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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희세의 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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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범한 군사적예지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정치실천, 선군혁명령도는 희세의 령장으로서의 그분의 위인상을 보여 주는 력사의 현장이라 하겠다. 김정일장군의 령장적풍모에서 선차적으로 부상되는것은 비범한 군사적예지이다. 령장의 위대성은 군사적예지의 위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령장의 군사적예지는 군건설과 군활동에서 나서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들에 과학적해답을 주는 사상리론활동과 제 아무리 현대적기술로 무장된 대적이 덤벼 든다고 하여도 일격에 타승하는 비범한 전법과 지략, 군대의 군종과 병종, 거기에 도입된 현대적인 전투기술장비와 기재들을 환히 꿰뚫고 그 원리와 작용, 조법에 능통하는 군사적조예에서 표현된다. 한마디로 말하여 군사적예지는 탁월한 군사사상과 리론, 비범한 전법과 지략, 만사능통의 군사적조예를 낳는 무궁무진한 저수지로서 령장이 지녀야 할 기본풍모이다. 1만 5천여회의 전투를 기록한 세계정치사는 아직까지 군사적예지가 그토록 비범한 령장을 알지 못하고 있다. 전략전술에 능한 전략가는 군종, 병종에 도입된 군사장비와 기재들에 능통하지 못하며 군사기술장비에 능한 실무가는 군사사상과 리론, 전략전술에 밝지 못하다. 혁명군대의 력사에서 비범한 군사적예지를 지니신 령장으로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장군을 꼽아야 할것이다. 김정일장군의 군사적예지는 선군정치에서 나서는 군건설과 군활동의 제반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밝혀 주신데서 찾아 볼수 있다. 선군정치는 사회주의정치사에 처음으로 출현한 정치방식으로서 그를 밑받침하는 군건설과 군활동에 관한 리론실천적문제들은 완전히 생소한 미개척분야이다. 비범한 군사적예지를 지니신 김정일장군께서는 선군정치라는 새로운 정치방식을 내놓으셨을뿐만아니라 그에 따르는 군건설과 군활동에 관한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 선군정치에 부응하게 군대를 사상의 강군, 일당백의 불패의 강군으로 키우는것을 군건설의 총적과제로,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다 맡아 하도록 하는것을 군활동의 총적임무로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방향과 방도들을 하나하나 밝혀 주신것은 그분의 비범한 군사적예지의 첩경을 보여 주는것이다. 장군님의 군사적예지의 비범성은 선군정치시대의 군대의 지위를 새롭게 자리매김하여 주신데서도 뚜렷이 설명할수 있다. 이북의 출판물들을 보면 이전에는 사회주의주체적력량의 3대기둥으로《당, 인민, 군대》의 순서로 군대를 세번째 자리에 놓았다. 그러나 지금은《당, 군대, 인민》이라고 쓰고 있다. 이것은 인민군대의 지위가 달라 졌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1997년 2월 어느 날 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당과 군대, 인민의 지위를 바로 규정하여야 한다, 인민군대가 있어야 당의 위업을 보위하고 조국과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를 지켜 낼수 있다, 정권은 총대에서 나오며 총대에 의하여 유지된다, 인민군대의 총창우에 평화가 있고 사회주의의 승리가 있다, 인민군대는 조선혁명의 주력군이며 기둥이다, 나는 당과 군대를 틀어 쥐고 우리 혁명앞에 가로 놓인 난국을 타개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혁명의 준엄한 시기에 그에 부응하여 군대의 지위를 격상시켜야 한다는 의도의 말씀이였다. 총대가 든든하여야 당도 정권도 사회주의도 평화도 있다는것이 김정일장군의 총대철학이며 일관한 론지이다. 총대가 약하면 내외원쑤들의 도발과 도전을 이겨 내지 못하고 결국 정권이 무너지고 제도가 무너지며 이렇게 되면 당도 맥을 추지 못하게 된다는것이 자본주의가 복귀된 이전 사회주의나라들이 보여 주는 엄연한 현실상황이다. 총대, 군대를 중시하며 그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우고 민중의 우위에 놓으신 김정일장군의 예지가 있어 이북은 미국의 고립압살책동도 제압하고 시련과 난관도 이겨 냈으며 민중중심의 사회주의도 고수한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 지니신 비범한 군사적예지는 적들을 쥐락펴락하는 탁월한 전법과 지략에서 찾아 보게 된다. 무릇 군사가가 명장으로 평가되는것은 그의 전략, 전술, 전법 등이 유명한데서 비롯된다. 전략은 군을 운용하는 총체적방략을 뜻하며 전술은 전략실현의 구체적행동방침으로서 군사적묘술, 술수와 관련되는 의미를 가지며 전법은 문자 그대로 싸움하는 방법이다. 칭기스한은 외선전술과 내선전술을 잘 배합하여, 쑤워로브는 목측, 신속성, 급습을 기본으로 하는 전술적용으로, 강감찬은 방어전술로 력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것처럼 전략이나 전술, 전법의 어느 한 분야에 능통하여도 력사는 그를 명장으로 내세운다. 김정일장군의 군사적예지는 그것이 군사행동에서의 전략, 전술, 전법의 일면이 아닌 총체적인 군사원리이고 혁명원리이다. 그러므로 결과에 있어서도 적들과의 대결에서의 1회전의 승리나 일면적성공을 이루게 하는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승리, 총체적성공, 립체적성공을 담보한다. 장군님께서 구사하시는 전법은 신묘하고 변화무쌍하다. 미국의 5성장군인 포웰이 1993년 초《〈한〉반도전쟁씨나리오》를 짜라는 위임을 받고《〈한〉반도전쟁은 자신이 없다. 그 리유는 첫째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의 전법상 특징을 전혀 모르고 있는것이다. …앞으로 북《한》과 전쟁을 하게 되면 김정일장군의 신기한 전법에 다 녹아 날수 있다.》고 실토한것은 장군님의 오묘한 전법에 대한 공포를 솔직히 고백한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 하신 다음의 가르치심에서 그분께서 력사에 존재한 전략, 전술, 전법에 어느 정도로 능통하신가를 가늠하게 된다. 《옛날 병서에는 〈병불염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사에서는 없는것을 있는것처럼 하고 있는것을 없는것처럼 하여 적을 기만하여야 합니다. 적을 기만한다는것은 여러가지 꾀를 써서 적들로 하여금 아군의 기도를 알수 없게 하고 적을 속여 넘긴다는것을 말합니다. 머리를 써서 적을 감쪽같이 속여 넘겨야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불의에 타격을 안길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마련할수 있습니다.》 김정일장군은 6.25전쟁시기 최고사령부작전탁곁에서 김일성주석을 보좌하시면서 주석님의 탁월한 전법을 체득하시였으며 우리 나라의 유명한 병서《동국병감》으로부터 중국의《손자방법》, 클라우제비츠의《전쟁론》 등 동서고금의 병서들을 다 독파하시고 전법에 대한 폭 넓고 심오한 사색과 탐구를 통하여 대학시절인 1962년 8월 22일 군사야영생들과 하신 담화《전법창조와 적용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이미 주체전법을 정립, 발표하신분이시다. 이러한 탁월한 전략전술가이시기에 그분께서는 언제나 도전하는 적들을 쥐락펴락하는 신묘하고 령활한 전법을 쓰시며 인민군부대들을 시찰하시면서 침입하는 적을 일격에 소멸할수 있는 신묘한 전법과 명안들을 제시해 주신다. 2000년 1월 어느 날 전연지대에 있는 어느 한 부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작전지도를 찬찬히 살펴 보시며 부대의 력량배치와 방어전면의 정황, 그에 따르는 전투시설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는 방어전면을 물샐틈없이 지켜 내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대번에 포착하시고 그것을 주체전법의 요구대로 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한장의 지도를 보시고도 열백을 헤아리시며 부대의 전투준비완성을 위해 고심해 온 자신들조차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들까지 속속들이 간파하시고 주체전법대로 싸움준비를 완성할수 있는 명략을 제시해 주시는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를 몸 가까이에서 체험하게 된 이 부대 지휘관들은 끓어 오르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사상으로 이길뿐만아니라 전법으로 이기는것이 싸움이다. 최근에 미군부가 진행한 콤퓨터계산에서《한》반도전쟁이 일어 나는 경우 전쟁개시 첫날에 주《한》미군의 80%와 미국본토와 일본기지 미군의 46%가 소멸된다는 결과가 나온것처럼 미국이《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때 김정일장군께서 어떤 신묘한 전법을 구사하시여 미군을 무주고혼의 신세가 되게 하실는지는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일장군께서 지니신 비범한 군사적예지는 군사분야에 완전히 능통하신데서도 찾아 볼수 있다. 군사분야라고 하면 매우 폭 넓은 분야인 동시에 해당 시기의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이 집적된 분야이다. 더우기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군종과 병종에 널리 도입되고 있는 현 시기에 이르러 군사분야의 전반에 대하여 완전히 능통하고 지휘통솔한다는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김정일장군께서는 만사능통의 군사적조예를 지니고 계시는 천재적인 군통수자이시다. 장군님께서는 경이적인 기억력으로 군사분야의 모든 장비들과 기술수단의 능력과 제원, 작용원리들을 환히 꿰들고 계신다. 이북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한 최첨단분야의 전투기술기재를 개발하였을 때였다. 현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그 무기의 기술적특성과 원리, 제원들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는 아직 중등수준이라고 하시면서 더 성능 높은 무기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는 이만한 제원의 무기를 만들면 이 분야에서 고등수준에 올라 섰다고 말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최첨단무기의 제원까지 환히 꿰뚫고 계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은 과학자, 기술자들은 그분의 해박한 군사적조예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장군님께서는 구체적인 군사실천분야에서도 로숙한 군사령관들의 실무능력을 릉가하는 다재다능한 군사적조예를 지니고 계시며 륙해공군의 어느 군종, 병종분야에 대해서도 다 능통하고 계신다. 장군님께서 1999년 한해동안에만도 41차에 걸쳐 2만 5천8백여리의 길을 이어 가시며 121개의 부대, 구분대, 단위들을 현지시찰하시고 그 많은 곳들에서 제기되고 있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정확하고 명쾌한 해답을 주시고 그 해결방도를 명시해 주신것은 그분께서 모든 군종, 병종에 따르는 만사능통의 군사적조예를 지니고 계시기때문인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현대과학의 최첨단이라고 말하는 콤퓨터와 전자설비들에 대해서도 전문가이상 능통하고 계신다. 1997년 설날 아침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시여 콤퓨터연구실을 돌아 보신 장군님께서는 강좌장에게 콤퓨터발전추세도 알려 주시고 프로그람교육에서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교육은 하지 말고 기술적인 내용을 가르쳐 줄데 대하여 이르시였으며 콤퓨터를 동작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시고는 외국어를 잘 알아야 콤퓨터를 쉽게 다룰수 있다고 깨우쳐 주시였다. 이렇듯 군사에 신통력의 예지를 지니신분이시기에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가 《김정일최고사령관은 전 세계에 보기 드문 특유한 위인인것만은 사실이다.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이다.》라고 격찬한것은 결코 과찬이 아닌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또한 신화적인 명사수이시다. 어느 해 12월 어느 한 구분대의 실탄사격정형을 보아 주신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도 한번 쏘아 보시겠다고 하시면서 50m거리에 있는 나무가지에 유리병 열개를 달아 매라고 이르시였다. 그날 따라 바람이 세차서 목표물들이 몹시 흔들거리였고 게다가 투명한 유리병들이 해빛에 반사되여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순식간에 다섯개의 유리병을 쪼각내시였으며 재빨리 권총을 왼손에 바꾸어 쥐시고 나머지 유리병들을 몽땅 날려 보내시였다. 오늘 인민군대가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강화발전될수 있은것은 이렇듯 빛나는 군사적예지를 지니신 김정일장군을 최고사령관으로 모시고 있기때문인것이다. 하기에 이전 쏘련방의 13대 국방상이였던 드미뜨리 야조브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력사에 이름 있는 명장들을 보면 지상전에는 밝으나 해전에는 어둡고 작전체계에는 능하나 무기체계와 그 사용법에는 그렇지 못한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전반적무력에 대한 통솔력을 지녔을뿐아니라 작전술로부터 무장장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어느 군종, 병종, 전문병분야에 대해서도 환히 꿰들고 계시였다. 그분의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지략, 해박한 군사지식에 숙연히 머리가 숙어 졌다.》 야조브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초기에 군복을 입고 70고령이 될 때까지 반세기동안 군사복무를 한 군인으로서 군인생활의 세부까지도 다 알고 있는 지휘관으로, 실전경험과 깊은 군사지식을 가진 군사전문가로 자처한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이북을 여러차례 방문하여 김정일장군의 접견을 받는 과정에 그분의 위인상에 완전히 매혹되여 이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것이다. 김정일장군은 정녕 세계가 우러르고 탄복하려는 비범한 예지의 령장이시다. □ 무비의 배짱과 담력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령도자는 배짱도 장군의 배짱이고 담력도 장군의 담력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인이 위인을 안다고 했다. 항일의 전설적영웅으로 이름 높은 김일성주석께서 평하신바와 같이 김정일장군은 영웅남아다운 배짱과 큰 통을 지니고 계시는 담대한 령장이시다. 담력은 령장이 지녀야 할 중요한 기질이다. 세계의 군사(軍史)에는 대담무쌍한 장군들이 많았다. 고구려의 연개소문, 을지문덕도 담대한 장군들이였다.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군사들이 용맹스러운 연개소문에게 얼마나 된 타격을 받고 혼쌀이 나군 하였던지 그 나라에서는《연개소문이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들도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한다. 리조때의 남이도 그가《백두산의 돌은 칼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 먹여 다 말리리/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평정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러 주랴》라는 시를 지어 읊은것처럼 대장부의 기개를 지닌 담대한 장군이였다. 담력이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하는 장군의 기질인것으로 하여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강장밑에는 약졸이 없다 하였다. 무적의 담력을 지닌 장군은 병사들을 대담하고 용감한 병사로 키워 싸움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뜻에서일것이다. 김정일장군은 력사의 어느 용장도 비길수 없는 배짱과 담력을 지니신 장군중의 장군이시다. 김정일장군의 담력은 천만대적이 달려 들어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유작작하게 대하시는 담력이다. 정세가 긴장할 때 군통수자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는 전례없이 큰 무게가 실려 지며 특별히 중대한 의미가 부여된다. 미국이《5027작전계획》을 공개하고 일본, 남《한》을 휘동하여 위험한 전쟁불장난을 할 때 김정일장군께서는 어데서 무엇을 하고 계시였는가. 장군님께서는 승리자동차종합공장과 덕성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시고 뒤이어 인민군장병들과 함께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과 군악단의 합동공연을 관람하시였다. 이것은 마치 1976년 말《판문점도끼사건》이 일어 나 펜타곤이 이북에 대한 《군사적대응조치》를 위한 작전을 최종확정하고《대통령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초긴장상태때 장군님께서 놈들이 아무리 위협을 해도 자신께서는 그것을 코흘리개의 으름장만큼도 여기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평양대극장에 나가시여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시연회를 지도하여 주신것과 꼭 같은 거행이였다. 장군님의 이러한 행보는 천만대적이 달려 들어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여유작작하게 대하시는 그분의 담력을 보여 주는것이다. 그분께서는 어떤 대적이 덤벼 들어도 추호도 동요하거나 주저하지 않으시며 언제나 덤벼 들테면 덤벼 들라는 든든한 배심을 가지시고 여유작작하게 대처하시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의 담력은 언제나 적들을 맞받아 나가 짓뭉개 버리시는 담력이다. 력사는 위대한 사변을 영원히 기억한다. 사람들은 미국이 1993년 초 이북의《핵개발의혹》을 빌미로 하여《특별사찰》과《집단제재》로 위협해 나섰을 때 김정일장군께서 준전시상태선포와 NPT(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로 대답하시여 미국을 굴복시키시고 협상탁에 끌어 내시여 북미합의서와 클린톤의 담보서한까지 받아 내신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때로부터 5년세월이 흐른 1998년경에《한》반도에는 또다시 그와 방불한 사태가 빚어 졌다. 이북이 겪는 경제적난관을 아전인수격의 이북붕괴로 해석한 미국은 이북의《지하핵시설의혹》을 들고 나오는 한편 이북에 대한 군사적압력의 공세를 부쩍 높여 이북《목조르기》에 최대압을 가해 나섰다. 미국은 이해 3월 주《한》미8군을 전시체제나 다를바 없는 야전군체제로 개편확대하였으며 4월에는 미, 일, 남《한》의 군부수뇌들이 서울에 모여《〈한〉반도 안전보장문제》와 관련한 모의를 벌리고 이북의 정치정세와 무력상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군사적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의를 하였다. 이러한데 기초하여 미국은《5027작전계획》을 시동시켜 7월부터 그 첫막에 해당되는 이북봉쇄작전을 본격화하여《한》반도정세를 초긴장상태로 몰아 갔다. 바로 이러한 때인 8월 말 이북은 인공지구위성《광명성1호》를 쏘아 올렸다. 이북의 위성발사는 세계를 들었다 놓은 일대 충격적사변이였다. 이북이 첫 인공지구위성을 단 한번의 발사로 정확히 자기 궤도에 진입시킨것은 이북의 막강한 국력과 불패의 기상의 일대 과시였으며 미국과 그 련합세력들의 도전에 대한 정면적인 대답이였다. 월간지《말》98년 12월호가《북이 미국, 일본도 감히 예상치 못했던 현대과학기술의 집결체인 인공위성을 성과적으로 발사한것만 보아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쓴것은 세계의 시각을 반영한것이다. 이북의 위성발사는 김정일장군의 과학중시정책과 함께 그분의 담력의 소산이라 해야 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미국의 이북압살정책, 봉쇄작전에 위성발사로 대답하신것이다. 