. 그만큼 사람의 마음속을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당일꾼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그것을 꿰뚫어보아야 하며 꿰뚫어 볼만한 능력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능력이 당일꾼에게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 따라서 사람들의 정치적 운명문제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당일꾼들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으르 쫓을 것이 아니라 ‘열길 물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속은 알아야 한다’는 우리 식의 ‘속담’을 좇아야 할 것입니다. 열길 물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의 속은 알아야 한다’, 이것은 김정일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명언이며 이북에서의 당사업의 촛불입니다. 이 명언에는 장군님의 사람중심의 당사업 원리와 함께 사람들의 진짜마음을 환히 알고 그에 알맞게 당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잘해 모두가 정치적 생명을 빛내이며 참된 삶을 살도록 하시려는 그분의 높으신 뜻과 고마운 은정이 깃들어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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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군님이 생각하는 충실성의 전제와 담보는 재능과 실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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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북의 민중과 일꾼들이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고 삶을 빛내이자면 재능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시며 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의 재능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고 계십니다. 1969년 5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 손풍금을 썩 잘타는 군인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즉시 그를 부르셔 평양대국장에서 이 곡 저 곡 연거푸 연주시켜보시고나서 정말 재능있는 동무를 찾아냈다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이 동무는 선생도 없이 교측본을 놓고 자체로 2년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손풍금을 훌륭히 연주한다고 하시면서 예술인들 앞에 출연시켜 예술인들이 자극을 받고 기량을 높이기 위해 분발하도록 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장군님께서는 그 손풍금수의 남다른 재능을 활짝 꽃피워줄데 대해 여러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제를 맡은 한 책임일꾼은 그를 인민군대에서 제대시켜 예술단에 데려다주는데 그치고 그후 그의 생활에 대해서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이러한 사실을 아신 장군님께서는 그 일꾼을 가볍게 나무라시며 사람의 재능을 아끼고 귀중히 여길줄 알아야 한다, 재능은 나라의 보배이다, 재능은 그 어떤 물질적 재부보다 더 귀중한 밑천이다라고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온 나라를 재사들이 무성한 숲으로 덮으시려는 큰뜻을 피력하셨습니다. ...우리 사람들 속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거나 수학이나 물리학을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체육신경이 남달리 발전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더 많이 찾아내어 잘 키워야 합니다. 이것은 나라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경제와 문화를 빨리 발전시키는데 큰 의의를 가질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육성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사람들을 재능있는 인간, 당과 수령의 정치적 신임에 기술로써 보답할줄 아는 인간, 참말로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키워 충성의 삶을 활짝 꽃피워주시려는 높으신 뜻과 뜨거운 은정이 담긴 말씀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또한 당일꾼들이 실력을 높일데 대해 자주 강조하군 하십니다. 1971년 10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한 일꾼에게 이런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당일꾼들이 자기 사업을 원만하고 노숙하게 하자면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하며 다방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일꾼은 직업과 지식정도, 성격과 연령, 생활경위 등이 각이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문학예술부문에서 당사업을 하자면 문학예술을 알아야 하고 농촌에서 당사업을 하자면 농업을 알아야 하며 공장에서 당사업을 하자면 공업경영지식도 있어야 하고 과학기술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지식과 상식이 없으면 정치적지도, 정책적 지도를 바로 할 수 없습니다. ... 