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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신 때로부터 100일이 되였습니다. 지난 100일동안은 우리 인민이 얼마나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있었으며 얼마나 큰 수령복을 누려왔는가 하는것을 심장으로 절감한 력사적인 나날이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도 언제나 수령님의 위대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지만 수령님을 잃고보니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위대한분이시였는가 하는것을 더욱 가슴뜨겁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 수령님은 우리 인민의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령도자이시며 온 세계가 공인하는 인류의 태양이십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온갖 시련의 고비를 넘고넘으시며 오로지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으며 우리 인민과 세계 혁명적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으시면서 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여 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을 령도하신 시기를 내놓고 해방후 우리 당과 인민을 령도하신 력사만 해도 반세기입니다. 수령님께서 한해만 더 계시였어도 조국해방 50돐과 당창건 50돐을 수령님을 모시고 뜻깊게 맞이하겠는데 애석하게도 1년을 앞두고 서거하시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처럼 50년동안 당과 국가의 수반으로서 당과 국가, 인민을 이끄시여 그처럼 빛나는 업적을 이룩하신 위대한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수령님께서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은 인류력사와 국제공산주의운동력사에 가장 위대한 공적으로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습니다. 정말 수령님은 탁월한 사상리론과 현명한 령도로 현대력사를 빛내이신 위대한 철학가, 위대한 정치가, 위대한 군사전략가, 위대한 령도예술가이시였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있은데 대하여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우리 수령님은 위대한 령도자이시였을뿐아니라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시였으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을 훌륭한 인민으로 키워주시고 세상에서 으뜸가는 사회주의제도를 마련하여주시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고 끝없이 사랑하시였으며 고귀한 모든것을 인민이라는 이름과 결부시키시였습니다. 우리 나라 국호에도 인민이라는 말을 넣고 군대의 이름에도 인민이라는 말을 넣으시였으며 대학습당과 문화궁전도 인민대학습당, 인민문화궁전이라고 부르고 병원들도 인민병원이라고 부르도록 하시였습니다.우리 수령님은 끝없이 인자하고 겸허하신분이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지난 7월 6일 나에게 전화를 거시여 당의 의견을 받자고 한다고 하시면서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였습니다. 내가 수령님께서 결심하시면 당에서는 그대로 할것이라고 말씀드리니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당에서 승인한것으로 보고 활동하겠다고 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그날 나에게 거신 전화가 나와 하신 마지막전화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날의 일을 미리 예견하신것처럼 모든 사업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생을 마치시였습니다.수령님께서는 80고령이시였지만 최근 몇해사이에 항일혁명투사들을 다 만나주시고 남조선혁명가유자녀들을 비롯한 혁명가유자녀들도 만나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을 쓰시면서 거기에 나오는 연고자들을 다 찾으시고 국내에 있는 연고자들은 물론 해외에 있는 연고자들까지 불러 만나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혁명가유자녀들과 연고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자신께서는 김정일동지의 덕택으로 건강하다고 하시며 김정일동지를 잘 받들어야 한다고 당부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연고자들에게 몸소 손목시계도 채워주시면서 온갖 사랑과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기념촬영도 많이 하여주시였습니다. 올해에만도 전국농업대회 참가자들과 전국석탄공업일군대회 참가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근로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였습니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올해에 여러 부문 일군들을 만나시고 많은 귀중한 교시를 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4월 25일에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만나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였는데 그 교시가 인민군대에 주신 수령님의 마지막유훈입니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최고사령관을 잘 받들데 대한 뜻깊은 교시를 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올해에 들어와서도 여러 차례 농업부문 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였으며 돌아가시기직전인 7월 5일과 6일에는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인 교시를 하시였습니다.수령님께서는 올해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만나시여 대외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리시였으며 미국 전 대통령 카터를 만나시여 조미회담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놓으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조국통일문제를 내놓고는 모든 문제를 깨끗이 마무리하시였습니다. 조국통일문제도 멀지 않아 해결할수 있는 토대를 튼튼히 마련하여놓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지금 갈라져 살고있지만 멀지 않아 통일된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게 될것이라고 하시였습니다.