다시 말하여 미국의 전쟁전략을 힘의 정책으로 맞받아 나가시여 미국과 그에 공조하는 일본, 남《한》을 일격에 녹ㅡ아우트 시키신것이다. 이북의 인공위성발사후 미당국자들이 한동안 이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못하고 경망한 일본당국자들만이 불에 덴 망아지처럼 북의《미싸일위협》에 대하여 떠들면서 허겁지겁 날뛴것이 그들의 당황망조상과 패배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것이였다. 김정일장군은 세상을 경악시키고 적들을 전률케 하는 위성발사와 같은 충격적사변으로 총성을 울리지 않고도 적을 타승하시는 무비의 담력과 결단성, 지략을 지니신 비전이승의 령장이시다. 김정일장군의 담력은 그 어떤 위험상황도 두려워 함이 없이 과감하게 결행하시는 담력이다. 장군님의 1996년 11월 판문점시찰이 그 프리즘이며 투상도이다. 판문점을 경비하고 있는 미군과《국군》은 김정일장군께서 자기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20m앞에까지 나오시여 군시찰을 하시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하였다. 이것은 대단한 담력을 가진 군통수자라 할지라도 감히 결행할수 없는 청천벽력 같은 사변이였다. 하기에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다녀 가신 이틀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판문점의 미군과《국군》이 아연실색하고 공포에 전률한것은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김정일장군의 판문점시찰을 왜 제때에 몰랐는가 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의 힐책에 판문점 미군측 대표가 안개가 몹시 끼였기때문에 감시병들이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김정일장군은 하늘이 낸 장군이라던데 정말 도술을 쓰는것 같다고 고언하고 판문점의 미군과《국군》들이 당장 발밑에서 원자탄이 터지는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이고 항간에 김정일장군께서 판문점까시 시찰하신것을 보니 이제는 인민군대가 전투준비를 끝내고 이남땅에 쳐내려 올지 모른다는 여론이 나돈것은 장군님의 판문점시찰의 충격파가 얼마나 큰것이였는가를 말해 주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은 이렇듯 적의 총구도 두려워 하심이 없이 적의 면전에까지 신출귀몰하시며 적을 혼비백산하게 하시는 강철의 령장이시다. 세인들은 선군정치의 나날을 수 놓아 가시는 김정일장군의 배짱과 담력에 경악과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장군님의 배짱과 담력은 이남은 물론 세계를 진감하는 위대한 사변을 한두번만 불러 오지 않았다. 하기에 미국의 두뇌진이 《놀라운 담력과 결단성을 지니신 김정일최고사령관이 어느 때 미국에 파멸적인 타격을 가할지 알수 없다. 미국정계와 군부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미국회와 국무성에서《력사에 이름난 장군들의 종합체와 같은 김정일장군이 몇개 대륙의 군대를 합친것보다 더 강력한 북《한》군대를 이끌고 아메리카로 원정하여 세계정치지도의 색갈을 크게 변화시킬수 있다.》는 설이 나돌아 온 미국땅을 불안에 떨게 한것은 미국내에서까지 김정일장군을 얼마나 무서워 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것이다. □ 탁월한 령군술 1813년 프로시야군과 전쟁할 때 나뽈레옹은 참모부기구가 그?하게 꾸려 져 있었음에도 그것을 제껴 놓고 자기가 말을 타고 다니면서 군사령관들을 직접 지휘하는 방법으로 전투지휘를 하다나니 한쪽에서는 승리를 이룩하였지만 전반적부대들은 패전을 거듭하였다. 히틀러 역시 쏘도전쟁때 추운 겨울이 닥쳐 들기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할 작전계획을 세운 륙군사령부와 총참모부를《여지없이 낡고 썩어 빠진 무리의 대가리들》이라고 미친듯이 고아 대면서 그들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쓰딸린그라드를 동시에 공격하도록 군대들을 내몲으로써 파쑈도이췰란드군은 력량이 분산되여 모스크바에서 대참패를 당하고 전쟁의 내리막길을 걷게 되였다. 력사가 립증하는바와 같이 령장의 위대성은 군사적예지, 담력과 함께 령군술이 어떠한가 하는데 의해 중요하게 평가되게 된다. 령군술은 령장의 필수적인 자질이며 그의 위대성을 특징 짓는 중요징표의 하나로 일컬어 지고 있다. 군통수자가 아무리 정확한 군사로선과 전략전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높은 령군술을 지니지 못하면 군사들을 옳게 이끌수 없으며 더우기 어렵고 복잡한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수 없다. 김정일장군은 력사의 그 어느 명장도 따를수 없는 령군의 천재이시다. 《김정일최고사령관이 지닌 령군적예지는 놀랍다기보다는 경이적이며 부럽다기보다는 매혹적이며 출중하다기보다는 전무후무한것이다.》 이 말은 미국방성의 한 고위당국자가 한 말이다. 그의 말은 김정일장군의 령군술에 대한 두려움과 경탄, 탄복이 복합된 찬탄이라고 본다. 이북과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의 군사문제를 전관하는 펜타곤의 이러한 실토는 김정일장군이시야말로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비범하고 탁월한 령군술을 지니신 령장이시라는데 대한 확인이 아닐수 없다. 김정일장군의 령군술의 독특성과 위대성은 정치사업을 모든 사업에 선행하여 군인대중의 사상을 적극 발동시키는데 있다. 지난 시기 군통수자들이 군사를 통솔해 온것을 보면 명령하고 지시하는 방법으로, 혹독한 군률로 군사를 움직이는것이 통례였다. 칭기스한은 전투를 할 때 10명조를 무어 놓고 거기에 속한 군인들이 용감한 군인을 따라 돌격하지 않으면 그들모두를 사형에 처했으며 10명조에서 한사람이 포로되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구원하지 않아도 그들모두를 처형하였다. 칭기스한의 가장 가벼운 처형은 녀자의 옷을 입혀 당나귀꼬리에 비끄러 맨 다음 군중들앞에서 끌고 다니는것이였다. 아무리 규률을 생명으로 하고 군사명령체계에 따라 움직이는것이 군대라 할지라도 이런 혹독한 규률과 명령지시만으로는 군사를 잘 령솔할수 없다. 사람을 움직이는 묘술은 마음속에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사상을 발동하는 령군술만이 가장 탁월한 령군술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사람의 사상이 기본이며 사상에 의하여 모든것이 결정된다는 사상론을 내놓으신데 기초하여 군인대중을 움직이는데서 사상을 발동하기 위한 정치사업을 선행하도록 하신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에서 정치일군들은 물론 군사일군이나 후방일군들도 누구나 다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도록 하신다. 이에 있어서 장군님께서는 우선 일군들이 항일유격대식으로 배낭을 메고 군인대중속에 들어 가 정치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릴것을 요구하신다. 1996년 5월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일군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자신의 생각에는 인민군대의 모든 일군들이 항일유격대식으로 배낭을 메고 군인대중속에 깊이 들어 가 사상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려 그들을 조성된 경제적난국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 나가기 위한 투쟁에로 적극 불러 일으키도록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조성된 경제적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은 해설담화의 방법으로 하는것이 제일 좋다, 이번에 일군들이 아래에 내려 가면 군인들과 직접 무릎을 마주하고 나라의 형편에 대하여 툭 털어 놓고 이야기하여 주고 나서 우리가 경제적난관을 겪고 있는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당정책이 잘못되여서가 아니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무너지고 사회주의시장이 없어 진것을 기화로 우리 나라에 대한 봉쇄를 어느 때보다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에 자연재해도 많이 입었다, 우리가 오늘 경제적난관을 겪고 있는것은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대로 경제조직사업을 잘하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실망할것은 없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곤난은 일시적인것이다, 당이 있고 그 두리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뭉친 군대와 인민이 있으며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가 있는 한 우리는 반드시 조성된 경제적난국을 타개하고 내 나라, 내 조국을 이 세상에서 제일 부강하고 살기 좋은 인민의 지상락원으로 만들것이라는 식으로 차근차근 일깨워 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가르치시였다. 사실 인민군군인들은 이북의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자라나고 그 제도의 우월성과 고마움을 실지 생활체험을 통하여 심장깊이 간직하고 있으며 그 제도를 지키기 위하여 총을 잡고 나선 사람들이다. 이런 군인들에게 나라가 처한 형편을 사실 그대로 알려 준다면 그들이 현 난국을 타개하고 사회주의제도를 지켜 내기 위하여 자각적으로 분발해 나설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모든 일군들이 선전원, 선동원이 될뿐만아니라 그들이 정치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릴 방법까지도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당정치사업에서 또한 형식주의를 결정적으로 없앨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분께서는 어느 날 인민군지휘일군들을 부르시여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은 아직도 형식주의의 낡은 틀에서 완전히 벗어 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군현지시찰에서 정치사업을 실속 있게 하도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1996년 11월 판문점을 시찰하신 그분께서는 생소한 초소에 임명되여 와 자기 사업을 놓고 안타까와 하는 그곳 정치일군에게 그가 해야 할 정치사업의 기본내용을 하나하나 밝혀 주시고 판문점대표부에서는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에서 계급교양을 기본으로 틀어 쥐고 나가야 합니다라고 가르치시였다. 1998년 9월 말《오중흡7련대》칭호쟁취를 위한 판정을 받고 있는 어느 한 부대를 찾으셨을 때는 그곳 일군들이 판정분위기를 세운다고 하여 여기저기에 200개에 가까운 기발을 꽂아 놓은것을 보시고는 운동장에 기발을 많이 띄워 놓았는데 사상동원사업을 이런 식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사상사업에서 허례허식은 금물이다, 판정을 받을 때 기발이나 띄워 가지고서는 군인들의 사상을 발동시킬수 없다고 지적하시였다. 장군님은 이렇듯 사상을 중시하시고 정치사업을 선행하도록 하시여 군인들의 혁명적열의와 자각성에 기초하여 군을 령솔해 나가시는 독특한 령군술의 군통수자이시다. 김정일장군의 령군술의 독특성과 위대성은 전군이 최고사령관의 명령일하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령군체계를 세워 놓으신데 있다. 인민무력부장이였던 오직우의 회상실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누구보다도 몸 가까이 모시고 일하는 나날에 내가 특별히 제일 감탄하고 느낀것은 지도자동지께서 인민군대의 실태를 손금 보듯 환히 꿰뚫고 계신다는 점이다. 군대사업을 직접 맡아 보는 나는 물론 간부들도 알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벌써 다 아시고 우리들에게 해결책을 세워 주신다. 인민군대사업을 틀어 쥐시고 현명하게 령도하시는 지도자동지의 령군술은 우리로서는 신기할 정도로 놀랍고 뛰여 나다.》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한평생을 군복을 입고 살아 왔던 백전로장의 이 감탄은 김정일장군께서 드센 장악력으로 전군을 한손에 거머쥐시고 하나의 명령으로 움직이시는 특출한 령군술을 지니고 계심을 립증하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전군에 정연한 장악보고체계를 세우시여 인민군대안에서 벌어 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순간의 지체도 없이 제때에 가장 정확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료해장악하고 그에 즉시 대처하시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인민군대안에 당풍에 기초한 군풍을 철저히 세워 놓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당의 령도체계와 령군체계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명백한 해답을 주시고 인민군대안에서 당의 령도체계를 세우는 문제와 당의 령군체계를 세우는 문제는 다같이 최고사령관의 유일적령도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질서를 세우는 문제로서 표현만 다를뿐 본질상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것, 인민군대의 군풍은 본질에 있어서 당풍에 기초한 군풍으로서 인민군대는 당의 군대인것만큼 인민군대안에는 오직 당의 유일적령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철 같은 규률이 지배하여야 한다는것 등 중요문제들을 밝히시여 인민군이 철두철미 조선로동당의 군대로서의 성격을 고수하고 전군에 당풍에 기초한 군풍이 철저히 확립되도록 하시였다. 당의 령도를 거부할 때 혁명군대는 자기의 성격을 고수할수 없으며 군풍자체도 확립할수 없다는것은 자본주의가 복귀된 나라 군대의 현 실태가 그대로 실증해 준다. 당의 령도에서 벗어 나 비정치화되는것으로 사회주의군대이기를 그만둔 오늘의 로씨야군대의 면모를 전군에 만연된 술풍 하나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로씨야군대는 오늘 군대안에 술풍이 만연되여 알콜중독에 의한 사망자수가 급증하고 알콜에 미친 정신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곳곳에《술중독치료소》까지 차려 놓고 있는 형편이다. 얼마전 로씨야군 총참모부가 어느 한 기계화부대에 내려 가 비상경보신호를 하달하였는데 1시간이 지나서야 련대장이 탄 장갑차가 검열책임자앞에 나타났다. 전투규정에는 신호를 받은 때로부터 부대전원의 동원완료시간이 5분으로 되여 있는데 1시간이 지난 후에, 그것도 련대장만 겨우 나타난것이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련대장의 태도였다. 호되고 모욕적인 추궁앞에서도 천연스러울뿐더러 오히려 난들 어쩌라는가 하는 표정이였다. 그러면서 변명한다는 말이 운전수들이 거의나 폭주가들이여서《술중독치료소》에 입원했기때문에 동원령을 집행할래야 할수 없다는것이였다. 군풍이 아니라 술풍이 만연된 이런 상태로 유사시가 도래하면 초보적인 응전이나 해보겠는가. 그 력량이 몇백만이라 한들, 군사과학기술과 무장장비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풍이 결여되면 군풍도 흐려 지며 그 자리에 술풍과 같은 자본주의풍이 들어 앉는다는것을 보여 주고 있다. 혁명군대에 있어서 당의 령도는 생명과 같은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안에 당풍에 기초한 군풍을 세우는데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혀 주시였다. 그 하나는 군사지휘일군들이 군사제일주의를 하지 말고 당의 령도에 충실하는것이다. 1996년 1월 초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군대에서 진행하는 당정치사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당의 령도는 군대안의 당조직들과 정치기관을 통하여 실현된다, 군사지휘관들이 정치기관들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차근차근 일깨워 주시고는 인민군대의 지휘성원들은 당의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고 당과 운명을 같이 하는것을 자기의 정치철학으로 삼아야 한다고 힘 주어 말씀하시였다. 당풍과 군풍을 세우는데서 장군님께서 경계하신 다른 하나는 정치일군들이 당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는것이다.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군대에서 관등급을 무시하게 되면 명령지휘체계를 세울수 없고 적과 싸워 승리할수 없다, 명령지휘체계는 원래 관등급상 차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 군대에서 관등급을 무시하는것은 극단적군사민주주의의 표현이다라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안의 일부 정치일군들이 당풍을 세운다고 하면서 관등급을 무시하는데 대하여 엄하게 비판하시였다. 그러면 어떤 일군이 당풍과 군풍이 확고히 선 일군이겠는가. 장군님께서는 1995년 6월 어느 날 인민군대안에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무조건 철저히 집행하는 당적기풍, 혁명적군풍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최고사령관의 명령은 곧 법이며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한 유일한 지도적지침이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최고사령관의 사상과 의도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하며 오직 최고사령관이 하라는대로만 하여야 한다, 이런 일군이 바로 당적기풍이 서고 혁명적군풍이 선 일군이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최고사령관의 사상과 의도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며 그이의 명령지시를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는 군지휘원을 장군님께서는 당풍과 군풍이 선 일군으로 보신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인민군대안에 당의 령도체계와 령군체계, 당풍에 기초한 군풍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시여 최고사령관의 유일적지휘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엄격한 제도와 질서를 확립하도록 하시였으며 군대안에서 진행되는 크고작은 모든 사업을 그 어느것이나 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지시에 따라 진행하도록 하신다. 하기에 미국방성의 안보문제담당 부차관보는 북《한》군대에서 김정일최고사령관의 사상은 피로 되며 그분의 명령은 가장 성스러운것으로, 좌우명으로 되고 있다고 하면서 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북《한》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강적으로 된다고 하였다. 유사이래 이 세상에는 군인들의 사상과 자각성을 발동하여 군을 움직이고 명령일하에 전군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한 군통수자는 오직 김정일장군밖에 없다는것이 오늘의 력사인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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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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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강철의 령장 |
| 철의 신념과 의지