한마디로 말하여 당일꾼은 ‘팔방미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날 장군님께서 한 일꾼에게 하신 말씀은 그 일꾼만이 아닌 모든 당일꾼들에게 있어서 사업과 생활의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충성심+실력=충실성’이라는 표척을 가지고 일꾼들이 뛰어난 재능과 실력으로 충성의 삷을 빛내어나가도록 보살피시고 이끌어주시는 지성의 찬란한 햇발이시며 은혜로운 보호자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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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군님이 생각하는 가장 크고 높은 표창은 민중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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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 자신의 영예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계시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영예란 자기 자신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가지게 되는 긍지와 자랑, 사람들의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사회 및 집단의 도덕적 평가를 이르는 말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예를 중시하지만 무엇을 영예로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 각이합니다. 히틀러는 세계정복을 자기 삶의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세계의 제왕이 되는 것을 ‘영예’로 생각했고 포드는 세계자동차계를 독점하고 세계최대의 재벌이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세계의 ‘자동차 왕’이 되는 것을‘영예’ 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침략자나 치부자의 ‘영예’는 결코 영예가 아닙니다. 영국의 국가활동가였던 체스터필드는 "정복자의 명성은 잔인한 명성이며 인간살육의 결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영예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유익한 일을 하고 값있게 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내세우고 사회와 집단을 위해 헌신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사회와 집단을 위한 성실성과 헌신성을 떠난 사회와 집단의 존경과 신임이 있을 수 없고 사회와 집단의 존경과 찬사를 떠난 참다운 영예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무엇을 자신의 영예로 생각하시겠습니까. 1975년 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는 탁월한 사상이론활동으로 김일성주석님의 주체사상을 시대의 지도사상으로 빛나는 예지와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지도로 짧은 기간에 문화예술의 찬란한 개화기를 펼쳐놓으셨으며 이북의 경제건설 역사에서 유례없는 대경제작전인 ‘70일전투’를 발기하고 지 휘하셔 사회주의 건설에서 일대 비약을 이룩하신 김정일장군님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전체 이북민중의 한결같은 염원과 의사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영웅칭호를 받는 것을 한사코 사양하셨습니다. 자신께서 영웅칭호를 받을 만한 일을 해놓은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측근에서 여러번 말씀을 드렸으나 끝끝내 사절하시기에 마침내 항일빨치산출신의 부주석을 통해 김일성주석님의 결론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석님께서 결론이 계셨다는 소식을 받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노혁명투사들로부터 내가 공화국영웅칭호를 받는 것을 거절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나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교시하시었다고 하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생각이 깊어집니다.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심혈을 다 바쳐오시었으며 시대와 인류 앞에 위대한 업적을 쌓아 올리시었습니다.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들과 혁명전사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며 적극 내세워주시는 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자신께 차례진 한순간의 영광과 행복마저도 인민들과 혁명전사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십니다. 나는 수령님의 높은 뜻을 가슴깊이 새기고 언제나 인민의 행복에서 기쁨을 찾으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인민대중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밖에 우리 혁명가들이 더 바랄 것이 무엇이며 그보다 더 크고 높은 표창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공화국영웅칭호를 받는 것이 수령님의 의사이고 우리 인민의 절절한 소망이면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한번 숙고하신 끝에 비로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으셨습니다. 그 어떤 영예나 칭호보다도 민중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가장 큰 표창으로, 영예로 생각하시는 장군님이십니다. 영예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민중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안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것을 정치신조로, 인생관으로 내세우는 민중의 위대한 영도자, 참된 혁명가, 참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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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군님이 습관적으로 쓰는 말씀은 ‘인민들이 좋아하오?’,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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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께서 습관적으로 쓰시는 두가지 말씀이 있는데 그 하나는 민중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실 때"인민들이 좋아하오?"