참으로 수령님께서는 모든 부문 사업을 깨끗이 마무리하시고 우리 인민과 세계 혁명적인민들속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돌아가시였습니다.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모든 사업을 깨끗이 마무리하시고 돌아간 령도자는 없을것입니다.
수령님께서 심장병으로 돌아가시였는데 심장병을 앓으신지는 여러해 되였습니다. 우리는 인민들이 걱정할것 같아 수령님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알리지 않았습니다. 수령님께서 올해에는 눈병까지 앓으시여 신년사를 하실 때에 잘 보이지 않아 원고를 들고 힘들게 읽으시였습니다. 그래서 눈수술을 받으시였습니다. 젊은 사람도 그런 수술을 받으면 한달나마 쉬면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눈수술을 받으면 한달나마 쉬면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눈수술을 받으신지 며칠 안되여 손원태를 만나시였고 이어 조선소년단 제5차대회에 참가한 학생소년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였으며 그후에는 우리 나라에 찾아온 카터를 만나시였고 다른 나라 대표단도 만나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동적으로 제기할 정치경제적문제들을 친히 구상하시였으며 문건도 많이 보아주시고 온천군과 평양시주변 농장들을 현지지도까지 하시면서 긴장하게 사업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심장병으로 여러해 앓으시였지만 병때문에 사업을 하지 못하신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80이 지난 고령이심에도 이처럼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끊임없는 활동을 벌리시다보니 수령님의 심장병이 더 심해지게 되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처럼 80이 넘도록 정력적으로 사업하다가 돌아간 령도자는 세상에 없을것입니다. 수령님께서 그렇듯 인민을 위하여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다가 너무나 갑자기 서거하시였기때문에 우리 인민들이 더 가슴아파하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다가 집무실에서 돌아가시였습니다. 수령님의 서거는 순직입니다. 생의 마지막순가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며 마무리를 깨끗이 하고 돌아가신 령도자는 이 세상에 우리 수령님 한분밖에 없으며 이런 점에서도 수령님은 정말 위인중의 위인이시였습니다. 수령님은 그 어느 위인과도 대비할수 없는 위대한 령도자,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시였습니다.천재적인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력, 고매한 덕성과 뛰여난 인품, 소탈한 품성과 검소한 생활에 이르기까지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풍모와 거룩한 영상은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특출한 위인상으로 세계를 감동시키고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수령님은 위인으로서의 천품을 타고난 위대한분이시라는것을 더욱더 가슴뜨겁게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수령님이 얼마나 위대한분이시였는가 하는데 대하여 글을 많이 써서 인민들에게 알려주고 대대손손 길이 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 서거하신후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성과 경모의 마음이 뜨겁게 발현되였습니다. 우리 인민은 자기들에게 참다운 행복을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은정을 잊지 못해하는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수령님을 잃은 비통한 마음과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수령님의 동상을 찾는 사람들의 물결이 낮에 밤을 이어 그칠사이가 없었으며 남녀로소 할것없이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상제가 되여 수령님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수령님을 끝없이 추모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서거하신지 며칠째 되는 어느날 내가 시내를 돌아보면서 만수대동상쪽에 가보았는데 교양마당에서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비가 내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령님의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있었으며 교양마당의 계단아래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들가운데는 화환을 드리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한 댓명의 청년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지만 웃옷을 화한에 씌워 화환이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한참동안 보면서 청년대학생들의 소행이 너무도 기특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새 세대 청년들이 이렇게 기특한 마음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하니 격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오늘 수령님의 서거 100일중앙추모회가 끝난 다음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를 하고 나오면서 보니 추모회에 참가하였던 가정부인들이 금수산의사당에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아마 수령님을 뵙고싶은 마음을 누를수 없어서 그랬을것입니다. 어제밤에도 평양시안을 돌아보면서 만수대언덕쭉으로 가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찬비가 내리는데도 수령님의 동상에 계속 찾아오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민들이 찬비를 맞는것이 가슴아파 그렇게 하지 말도록 한 일군을 전화로 찾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우리 인민은 이번 애도기간에 세상사람들에게 조선인민이 어떤 인민인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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