신념과 의지는 군통수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기질이다. 군통수자들이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복잡다단한 정치군사정세하에서 무력을 제대로 이끌어 나갈수 없으며 특히 전쟁과 같은 엄혹한 도전과 시련을 뚫고 나갈수 없다. 신념과 의지는 성공의 열쇠라고 한다. 김정일장군은 굳센 신념과 의지를 지니시고 선군정치를 성공에로 이끌어 나가시는 강철의 령장이시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일찌기 김정일장군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아마 드물것이라고, 김정일장군이 한번 먹은 마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늘이 무너져도 김정일장군의 신념은 끄떡 없다고, 자신께서는 조선혁명을 오래동안 령도하여 오면서 김정일장군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을 처음 보았다고, 아마 세계정치무대를 둘러 보아도 그만큼 신념이 강한 지도자는 없을것이라고, 김정일장군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신념이 강한 인간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시였다. 김정일장군은 오늘의 세계가 공인하는 신념과 의지의 최강자이시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철의 신념과 의지의 정치이다. 나는 주체의 사회주의신념을 굳게 가지고 력사의 역풍을 맞받아 나갈것이다, 우리는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90년대의 새 력사를 창조해 나갈것이다라고 세계앞에 선포하시고 력사적인 선군혁명령도의 길에 나서신 장군님이시다. 김정일장군의 철의 신념과 의지는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함없이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의 한길로만 나아가는 신념과 의지이다. 90년대에 들어 선 이북의 형편은 참으로 어려웠다. 작은 한 나라로서는 너무도 감당하기 어려운 엄혹한 시련이고 난관이였다. 사회주의이북이 이 준엄한 시련과 난관을 뚫고 일떠설것인가, 영영 주저앉고 말것인가. 세계의 이목은 이북에 집중되고 어제날의 우방국들까지도《단련을 받을것없이 귀국도 붉은기를 내리우고〈개혁〉,〈개방〉의 요구를 받아 무는것이 어떤가.》고 권고해 나섰다. 이러한 때 이북에서 만리창공을 헤가르며《높이 들자 붉은기》의 노래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군님께서는 이 노래가 창작되였을 때 좋은 노래가 나왔다고 못내 기뻐 하시면서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서도 혁명가의 일생은 붉은기를 휘날려 가는것으로 되여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게 된다, 이 노래는 나의 리상을 담고 있으며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힘과 신심을 주고 있다고 하시였다. 이북의 운명에 대하여 우려하는 사람들, 이북의《붕괴》에 대하여 망상하는 자들, 세계의 수억만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며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흔들림없이, 변함이 없이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오직 혁명의 한길, 사회주의의 한길로만 가려는 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의지를 읽었다. 장군님께서는 1996년 2월 어느 날에도 인민군지휘성원들앞에서 붉은기와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격조높이 선언하시였다. 우리는 그 어떤 역경과 시련속에서도 혁명의 붉은기를 절대로 내리우지 않을것이며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것이다라고. 사회주의에 대한 장군님의 신념과 의지는 그 어떤 시련과 난관앞에서도, 그 어떤 유혹과 위협앞에서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견결하고 절대불변한 신념과 의지인것이다. 어떤 천지풍파가 들이닥쳐도 추호의 동요도 없는 장군님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사회주의가 민중의 생사운명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이라는 숭고한 정치인식으로부터 출발한것이라고 본다. 1996년 11월 판문점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이런 심각한 말씀을 하시였다. 《사회주의는 우리 인민의 생명입니다. 우리 인민이 사느냐 죽느냐, 다시 말하여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리느냐 아니면 남의 노예가 되여 천대와 멸시를 받느냐 하는것은 사회주의를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입니다.》 사회주의를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것은 인간의 생사존망, 민중의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이기때문에 장군님께서는《1:세계》라는 엄청난 정치력학구도속에서도 철의 신념과 의지로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계시는것이라 하겠다. 김정일장군의 철의 신념과 의지는 어떤 시련과 고난속에서도 굴함없이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하여 억세게 싸워 나가는 신념이며 의지이다. 1996년 11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자신께서 해를 이어 인민군대를 현지시찰하시는 의도에 대하여 일군들에게 다음과 같은 뜻 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동무들은 내가 왜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지만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공장이나 농촌이 아니라 인민군부대들을 끊임없이 현지지도하는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다고 하여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 인민이 제국주의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면할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어느 날에는 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혁명의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로 주저앉아서는 안된다, 적들이 발악할수록 더 억세게 일어 서야 한다, 우리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이 어려 있는 내 나라, 내 조국을 기어이 부흥시켜야 한다, 나는 아무리 어려워도 끝가지 이기고야 말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오늘의 어려운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군력강화에 주력하고 계시는것은 민중의 운명에 대한, 사회주의의 운명에 대한 그분의 높은 책임감으로부터이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압살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키지 않으면 민중들이 노예가 되여 비참한 운명을 강요 당하게 되기때문에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라도 군력강화에 큰 힘을 돌리고 계시는것이다. 민중의 운명에 대한 높은 책임감으로부터 배태되는 신념과 의지, 여기에 바로 그분의 신념과 의지의 위대성, 숭고성이 있다 하겠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자신이 신념과 의지의 최강자이시기에 인민군군인들을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키우고 계신다. 1995년 4월, 건군절을 앞둔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신념이 강하여야 하며 혁명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수령에게 끝까지 충실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혁명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수령을 영원히 높이 우러러 모시고 수령의 위업에 끝까지 충실하는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지녀야 할 숭고한 도덕의리입니다. 혁명가들은 혁명의 수령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따라야 하며 그 어떤 조건에서도 정치적신념과 혁명적지조를 굽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이전 쏘련원수이며 3중영웅이였던 쥬꼬브에 대하여 들려 주시였다. 1957년에 어느 한 극장에서 쏘련문화성의 주최로 명배우들의 예술공연이 있었다. 물론 특별히 마련된 공연이였던만큼 당과 정부의 지도간부들이 거의가 초대되였다. 당시 국방상이였던 쥬꼬브도 초대석에 앉아 있었다. 공연시간이 박두하여 흐루쑈브가 위세를 돋구며 극장안에 들어 섰다. 관람군중은 물론 간부들모두가 자리에서 일어 나 례의를 표시했다. 그때 쥬꼬브만은 공연순서표를 뒤적거리고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흐루쑈브에 대한 그의 평소감정의 연장이였다. 오래동안 쓰딸린에게 충실해 온 그는 애초부터 수정주의두목인 흐루쑈브를 바로 보지 않았다. 그는 군중대회를 비롯하여 행사장에서도 흐루쑈브가 나왔다고 하여 박수를 치며 환호를 올리거나 례의를 표시하는 법을 몰랐다. 이날의 그의 행동이 흐루쑈브에게 거슬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공연을 보고 돌아 온 흐루쑈브는 전화로 쥬꼬브를 찾아《당신은…내가 극장에 들어 섰을 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냥 자리에 앉아 있더구만.》이라고 위협조로 따지고 들었다. 그러나 죠꼬브는 천연스럽게《난 요즘 좌골신경통이 도져서 앉았다 일어 섰다 하기가 매우 끔찍해요. 그저 그뿐인데 대답이 만족하겠는지…》라고 하였다. 그 이듬해 쥬꼬브는 흐루쑈브에 의해 공직에서 철직되였는데 그때조차 빌붙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시고 나서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쥬꼬브처럼 당장 목이 떨어 지는 한이 있더라도 권력앞에서 절대로 굴복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 수령에 대한 신념과 의리를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라고 가르치시였다. 또한 장군님께서는 1996년 4월 어느 날에도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이 혁명을 하느라면 힘에 부칠 때도 있고 주저할 때도 있을수 있습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그때마다 나에게는 당이 있다, 나는 당의 혁명전사다, 내가 설사 이 길에서 죽는다고 하여도 당은 나를 붉은기폭에 싸안아 영생의 언덕에 내세워 줄것이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다는 신념을 더욱 굳게 가다듬고 부닥치는 난관과 애로를 용감히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이 이런 신념을 지니지 않고서는 멀고 험한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 나갈수 없으며 당과 영원히 운명을 같이 할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선군혁명령도의 나날 인민군장병들의 가슴속에 신념의 억센 기둥을 심어 주시고 그들을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키워 나가시였다. 김정일장군의 산악 같은 신념과 의지는 이북의 사회주의를 지탱하고 승승장구하게 하는 정신적지주로, 인민군대를 세계최강의 강군으로 키운 사상적에너지로 되고 있다. 장군님께서 철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난국을 헤쳐 나가지 않으셨더라면 이북이 남들 같으면 열백번도 더 쓰러졌을 그 모진 시련을 이겨 내고 오늘과 같이 강성대국건설의 지평을 열수 없었을것이다. 미국 씨엔엔텔레비죤방송은 이렇게 보도하였다. 《이 나라가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웬간한 나라 같으면 쓰러지고도 남았을것이다. 그러나 북〈한〉사람들은 확실히 의지가 강한 민족이다. 식량부족 같은것이 그들을 쓰러뜨린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력사는 언제나 신념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광과 행복을 주었다. 북〈한〉의 신념과 의지는 력사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것이다. 북〈한〉의 앞장에는 로련한 정치가, 세기의 명인으로 칭송 받으시는 김정일령도자께서 서계신다.》 동서가 일치하게 공인하고 칭송하는것처럼 김정일장군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신 위대한 정치가, 강철의 령장이시며 그분을 닮은 이북의 군대는 신념과 의지의 강경보루이다. □ 견결한 원칙성 김정일장군은 원칙성이 강한분이시다. 다시 말하여 그분은 대가 센분이시다. 장군님께서는 나라와 혁명, 민중의 리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일보의 양보도 없으며 불의와 부조리에 대해서는 타협을 모르시며 허위와 가식을 제일 증오하신다. 장군님의 이러한 혁명원칙성은 군령도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김정일장군의 혁명적원칙성은 인민군군인들이 제국주의에 대한 비타협적투쟁정신을 지니도록 하시는데서 절감하게 된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대결은 정치사상적대결이며 힘의 대결이다.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사회주의나라들이 한걸음 물러 서면 두걸음 물러서게 되고 두걸음 물러 서면 세걸음, 열걸음 물러 서게 된다. 쏘미관계에서 고르바쵸브가 대결로부터 타협에로 로선전환을 하고 미국과의 군축회담에서 양보한 결과 쏘련의 군사력이 렬세에 빠졌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신사고》의 미명하에《개혁》과《개편》에로 나간 결과 자본주의방식이 도입되여 당이 무력화되고 사회주의경제체제가 무너지게 되였으며 자본주의사상문화가 밀려 들어 결국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것이 그 력사적례증으로 된다. 더우기 오늘과 같이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정치와 군사, 경제와 사상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집요하게 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혁명적원칙을 고수하는 문제는 사회주의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활적인 요구로 나선다는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것이다. 1996년 2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장병들에게 정세가 준엄해 질수록 혁명적원칙을 더욱 견결히 고수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분께서는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환경속에서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 나가고 있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사회주의보루인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 있으며 나라의 경제사정도 매우 긴장하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이 어렵다고 하여 그 길에서 한걸음이라도 물러 서거나 주저앉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우리가 혁명의 길에서 한걸음 물러 서면 귀를 잘리우고 두걸음 물러 서면 손을 잘리우게 되며 나중에는 망하게 된다고 하시였다. 아무리 어렵고 간고하다 하여도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는 일보의 양보도 있을수 없다는것이 그분의 불변억척의 원칙이며 립장이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사회주의이북은 내부로부터 와해하려고 사상공세, 군사공세, 물질공세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 있다. 천태만상의 기도를 하면 이북이 어느 코엔가는 걸려 들것이라는것이 그들의 타산인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적들의 와해책동에 대처하여 인민군장병들이 높은 계급의식을 가지고 제국주의와 반동들을 반대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도록 정신무장에 력점을 두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날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군인들속에서 계급교양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계급교양은 사람들을 로동계급의 계급의식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중요한 사상교양사업이라고, 군인들속에서 계급교양을 강화하여야 그들이 높은 계급의식을 가지고 제국주의와 지주, 자본가들을 비롯한 착취계급과 착취제도를 반대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할수 있다고, 오늘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자들이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고립질식시켜 보려고 갖은 발악적책동을 다하고 있는 조건에서 계급교양을 강화하는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미제를 비롯한 계급적원쑤들을 끝없이 중오하고 그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것, 이것이 인민군대에 대한 장군님의 원칙적요구이다. 더우기 현 시점에서 인민군장병들의 계급의식을 부단히 높여 주는것은 혁명의 총대를 더 억세게 추켜 드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한 정치적문제인것이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는 인민군지휘성원은 1992년 조선인민군창건60돐경축 열병식을 준비하던 때에 있었던 일이 상기되였다고 한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열병식행렬에 나가는 전투기술기재들에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를 써붙인것을 그냥 두어도 일없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이러니저러니 론의를 벌렸다. 그 론의의 요점은 지금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긍정적인 전망을 보이고 있는 때이고 또 미국이 비교적《우호》의 립장으로 나오는 조건에서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열병식을 세상사람들이 다 지켜 보겠는데 지나치게 자극하면 미국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그렇게 되면 좋게 발전하는 관계개선에도 지장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이 사실을 보고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그 즉석에서 구호를 그대로 두게 하라고, 혁명적구호를 없애는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 구호를 없앤다는것은 인민군대의 전투목표를 버린다는것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조선인민군창건 60돐경축 열병식에 나가는 전투기술기재들에 써붙인《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를 본다고 하여 문제될것이 없다, 구호가 사진이나 화면에 나가도 일없다고 단언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온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거행된 열병식때 기계화종대 행렬에는 미제를 단죄하는 구호가 보란듯이 나붙게 되였다. 