라고 물으시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민중들이 불편해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아실 때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964년 6월 말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한 일꾼을 집무실로 부르시어 풋강냉이(옥수수)철이 다가오는데 평양시민들에게 풋강냉이를 공급해주게 되는가고 물으셨습니다. 일꾼은 어른들도 그렇지만 특히 어린이들이 풋강냉이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에 맛이라고 볼 수 있게 조금씩 공급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해당 부문에 알아보았더니 강냉이는 다 국가알곡계획에 든 양곡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알곡계획때문에 아이들이 그처럼 먹고싶어하는 풋강냉이도 먹이지 못한단말입니까. 계획때문에..." 장군님께서는 어이가 없으셔 더 말씀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알곡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미처 생각을 돌리지 못했다치고 인민들의 생활상 요구를 제때에 알아보고 풀어주어야 할 어머니당의 당일꾼인 동무들이야 응당 관심을 돌려야 할께 아닙니까. 그런데 동무들은 그런 문제를 제기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시면서 아이들의 심정이자 부모들의 심정이고 부모들의 심정이자 인민들의 심정인데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려서라도 평양시 어린이들에게 풋강냉이를 공급해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그 일꾼을 찾으셔 어젯밤 위대한 수령님께 풋강냉이문제를 말씀드렸는데 수령님께서는 매우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면서 알곡작물로 심은 것이라도 강냉이를 풋 것으로 시민들에게 공급하며 앞으로는 협동농장들에 ‘남새용 풋강냉이’를 생산하는 지표를 따로 주어 해마다 수도시민들에게 풋강냉이를 공급할데 대해 교시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여름부터 시민들에게 풋강냉이를 공급하게 됐습니다. 그후 어느날 평양시안의 매 주민세대들에 풋강냉이를 공급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일꾼에게 집의 아이들도 좋아하던가고 물으셨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 하더라고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넘쳐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란 말이지." 그러시고는 강냉이를 풋 것으로 공급하지 않고 가을에 거두어들였다면 모름지기 국가양곡창고에는 그만한 노적가리가 더 쌓였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그러나 풋강냉이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기쁨을 어찌 그들이 먹고싶어하는 것도 안먹이고 쌓아놓은 양곡창고의 노적가리를 쳐다보는 기쁨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방안을 거니시며 자못 격동적인 어조로 인민을 위해 일하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참된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1969년 3월 어느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 평안남도 온천군안의 여러 기관들을 돌아보시다가 공업품상점에 들리셨는데 신발매대에 주민들이 제일 많이 신는 문수의 신발은 없고 큰 신발만 잔뜩 진열해놓아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잠시 매대앞을 묵묵히 거니시다가 그곳 일꾼들에게 동무들이 일을 되는대로 하고 있다가 위에서 누가 내려온다니까 같은 문수의 신발을 잔뜩 진열해놓았는데 이런 눈치놀음은 무엇때문에 하는가고, 눈치놀음으로 설사 한두명의 일꾼은 얼려넘긴다고 해도 이곳 인민들의 눈이야 어떻게 속이겠는가고, 인민들은 이런 눈치놀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직물매대에서도 전후시기에 생산하다가 질이 낮아 그무렵에 와서는 생산을 중지한 씨루직퉁그리까지 놓여있었습니다. 비어있는 매대를 채우기 위해 내놓았다는 것이 첫눈에 알렸습니다. 평양에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한 일꾼을 부르셔 온천군의 상업부문 일꾼들이 그렇게 일하는데 대해 정말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자신께서 오늘 그토록 격분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소행이 너무 비양심적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인민을 위한 참된 상업일꾼이라면 마당히 상품을 제때에 받아다가 주민들에게 공급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래도 정 매대에 내놓을 상품이 없으면 상품생산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도와라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신 그분께서는 정원을 내다보시다가 우리 인민들이 이런 상업일꾼들을 두고 뭐라고 하겠는가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말은 생각의 나타냄이요 습관적인 말은 집념의 표현입니다. 장군님께서 "인민들이 좋아하오?",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 이 두가지 말씀을 습관적으로 쓰시는 것은 그분께서 새로운 노선과 정책을 세우고 사업을 포치하실 때 그것을 민중이 좋아하겠는가, 그것이 민중의 이익과 요구에 맞겠는가를 먼저 생각하시고 철저한 기준으로 내세우신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민중의 요구와 이익, 기쁨과 행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을 정치신조로, 생활신조로 삼고 있는 것은 민중정치가만이 내세울 수 있는 기준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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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군님의 좌우명은 ‘나는 근로하는 인민의 심부름꾼이다.