결과 이북은 열병식을 통하여 자기의 막강한 군사적위력과 함께 흔들릴줄 모르는 강경한 대미립장을 만천하에 과시한 일거량득의 효과를 보게 되였다. 바로 이렇듯 혁명적원칙을 중시하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그날 그분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인민군대에서는 군인들속에서 제국주의 침략적본성과 지주, 자본가계급의 착취적본성을 잘 알려 주어 그들이 제국주의와 착취계급을 반대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사회주의를 지키지 못하면 지난 날 우리 부모들처럼 망국노의 비참한 생활을 강요 당할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알려 주어 그들이 총대로 수령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견결히 옹호보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오늘 인민군대가 만일 미국이《한》반도에서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제침략자들을 격멸소탕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것이라고 내놓고 말하고 있는것은 장군님께서 인민군군인들의 심장마다에 심어 주신 계급의식이 분출이라 하겠다. 김정일장군의 혁명적원칙성은 인민군군인들이 평화적기분에 사로잡히지 말고 항상 동원되고 긴장된 태세를 견지하도록 하고 계시는데서 감득하게 된다. 최전연지대인 1211고지를 찾으신 그날 장군님께서는 여러 초소와 전투진지를 돌아 보시면서 인민군장병들에게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갖추고 언제나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나라의 정세는 의연히 긴장되고 첨예합니다, 조미사이에 여러 갈래의 대화와 협상이 진행된다고 하여 그에 대하여 절대로 환상적으로 대하여서는 안됩니다, 미제가 우리와의《대화》에 대하여 운운하는것은 시간을 얻어 우리 나라에 대한 전쟁준비를 완성하며 우리의 긴장성을 해이시켜 놓고 불의에 덤벼 들자는데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북과 미국사이에는 여러 갈래의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여 왔다. 미국무성의 한 고위관리는 미국정부가 이북과의 회담을 요구하는 진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실토한바 있다. 《초대국인 미국이 북〈한〉하나 제압하지 못하여〈평화협정〉을 체결하려고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4자회담〉을 제의한 클린톤의 심중한 기도를 잘 모르고 있다. … 우리는 북〈한〉에〈4자회담〉을 제기하여 그들이 자기 병력을 얼마간이라도 축감하게 하고 우리를 겨누는 탄도탄이나 화학무기를 더 이상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나 평화회담에 끌어 내려 하고 있는것이다.》 미군부와 공화당의 강경보수파들은 이 속심을 초월하여 로골적인 침략기도를 표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클린톤의 《평화전략》에 관계없이《미군은 북〈한〉 이〈4자회담〉에 나오건 안 나오건 관계없이〈선제타격〉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느니, 《미국의 리익에 부합되고 남〈한〉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이 요구한다면 북〈한〉에 대하여〈외과수술식타격〉을 해야 한다.》느니 하고 공공연히 고창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장군께서 인민군군인들에게 북미대화에 환상을 가지지 말고 해이됨이 없이 만단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라고 하신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원칙적요구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사실 군대의 안일해이는 전쟁에서 최대의 금물이라는것은 론할 여지도 없는것이다. 로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 2월 8일은 일요일이여서 로씨야 태평양함대참모부의 많은 장교들이 술을 마시러 외출하였고 함대고위장교들도 함대사령관 부인의 생일연회에 초대되여 가고 없었다. 이런 해이된 틈을 타서 일본구축함들은 손 쉽게 려순항에 접근하여 16발의 어뢰로 로씨야의 원양장갑함 2척과 순양함 1척을 격파하였던것이다. 1941년 12월 8일 일요일 새벽 6시에 일본군국주의군대가 하와이 진주만을 불의에 공격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군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것은 미군의 경각성이 해이되여 1,500m 상공을 비행하는 일본군비행기20~30대를 자기 편 비행기로, 섬의 남쪽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를 자기 편 비행기들이 훈련하는것으로 생각한데 있었다. 세계전쟁사에 이러한 실례는 부지기수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이북이며 미국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나라도 이북이다. 이북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미국이 언제 불의에 선제타격을 가해 올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사이에 대화가 오간다고 하여 나라의 운명을 지켜 선 인민군대가 평화적기분에 사로잡혀 경각성을 늦추고 총 쥔 손의 맥을 놓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큰일인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는 북미대화와는 상관없이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에 있으며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출데 대하여 강조하신것은 천만지당한 원칙적요구인것이다. 그러기에 장군님께서는 1211고지 군인들에게《적들에 대한 환상은 죽음입니다.》라는 금언 같은 말씀을 남기시였던것이다. 이 말씀은 그들뿐만아니라 전체 인민군군인들에게 주신 좌우명인것이다. 김정일장군의 혁명적원칙성은 인민군군인들이 원칙적인 투쟁기풍을 지니도록 하고 계시는데서도 찾아 보게 된다. 혁명을 하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 혁명은 복잡한 사업이기때문에 옳고그름을 정확히 판별하고 옳은것은 주장하고 그른것은 타격배제하는 강한 원칙이 없이는 혁명을 전진시켜 나갈수 없다. 그래서 김정일장군께서는 원칙성을 중요한 혁명가적품성의 하나로 내세우시고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정치일군들이 원칙적인 투쟁기풍을 지니도록 하고 계신다. 1996년 여름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혁명적원칙성과 부정에 대한 비타협성은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고유한 품성이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어떤 역경과 시련속에서도 자기의 혁명적신념과 절개를 꿋꿋이 지켰으며 원칙과 어긋나게 행동할 때에는 설사 그가 자기 부모나 동생이라고 하더라고 단호히 결별하였다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을 음미해 보면 혁명가라면 마땅히 항일투사들처럼 견결한 혁명적원칙성의 체현자가 되여야 한다, 혁명적원칙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혈육들의 가슴에도 총부리를 들이댈만 한 그런 원칙성의 화신, 불굴의 투사가 되여야 한다, 그래야만 복잡하고 시련 많은 혁명의 길을 곡절없이 걸어 나갈수 있고 혁명가의 삶을 빛내일수 있다는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렇듯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정치일군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군인들의 의식속에 혁명적원칙성의 대를 튼튼히 세워 주심으로써 인민군대에서 부정과 부조리가 제때에 타격극복되고 그의 전투성과 도덕적건전성이 높이 고양되고 있다고 본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원칙성이 강하시기때문에 량심적이고 고지식한 사람을 좋아 하시며 허위와 가식을 질색하신다. 원칙적인 사람은 량심적이고 고지식하며 비원칙적인 사람은 량면적이고 허위와 가식을 부린다는것은 누구나의 생활체험이다. 1996년 4월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솔직하고 고지식하여야 하며 당장 목에 칼이 들어 와도 한것은 하였다고 하고 안한것은 안하였다고 하여야 한다, 나는 아무리 엄중한 과오를 범한 일군이라고 하여도 자기 결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결함이라도 감추려는 사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준절히 말씀하셨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거짓말을 하기 좋아 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은 뒤가 깨끗하지 못하고 동상이몽하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어느 때든지 변질되기 마련이다. 지난 시기 당과 외교를 하고 동상이몽한 사람들을 보면 다 거짓말을 하기 좋아 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이였다. 우리에게는 비록 무뚝뚝하고 붙임성은 없어도 대가 바르고 솔직한 사람이 요구된다. 장군님께서는 량심과 솔직성, 허위와 가식을 인간의 도덕적가치에 관한 문제로뿐아니라 충성과 변절, 충신과 간신에 관한 정치적문제로 보고 계시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은 이렇듯 인민군군인들이 제국주의에 대한 원칙적립장을 지니며 원칙적으로 살고 투쟁하도록 하시는 혁명적원칙성의 최고체현자이시다. 김정일장군과 같은 혁명적원칙성, 대가 센분을 국가의 최고령도자로, 군대의 최고사령관으로 모시고 있음으로 하여 이북은 세계《유일초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에 땅땅 맞서는 세계유일의 반미강경국가로, 인민군대는 미국의 존재자체를 위협하는 세계최강군으로 되였다 미국은 워싱톤《닉슨 평화 및 자유연구쎈터》의 비로우더만박사가 한 다음과 같은 말에 대하여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정일령도자는 아직 세계가 알지 못하는 그런 특유한 공산주의정치수령이시고 놀랄만큼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과 충실성, 강인성을 지니신 현대공산주의정치가, 군사가이시라는것이다. 지금은 50년대가 아니라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대이다. 조선인민군은 50년대와는 대비조차 안되는 강군으로 되였다. 세인이 인정하는바와 같이 김정일최고사령관은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뛰여 난 지략, 무비의 담력과 불굴의 의지, 독특한 령군술을 지니신 군사의 영재이시다. 그분의 령도와 관심, 전체 조선민중의 노력에 의하여 조선인민군은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준비되였다. 미국은《한》반도를 포함한 세계의 임의의 지역에서 제 마음대로 주인행세를 할수 없다. 46년전 그들에게 준 이 교훈을 조선인민군은 다시 한번 되풀이할수 있다.》 □ 무한한 헌신성 김정일장군의 선군혁명령도는 무한한 헌신의 력사이다. 장군님께서는 나라와 민중, 혁명과 사회주의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선군혁명령도의 시찰길을 끊임없이 이어 가고 계신다. 장군님께서 오늘은 어느 부대를 현지시찰하고 계실가, 어느 령길, 어느 바다길, 어느 밤길을 걷고 계실가… 문득 이런 생각에 잠기는것이 이북민중들과 인민군군인들의 상정이다. 장군님의 선군정치의 나날은 그야말로 군시찰에 바치시는 헌신의 나날이며 말그대로 주야장천, 불면불휴의 령군실록이고 영웅서사시이라고 감복하게 된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일신의 위험도 돌보지 않으시고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시찰하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바람 세차고 파도 사나운 바다길도, 적의 총구가 코앞에 도사리고 있는 최전연도, 언제 락반사고가 일어 날지 모르는 백리 물길굴도 가리지 않으시고 인민군군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찾아 가신다. 1996년 11월에 있은 장군님의 초도방어대시찰도 그러한 사례의 하나이다. 그날 마가을의 맵짠 바다바람은 초당 20m로 휘몰아 치고 광란하는 바다의 파도는 2m 높이를 넘었다. 거기에다 구름 덮인 하늘에서는 비방울까지 짓뿌렸다. 집채 같은 파도가 모든것을 덮쳐 버릴듯 요동하는 그 바다를 자그마한 쾌속정으로 장군님을 모시고 항행한다는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였다. 군지휘일군들은 최고사령관동지, 바다모양새가 몹시 나쁩니다, 가시더라도 좋은 날씨를 택하여야 할것 같습니다, 지금 형편에서는 쾌속정으로는 항행할수 없습니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순풍에 돛을 달고 다닌적이 있는가고 하시면서 전사들을 찾아 가는 나의 길은 그 어떤 풍랑도 막지 못할것이요라고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쾌속정은 떠났지만 그것은 격랑하는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와 같은것이였다. 수행원들은 장군님께서 타신 배가 천길 물속에 휘말려 들어 가듯 사라질 때에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듯 하였다. 그러다가 배가 나타나는것을 보면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이렇게 가슴을 옥죄기를 그 몇번, 그야말로 1분 1초가 10년 맞잡이로 느껴 지는 아짜아짜한 순간의 련속이였다. 드디여 사나운 풍랑을 헤치며 장군님께서 타신 배가 섬에 이르렀을 때 그곳 군인들은 그분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인적이 그리운 외진 섬에서 생활하다보니 손님이 오는 날이 명절이나 같다고 하는 그들이였다. 그러한 초병들이 오매에도 뵙고 싶던 장군님을 맞이하였으니 그 기쁨, 그 감격, 그 영광은 오죽하였으랴. 군인들이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가야 하며 그들의 군무생활을 료해하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것이 최고사령관으로서의 그분의 현지시찰의 본지인것이며 따라서 군인들을 찾아 가는데서 그 어떤 위험도 일신의 안녕도 안중에 두지 않는것이 그분의 류다른 령도풍모인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폭양도 혹한도 무릅쓰시고 찬바람, 눈비를 다 맞으시며 사시장철 군현지시찰을 이어 가신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수천날로 이어 지는 장군님의 군시찰길에는 눈비도 때없이 내렸고 찬바람도 모질게 불었으며 어둠이 내리 덮여 승용차행렬의 전진속도를 저애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단 한번도 시찰계획을 변경시키거나 미루신적이 없었다. 장군님께서 1996년 12월 초 근위서울 류경수105땅크사단을 현지시찰하신 그날도 례년에 없던 강추위가 들이닥쳐 맵짠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세차게 기승을 부리는 날이였다. 하루전에 일군들로부터 불리한 일기조건이 예견된다는 보고를 받으셨지만 그분께서는 현지시찰을 미루지 않으시고 땅크부대를 찾으셨다. 부대에 이르신 그분께서는 환영 나온 군인들과 가족들의 모습을 눈 여겨 보시다가 어제밤에 이 일대에 눈이 많이 내려 그런지 날씨가 몹시 춥다고 하시면서 군인가족들이 외투를 입지 않았는데 빨리 외투를 입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그분께서는 그곳 부대의 한 책임일군의 옷차림도 걱정스럽게 살펴 보시다가 야전복차림을 하였는데 빨리 외투를 입어야 하겠다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날씨가 추울 때 몸간수를 잘하지 않으면 페염에 걸릴수 있다고 근심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자신께서는 두툼한 털신도 아닌 보통구두를 신으시고 장갑도 끼지 않으신채 오히려 전사들의 건강부터 념려하시는 그분의 말씀에 일군은 뜨거운 감동에 몸둘바를 몰라 했다. 그분의 현지시찰은 그날 장시간 계속되였는데 그 많은 시간의 대부분을 줄창 찬바람 부는 밖에 서계시였다. 수수한 솜동복을 입으신채 부대의 여러 곳을 일일이 돌아 보신 그분께서는 땅크병들의 훈련을 보아 주시기 위하여 찬바람 세찬 훈령장감시대에 오르시였다. 그곳에서 1~2분도 아닌 장시간동안 훈련을 보아 주시느라 장군님께서 또 얼마나 로고를 겪으시겠는가, 수행원들의 가슴은 안타까움에 옥죄였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땅크훈련장 감시대에 올라 서보시니 바닥의 요소요소에 불돌이 깔려 있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 오르실 땅크훈련장 감시대바닥에 불돌을 놓아 추위를 조금이나마 가셔 드리자고 전사들이 큼직큼직한 돌들을 찾아 내여 샘물에 정히 씻고 또 씻어 삼단 같은 불길에 달구었던것이다. 소박하면서 진실한 전사들의 그 소행이 못내 기특하신듯 그분께서는 불돌에서 좀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다음날 장군님께서는 이곳 부대의 책임일군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어제 류경수105땅크사단을 돌아 볼 때 발이 몹시 시렸다고, 그런데 땅크훈령장 감시대에 올라 가니 전사들이 그 바닥에 불돌을 가져다 놓았더라고, 그 불돌을 보니 가슴이 후더워 져 일시에 추위가 다 가셔 지는것 같았다고, 이 세상에 우리 인민군전사들처럼 자기 최고사령관에게 충실한 전사들은 없다고, 우리는 전사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복으로 말한다면 인민군전사들이 누리고 있는 수령복, 최고사령관복보다 더 큰 복이 어데 있으랴만 오히려 그분께서는 전사들의 크지 않은 소행을 두고서도 감동을 금치 못해 하시며 전사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무더위와 강추위속에서도 이어 지는 장군님의 군시찰의 길, 그 길은 장군님께서 전사들에게 베푸시는 수령복, 전사들이 장군님께 바치는 충성심의 혼연일체의 서사시적화폭으로 수 놓아 지는 력사의 길이며 여기에 그분의 헌신적군령도의 위대성이 있다 하겠다. 김정일장군의 군현지시찰은 불면불휴의 군령도이다. 장군님께서는 설날과 일요일은 물론 최대의 민족적명절로 기념하는 김일성주석의 탄신일인 태양절, 자신의 탄신절조차도 군시찰의 길에서 보내신다. 장군님께서는 1997년 4월 15일에는 전선동부 1211고지를 방어하고 있는 군부대와 그 린접에 있는 리수복영웅중대군인들, 지혜산을 방어하고 있는 군인들을 찾으시였으며 1998년 4월 15일에는 인민군 제313대련합부대를, 1999년 4월 15일에는 인민군 금성친위군부대를 찾으시였다. 자나깨나 주석님을 그리워 하시고 언제나 마음속깊이 주석님에 대한 생각이 사무쳐 있는 장군님께서 태양절이면 금수산기념궁전에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주석님을 만나뵙고 마음속 말씀도 드리고 싶은 심정 간절하시련만 태양절을 맞아 주석님을 그리워 할 인민군전사들이 마음에 걸리시여 이렇듯 최전연길을 걷고 걸으시는것이다. 명절날도 휴식일도 없이 낮에 밤을 이어 군시찰의 길을 이어 가시는 김정일장군께서는 언제 한번 편히 주무시고 끼니를 제대로 하시는적이 없다. 《쪽잠》과《줴기밥》에 대한 이야기는 장군님의 헌신적령도에 대한 일화로 이미 오래전부터 이남민중들속에도 전설처럼 널리 알려 져 있다. 장군님의 선군정치의 나날도 여전히《쪽잠》과《줴기밥》으로 이어 지는 숭고한 헌신의 나날이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날 일군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나는 현지지도로 날과 날을 보내기때문에 어느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자 보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잠을 자는것은 현지지도의 길의 자동차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는것뿐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습관이 되여 오히려 침대에서 자는것이 불편해 보입니다. 나에게는 자동차안에서 조금 자는것이 제일 단잠이고 쉬는 때이며 그것이 휴식의 전부입니다. 나는 이것을 고생으로 생각한적이 없으며 오히려 여기에서 커다란 긍지와 보람을 느끼군 합니다.》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 주는 말씀이다. 현지지도로 밤과 낮을 보내시면서 차안의 의자등받이에 기대시여 쪽잠에 드신 장군님, 쪽잠에 너무나 습관이 되시여 침대에서 주무시는것을 불편해 하시는 장군님의 그 거룩하신 모습을 그려 보면 목이 메이고 머리가 절로 숙어 진다. 진정 김정일장군은 헌신의 화신이시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현지시찰의 길에서 쪽잠으로 휴식을 대신하실뿐아니라 줴기밥으로 끼니를 에우고 계신다. 1998년 4월 15일 태양절에 최전연의 한 부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부대의 여러 곳을 일일이 돌아 보시면서 군인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 주시였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기다리겠는데 그들과 함께 식사나 한끼 같이 하자고 하시며 식당으로 가시였다. 그리하여 군부대장병들은 영광스럽게도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점심상에 둘러 앉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모두 좀더 가까이에 나앉으라고 이르시고는《변변치는 못하지만 내가 싸온 점심밥이 있으니 같이 듭시다.》라고 하시며 마련해 가지고 오신 점심곽을 풀어 놓으시였다. 순간 군인들은 왈칵 쏟아 져 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여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장군님께서 내놓으신것은 뜻밖에도 줴기밥이였던것이다. 크지 않은 줴기밥에 몇가지의 보통나물채… 바로 이것이 가장 뜻 깊은 명절날에 장군님께서 드시려는 점심식사였다. 아, 아무리 우리가《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고 나라의 식량형편이 어렵다고 하여도 어떻게 장군님께 이런 식사를 드릴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귀중하신 우리 장군님을 어떻게 이렇게 모실수 있는가, 장군님께서 검박하시고 겸허하시여 좋은 식사를 마다하시여도 어떻게 이런 식사를, 그것도 명절날에 드시게 할수 있는가, 장병들은 너무도 격하여 장군님을 모시고 온 일군들을 원망하였다. 장군님께서는《자, 어서들 드시오. 그래야 나도 먹을게 아니요.》라고 거듭 말씀하시였지만 군인들은 수저를 들지 못했다 한다. 장군님은 바로 이런분이시다. 명절날에조차 줴기밥을 싸가지고 다니시며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 가시는분이 바로 김정일장군이시다. 세상에는 위인, 명장들에 대한 이야기가 수많이 전해 지고 있지만 쪽잠과 줴기밥으로 군령도의 나날을 보냈다는 정치지도자, 군통수자의 이야기는 력사의 어느 갈피, 위인전의 어느 대목에도 없다. 쪽잠과 줴기밥에 대한 이야기는 헌신의 화신이신 김정일장군께서만이 력사와 후세앞에 남기실수 있는 위대한 사화이라고 격찬하지 않을수 없다. 김정일장군의 헌신적인 군시찰에서 사람들은 최고사령관으로서의 그분의 높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감득한다. 1996년 3월 어느 날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장군님께 더는 위험한 최전방에 나가지 마시며 하루라도 편히 쉬시고 부디 안녕하시기를 바란다고, 이것은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의 한결 같은 념원이고 소청이라고 간절히 말씀 드리였다. 그들의 간청을 사려깊이 듣고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나는 우리 인민들이 나를 생각하여 제기하는 그 지성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고, 그렇지만 나는 최전방에 있는 초병들을 찾아 가서 그들의 생활을 료해하고 그들을 고무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최고사령관으로서 병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다 가야 합니다. …최고사령관인 내가 병사들이 있는 초소에 가 보지 않고 작전실에 앉아서만 군인들과의 사업을 할수는 없습니다.》 전군을 통솔하여야 할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자면 조국수호의 최전방을 지켜 선 병사들속에 들어 가 그들의 생활도 알아 보고 고무도 주어야 한다는 높은 책임감으로부터 그분께서는 궂은 날 맑은 날, 험한 길 좋은 길을 가리지 않으시고 전연에서 전연으로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 가시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의 헌신적인 군시찰에서 사람들은 그분의 불 같은 열정을 본다. 김일성주석께서는《세상사람들이 김정일동지에 대하여 열정의 인간, 열정의 화신이라고 칭송하는데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일장군의 열정은 당과 혁명, 조국과 민중, 사회주의를 위하여 분출하는 가장 숭고한 열정이며 화산의 용암과 같이 백열하는 열정이며 백두산천지의 물과 같이 끝없이 샘 솟는 무한의 열정이다. 이런 열의 인, 열정의 화신이시기에 그분께서는 일년열두달을 하루와 같이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하시면서 정력적인 군시찰을 하시는것이다. 실로 김정일장군은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열정을 지니시고 일신의 위험도 무릅쓰시고 일순의 휴식도 없이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며 헌신적인 령도로 선군정치의 력사적로정을 이어 가시는 위대한 정치가, 강철의 령장이시라고 숭앙하게 된다. □ 혁명적락천성 몇해전 북송된 비전향장기수인 전 인민군종군기자 리인모옹의 집에 어느 한 나라의 공산당 총비서가 찾아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리인모옹의 손을 꼭 잡고 지금 세계는 조선의 사회주의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힘을 얻고 있다, 현 시대를 움직이는 지레대는 김정일동지의 손에 쥐여 져 있다고 하였다. 그때 리인모옹은 당신의 말이 옳다, 우리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지략과 담력으로 세계를 움직이신다고 하면서 제국주의자들이 아무리 기승을 부리여도 우리의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자 그도 전적인 동감을 표하면서 인류의 미래가 찬란하다고 말하였다 한다. 이들의 대화를 음미해 볼 때 세계정치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시는 김정일장군께서 계시기에 이북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는 이북민중과 세계사회주의자들의 혁명적락천성을 읽을수 있다. 혁명적락천성은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고 혁명의 미래를 락관하는 혁명가의 정치도덕적품성으로서 혁명가들의 투쟁과 생활에 생기와 활력을 준다. 혁명가들이 어떤 역경속에서도 비관과 동요를 모르고 혁명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자면 혁명적락천성의 소유자가 되여야 한다. 혁명적락천성을 지닌 사람만이 난관과 시련에 부닥쳐도 주저하지 않고 왕성한 투지와 패기, 정열에 넘쳐 그것을 뚫고 나갈수 있다. 혁명의 승리는 혁명가의 사상과 신념의 승리인 동시에 혁명적락천성의 승리인것이다. 김정일장군은 철의 신념과 의지, 견결한 원칙성과 희생적인 헌신성으로 혁명의 난국을 헤쳐 나가시는 강철의 령장인 동시에 혁명적락관으로 혁명의 미래를 열어 나가시는 혁명적락천가이시다. 김정일장군의 혁명적락천성은 아무리 어렵고 곤난한 시련속에서도 비관을 모르는 락천성이다. 비관과 절망은 락관주의와 량립될수 없다. 난관과 시련앞에서 쉽사리 절망과 비관에 빠지는 사람에게서는 신심과 투지가 생길수 없고 대담성이 나올수 없다. 90년대 후반기의 고난과 시련을 대하는 이북민중의 심신을 읽게 하는《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슬로건은 어떤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주저와 동요를 모르시는 김정일장군의 락관주의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것이라 하겠다. 험난한 혁명의 길을 웃으며 헤쳐 가시는 장군님의 락관주의는 혁명승리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것이다. 판문점을 시찰하신 그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에게 우리가 오늘 생활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것이라고, 이 고난을 이겨 내고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을 지켜 내기만 하면 내 나라, 내 조국은 더욱 부강번영하고 인민들은 보다 행복하게 살게 될것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고난은 일시적이고 사회주의의 승리는 필연적이라는 혁명적신조, 혁명의 길에는 시련도 난관도 있을수 있지만 사회주의위업의 정당성, 필승불패성을 신념으로 간직할 때 그것은 반드시 극복되며 사회주의는 반드시 승리하고 민중은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정치적신조로부터 그분께서는 락관에 넘쳐 험로역경을 웃으며 헤쳐 가고 계시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의 혁명적락천성은 그 어떤 시련앞에서도 태연자약하시고 만만한 투지로 그것을 헤쳐 나가시는 락천성이다. 태연자약과 만만한 투지는 혁명적락천성의 사상심리적구성요소이며 그 발현형태이다. 그것은 우울과 침체를 초극하고 만난을 헤쳐 승리를 이룩해 나가게 하는 정치적원동력이다. 장군님께서 내놓으신《누가 최후에 웃는가를 보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다》라는 슬로건에는 그분의 태연자약하심과 만만한 투지가 투사되여 있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이북의 매스컴이 련일 전하듯 군시찰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인민군공훈합창단을 비롯한 각종 예술단체들의 공연과 심지어는 인민군중대예술소품공연까지 보아 주신다. 밖으로는 미국과 그 련합세력이 이북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안으로는 경제사정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장군님께서 예술공연을 관람하시는것은 그분께서 노래를 좋아 하셔서만이 아니라 거기에서 힘과 투지를 더욱 얻으시기때문인것이다. 어느 해 장군님께서는 군현지시찰의 길에서 한 구분대군인들의 예술공연을 보시였다. 혁명군대의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수령결사옹위를 맹세하는 그들의 공연은 참으로 대단했다. 심장이 뛰고 피를 끓게 하며 눈물까지 자아내여 공연무대라기보다 최후의 결사전을 앞둔 군인집회를 방불케 하였다. 공연이 얼마나 감동적이였던지 장군님께서는 그날 저녁 귀환길에 오르셔서도 그들의 공연무대를 잊지 못해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오늘 그들의 공연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고, 그 공연은 내용이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으로 관통되여 있고 전투성과 호소성이 강하였다고, 군인들이 오늘 공연을 통하여 그 어떤 역경과 시련속에서도 오직 최고사령관만을 믿고 따르며 최고사령관을 위하여서는 한몸이 그대로 작렬하는 폭탄이 되여 적진속에 뛰여 들려는 자기들의 드팀 없는 신념과 의지를 잘 보여 주었다고 감명깊이 말씀하시였다. 노래는 사상감정의 분출이라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의 예술공연을 통하여 그들의 예술적기량보다 사상정신상태를 보신다. 그분께서는 군인들이 격정에 겨워 부르는 노래에서 수령 결사옹위정신과 열렬한 애국주의정신, 원쑤에 대한 불 타는 적개심과 비타협적투쟁정신, 대중적영웅주의와 혁명적동지애 등 그들의 사상정신상태를 읽으시면서 이런 충성의 대오, 사상의 강군을 가지고 있는 한 주체혁명위업의 승리, 사회주의승리는 문제 없다는 만만한 투지와 락관을 더욱 깊이 간직하시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의 혁명적락천성은 미래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락천성이다. 혁명은 미래를 위한것이다. 미래를 사랑하지 않는 혁명, 미래를 가꾸지도 돌보지도 않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 따라서 미래를 사랑하는것은 혁명가에게 있어서 본성적요구이며 혁명적락천성은 다름 아닌 미래를 사랑하는데서 표현되여야 한다. 김정일장군은 미래를 사랑하는 사상감정에서도 남 다른 혁명가, 령장이시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 이것은 장군님의 명언이며 인생관이다. 장군님께서는 90년대의 력사의 역풍을 맞받아 나갈 자신의 철의 신념과 의지를 담아《인류의 리상과 미래는 사회주의에 있습니다. 미래는 우리의것입니다.》라고 확언하시였고 1997년의 어느 날에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21세기는 조선의 세기, 사회주의의 세기로 될것입니다.》라고 단언하시였다. 어떤 시련과 고난앞에서도 주저와 락심을 모르고 태연자약하시며 미래를 열렬히 사랑하시는 혁명적락천성을 지니신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이 오늘의 역경속에서도 혁명적랑만에 넘쳐 생활하도록 각별히 관심하고 계신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특히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노래를 통한 정서교양을 잘할데 대하여 강조하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노래는 사람들의 문화정서적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생활의 흥취를 돋구어 주는 단순한 예술형식이 아니라 혁명과 건설의 위력한 무기입니다. 나는 음악을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무기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혁명적인 인생관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고 난관이 클수록 혁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신심과 락관에 넘쳐 힘차게 전진하는것은 인민군장병들이 지녀야 할 혁명적투쟁기풍입니다.》 노래는 전파력에 있어서나 그 활용의 대중성에 있어서나 위력한 교양수단이다. 대중적파급력이 강한 노래를 통하여 민중들속에 당의 사상을 부식시키고 혁명정신을 고취하며 혁명적열의를 고양시켜 혁명과 건설을 앙양시키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해 나가시는것이 김정일장군의 노래정치인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장병들속에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와 같은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를 많이 보급하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하겠다, 새로 창작한 노래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는 인민군장병들을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무장시키는데 아주 좋은 노래이다, 이 노래에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려는 인민군장병들의 신념과 불 타는 결의가 잘 반영되여 있다, 앞으로 텔레비죤과 방송으로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를 많이 내보내여 전당, 전군, 전민이 이 노래를 다 부르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은 수령결사옹위의 노래와 같은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를 높이 부르면서 혁명적락관에 넘쳐 역경을 헤쳐 나가고 있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노래뿐만아니라 여러가지 형식의 문학예술작품들을 통한 사상정서교양사업을 잘하도록 세심히 보살펴 주고 계신다. 이북의 텔레비죤방송에서 《텔레비죤련속극》이나 《텔레비죤련속소설》은 인기프로의 하나로 되여 있다. 그런데 그 방영시간이 인민군대의 일과생활시간과 잘 맞지 않아 군인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아신 장군님께서는 그 방영시간을 바꾸어 인민군군인들도 그것을 다 볼수 있도록 조처해 주시였다. 군인들을 위하여 국영텔레비죤의 고정된 방영시간을 바꾸는 사례는 아직 그 어느 나라에도 없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1997년 3월에는 인민군군인들이 마련한 동식물표본과 군인들이 그린 미술작품까지 하나하나 보아 주시였다. 동식물표본을 보시고는 민중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치하해 주시고 미술작품들을 보시고는 《나는 오늘 인민군대에서 창작한 미술작품들을 보고 커다란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인민군군인들은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일당백의 싸움군들일뿐아니라 높은 문화예술적소양을 겸비한 만능전사들입니다. 》라고 커다란 만족을 표하시였다. 한나라의 령도자, 군통수자가 군인들이 만든 동식물표본과 미술작품전시장들까지 찾으시여 전시품들을 하나하나 보아 주시였다는 사실은 김정일장군께서 군인들의 사상정서교양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돌리고 계시는가를 시사해 주는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인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다양하게 조직하도록 세심히 보살펴 주고 계신다. 1996년 6월 어느 날 동해안을 지켜 선 어느 한 부대를 현지시찰하신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다양하게 조직하여야 하겠다, 군인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다양하게 조직하여 주어야 부대안에 전투적기백과 혁명적랑만이 차넘칠수 있으며 군인들이 군무생활을 잘할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군인들의 기쁨과 웃음, 랑만에 넘쳐 생활하도록 하시려는 사려 깊은 말씀이였다. 그분께서는 군인들속에서 주패(트럼프)와 윷놀이 같은 대중오락을 많이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주패놀이를 할수 있게 시간도 보장해 주고 지휘성원들이 군인들과 함께 주패를 하면서 간격없이 생활할데 대하여 가르쳐 주시였다. 또한 인민군대에서 윷놀이를 장려할데 대해서도 말씀하시면서 윷놀이에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가르쳐 주시였다. 인민군대에서는 그전까지는 트럼프나 윷놀이 같은 오락을 장려하지 않은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것만큼 장군님께서 군대내에서 트럼프와 윷놀이도 하도록 하신것은 하나의 전환적인 조치라 하지 않을수 없다. 군인은 총을 쥔《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정서가 있으며 정서생활은 인간생활의 중요방식이다. 군인들이 문화정서생활을 다양하게 하도록 하는것은 그들의 정서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군무생활을 보다 락천적으로 하도록 함으로써 성과적인 군무수행의 밑거름이 되게 한다. 이것이 군대내에서 트럼프와 윷놀이를 하도록 장려하신 장군님의 의중이시며 주체의 인생관, 정서관을 지니고 계시는 그분께서만이 취하실수 있는 전환적조치라고 생각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장군님께서 군인들의 사상문화교양과 문화정서생활에 무게를 두시니 인민군군인들이 오늘 수령결사옹위의 사상감정에 불 타고 승리의 신심높이 혁명적락관과 랑만에 넘쳐 생활하고 있는것은 당연지사인것이다. 