인민들이 바란다면 돌위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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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장군님의 대표적인 좌우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느해 여름 김일성주석님을 따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창광산에 오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청사 지붕위에 창공높이 퍼덕이는 조선노동당의 당기를 바라보시며 감개에 넘쳐 말씀하셨습니다. "저 성스러운 우리 혁명의 붉은 기폭에는 인민대중, 다시 말하여 노동자,농민, 근로인텔리의 모습이 새겨져있습니다. 인민대중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인민대중을 열렬히 숭배합니다. -나는 근로하는 인민의 심부름꾼이다. 인민들이 바란다면 돌위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 이것이 수령님의 좌우명이자 나의 좌우명입니다." 참으로 숭고한 뜻이 어린 말씀이었습니다. 저녁노을빛은 당기를 더욱 붉게 물들이는 듯싶었습니다. 이윽하여 당기에서 눈길을 떼신 장군님께서는 인민의 심부름꾼 구실을 잘하지 못하면 김정일이가 아닙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신 후 창광산을 내리셨습니다. 장군님의 좌우명에는 한평생을 나라와 혁명의 주인인 민중의 충복이 되어 민중의 염원인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활짝 꽃피우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시려는 그분의 숭고한 민중애와 인생관이 집약되어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고결한 좌우명에 따라 언제나 철두철미 민중은 하늘이고 스승이며 자신은 민중의 아들이고 심부름꾼이라는 자세와 입장에 서계시며 모든 노선과 정책을 민중의 요구와 이익을 기준으로 하여 세우고 집행하시며 모든 사색과 활동을 민중에게 보다 문명하고 유족한 생활을 안겨주기 위한데로부터 출발하고 그것으로 일관시키고 계십니다. 1978년 6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함흥시의 유측에 있는 어느 한 지구의 주민들이 물맛이 좋은 중심지구의 수도물을 부러워한다는 것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곧 해당 부문 일꾼들을 부르셔 함흥시의 상수도망배치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면서 왜 그 지구 주민들에게 함흥시 중심지구와 같은 물을 끌어다 주지 않는가고 물으셨습니다. 한동안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있던 일꾼들은 그 지구의 수도물이 수질상 그리 나쁘지 않은데다가 거기까지 수도물을 끌어가자면 방대한 자금을 들여 복잡한 공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자금이 든다고 해도 인민들의 소원을 안 이상 그저 스쳐버릴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공사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되어 국가적 의의를 가지는 중요 건설대상들에 필요한 자재와 자금을 보장하자고만 해도 긴장한 때에 많은 자재와 자금을 들여 당장 크게 불편을 느끼는 것도 아닌 상수도공사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중첩되는 정사에 바쁘신 가운데서도 공사정형을 자주 알아보시면서 제기되는 문제가 있으면 제때에 풀어주군 하셨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마감단계에서 밀고나가던 함흥시의 일꾼들은 뜻하지 않은 난 관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도에서 자체로 생산하지 못하는 일부 설비들과 자재들이 제기되는 바람에 공사를 기본적으로 다해놓고도 주민들에게 새 수원지의 물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신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정무원의 한 책임일꾼을 찾으셔 함흥시 상수도공사에서 추가적으로 제기되는 설비들이 있는가를 알아보셨습니다. 책임일꾼은 그런 설비들이 있기는 한데 이미 중요한 건설대상들에 주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새로 생산에 물려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셨다가 말씀하셨습니다. "건설도 인민을 위하여 하는 것인데 건설에 지장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함흥시 상수도공사에 필요한 설비를 먼저 돌려줍시다." 함흥시 어느 한 지구의 상수도공사는 이처럼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민중애에 의해 시작되고 그분의 끊임없는 배려와 보살피심 속에 훌륭히 완공되었습니 다. 그리하여 김일성주석님의 탄신 70돌인 1982년 4월 15일에 그곳 지구의 집집마다에는 새 수원지의 물이 일시에 흘러들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새 수도물맛이 어떤가, 주민들이 좋아하는가 알아보시고는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었으니 자신께서도 한가지 시름을 덜었다고 못내 기뻐하셨습니다. 민중에 대한 헌신적 복무는 민중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발현입니다. ‘나는 근로하는 인민의 심부름꾼이다. 인민들이 바란다면 돌위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 좌우명을 지니시고 민중의 심부름꾼구실을 잘하지 못하면 김정일이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민중의 요구와 이익, 행복을 위해 헌신복무하시는 김정일장군님은 진정 이신위민의 화신이시며 민중의 위대한 영도자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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