김정일장군은 웃음으로 시련과 난관을 이겨 내시고 전군, 전민이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 높이 부르며 승리의 락관에 넘쳐 고난의 길을 헤쳐 나가도록 하시는 위대한 락천가이시며 여기에 바로 다른 령장들과 구별되는 장군님의 류다른 풍모가 있다고 경모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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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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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인덕의 최고사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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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변의 충성 김정일장군은 선대수령에 대한 절대불변의 충성심을 지니신 충신의 최고귀감이시라고 절찬하게 된다. 이남뿐만아니라 온 세계의 사람들이 김정일장군께서 김일성주석 생전시만이 아니라 서거후에도 변함없이 주석님을 가장 숭고하고 지극한 충의지심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고 주석님의 위업을 빛나게 계승해 나가고 계시는데 대하여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김일성주석에 대한 김정일장군의 절대불변의 충성은 선군정치의 자욱자욱에 극명하게 부상되여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김일성주석의 군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고 빛나게 계승발전시켜 나가고 계신다. 조선인민군은 김일성주석께서 주체혁명위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항일의 불길속에서 창건하시고 한평생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기울이시여 필승불패의 혁명적무장력으로 강화발전시키신 주석님의 고귀한 유산이다. 주석님께서 한평생을 바쳐 조선혁명앞에 쌓아 올리신 령군업적을 옹호계승하여 조선인민군을 명실공히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 혁명의 군대로, 일당백의 무적강군으로 강화발전시키는것은 주석님의 위대한 생애를 길이 빛내이는 충성의 위업이며 바로 여기에 주체혁명위업완성의 결정적담보가 있다. 선대수령에 대한 후계자의 충성은 무엇보다도 선대수령의 령군업적을 빛내여 나가는데서 표현되여야 하며 후계자가 수령의 위업을 옳게 계승해 나가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것은 수령의 령군업적에 대한 립장과 태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국제로동운동의 력사는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들은 례외없이 수령의 령군업적을 거세말살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는것을 보여 주고 있다. 흐루쑈브는 붉은 군대를 세계최강의 무장력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쏘도전쟁에서 력사적승리를 이룩한 쓰딸린의 령군업적을 거세말살하기 위하여 공장, 기업소, 도시와 거리들에서 쓰딸린의 이름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그의 동상과 기념비까지 제거했으며 고르바쵸브는 쏘련군대를 비사상화, 비정치화하여 오합지졸로 전락시키고 레닌, 쓰딸린의 위업, 사회주의위업자체를 말살하였다. 국제로동운동의 력사적교훈은 수령의 령군업적을 옹호고수, 계승발전시켜 나갈 때 수령의 위업과 영생이 담보될수 있으며 그것은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후계자에 의해서만 실현될수 있다는것을 말해 주고 있다. 김정일장군은 김일성주석의 령군업적을 길이 빛내여 나가시는 위대한 령도자이시다. 선군정치는 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하신 선군혁명령도의 계승이며 김일성주석께서 마련해 놓으신 인민대중중심의 주체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며 주체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는것을 과제로 삼는 정치방식이다. 이러한 근본문제로부터 출발하여 김정일장군께서는 현지시찰단위를 선택하여도 김일성주석께서 다녀 가시고 김일성주석의 군령도자욱이 새겨 져 있는 단위부터 택하시고 찾으시여서는 김일성주석의 현지지도사적물부터 돌아 보시며 군인들이 김일성주석의 군걸설령도업적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빛내여 나가도록 교양하신다. 1997년 4월 15일 뜻 깊은 태양절에 김정일장군께서는 휴전선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1211고지와 지혜산일대를 방어하고 있는 인민군부대를 찾으시였다. 부대내 인민군전사들은 소문도 없이 찾아 오신 장군님을 뜨겁게 맞이하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85돐을 맞는 오늘 1211고지와 지혜산일대를 방어하고 있는 인민군장병들을 만나보려고 왔다. 내가 수령님의 탄생기념일에 인민군부대를 시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이번에 어느 부대에 가볼것인가 하는것을 많이 생각하다가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어려 있는 1211고지에 나와 보기로 하였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인사말씀을 하시며 1211고지와 리수복영웅중대를 거쳐 전쟁시기 1211고지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신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깃들어 있는 뜻 깊은 고장인 지혜산으로 향하시였다. 지혜산에서는 그곳 부대의 젊은 사단장이 그분을 맞이하였다. 《수령님께서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1951년 9월 23일에 오셨댔습니다.》 《맞습니다.》 이어 김정일장군께서는 수령님께서는 그날 불비 쏟아 지는 화선천리길을 헤치시고 1211고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여기 지혜산에까지 나오시여 1211고지전투를 승리적으로 조직지휘하시였다, 그날 적들의 폭격으로 직동령길이 다 파괴되여 승용차를 속사리 안마을에 세워 놓고 거기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서 올라 오셨다고 사단장의 설명을 보충해 주시면서 당시 김일성주석께서 작전탁으로 리용하신 너럭바위를 찾으시였다. 그분께서는 너럭바위에 지도를 펼쳐 놓으시고 작전을 토의하시는 김일성주석의 모습을 떠올리시는듯 한동안을 두셨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혜산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너럭바위우에 작전도를 펴놓으시고 최현동지로부터 전선정황을 보고 받으신 다음 적들의〈추기공세〉의 주타격방향이 어디겠는가 하는것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시였습니다.》 당시 적들의 주타격방향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것은 당면한 작전은 물론 차후 전반적인 전쟁국면에까지 결정적영향을 미치게 될 관건적문제였다. 미군은 인민군의 정황판단에 혼란을 조성시키기 위해 수많은 병력과 무장장비를 서부방향으로 기동전개시키고 금시 행동을 개시할것처럼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과 작전전문가들까지 적들의 주타격방향이 틀림없이 전선서부일것이라고 오인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김일성주석께서는 친히 멀고먼 이곳 지혜산에까지 나오시여 적정을 료해하시고 주타격방향은 전선서부가 아니라 동부이며 이곳 1211고지방향일것이라는 판단을 내리시였던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설명하시고 나서《나는 이런것을 생각할 때마다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군사적예지와 선견지명에 머리가 숙어 지군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김일성주석의 령군업적을 새롭게 부각시키셨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곳 군부대 사단장에게 지혜산사적지는 동무네 사단의 큰 재산이라고, 이런 사적지가 다른데는 없다고 커다란 긍지를 안겨 주시고는 《지혜산혁명사적지는 우리 혁명의 귀중한 재부입니다. 지혜산혁명사적지와 같은 혁명사적지는 그 어디에도 없을것입니다.》 라고 강조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의 발자취를 더듬으시며 사적지의 이곳저곳을 돌아 보시던 김정일장군께서는 수원들을 향해 뜨거움에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고난과 시련의 한생이였습니다. 빨찌산시절에는 빼앗긴 조국을 찾으시기 위하여 수천만리 혈로를 헤치시였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제국주의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침식을 잊으시며 불비 쏟아 지는 전선길에서 전사들과 함께 계시였습니다. 참으로 수령님께서는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며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은 사회주의조국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것입니다.》 어느덧 마지막로정인 현지지도표식비앞에 이르렀을 때 그분께서는 《우리는 오늘 4월 15일을 최전연에서 맞다보니 금수산기념궁전에 가서 수령님께 경의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지혜산에 세운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앞에서 수령님께 경의를 드립시다.》라고 말씀하시고 일행과 함께 표식비앞에 서시였다. 《차렷!》 《경례!》 직접 의식을 집행하시는 그분의 저력 있는 음성이 온 시공간을 꽉 채우는 순간이였다. 그것은 곧 선군혁명령도로 김일성주석께서 이루어 놓으신 군건설령도업적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갈 위대한 령장, 후계수령의 충성의 맹세, 의지를 력사에 깊이 아로새기는 자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의 령군업적이 깃들어 있는 사적물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계신다. 1996년 12월 어느 날 어느 한 구분대의 병영에 진렬되여 있는 사적땅크를 보신 장군님께서는 대오의 앞장에서 위력을 떨쳐야 할 130호 땅크가 외롭게 서 있는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사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다 전투서렬에 들여 세워 그것이 언제나 대오의 앞장에서 군인들을 충성과 위훈에로 불러 일으키는 기수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때로부터 사적땅크는 발동소리 높이 울리며 대오의 맨 앞장에서 위력을 떨치게 되였다. 이렇듯 장군님께서 이어 가시는 군시찰의 로정은 김일성주석의 령군업적을 빛내이기 위한 길이며 주석님의 령군자욱을 그대로 이어 가시는 길인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해 나가고 계신다. 수령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는것은 수령의 서거후에도 그 사상과 의도, 령도를 계속 실현하여 수령의 업적을 길이 빛내여 나가고 수령의 영생을 보장하는 성스러운 위업으로서 수령의 후계자의 첫째 가는 본분이다. 수령의 생존시에는 수령의 교시관철에 열성을 부리는것처럼 하다가 수령이 서거한 다음에는 그 유훈을 지키지 않거나 거역한다면 그것은 충신이 아니라 배반자인것이다. 김정일장군은 김일성주석 생존시에 주석님의 교시를 0.001mm의 편차도 없이 무조건 철저히 관철한것처럼 주석님 서거후에도 주석님의 유훈을 100% 완벽하게 실현해 나가시는 참된 충신의 모델이시다. 장군님께서는 1994년 11월 어느 날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올해 4월 25일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에게 주신 유훈교시는 인민군대가 항구적으로 틀어 쥐고 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입니다.》라고 가르치시였다.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한치도 드틸수 없는 활동지침으로, 항구적으로 틀어 쥐고 나가야 할 본령으로 내세우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그분께서는 인민군대를 주석님의 유훈관철에로 힘 있게 궐기시키시였다. 1994년 11월 9일 김정일장군께서는 최고사령관 명령 제0051호를 하달하시였다. 이날 조선중앙방송이 중대보도를 예고했을 때 세계여론은 주석님서거 100여일이 지난 시점이여서 당과 국가의 령도체제와 관련한 추측이 란무했고 《독수리94》합동군사연습을 벌려 놓고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던 이남당국자들은 장군님께서 어떤 강력한 군사적대응조치라도 발표하시는게 아닌가 하여 바싹 긴장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낮 12시에 발표된 최고사령관 명령은 의외에도 청류다리(2단계)와 금릉2동굴건설을 조선로동당창건 50돐전으로 끝낼데 관한것이였다. 세계의 군사(軍史)에는 일국의 최고사령관이 인민을 위한 건설명령을 내린적이 없다. 그것은 민중의 행복을 위하시는 김일성주석의 생전의 구상과 유훈을 실현하기 위한 장군님의 충성의 명령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의 유훈관철을 위해 인민군대를 청류다리(2단계)와 금릉2동굴건설에 동원시키는 한편 주석님께서 생전에 큰 관심을 돌리신 평양ㅡ향산관광도로공사도 군대가 맡아 빨리 끝내도록 하시였다. 1995년 10월 12일 평양ㅡ향산관광도로개통식에 참석하신 장군님께서는《평양ㅡ향산관광도로를 개통해 놓고보니 수령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 집니다. 수령님께서 계시였더라면 오늘 완공된 평양ㅡ향산관광도로를 보시고 얼마나 기뻐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평양ㅡ향산관광도로건설을 좀더 일찌기 시작하여 빨리 끝냈더라면 수령님을 모시고 개통식을 할수 있었을것이며 수령님께서 이 도로를 리용하실수 있었을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훌륭한 도로를 건설해 놓고 수령님을 모시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 지는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는 그분의 안광에는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김일성주석께서 생존해 계실 때보다 더 지극한 충성심으로 주석님을 높이 우러러 모시고 그 위업을 받들어 나가시는 장군님께서 불면불휴의 정력적령도로 주석님의 유훈을 관철하여 빛나는 결실을 이루시고도 그것을 주석님의 생전에 마련해 드리지 못한것이 마치 자신의 지성이 모자라서인것처럼 가슴 아파 하시니 그분은 정녕 하늘도 감복할 충신의 최고화신이시라고 해야 할것이다. 조국통일은 김일성주석의 생전의 최대념원이며 최후의 유훈이다. 조국통일을 위하여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쳐 오신 주석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나날에도 우리 민족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 주시려고 분망한 시간을 보내시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문건에 마지막친필을 남기시고 갑자기 순직하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김일성주석의 생전의 최대념원이며 유훈인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을 최대의 충성으로, 지상의 본령으로 내세우고 계시며 조국통일위업완수에로 인민군장병들을 힘 있게 이끌고 계신다. 1995년 8월 주석님의 서거 한돐 추모행사를 거행한지 한달 남짓이 지난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다가 우리는 열백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우리 대에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 조국을 통일하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이며 민족지상의 과업이다, 만경대혁명일가가 대대로 바란것은 분렬된 조국이 아니라 통일독립된 하나의 조국이였다, 금수강산삼천리에 양춘이 찾아 올제 독립만세를 불러 달라던 김형직선생님의 절절한 부탁과 생전에 조국통일문제때문에 어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쳐 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우리 대에는 반드시 실현하여야 한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그날을 보지 못하시고 우리곁을 떠나신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 지는것 같다, 우리 대에 민족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종국적으로 완성하려는것은 나의 드팀 없는 신념이며 의지이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에 대한 장군님의 념원이 어느 정도 열렬하며 그 념원을 자신의 대에 기어이 실현하시려는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가를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는 말씀이였다. 그 다음해 어느 날에도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여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라도 인민군대를 강화는데 계속 큰 힘을 넣어야 하며 죽어도 조국을 통일하고 죽어야 한다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빼앗긴 조국을 찾아 주시고 우리 인민들을 땅의 주인, 공장의 주인으로 내세워 주시였다면 우리는 인민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선물하여야 한다고 힘 주어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은 기어이 우리 대에 성취하여야 할 민족지상의 급선무이며 그것은 김일성주석의 유훈중의 유훈인 동시에 김정일장군의 확고한 의지인것이다. 자신의 대에 조국을 통일하는것을 주석님에 대한 최대의 충성으로, 자신의 철석 같은 의지로 간직하고 계시는 장군님이시기에 1997년 9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현지시찰하실 때에도 그분께서는 머리우에 흰서리를 얹은 전쟁로병들의 모습을 생각 깊은 눈길로 바라보시다가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조국을 통일하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중의 유훈이며 인민군대가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가장 절박한 혁명과업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일장군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각까지도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일성주석의 영상이 반석같이 뿌리 박혀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대에 기어이 민족통일위업을 완수하시려는 결심과 의지, 경륜이 맥동하고 있는것이다. 실로 김정일장군은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령군업적을 길이 빛내이시고 주석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 주석님을 천세만세 영생하게 하시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해 나가시는 특출한 충의장군이시라고 공경하게 된다. □ 혁명적의리 의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륜리도덕이다. 사람이 의리를 지키는것은 미덕이며 인간의 가치와 인격을 돋구는 요체이다.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여 있고 사람들이 집단주의에 기초하여 동지적관계를 맺고 사는 이북과 같은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의리가 사람들의 중요한 정치도덕적풍모로 중시되고 있다. 김정일장군은 혁명하는 사람들, 사회주의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륜리도덕이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력사상 처음으로 밝혀 주시고 이북에 새로운 륜리도덕의 세계를 펼쳐 주시였으며 몸소 그 귀감이 되신 대성인이시다. 김정일장군의 숭고한 도덕의리의 세계는 선군정치에도 그대로 투시되고 있다. 장군님께서 1997년 설날아침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셨을 때였다. 학원원장인 항일혁명투사가 그분께 영접보고를 올리였다. 그날 집무실에 돌아 오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로투사가 자신에게 영접보고를 하게 한데 대하여 엄하게 지적하시며 학원에 제1부원장제를 내오도록 하시였다. 영접보고 하나를 놓으시고도 언제나 혁명선배를 존대하시고 관직이 아니라 도덕의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인간상에 일군들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1997년 4월 김일성주석의 탄생 85돐과 조선인민군창건 65돐을 맞으며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이 끝난 그날이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 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인민군대에서 진행한 열병식이 전반적으로 잘되였지만 교훈을 찾을 문제들도 적지 않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인민군대에서 열병식을 준비하면서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처럼 항일혁명투사종대, 전쟁로병종대, 영웅종대를 편성하여 맨앞에 세우는것으로 열병종대를 편성하였댔는데 이것은 잘못되였다고,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그들을 열병종대의 맨앞에 내세워 수령님앞에서 열병행진을 하여도 일없겠지만 지금은 수령님께서 계시지 않기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안 계시는 오늘 우리는 수령님을 따라서 천만리, 당을 따라서 천만리를 걸어 온 항일혁명투사들과 전쟁로병들, 영웅들을 적극 내세워 주고 만사람의 축복을 받게 하여야 하며 열병대오의 인사를 받게 하여야 합니다.》 이렇듯 김정일장군께서는 선군정치의 나날에도 혁명의 1세대인 항일혁명투사들과 혁명의 2세대인 6.25전쟁로병들을 존대하고 내세우며 인민군군인들이 그들의 당과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과 투쟁위훈을 본 받도록 크나큰 의리심을 베풀고 계신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오늘의 영웅전사들도 높이 내세우고 그들의 위훈을 길이 빛내이며 전군이 그들의 모범을 따라 배우도록 의리 깊은 조치를 취해 주고 계신다. 1996년 4월 어느 날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길영조영웅에 대하여 또다시 회상하시면서 길영조영웅이 비행기에서 탈출하였다면 얼마든지 살수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그대로 떨어 지면 혁명의 수뇌부가 위험에 처할수 있었으므로 그는 비행기를 끝까지 안전한 곳에 떨어 지도록 조종하였다, 그는 자기의 희생으로 혁명의 수뇌부를 보위한 영웅이다, 나는 현장에서 길영조영웅의 희생적인 투쟁을 지켜 보고 그를 영웅이라고 하였다고 감명 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길영조는 전투임무를 수행하고 기지에 착륙하려고 시내상공을 선회하던중 불의의 비행기고장으로 폭파위험에 처하자 최고사령부가 위치한 지역을 벗어 나기 위하여 탈출하지 않고 비행기를 끝까지 조종하여 바다에 떨어 지고 자폭하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사령부를 결사옹위하기 위하여 자폭한 길영조비행사의 영웅적행동을 높이 평가하시여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 주시고 그가 소속되여 있던 구분대를 길영조비행대대로 명명해 주시였으며 그의 모교에 반신상을 세워 주시였다. 그분께서는 두달전인 2월 어느 날에도 몸소 길영조비행대대를 찾으시여 그가 쓰던 학습장과 수첩들을 한장한장 번져 보시면서 그가 평소에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것이 알린다, 평소에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으로 간직하였기때문에 생사를 판가리하는 위험한 순간에 자신의 생명보다 최고사령부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할수 있었다고 뜻 깊게 말씀하시였다. 또한 그가 남긴 자작시《…땅에서 받은 삶을/하늘에서 빛내여 갈 신념/날이 갈수록 더욱 굳어 지나니/…/영광의 길에 뿌려 지는/은빛 꽃보라로 흩날리리/…》도 들어 주시면서 길영조가 쓴 시《가장 빛나는 별이 되리》에는 그의 숭고한 정신세계가 그대로 담겨 져 있다고 높이 평가해 주시였다. 이렇듯 길영조에게 온갖 영광을 다 안겨 주시고 그가 소속되였던 비행대대까지 몸소 찾으시여 그의 충성의 삶을 더듬어 주신 장군님께서는 4월의 그날 또다시 그를 떠올리시며 《길영조영웅은 혁명의 수뇌부를 수호하고 전사하였습니다. 그는 견결한 조선의 영웅입니다. 길영조영웅이 발휘한 견결성, 희생성, 영웅성은 모든 군인들과 일군들이 따라 배워야 할 정신도덕의 귀감입니다.》라고 높이 일러 주시고 내세워 주시는것이였다.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덮고 병사들을 구원한 김광철영웅, 불길속에서 항일의 혁명전통이 수록되여 있는 혁명사적지의 구호나무들을 목숨 바쳐 지켜 낸 17명의 불사조영웅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 청춘을 서슴없이 바친 영웅건설자들을 비롯하여 90년대의 영웅들을 높이 내세워 주고 계시는것은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직했던 혁명전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과 의리의 발현인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당과 수령, 조국과 민중을 위하여 온갖 충성심을 다 발휘하여 군무생활에서 혁혁한 성과를 이룩하고 있는 인민군군인들을 높이 평가해 주고 내세워 주는것을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전사들에 대한 숭고한 의리로 간주하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군시찰을 하실 때마다 인민군군인들의 전투정치훈련을 비롯한 군무생활정형을 하나하나 료해하시고 그들이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높이 평가해 주시고 고무해 주신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의 군무생활뿐만아니라 그들이 충성의 구슬땀으로 일떠세운 창조물들도 몸소 보아 주시면서 더 없이 기뻐 하시고 높이 평가해 주신다. 2000년 2월 어느 날 세차게 불어 치는 칼바람을 맞으시며 새로 개건된 무지개동굴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몸소 동굴안에까지 들어 가시여 공사가 질적으로 아주 잘되였다고 높이 치하해 주시면서 전 부대에 최고사령관의 감사를 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으며 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믿음과 영광이 있으신듯 동굴밖으로 나오셔서 다시금 이 동무들이 정말 수고했다고, 고난의 시기에 후대들에게 물려 줄 귀중한 창조물을 일떠세웠다고, 이런 일은 오직 우리 군대만이 할수 있는 위대한 기적이라고 높이 평가해 주시였다. 장군님의 이런 의리 깊은 은정속에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인민군군인들이 김일성훈장과 영웅칭호를 비롯한 국가수훈의 영예를 받아 안았다. 장군님께서 안변청년발전소건설(1계단)에 참가한 군인건설자들에게 김일성훈장만 하여도 3명, 로력영웅칭호만 하여도 61명이나 수여해 주도록 하신것이 그 사례의 하나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과 영웅전사들의 가족들에게도 의리에 넘친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 주고 계신다.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신 1997년의 설날 아침은 류달리 많은 눈이 내렸다. 일군들은 설날에도 쉬지 못하시고 눈보라 날리는 길을 떠나시려는 장군님께 설날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실것을 간절히 말씀 드리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갑시다. 우리 아이들이 나를 기다립니다. 나는 수령님께서 한평생 아끼고 사랑하신 원아들을 이번 설에는 어떻게 하든지 찾아 가자고 오래전부터 별러 왔습니다. 아무리 힘 들어도 찾아 가 봐야 하겠습니다. 안 가면 아이들이 섭섭해 합니다.》라고 하시며 눈보라길을 헤치시며 떠나셨다. 장군님을 맞이한 원아들은《아버지!》하고 부르며 달려 와 그분의 품에 저마다 얼굴을 묻으며 그리움과 행복에 울고 웃었으며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는 그분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보고 싶은 자식들을 만난 어버이심정으로 침실에 들리셔서는 원아들이 안전하게 오르내릴수 있게 2층침대 량옆에 사다리를 놓아 줄데 대해서 말씀하시고 식당에 들리셔서는 푸짐하게 차린 명절음식앞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1주일에 한번씩 그 주일에 생일이 있는 학생들에게 생일상을 차려 주어야 한다고 이르시고 원아들의 예술소조공연까지 기쁨과 만족에 잠기시여 보아 주신 장군님께서는 학원일군들에게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교양에 힘을 넣어 학생들모두를 혁명적수령관이 확고히 서고 우리 당의 사상과 령도를 제1선에서 받들어 나가는 충신으로 튼튼히 준비시켜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김정일장군께서 새해 첫 아침에 세찬 눈보라를 맞으시며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신것은 혁명가들이 남기고 간 원아들의 친부모가 되시여 설명절을 축복해 주시고 그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자라나도록 보살펴 주시며 그들을 부모들처럼 참된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위대한 사랑과 의리의 길이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군현지시찰의 길에서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했던 혁명전사들이 남기고 간 가족들을 친히 만나시여 뜨거운 사랑과 의리로 그들의 신상을 극진히 보살펴 주고 계신다. 1997년 10월 10일 공군대련합부대지휘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길영조영웅의 안해를 친히 만나시여 남편의 뒤를 이어 군복을 입은 그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면서 건강한 몸으로 맡은 일을 잘하라고, 아이들은 당에서 키워 줄테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군사복무에 충실하라고 거듭 힘을 주시고 용기를 안겨 주시였으며 그날 저녁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길영조영웅의 안해를 잘 도와 주어 훌륭한 녀성혁명가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곁을 떠난 영웅들에 대한 우리의 도리이며 의무입니다.》라고 가슴 뜨거운 말씀을 하시였다. 이처럼 장군님은 혁명의 길에서 전사들이 남기고 간 유자녀들과 유가족들의 친아버지가 되시여 그들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 주시는 숭고한 도덕의리를 지니신분이시다. 혁명선배를 존대하시며 영웅전사들과 인민군전사들을 높이 내세우고 그 위훈을 길이 빛내여 주시며 그 가족들의 운명까지 책임지고 보살펴 주시는 김정일장군과 같은 그런 숭고한 덕의의 군통수자를 력사는 아직 알지 못한다. □ 믿음과 사랑 《김정일동무는 언제인가 아래일군들에게 나뽈레옹은〈그대들이 나를 믿노니 나도 그대들을 믿는다.〉고 말하였는데 자기자신은 그와 반대로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 그대들도 나를 믿으라.〉고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김정일동무의 철학적신념으로 되고 있습니다. 》 이것은 김일성주석의 말씀이다. 나뽈레옹은 련합군에게 빠리를 점령 당하고 1814년 4월에 엘바섬에 류배 당한 후 1815년 3월 1일 다시 그 섬을 탈출하여 부르봉봉건왕조를 전복하기 위하여 약 1,000명의 부하를 이끌고 본토에 상륙했었다. 그때 나뽈레옹은 자기 부대의 진출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파견되였던 정부군의 일부가 투항해 나섰을 때 그들을 향해《그대들이 나를 믿노니 나도 그대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나뽈레옹이 말한 믿음은 남이 자기를 믿어야 자기도 그를 믿는다는 반대급부적인 리해관계에 기초한 믿음으로서 이것은 참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믿음을 받기전에 먼저 믿음을 주어야 그것이 참믿음이며 그 믿음이 공고한것으로 될수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나는 그대들을 믿는다. 그대들도 나를 믿으라.》라고 하신다. 이것이 그분의 믿음의 철학이며 여기에 바로 인덕의 군통수자로서의 그분의 숭고하고 류다른 도덕적풍모가 있다 하겠다. 이러한 특유한 믿음의 철학을 지니고 계시기에 장군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의 정치, 인덕정치를 자신의 시종일관한 정치방식으로 내세우고 계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총대중시정치인 동시에 인덕정치라고 풀이할수 있다. 그것은 인민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에 기초한 정치이며 인민군군인들에게 무한대한 믿음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정치인것이다. 사실 김정일장군의 인민군대에 대한 믿음은 지고지대한것이다. 그것은 인민군대를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계시는 절대적인 믿음이다. 언제인가 김정일장군께서는《나는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시였을 때에는 수령님을 마음의 기둥으로 믿고 사업하였지만 지금은 인민군대를 기둥으로 믿고 우리 혁명을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람은 마음의 기둥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마음의 기둥이 없으면 신심과 미래가 없고 허탈과 허무에 빠져 무상(無常)의 인생길을 헤쳐 나갈수 없다. 특히 정치지도자에게 마음의 기둥이 없으면 대세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정치, 바람 부는데 따라 둥둥 떠다니는 고무풍선정치를 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국가통치자들은 신이나 하느님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았으며 심지어 미국대통령들은 점성술을 믿고 정치를 하고 있다. 레간은 늘 자기 정책의 당위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점쟁이를 끌어 들였다. 그는 캘리포니아주지사로 있을 때 유명한 녀성 점성학자인 진 제큐리를 리용하였다. 제큐리는 1981년 레간이 저격 당하기 며칠전에 부인인 낸시에게 레간이 큰 화를 당할수 있다는것을 미리 알려 주었는데 그 예언이 들어 맞았다. 그때부터 레간은 《생명일력》을 집무실에 걸어 놓고 외국방문, 중대결정, 회의 등을 그에 맞게 날자를 정해서 했다 한다. 신이나 하느님의 계시나 점괘를 가지고 정치를 한다는것은 비과학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민위천》의 정치철학에 기초하여 민중을 하늘처럼 믿고 계시며 민중가운데서도 가장 조직된 강력한 대오인 인민군대를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정치를 하고 계시는것이다. 장군님께서 길영조비행대대가 속한 부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고 떠나실 때였다. 기념사진촬영대우에 서 있던 비행사들이 달려 와 승용차를 에워 쌌다. 장군님께서는 눈물범벅이 되여 만세를 부르는 비행사들을 바라보시며 서서히 움직이던 차를 멈춰 세우셨다. 그러시고는 차창밖으로 한손을 드시여 그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다시금 답례를 보내시였다. 그러는 어느결에 비행사들이 너도나도 장군님의 팔을 잡고 매여 달렸다. 손우에 또 손, 팔우에 또 팔들이 엉켜 들며 떨어 질줄을 몰랐다. 그분께서도 헤여지기 아쉬워 하는 비행사들을 가슴뜨거이 바라보시며 또 오겠다고, 잘 있으라고, 이젠 그만들 들어 가라고 거듭 이르시였다. 하지만 비행사들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그분의 팔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 시간을 퍽 지체해서야 승용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비행사들은 승용차를 따라 달려 갔다. 장군님께서는 따라 오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였다. 이것은 하나의 위대한 사랑과 믿음, 충성과 경모의 서사시적화폭이였다. 그날 저녁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군부대의 한 책임일군은 그분께 비행사들이 너무 버릇없이 굴어 죄송하다고 말씀을 올리였다. 그분께서는 그 일군앞에 한팔을 들어 보이시며 비행사들이 얼마나 꽉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지 팔이 빠져 나가는줄 알았다고 호탕하게 웃으시고는 엄지손가락을 펴보이시며 우리 비행사들의 사상정신적각오가 최고라고 오히려 치하를 해주시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에도 그분께서는 일군들에게《나는 이번에 길영조비행대대의 충실성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라고 기쁨의 말씀을 하시였다. 19세기 도이췰란드의 유명한 력사학자 랑메는 《한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결정적요소는 국토의 크기도 아니요, 군사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도덕적에너지다.》고 했다. 민중의 정신도덕적상태는 국가흥망성쇠의 요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군인들의 충성심은 혁명승리의 최강의 무기이며 결정적담보로 된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자기 령도자에 대한 인민군군인들의 열화 같은 충성심에서 주체혁명위업승리의 래일을 내다보고 계시며 이러한 충직한 인민군군인들이 있는 한 이 세상에 점령 못할 요새란 없으며 해내지 못할 일이란 없다는 신념을 가슴깊이 새기시며 그들을 혁명의 기둥, 마음의 기둥으로 굳게 믿고 계신다. 김정일장군의 인민군대에 대한 믿음은 인민군대에게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어렵고 중요한 과업들을 맡겨 주시는 막중한 믿음이다. 과업은 믿음이란 말이 있다. 믿기때문에 과업을 주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구상하시는 중대하고 어려운 건설과제들은 언제나 인민군대에 맡겨 주신다. 거기에는 자기의 최고사령관의 구상과 의도를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무조건 철저히 실현하는 인민군군인들의 충실성에 대한 그분의 믿음이 짙게 깔려 있다. 인민군대가 맡아 하고 있던 금수산기념궁전교양마당 공사가 마지막단계의 작업과제를 앞에 놓고 있을 때였다. 뜻밖에도 당원돌격대와 다른 건설기관들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더 잘 모시기 위한 공사에서 인민군대 혼자서만 영광을 독차지하겠는가, 교양마당공사의 다음단계작업만이라도 우리에게 넘겨 달라는 의견이 제기되였다. 부대지휘관이 이런《압력》을 막아 낼 길이 없어《고충》을 겪고 있던 1995년 1월 어느 날 아침 장군님께서 기념궁전광장건설장에 나오시였다. 분수터 좌우로 드넓게 생겨 난 광장터전을 만족스럽게 둘러 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그사이 군인들이 일을 많이 했다고 높이 평가해 주시였다. 장군님의 높은 신임을 또다시 받아 안은 지휘관은 교양마당공사를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자기들이 끝까지 맡아 할것을 희망하는 군인들의 일치한 소망을 그분께 말씀 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얼마전에도 광장 우측에 건설하게 될 다리주변 도로공사를 놓고 여러 단위들에서 저마끔 자기들이 그것을 맡아 하려고 서로 싱갱이질을 할 때 장군님께서 인민군대가 맡아 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 주셨던 일이 그의 머리속에 갈마들었던것이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장군님의 이 절대적믿음을 가슴 뜨겁게 되새겨 보던 지휘관은 교양마당공사와 관련한 문제를 보고 드리면 이번에도 그분께서 우리 군인들에게 그것을 맡겨 주실것이라고 확신하고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말씀 드렸다. 《…지금 다른 기관들에서 다음단계의 교양마당작업만은 자기들에게 양보하라고 하는데 우리 군인들이 그 공사를 끝까지 다하도록 배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는 지휘관의 모습은 마치 부모들앞에서 아는 투정질을 하며 응석을 부리는 어린 아이들의 그 모습과 흡사했다. 그러한 지휘관을 한동안 너그럽게 지켜 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의 일욕심만은 어쩔수 없으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소원대로 교양마당공사를 군인들이 다 맡아 할데 대하여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예견대로 그분께서는 또다시 군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 주신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혁명과 건설의 어렵고 중요한 모퉁이마다에 인민군대를 불러 주시고 영광의 자리마다에 군대를 세워 주시는 크나큰 믿음을 베풀어 주신다. 김정일장군의 인민군대에 대한 믿음은 군인들의 정치적생명을 지켜 주시고 그들의 운명을 보살펴 주시는 한없이 고마운 믿음이다. 사회적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정치적생명을 지켜 주는 은혜보다 더 큰 은혜는 없다. 1995년 봄 인민군대의 한 지휘일군을 몸 가까이 부르신 장군님께서는 공군부대의 어느 한 수리소 소장을 하던 일군을 제대시킨 문제를 두고 공로가 있는 그 동무의 문제를 그렇게 처리하면 안된다고 심각히 말씀하시였다. 남 모르는 마음의 고충을 안고 사는 그 일군을 그려 보시는듯 잠시 생각에 잠겨 계시던 그분께서는 그는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애 썼으며 부대의 싸움준비를 위하여 여러가지 기재를 창안제작하여 공을 세운 영웅이라고 하시면서 그의 아들이 문제가 되여 그를 제대시켰다고 하는데 본인의 충실성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다시금 그 일군에 대한 크나큰 믿음이 어린 가르치심을 주시던 장군님께서는 그를 다시 복대시켜 원래 있던 단위에서 고문격으로 사업하게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지휘일군은 가슴이 뜨거워 옴을 금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누구도 소생할수 없다고 보았던 한 평범한 전사의 운명문제를 놓고서도 그토록 마음 쓰시며 하해 같은 믿음과 은정을 베풀어 주시니 그분을 우러르는 지휘일군의 감동과 흥분은 참으로 형언할수 없었다.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 받은 그날 밤 그 일군은 뜨거운 눈물로 두볼을 적시며 그분께 삼가 올리는 감사의 편지를 한구절 한구절 적어 내려 갔다. 《…그대로 믿기에는 그 믿음이 너무도 크고 뜨거워 저는 도무지 믿어 지지 않고 꼭 꿈을 꾸는것만 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 가도 장군님의 하늘 같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믿을분은 오직 경애하는 장군님뿐이시라는것을 다시 한번 심장으로 뜨겁게 절감하였습니다.》 조국과 민중, 당과 수령을 위해 자기의 깨끗한 량심을 바쳐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이건 그 마음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며 무한대의 믿음을 베푸시는 장군님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오늘 그 일군만이 아닌 이북의 수천수만 인민군전사들모두가 혁명의 한길, 충성의 한길을 변함없이 이어 가고 있는것이다. 김정일장군은 열화 같은 인간애를 지니신 령장이시다. 력사에는 한니발, 씨저, 칭기스한, 나뽈레옹, 비스마르크, 넬슨, 워싱톤 등 이름을 남긴 장군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가 다 포악하고 인간성이 없는 사람들이였다. 《세계의 왕》이 될 야망을 품고 그리스를 정복하고 수리아, 에짚트를 점령하고 인디아에까지 쳐들어 간 알렉산더대왕의 칼에서는 18년간의 전쟁기간 피정복민중들의 피가 흐르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칭기스한은 1223년 로씨야원정에서 8,100여명의 보병과 1만여명의 기병을 모조리 죽이고 포로한 3명의 로씨야령주를 널판자밑에 깔고 앉아 운명을 고하는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승리를 경축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예지와 지략, 담력과 배짱, 큰 뜻과 의지 같은것이 있다고 하여 명장이 아니다. 위대한 명장은 인덕이 있어야 한다. 먼저 참다운 인간이여야 한다. 인간적인 향기가 있고 인간적인 매혹을 자아낼수 있는 인간만이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수 있다. 김정일장군은 장군의 기질을 완벽하게 갖추고 계실뿐만 아니라 고결한 인간애의 인덕까지 겸전하신 인간중의 인간이시며 명장중의 명장이시다. 장군님의 고결하고 열렬한 인간애는 선군혁명령도의 길에서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사랑과 은정으로 분출되고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을 귀중한 혁명동지, 혁명전우, 친아들딸로 여기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을 《나의 전사들》, 《나의 비행사》, 《나의 아들들》이라고 한없이 친근하게 불러 주시며 군인들과 함께 계시는것을 제일 큰 기쁨으로 여기신다. 그분께서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나는 전사들속에 있을 때 제일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그들의 전투적사기와 랑만에서 힘과 용기를 얻군 합니다.》 나는 앞으로도 전사들과 같이 흙냄새도 맡고 포연이 자욱한 전투초소들에서 전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최고사령관이 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과 군인과의 관계를 최고사령관은 명령하고 군인들은 그에 복종하는 상하관계로 보시는것이 아니라 주체혁명위업을 완수하기 위한 혁명의 한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 하는 동지적관계로 보고 계신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은 그의 부모들이 나를 믿고 조국보위초소에 내보낸 아들딸들인것만큼 자신이 친부모가 되여 그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혈육관계로 보신다. 이런 애병관을 지니고 계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그분께서는 인민군전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험하고 위험한 곳이라도 다 가보아야 한다고, 전사들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면서 적들과 직접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최전연초소도 험한 령을 넘어야 하는 발전소건설장도 사나운 파도를 헤쳐야 하는 외진 섬초소도 가리지 않고 찾아 가시여 군인사랑의 전설을 남기고 계시는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의 군무생활을 친어버이의 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펴 주신다. 장군님께서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실 때마다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것이 병사들의 생활형편이다. 1997년 4월 어느 날 1211고지를 찾으시여 군인들의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에게 근무용간식으로 건빵만 주고 알사탕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아시고는 박하사탕을 보내주시겠다고, 잠복근무를 설 때 박하사탕을 먹으면 영양보충도 되고 졸음도 오지 않기때문에 아주 좋을것이라고 은정 넘친 말씀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실 때마다 교양실과 병실, 식당과 주방, 일일창고들을 하나하나 다 돌아 보시면서 군인들의 생활을 육친의 정으로 세세히 보살펴 주신다. 1999년 2월 어느 날 녀성고사총중대를 찾으신 그분께서는 병실에 들리시여 부대지휘관들에게 병실의 온도며 열보장문제에 대하여 알아 보시고는 몸소 군인들의 잠자리를 손으로 짚어 보시며 덥다고, 이만하면 군인들이 다리를 쭉 펴고 발편잠을 잘수 있겠다고 기뻐 하시였다. 351고지를 현지시찰하시던 그분께서는 식당을 돌아 보시면서 군인들에게 공급되고 있는 간장의 맛과 색갈이 좋지 못하고 때때로 떨어 져 군인들이 애로를 느끼고 있다는것을 아시고는 나라사정이 긴장하지만 혁명자금을 내서라도 군인들의 간장문제를 어서 빨리 풀자고, 나의 병사들에게 맛이 없는 간장을 먹이고 최고사령관이 어떻게 전사들에게 유사시에 명령을 떳떳이 내릴수 있겠는가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간장을 하나 먹여도 제일 맛 있고 영양가 높은것을 먹이시려는 어버이심정으로 장군님께서는 그후 건간장을 마련하시여 모든 부대들에 다 내려 보내주시였으며 군인들이 그 맛이 아주 좋다고 기뻐 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이제야 군인들의 간장문제를 풀게 되였다고 마음 놓으시는것이였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장군님의 어버이사랑은 그들의 옷과 신발에도 뜨겁게 미치고 있다. 맵짠 바람이 눈가루를 말아 올리던 날 최전방의 351고지를 찾으시여 두 감시병이 입은 솜동복을 아래우로 훑어 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그 솜동복에 세로 누비며 지난 간 바늘구멍자리에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이윽하여 한 감시병의 잔등부위에서 실밥 하나를 떼주시고 난 그분께서는 누빈 솜동복은 누빈 자리로 바람이 스며 들것이라고 근심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순간 동행한 지휘일군들은 작디작은 그 바늘구멍자리로 바람이 슴새일세라 심려하시는 전사들에 대한 그분의 세심한 보살피심에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한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숭고하고 다정한 인정미로 인민군군인들을 대해 주신다. 인정미는 남을 생각하고 위하는 뜨거운 마음이며 남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포근한 정이다. 장군님께서는 병사들의 소청이라면 다 흔쾌히 들어 주시며 전사들과 하신 약속도 잊지 않고 지켜 주시는 한없이 다정한분이시다. 《모두 건강한 몸으로 군사복무를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감 익는 계절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 말씀은 장군님께서 중대장의 얼굴이 찬 바다바람에 튼것을 보시고 가슴 아파 하시며 약크림을 보내주신 그 녀성해안포중대를 시찰하시고 떠나실 때 작별의 눈물을 뿌리며 떨어 질줄 모르는 녀성해안포병들에게 다정히 남기신 약속이시였다. 중대를 다녀 오신 후 그분께서는 언제 한번 이 약속을 잊어 본적 없으시였다. 다음해 감 익는 계절이 되였을 때 그분께서는 녀성해안포중대가 나를 기다리겠는데 짬을 낼수 없다고, 대신 일군들이 가보라고 하시면서 전사들에게 선물로 고급손목시계까지 보내주시였다. 또 한해가 바뀐 1997년 11월 어느 날, 병사들과 한 약속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는 장군님께서는 동해지구에 대한 현지시찰의 바쁜 일정을 앞두시고 중대를 찾아 주시였다. 이 세상 만복을 받아 안고 한 없는 기쁨과 감격에 휩싸여 있는 녀성해안포병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그분께서는 기념사진도 찍어 주시고 그들이 가꾼 감도 보아 주시였다. 중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그분께서는 감회 깊은 음성으로 내가 감이 익을 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이제는 지킨것으로 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세상에는 한나라의 최고사령관이 전사들과 그 무슨《약속》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것도 없거니와 전사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진정으로 마음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것은 더더욱 없다. 인민군군인들을 단순한 부하로가 아니라 친자식처럼 여기시는 장군님이시기에 전사들과 스스럼없이 약속도 하신것이며 천만사를 돌보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그 약속을 지켜 주신것이다. 우리 이남사람들이 매일처럼 이북의 텔레비죤에서 보는 김정일장군과 군인들의 기념사진에는 또 얼마나 가슴 뜨거운 사연들이 깃들어 있는것인가. 1997년 6월 장군님께서 섬방어대를 찾으시여 군인들, 군인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실 때였다. 그분께서는 부대지휘관들에게 군인들과 군인가족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참가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순간 동행한 일군들은 크나큰 감동을 억제하지 못하며 이곳 섬방어대로 떠나 오기 얼마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 되였다. 해당 일군들로부터 준비사업정형에 대하여 알아 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섬방어대군인들을 오랜만에 만나는데 기념사진을 찍어야 하겠다고, 기념촬영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참가시켜야 한다고, 기념촬영시간에 동무들이 경계근무를 대신 서주면 모든 전사들이 다 사진을 찍을수 있을것이라고, 그리고 살림살이하는 군인들의 안해들과 부모들도 기념촬영에 참가시켜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파도소리와 물새소리만이 들리는 외진 섬에서 생활하는 군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기념촬영의 기쁨을 안겨 주시려고 그처럼 세심하게 조직사업까지 해주시고도 이렇게 사진을 찍기전에 또다시 알아 보시는 장군님의 그 뜨거운 인정미에 일군들은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리하여 장군님께서 섬방어대 군인들, 군인가족들과 뜻 깊은 기념촬영을 하시는 그 감격적인 시각에 섬초소마당에서는 장령, 군관들이 병사들을 대신하여 총을 메고 전투근무를 서는 가슴 벅찬 광경이 벌어 졌다. 김정일장군께서 인민군군인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정의 이야기 또한 격정없이 들을수 없는 사랑의 포에마이다. 1999년 4월 말 평양에서 진행된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 참가한 대련합부대들의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관람하신 장군님께서는 《군인가족들의 정신상태가 대단히 훌륭하다는것이 잘 알립니다. 군인가족들은 혁명가의 안해답게 혁명적이며 전투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공연을 아주 잘한다고, 통속적이고 인민적이며 구수한 흙냄새가 풍기는것이 정말 써클맛이 난다고 거듭 치하하시였다. 그러시던 그분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경연에 참가한 군인가족들의 숙식조건으로부터 참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알아 보시고는 군관들의 안해들이 평양에 올라 온지도 여러 날 되는데 집일이 걱정된다고, 남편들은 초소를 지키느라 집일을 돌볼 여유가 없을것이라고, 더구나 지금은 한창 터밭가꾸기와 봄철위생사업을 해야 할 때이고 집짐승관리도 하여야 하므로 일이 많이 밀렸을것이라고 심려하시였다. 일군들은 그분께 군인가족들이 평양에 올라 오기전에 미리 대책을 세워 놓았고 또 부대군인들과 가족들이 제 집처럼 도와 주고 있기때문에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말씀 드리였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어린애를 남의 집에 맡기고 온 녀성도 있을것이고 나이 많은 시부모를 두고 온 동무도 있겠는데 내색을 하지 않아 그렇지 왜 걱정이 없겠는가고 하시면서 우리 군관의 안해들은 오직 조국과 혁명의 리익밖에 모르는 훌륭한 녀성혁명가들이라고, 우리가 공연을 통해서도 본바와 같이 그들은 남편들과 함께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고 사회주의조국을 보위하는데 모든것을 다 바치고 있다고, 그럴수록 우리는 그들을 더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에 참가한 가족들의 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보아 줄데 대한 인민무력부의 명령을 전군에 즉시 하달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각급 부대들에 조선인민군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 참가한 가족들의 생활을 잘 돌봐줄데 대한 인민무력부의 전신명령이 하달되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군대에서 명령이라면 흔히 군사훈련이나 군사적행동과 관련된것이 상례이다. 더우기 이북을 반대하는 적들의 군사적도발로 하여 정세가 날을 따라 긴장해 지고 있을 때 이러한 명령을 받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할수 없는것이였다. 그 어느 나라 군력사에도 있어 본적이 없는 이러한 명령은 오직 인민군대와 그 가족들에 대한 뜨거운 은정을 지니고 계시는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사랑의 전신명령이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김정일장군의 사랑과 은정은 그 높이와 폭, 열도를 가늠할수 없는 한없이 고결하고 무한대하며 열렬한 애정이다. 사랑은 충성을 낳는다 했다. 사랑과 충성으로 결합된 김정일장군과 인민군대의 혼연일체는 원자탄보다 더 위력하며 이 힘을 깨뜨릴 자 이 세상에 없다. 하기에 로씨야의 유명한 작가 울라지미르 드미뜨리비찌는 《로씨야속담에 사랑앞에는 장검도 휘여 든다고 하였는데 친애하는 그분의 사랑앞에서는 온 인류가 고개 숙일것이다》라고 온 세상을 향해 격조높이 말하였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김정일장군의 하해 같은 사랑과 믿음은 선군정치의 현장에 가장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향기를 풍겨 주고 그것으로써 군력과 국력을 막강한것으로 다져 지게 하는 위대한 원동력으로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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